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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유고랜드 يوغولاند Yugol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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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이 땅에서 꽃피우리라 تزدهر في هذه الأرض | ||||||||||||||||||||||||||||||||||||||||
상징 | ||||||||||||||||||||||||||||||||||||||||
국가 | 끝없는 영광(المجد اللامتناهي) | |||||||||||||||||||||||||||||||||||||||
국화 | 서향 | |||||||||||||||||||||||||||||||||||||||
국수 | 아라비아늑대 | |||||||||||||||||||||||||||||||||||||||
역사 | ||||||||||||||||||||||||||||||||||||||||
1941년 5월 28일 유고랜드 건국 1958년 1월 9일 웨스타시아에 괴뢰국으로 복속 1984년 9월 8일 웨스타시아 멸망, 웨스타시아로부터 독립 2023년 4월 17일 4월 개헌 | ||||||||||||||||||||||||||||||||||||||||
지리 | ||||||||||||||||||||||||||||||||||||||||
인문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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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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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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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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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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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yl, .유고, يو. | ||||||||||||||||||||||||||||||||||||||||
국가 코드 | ||||||||||||||||||||||||||||||||||||||||
YGL, YL | ||||||||||||||||||||||||||||||||||||||||
국제 전화 코드 | ||||||||||||||||||||||||||||||||||||||||
+22 | ||||||||||||||||||||||||||||||||||||||||
1. 개요 [편집]
유고랜드(يوغولاند)는 랜드해협 남부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수도는 시디벨아베스(سيديبل عباس).
서쪽으로 고랜드, 동쪽으로 사랜드와 국경을 접한다.
기존의 유고랜드 영토(페잔 지구)는 라마베라 소유였다. 이후 1904년부터 한국인 이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하고, 1937년 소련, 일본의 억압을 피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대이주가 시작되면서 라마베라는 페잔 지구에 대한 통치력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나라를 갈망했던 이주민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2차례에 걸친 아랍계 원주민과의 전투 끝에 마침내 1941년 5월 28일 유고랜드를 건국하였다.
하지만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주민들과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으며, 2025년 유고랜드 내전 등 현재까지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쪽으로 고랜드, 동쪽으로 사랜드와 국경을 접한다.
기존의 유고랜드 영토(페잔 지구)는 라마베라 소유였다. 이후 1904년부터 한국인 이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하고, 1937년 소련, 일본의 억압을 피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대이주가 시작되면서 라마베라는 페잔 지구에 대한 통치력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나라를 갈망했던 이주민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2차례에 걸친 아랍계 원주민과의 전투 끝에 마침내 1941년 5월 28일 유고랜드를 건국하였다.
하지만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원주민들과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으며, 2025년 유고랜드 내전 등 현재까지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상징 [편집]
2.1. 국호 [편집]
유고랜드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국호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2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로 悠(멀 유)+고랜드가 되어 유고랜드가 되었다는 설이다. 풀이하자면 고랜드에서 먼 곳이라는 것. 유고랜드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타당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다른 주장으로는 유고랜드 일대에 서식하는 주목나무의 영어명인 Yew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Yew가 Yu로 바뀌어 최종적으론 유고랜드(Yugoland)가 되었다는 것. 그러나 한국계와 아랍계가 주류인 나라에서 왜 갑자기 영어 단어가 나왔는지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 서양 선교사들이 작명해서라는 설 등이 있을 뿐이다.
현행 한국어 정식 국명은 유고랜드, 아랍어 국명은 يوغولاند 다.[3]
다만 2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로 悠(멀 유)+고랜드가 되어 유고랜드가 되었다는 설이다. 풀이하자면 고랜드에서 먼 곳이라는 것. 유고랜드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타당한 주장처럼 보이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고.
다른 주장으로는 유고랜드 일대에 서식하는 주목나무의 영어명인 Yew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Yew가 Yu로 바뀌어 최종적으론 유고랜드(Yugoland)가 되었다는 것. 그러나 한국계와 아랍계가 주류인 나라에서 왜 갑자기 영어 단어가 나왔는지는 명확한 이유가 없다. 서양 선교사들이 작명해서라는 설 등이 있을 뿐이다.
현행 한국어 정식 국명은 유고랜드, 아랍어 국명은 يوغولاند 다.[3]
2.2. 국기 [편집]
금백기 الأعلام الذهبية والبيضاء 金白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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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
채택일 | 1941년 5월 28일 |
비율 | 33:59 |
유고랜드의 국기. 노란색, 흰색의 가로선으로 이루어진 삼색기다.
유고랜드 헌법에는 단순히 노란색(혹은 금색), 흰색이라는 색상의 이름만 규정되어 있고 색조에 관한 규정은 없다. 때문에 같은 유고랜드 국기라 하더라도 노란색의 색감이 다른 국기도 가끔 사용되곤 한다.
비율이 특이한데, 33:59다. 33은 국가건국위원회 대표 33인을 상징하며, 59는 최초로 페잔 지구에 정착한 이주민 59명을 상징한다.
국기 상, 하단의 노란색은 떠오르는 태양, 투지를 의미하며, 하얀색은 평화와 화합을 나타낸다.
유고랜드 헌법에는 단순히 노란색(혹은 금색), 흰색이라는 색상의 이름만 규정되어 있고 색조에 관한 규정은 없다. 때문에 같은 유고랜드 국기라 하더라도 노란색의 색감이 다른 국기도 가끔 사용되곤 한다.
비율이 특이한데, 33:59다. 33은 국가건국위원회 대표 33인을 상징하며, 59는 최초로 페잔 지구에 정착한 이주민 59명을 상징한다.
국기 상, 하단의 노란색은 떠오르는 태양, 투지를 의미하며, 하얀색은 평화와 화합을 나타낸다.
2.3. 국장 [편집]
국가문장 مدير يوغولاند 國家紋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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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 유고랜드 정부 |
1982년 12월 10일「국가문장규범」 | |
국문 명칭 | 국가문장 مدير يوغولاند |
근거 법령 | 대통령령 제12829호 「국장 규범」 |
유고랜드의 국장. 현재의 국장은 1982년 웨스타시아에서 독립하고 난 뒤 제정되었으며, 한 차례 개정을 거쳤다.
가운데 늑대는 유고랜드의 국수인 아라비아늑대이며, 상단의 큰 별은 북극성, 양쪽 작은 별은 유고랜드를 이루는 두 민족인 한국인, 아랍인을 상징한다.
가운데 늑대는 유고랜드의 국수인 아라비아늑대이며, 상단의 큰 별은 북극성, 양쪽 작은 별은 유고랜드를 이루는 두 민족인 한국인, 아랍인을 상징한다.
2.4. 국가 [편집]
(소리 큼 주의)
* 여담 - 유고랜드내의 아랍인 국민들은 공식 아랍어 버전으로 국가를 부를 것 같지만, 한국어로 부르는게 뽕이 더 차서 한국어로 같이 불러준다고 한다
유고랜드 국가는 특이하게 공식적으로 1번 부르고 1번 더 부르게 되어있다. 따라서 정부에서 제작한 공식 음원에서도 국가가 연속으로 2번 재생된다
한국어 버전
1절
서향은 피어난다, 천리를 넘어
우리의 의지, 하늘에 닿네
사막의 바람을 딛고 선 우리
노력은 검이 되고, 단결은 방패라
후렴
아, 유고랜드! 끝없는 영광이여!
자유의 별 아래, 하나로 선 우리는
뿌리 깊은 약속, 피로 지킨 땅에서
영원히 타오르라, 우리의 이름아
2절
늑대의 눈빛은 평화를 품고
우리는 하나 되어 나아간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선 민족
모래 위에 세운 성벽은 무너지지 않으리
후렴
아, 유고랜드! 끝없는 영광이여!
과거의 족쇄를 끊은 손으로
미래를 열어가리, 의지의 불꽃으로
영원히 찬란하라, 유고의 태양이여
아랍어 버전
المقطع الأول
تتفتح زهرةُ الغرب، تتعدّى الآفاق
إرادتُنا تسمو، وتبلغُ السماوات
نقفُ على رياحِ الصحراءِ الجافة
جهدُنا سيفٌ، ووحدتُنا درعٌ لا ينكسر
اللازمة (اللازمة = 후렴)
آه، يوغولاند! يا مجدُنا الأبدي!
تحتَ نجمةِ الحريةِ، نقفُ يداً بيد
من أرضٍ رُويتْ بدمائنا وعهدِنا
ليتوهّج اسمُنا، إلى الأبد، بلا زوال
المقطع الثاني
في عيونِ الذئبِ، سلامٌ وأُخوّة
نمضي معاً، شعوباً بلا حدود
ننهضُ بعدَ كلّ سقوطٍ، أقوياء
والقلعةُ في الرملِ، لا تسقطُ أبداً
اللازمة
آه، يوغولاند! يا مجدُنا الأبدي!
بأيدينا كسرنا قيودَ الاستعمار
ونُشعلُ غداً بنارِ العزيمةِ والإصرار
ليشرقَ شمسُ يوغو، في سماءِ الأحرار
3. 역사 [편집]
3.1. 고대 - 근대 [편집]
예로부터 유고랜드 땅은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빈 사막이었다. 지리적 이점 또한 딱히 없어 라 마베라의 식민 지배 시기 전까지는 이름 없는 마을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다[4].
하지만 식민 지배 시기부터 라 마베라는 시디벨아베스(지금 유고랜드 수도인 그 시디벨아베스 맞다.)란 계획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기록상 1905년까지 무려 200만명의 고랜드인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동시에 1904년, 지구 반대편에서 온 불굴의 의지들 또한 새로운 꿈을 품고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식민 지배 시기부터 라 마베라는 시디벨아베스(지금 유고랜드 수도인 그 시디벨아베스 맞다.)란 계획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기록상 1905년까지 무려 200만명의 고랜드인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동시에 1904년, 지구 반대편에서 온 불굴의 의지들 또한 새로운 꿈을 품고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다.
3.2. 현대 [편집]
1904년부터 한국인, 혹은 고려인들 또한 썩을 대로 썩어 들어간 조선을 떠나 머나먼 이곳으로 이주해오기 시작한다. 1930년까지 약 200만명의 한국인들이 이주했으며 소련의 고려인 억압 정책으로 인해 소련에 거주하던 300만명, 그리고 조선에서 식민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이주한 500만명까지 합쳐서 총 1000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이주하기 시작하면서[5],영원히 변두리 깡촌으로만 남을 것 같던 이곳에 유래 없는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라 마베라의 식민지 신분. 라 마베라에서도 엄청나게 높은 인구 증가에 관심을 가졌고, 느슨하게 풀려있던 목줄을 슬슬 죄여오기 시작했다.
이런 라 마베라의 행태는 1939년 즈음 세테트에서 석유가 발견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한국인과 고랜드인(아랍인)들 또한 식민지배의 전적이 있던지라 거센 저항(라 마베라 시디벨아베스 총독부 방화 사건 등)과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지속되는 반발에, 고랜드 반란이란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마베라는 결국 1940년 7월 21일 시디벨아베스 독립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떠나갈 듯 한 환호성도 잠시, 한국인과 아랍인은 시디벨아베스[6]의 주류가 누구인지를 두고 다시금 승부를 벌이기 시작한다. 한평생 자신들의 나라를 갈망한 한국인, 그리고 자신들이 일군 모든 것을 뺏길 처지에 놓인 아랍인.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유고랜드 땅에 끝없는 전운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 자세한 내용은 유고랜드 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0년 2월 1일, 1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아랍인들의 선제공격으로 이루어진 이 전쟁은 고랜드에서 지원받은 첨?단 무기[7] 몇 대로 무장한 아랍인들이 우세일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철제 농기구와 쪽수로 무장한 한국쪽 군의 기세를 꺾기는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론 아랍인들의 대패였으며, 아랍인들은 살림살이를 내다버리고 아부 쿠찬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1940년 6월 28일, 2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이번엔 한국인들의 역공이었다. 이번에는 한국인들 또한 본국에서 공급받은 머스킷총으로 단단히 무장하였다. 아랍인들 또한 태세를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수적과 양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 파죽지세로 다가오는 한국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아랍인들의 대패였으며, 그들의 영역은 모래밖에 없는 가자우에트 이남으로 축소된다.
이때부터 한국인과 아랍인의 사이는 급격하게 악화되었으며, 2025년 현재까지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도권은 이제 한국인들로 넘어갔다. 1940년 9월 1일, 국가건국위원회가 창설되었으며, 대표 33인[8]이 지정되었다. 이후 국가건국위원회는 건국까지 약 9개월간 정부를 구성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국명과 국기를 제작했다. 특이하게 국장은 공모전을 거쳐 최종 선정했는데, 아부 쿠찬에 거주하는 평범한 농부 장범형이 낸 안이 채택되었다.[9]
하지만 아직은 라 마베라의 식민지 신분. 라 마베라에서도 엄청나게 높은 인구 증가에 관심을 가졌고, 느슨하게 풀려있던 목줄을 슬슬 죄여오기 시작했다.
이런 라 마베라의 행태는 1939년 즈음 세테트에서 석유가 발견됨에 따라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한국인과 고랜드인(아랍인)들 또한 식민지배의 전적이 있던지라 거센 저항(라 마베라 시디벨아베스 총독부 방화 사건 등)과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지속되는 반발에, 고랜드 반란이란 급한 불을 꺼야 했던 마베라는 결국 1940년 7월 21일 시디벨아베스 독립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떠나갈 듯 한 환호성도 잠시, 한국인과 아랍인은 시디벨아베스[6]의 주류가 누구인지를 두고 다시금 승부를 벌이기 시작한다. 한평생 자신들의 나라를 갈망한 한국인, 그리고 자신들이 일군 모든 것을 뺏길 처지에 놓인 아랍인.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유고랜드 땅에 끝없는 전운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 자세한 내용은 유고랜드 내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0년 2월 1일, 1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아랍인들의 선제공격으로 이루어진 이 전쟁은 고랜드에서 지원받은 첨?단 무기[7] 몇 대로 무장한 아랍인들이 우세일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철제 농기구와 쪽수로 무장한 한국쪽 군의 기세를 꺾기는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론 아랍인들의 대패였으며, 아랍인들은 살림살이를 내다버리고 아부 쿠찬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1940년 6월 28일, 2차 유고랜드 내전이 발발했다. 이번엔 한국인들의 역공이었다. 이번에는 한국인들 또한 본국에서 공급받은 머스킷총으로 단단히 무장하였다. 아랍인들 또한 태세를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수적과 양적으로 밀리는 상황이라 파죽지세로 다가오는 한국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아랍인들의 대패였으며, 그들의 영역은 모래밖에 없는 가자우에트 이남으로 축소된다.
이때부터 한국인과 아랍인의 사이는 급격하게 악화되었으며, 2025년 현재까지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도권은 이제 한국인들로 넘어갔다. 1940년 9월 1일, 국가건국위원회가 창설되었으며, 대표 33인[8]이 지정되었다. 이후 국가건국위원회는 건국까지 약 9개월간 정부를 구성하고, 법률을 제정했으며, 국명과 국기를 제작했다. 특이하게 국장은 공모전을 거쳐 최종 선정했는데, 아부 쿠찬에 거주하는 평범한 농부 장범형이 낸 안이 채택되었다.[9]
나는 자랑스러운 大韓의 國民이요, 大韓은 나의 祖國이로다.국가건국위원회 대표 33인 | 신한성 헌장 제 1장
유고랜드는 自由民主主義에 立脚한 共和制이다.[10]유고랜드 헌법 제 1조 1항
1941년 5월 28일, 유고랜드가 건국되었다.
4. 자연환경 [편집]
4.1. 지리 [편집]
남랜드에 위치해 있으며, 인접 국가들에 비해 영토가 꽤 작은 편이다. 남부의 척박한 사우스센트럴 사막까지 제하면 개발할 수 있는 면적은 상당히 작다.
유고랜드의 지리는 크게 남북으로 분리된다. 행정구역대로 북쪽은 시디벨아베스, 아부 쿠찬, 나시르 알 물크, 남쪽은 가자우에트, 나크시에 로스탐으로 나누어진다. 북쪽은 현대적인 건물이 즐비한[11]도시가 많으며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남쪽은 아랍식 건축물이 많으며, 아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국내외에서 가성비 아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서쪽에 고랜드, 동쪽에 사랜드를 끼고 있다. 바다를 건너면 루이나가 있는데, 이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루이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루이나에서도 유고랜드를 볼 수 있으며, 야경이 장관이라고 한다. 무려 유고랜드 전망대까지 세워져 있을 정도.
유고랜드의 지리는 크게 남북으로 분리된다. 행정구역대로 북쪽은 시디벨아베스, 아부 쿠찬, 나시르 알 물크, 남쪽은 가자우에트, 나크시에 로스탐으로 나누어진다. 북쪽은 현대적인 건물이 즐비한[11]도시가 많으며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남쪽은 아랍식 건축물이 많으며, 아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국내외에서 가성비 아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서쪽에 고랜드, 동쪽에 사랜드를 끼고 있다. 바다를 건너면 루이나가 있는데, 이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루이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루이나에서도 유고랜드를 볼 수 있으며, 야경이 장관이라고 한다. 무려 유고랜드 전망대까지 세워져 있을 정도.
4.2. 기후 [편집]
유고랜드의 기후는 북부는 냉대 습윤 기후(Dfa), 남부는 사막 기후(BW), 또는 스텝 기후(BS)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막장이다. 여름엔 졸라게 덥고, 겨울엔 졸라게 춥다. 그나마 가자우에트, 나크시에 로스탐 같은 사막 도시는 사막 기후라 습도가 그리 높지 않아 여름엔 그늘에 가면 금방 시원해지고, 겨울엔 온도도 낮게 내려가지 않아 그럭저럭인 반면, 나머지 지역은 국물도 없다.
여름엔 35도를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며,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해안을 낀 지역이 대부분이라 습도 또한 높으며, 이로 인해 체감온도는 45도가 기본값이다. 오죽하면 유고랜드 내전 때 조내령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손강태 장군도 "이 씨발놈의 날씨, 내가 여기 장군만 아니었어도 조선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회고했을 정도(...).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은 루트알시안 샤하다지구[12] 48.1°C.
겨울은 더더욱 혹독하다. 12월만 돼도 하루종일 영하권에서 벗어나질 않으며, 해안가 버프까지 받아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도 있다. 물론 체감기온만 그런 것이지, 평균 기온은 영하 3도 안팎에서 노는 편이다.[13]다만 이것도 동춘지구(-5.9°C), 아인테무센트시(-6.6°C)같은 내륙 산지 지역으로 가면 많이 내려가지만. 최저기온은 2020년 북극 한파때 기록된 아인테무센트 -28.5°C.
눈도 끝내주게 많이 온다. 많은 사람들이 유고랜드는 덥고 사막사막한 기후라고 생각하는데, 해안가 지방인 북부는 얄짤없다. 무려 대한민국의 울릉도와 맞먹는 강설량을 자랑한다. 겨울철 유고랜드에 방문하면 하늘이 뚫린 듯 눈만 오지게 내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당연히 내리는 눈은 습설로, 눈이 그치고 나면 지붕, 차, 나무 위에 두텁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강설량을 활용해 한성눈꽃축제같은 눈 관련 축제가 많이 열리고 있으며, 나시르 알 물크의 스키장들은 매년 성업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막장이다. 여름엔 졸라게 덥고, 겨울엔 졸라게 춥다. 그나마 가자우에트, 나크시에 로스탐 같은 사막 도시는 사막 기후라 습도가 그리 높지 않아 여름엔 그늘에 가면 금방 시원해지고, 겨울엔 온도도 낮게 내려가지 않아 그럭저럭인 반면, 나머지 지역은 국물도 없다.
여름엔 35도를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며,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해안을 낀 지역이 대부분이라 습도 또한 높으며, 이로 인해 체감온도는 45도가 기본값이다. 오죽하면 유고랜드 내전 때 조내령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손강태 장군도 "이 씨발놈의 날씨, 내가 여기 장군만 아니었어도 조선으로 다시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회고했을 정도(...).
관측 사상 최고 기온은 루트알시안 샤하다지구[12] 48.1°C.
겨울은 더더욱 혹독하다. 12월만 돼도 하루종일 영하권에서 벗어나질 않으며, 해안가 버프까지 받아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도 있다. 물론 체감기온만 그런 것이지, 평균 기온은 영하 3도 안팎에서 노는 편이다.[13]다만 이것도 동춘지구(-5.9°C), 아인테무센트시(-6.6°C)같은 내륙 산지 지역으로 가면 많이 내려가지만. 최저기온은 2020년 북극 한파때 기록된 아인테무센트 -28.5°C.
눈도 끝내주게 많이 온다. 많은 사람들이 유고랜드는 덥고 사막사막한 기후라고 생각하는데, 해안가 지방인 북부는 얄짤없다. 무려 대한민국의 울릉도와 맞먹는 강설량을 자랑한다. 겨울철 유고랜드에 방문하면 하늘이 뚫린 듯 눈만 오지게 내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당연히 내리는 눈은 습설로, 눈이 그치고 나면 지붕, 차, 나무 위에 두텁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강설량을 활용해 한성눈꽃축제같은 눈 관련 축제가 많이 열리고 있으며, 나시르 알 물크의 스키장들은 매년 성업하고 있다.
4.3. 자연재해 [편집]
남부랜드판의 영향으로 진도 4, 5정도의 지진이 가끔씩은 일어나고 있으나, 지진대에 속한 나라들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라 지진의 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다. 1975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후 진도 6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다만 2010년대 들어 중부랜드판과 남부랜드판의 영향으로 유고랜드에도 진도 5 정도의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이젠 지진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시선도 있다.
폭염이 여름철마다 일어난다. 남부야 40도가 되더라도 습도가 낮아 그늘으로 피하면 그만이지만, 북부는 얄짤 없다. 기온은 남부와 비슷하거나 낮아도 해안 지역 특성상 습도가 압도적으로 높아 체감기온이 여름 내내 45도를 들락날락하며 이로 인해 매년 열사병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건물 내부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있긴 하지만 야외에도 에어컨을 설치할 수는 없긴 하므로.
북부 한정이긴 하지만 대설 또한 큰 수준의 자연재해다. 랜드해 서쪽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와 남쪽에서 산을 타고 넘어오는 뜨거운 공기가 만나 내리는 폭설이 겨울철에 자주 일어난다. 다만 대비 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리 큰 피해를 낳진 않으며, 일강설량 30cm가 넘어야 교통 체계가 겨우 마비되는 정도다. 일강설량 30cm가 넘는 날이 손에 꼽을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남부 한정으로 모래폭풍도 가끔씩 일어난다.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온 동네가 모래로 덮이며, 모래의 고운 입자가 자동차 같은 기계를 고장내버려 한번 일어나면 피해가 만만치 않은 편이다.
폭염이 여름철마다 일어난다. 남부야 40도가 되더라도 습도가 낮아 그늘으로 피하면 그만이지만, 북부는 얄짤 없다. 기온은 남부와 비슷하거나 낮아도 해안 지역 특성상 습도가 압도적으로 높아 체감기온이 여름 내내 45도를 들락날락하며 이로 인해 매년 열사병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건물 내부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있긴 하지만 야외에도 에어컨을 설치할 수는 없긴 하므로.
북부 한정이긴 하지만 대설 또한 큰 수준의 자연재해다. 랜드해 서쪽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와 남쪽에서 산을 타고 넘어오는 뜨거운 공기가 만나 내리는 폭설이 겨울철에 자주 일어난다. 다만 대비 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리 큰 피해를 낳진 않으며, 일강설량 30cm가 넘어야 교통 체계가 겨우 마비되는 정도다. 일강설량 30cm가 넘는 날이 손에 꼽을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남부 한정으로 모래폭풍도 가끔씩 일어난다.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온 동네가 모래로 덮이며, 모래의 고운 입자가 자동차 같은 기계를 고장내버려 한번 일어나면 피해가 만만치 않은 편이다.
4.4. 생태 [편집]
5. 인문환경 [편집]
6. 행정구역 [편집]
7. 정치 [편집]
7.1. 행정 [편집]
7.2. 입법 [편집]
7.3. 사법 [편집]
8. 외교 [편집]
9. 경제 [편집]
9.1. 산업 [편집]
10. 사회 [편집]
10.1. 복지 [편집]
10.2. 치안 [편집]
10.3. 문화 [편집]
10.3.1. 영화/드라마 [편집]
10.3.2. 언론 [편집]
10.3.3. 교육 [편집]
이주민들의 모국인 대한민국과 같이 주변 국가들 중 교육열이 가장 높은 국가다. 사교육 또한 발달되어 있어 수도권은 물론 가자우에트, 나시르 알 물크 등에도 많은 학원이 분포해 있다. 시시각각 분쟁이 터지는 나크시에 로스탐 때문에 이곳 또한 교육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사실은 국내 최고의 대학들인 CKH(시디벨대, 알카자드, 한성대)에 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남중남고, 여중여고가 존재하고 남녀공학이라도 남녀분반을 실시하는 학교가 많다. 남녀합반인 학교는 전체의 20% 정도. 다만 요즘은 남녀공학, 남녀합반 제도가 유행하는 추세이다.
학제는 6-3-3이며, 초등학교, 중학교는 성적과 상관없이 거주지를 기준으로 입학하는 평준화 제도이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비평준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진학하려는 학교의 입학 시험을 쳐야 한다.
유고랜드의 고등교육기관은 4년제 대학과, 2,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대학은 학술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이며, 전문대학은 직업 교육을 담당한다.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려면 통합능력평가(Unified State Exam, USE)를 쳐야 한다.
사립대보다 국립대가 더 많은 편이다. 전체 대학교 중 국립대의 비율은 60% 정도.
대학 진학률은 56.3%이며, 4년제 대학 진학률은 37.5%다.
남중남고, 여중여고가 존재하고 남녀공학이라도 남녀분반을 실시하는 학교가 많다. 남녀합반인 학교는 전체의 20% 정도. 다만 요즘은 남녀공학, 남녀합반 제도가 유행하는 추세이다.
학제는 6-3-3이며, 초등학교, 중학교는 성적과 상관없이 거주지를 기준으로 입학하는 평준화 제도이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비평준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진학하려는 학교의 입학 시험을 쳐야 한다.
유고랜드의 고등교육기관은 4년제 대학과, 2,3년제 전문대학이 있다. 대학은 학술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이며, 전문대학은 직업 교육을 담당한다.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려면 통합능력평가(Unified State Exam, USE)를 쳐야 한다.
사립대보다 국립대가 더 많은 편이다. 전체 대학교 중 국립대의 비율은 60% 정도.
대학 진학률은 56.3%이며, 4년제 대학 진학률은 37.5%다.
10.3.3.1. 문제점 [편집]
내가 이 나라(유고랜드)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원"이란 장소에서 하루에 적게는 2시간, 많게는 10시간 이상을 오직 대학 입시만을 위해 소비한다는 것이다.시디벨대학교 철학과 교수 라티 앤버슨, 2023년 AWT 특별방송 '꽃피지 못한 봄날'에서
'당연한 결과다, 기어가는 방법조차 못 배운 아기를 무작정 뛰라고만 시키는게 여기 현실인데.''그저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고' 중.
상술했듯이 유고랜드의 교육열은 주변 국가들 중 제일 높다. 유고랜드 내외부에서는 이를 남랜드 국가들 중 경제 성장이 가장 빠른 이유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유고랜드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으며, 청소년 자살률이 2023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11.8명, 세계에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 과열된 입시 교육
..
* 열악한 학생 인권
...
* 과도한 사교육
....
* 과열된 입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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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악한 학생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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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도한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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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 스포츠 [편집]
10.3.5. 국민(민족) [편집]
11. 군사 [편집]
12. 단위 [편집]
12.1. 법정 연호 [편집]
12.2. 시간대 [편집]
12.3. 도량형 및 산업 규격 [편집]
12.4. 시간 표기 [편집]
13. 관련 문서 [편집]
[1] 수니파가 주류이다.[2] 특급시: 시디벨아베스, 가자우에트 부: 아부 쿠찬, 나시르 알 물크, 나크시에 로스탐[3] /juːɣuːlaːnd/[4] 이 마을은 현재 가자우에트 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5] 왜 하필이면 한국에서 드럽게 멀리 떨어진 이곳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주했냐면, 똑같은 식민 지배지여도 비교적 변두리라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이 이곳 시디벨아베스였기 때문이었다.[6] 한국명으론 신한성. 문자 그대로 새로운 한성(서울)이란 뜻이다. 현재까지 시디벨아베스의 지명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고 있다. 특히 이주민 2~3세대 노년층이 자주 애용하며, 보통 시디벨아베스를 신한성이라 지칭한다. 당연히 시디벨아베스 해도 알아듣기는 한다만. 특이한 케이스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국가를 유고랜드가 아닌 신한성으로 소개하기도 한다.[7] 출처 미상의 미제 땅크, 자주포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8] 가나다순으로 강영림, 강학영, 권필상, 김기택, 김녕국, 김동한, 김대웅, 김민식, 김병추, 김신윤, 김안, 김위명, 김재성, 김지춘, 김태효, 김현, 민주혁, 박리원, 박무찬, 박춘환, 박태구, 서승림, 송유환, 안유월, 연형백, 이만교, 이채한, 임영춘, 정찬백, 조성표, 천영빈, 홍설, 황영호[9] 상금도 주어졌는데, 자헤단에 있는 집 한 채였다.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10억 정도라고.[10] 유고랜드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이다.[11] 물론 한성지구, 안현재 메리어트 시디벨아베스, 동춘문화마을 등 여러 한국적인 요소들 또한 많다.[12] 현 샤하다-비스말지구[13] 안현지구(-1.7°C), 온유지구(-3.1°C)셔번시(-2.5°C)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