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펼치기 · 접기 ]
파일:NLTO 깃발.svg NLTO | 자본주의 진영
파일:Ruinaflag.png
파일:플로렌시아 국기.png
파일:유고랜드국기.png
파일:빌_베른.png
파일:마베라국기.png
파일:체르드깃발.png
파일:코스탄티뉘예.png
파일:booksan_flag.png
파일:헤르샤바문장.svg H.P. | 공산주의 진영
제3의 위치 | 중립 및 그외 진영
파일:싸볘트정부기.png
파일:고랜드국기.png
파일:D_Bundesflagge.png
파일:시스타니아국기.png
파일:치앙펭.png
파일:동사_랜드.png
파일:센츄리움깃발.png
파일:신동경국기.png
파일:Ewighilkenflag3.jpg
파일:Reikaflag44.jpg
※ 군청색은 NLTO 정회원국, 하늘색은 NLTO 비회원국이지만 자유진영인 국가.
※ 마찬가지로 진홍색은 HP 정회원국, 연홍색은 비회원국임.
※ 독자노선 국가들은 고유색으로 표기함.
고랜드
گولند | Goland
파일:고랜드국기탈레반.png
[[(파일명)|width=100%]]
국기
국장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상징
국가
스파르타꾸스
국화
프리지아
국수
사향고양이
역사
[ 펼치기 · 접기 ]
지리
[ 펼치기 · 접기 ]
수도
아바나
면적
접경국
인문 환경
[ 펼치기 · 접기 ]
인구
143,372,950명(2024년) | 세계 9위
민족
파슈툰인 42%, 타지크인 27%, 하자라인 9%, 우즈베크인 9%, 아이마크인 4%, 투르크멘인 3%, 발루치인 2%, 기타 4% (2008)
출산율
7.43명(2024년)
공용어
다리어, 파슈토어[* [[우즈베크어, 기타 30여 개의 방언도 쓰인다.]
국교
이슬람
종교
이슬람 99.9%[1]]에 의하면 수니파의 비율이 90%, 시아파의 비율이 7%에 가깝다.], 기독교 0.01%[2]
정치
[ 펼치기 · 접기 ]
정치 체제
탈레반 과도정부,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 제정일치 신권정치, 전체주의, 군사독재
민주주의 지수
0.25점, 권위주의 (2024년)
(167개국 중 167위)[3]
최고지도자
(국가원수)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부지도자
(정치/외교)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지도자
(군사작전)
무하마드 야쿠브
부지도자
(재정/군수물자)
시라주딘 하카니
총리
하산 아쿤드 (권한대행)
여당
탈레반
경제
[ 펼치기 · 접기 ]
통화
명목 GDP
$184억(2025년) | 세계 124위
1인당 GDP
$423]](2025년) | 세계 195위
PPP
$890억(2025년) | 세계 102위
1인당 PPP
$2,032(2025년) | 세계 176위
국부
$250억 | 세계 116위(2019년)
국제연합 가입
1946년 11월 19일
단위
시간대
UTC+04:30 (AST)
여행경보
여행금지
전 지역

1. 개요2. 상징3. 역사
3.1. 고대
3.1.1. 건국신화3.1.2. 첫 번째 도시와 왕정의 시작3.1.3. 도시국가의 확대와 성벽의 시대 (기원전 약 1900년경)3.1.4. 최초의 통합 – 하이카르 왕조 (기원전 약 1400년경)3.1.5. 두 번째 분열기 – 영혼이 갈라진 시대 (기원전 약 1200년경)3.1.6. 흙으로 새긴 계시 — 무명사제들의 통합과 종말의 교의 (기원전 약 840년경)3.1.7. 7. 에루바 연맹 — 이름 위에 덮은 가면 (기원전 약 720년경)3.1.8. 돌판을 밟고 들어온 자들 — 로마의 침공과 무명사제 체제의 몰락 (서기 137년)3.1.9. 천사의 돌판은 무너지고 — 사제왕국의 종말과 세속 질서의 귀환
3.2. 고대로마3.3. 근세3.4. 근대3.5. 현대
3.5.1. 개요3.5.2. 고랜드 공산혁명3.5.3. 공산 혁명 이후3.5.4. 루이나의 추가 개입3.5.5. 루이나 개입 후
4. 자연환경5. 인문환경6. 정치7. 외교8. 경제
8.1. 아편 생산8.2. 원인
8.2.1. 자연환경8.2.2. 반군의 자금 확보8.2.3. 단속반의 부정부패8.2.4. 단속반원의 불법행위8.2.5. 생활 속 마약
9. 사회10. 문화11. 군사12. 여담

1. 개요 [편집]

고랜드는 랜드해 기준 남쪽에 위치한 신정국가이다.

2. 상징 [편집]

3. 역사 [편집]

3.1. 고대 [편집]

3.1.1. 건국신화 [편집]

태초에 세계는 어둠과 물로만 가득했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깨어난 것은 고요한 지성 ‘에루바’였다. 에루바는 생각의 신이며, 말 없는 침묵 속에서 형태를 상상하고 모양을 불어넣었다. 그는 최초의 세 가지 창조물, 시간, 흙, 의지를 만든 뒤, 이 세 가지가 얽혀 흐르게 하였다. 시간은 세월을 만들고, 흙은 육지를 낳았으며, 의지는 결국 생명을 움트게 했다. 에루바는 그 흙에서 인간을 빚었으나, 완전한 존재로 만들진 않았다. 그는 일부러 인간 안에 ‘결핍’을 남겨두었다.

그 결핍은 슬픔이 되었고, 갈망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탐욕, 거짓, 폭력, 지배로 형태를 바꾸었다. 에루바는 이러한 결핍이 불완전함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내린 자유의 시작임을 알았다. 그는 죄를 지을 자유를 허락한 것이다. 인간이 선을 따를지 악을 따를지는 에루바가 정하지 않았고, 그 판단과 책임은 오로지 인간에게 남겨두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자유를 견디지 못했다. 공동체는 스스로 세운 규율을 깨고, 스스로 쌓은 성벽을 무너뜨렸다. 도시들은 탐욕과 음모 속에서 불타올랐고, 이웃은 이웃을 속이고 찔렀으며, 아비는 아들을 노예로 팔기까지 하였다.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던 에루바는 슬퍼하면서도 결정을 내린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을 들어 왕을 삼고, 또 한 사람을 들어 그 왕을 돕게 하리라.”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대 고랜드의 말로 아샤-엘(Asha’el), 곧 질서를 되살리는 자였다. 왕은 신의 이름 아래 맹세하며, 백성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자이자, 신이 남긴 결핍 위에 새로운 질서를 심는 존재였다.

이렇게 에루바는 인간에게 단 하나의 도구를 더 내려주었다.
법(Lazu)이라 불리는 말씀이었다. 이 법은 최초로 깎은 돌판에 새겨졌고, 나중에 하이카르 법전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인간은 다시 도시를 세웠고, 왕을 세웠으며, 질서와 혼돈이 반복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3.1.2. 첫 번째 도시와 왕정의 시작 [편집]

에루바의 말씀이 돌판에 새겨진 뒤,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가장 먼저 재를 쌓고, 돌을 세워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 도시를 아트람(Atram)이라 불렀다. 아트람은 '제단 위의 집'이라는 뜻으로, 고랜드 최초의 도시국가로 여겨진다. 아트람에서는 왕이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었다. 왕은 동시에 제사장이자 재판관이었으며, 신의 법(Lazu)을 대리해 땅 위에서 실현해야 할 책임을 가졌다. 그러나 왕의 권위는 ‘예언자(Sevir)’라 불리는 자의 존재로 인해 균형을 이루었다. 예언자는 단순한 조언자가 아닌, 에루바의 뜻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자, 즉 신과 왕 사이의 중재자였다.

왕은 “베라쉬(Berash)”, 즉 ‘신의 무게를 짊어진 자’라 불렸고, 예언자는 “세비르(Sevir)”, ‘신의 귓속말을 듣는 자’로 불렸다. 이 두 존재는 함께 통치하였으며, 하나가 부패하거나 오만에 빠질 경우 다른 하나가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고랜드 고대의 정치체는 바로 이처럼 왕과 예언자의 ‘쌍기둥 통치’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예언자는 전투에 나서지 않았지만, 전쟁을 허락할지, 사면을 내릴지, 혹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지를 결정할 때 왕에게 신탁을 내리는 존재로 기능했다. 이는 훗날 고랜드 왕권에 대한 견제 장치로 계승되며, 일부 시대에는 예언자가 왕권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도 존재한다.

3.1.3. 도시국가의 확대와 성벽의 시대 (기원전 약 1900년경) [편집]

아트람이 번영하자, 인근의 땅과 강변에도 도시들이 생겨났다. 에시갈, 투르 안-에르, 발메쉬, 카리-수르, 네프 할람과 같은 도시국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왕을 세웠고, 자신들만의 신전을 세워 에루바의 이름을 노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도시들은 하나의 문제를 겪게 된다.
결핍은 인간 안에 있었고, 권력은 욕망을 키웠다.

왕들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도 서로의 성역을 침범했고, 물자와 강의 흐름을 두고 싸웠으며, 법보다 창을 먼저 꺼내드는 일이 늘어났다. 이에 사람들은 도시마다 더 높은 성벽을 쌓았고, 고대 고랜드는 "성벽의 시대"에 진입한다. 이 시기는 고고학자들이 부르는 바, B.C. 1900년경에 해당하는 시기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도시마다 독자적인 판본의 법전, 신전 문서, 사제 연합, 왕실 인장 등을 만들며 스스로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3.1.4. 최초의 통합 – 하이카르 왕조 (기원전 약 1400년경) [편집]

그러나 이 도시들 중 하나인 카리-수르의 왕자, 아메쉬 하이카르(Amesh Haikar)는 일찍이 도시 간의 내전을 목도하며 자랐고, "결핍은 서로 싸우게 하나, 질서는 사람을 묶는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아트람에 원정을 시작으로 7개 도시국가를 차례로 병합했고, 자신을 "샤르 하이카르", 즉 하이카르의 대왕이라 칭하였다.

하이카르 왕조는 고대 고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통합된 중앙 왕정체제를 구축한 정권으로, 이후 300년간 고랜드 전역을 통치했다. 이들은 왕의 권위를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 주장하며, 왕의 통치를 "신의 명령(Lazu)"을 행하는 것이라 정당화했다.

하이카르 왕조는 치안과 농업, 사법체계를 재정비했고, 고대 고랜드 문자 체계를 보급하였으며, 모든 도시국가에 중앙에서 파견한 ‘재판 사제’가 법률을 일관되게 해석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하이카르 왕조도 완벽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후계자 분쟁, 지방 총독의 반란, 사제계의 분열 등이 일어나면서 왕조는 쇠퇴했고, 결국 다시 지역 세력으로 분열되는 "두 번째 분열기"에 돌입하게 된다.

3.1.5. 두 번째 분열기 – 영혼이 갈라진 시대 (기원전 약 1200년경) [편집]

하이카르 왕조의 마지막 왕, 사무엘 하이카르 5세가 죽었을 때, 왕위 계승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 내전은 단순한 권력 다툼에 그치지 않았다. 예언자단은 왕가의 부패를 비판하며, 각기 다른 해석의 신탁을 주장했고, 결국 신의 법(Lazu)에 대한 해석조차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한때 하나였던 신의 뜻은 열두 개로 갈라졌다. “한 얼굴의 신이 열두 혀로 말한다면, 누가 그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는가?” 고대 기록은 그렇게 묻고 있다. 이 시기를 고랜드인들은 “영혼이 갈라진 시대”라 부른다. 왕권은 각 도시로 분열되었고, 예언자들은 자신의 신탁과 신학을 근거로 독립된 교단, 혹은 신정 도시국가를 세웠다. 그 중 일부는 ‘진정한 하이카르의 후계’를 자처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왕을 부정하고 예언자의 지배만이 신의 뜻이라 주장했다.

가장 큰 분열은 “성소 예언자단”“우르 하이카르 전통파” 사이에서 벌어졌다. 전자는 예언자가 통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후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위해 왕권을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두 진영은 무력 충돌로 이어졌으며, 결국 고랜드는 지도 위에서 수십 개의 이름 없는 도시들로 쪼개졌다. 예언자들은 더 이상 에루바의 뜻을 하나의 언어로 전하지 않았다. 신탁은 정치화되었고, 각 지역마다 고유한 ‘Semi-Lazu’(분파적 율법)이 생겨났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이 선포되고, 신의 이름으로 이단이 화형에 처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후 수세기 동안, 고랜드는 다시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다. 하이카르 왕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았고, 예언자들의 권위는 날로 갈라졌으며, 어느 누구도 다시 “샤르(대왕)”을 칭하지 못했다. 고대의 이상이 붕괴된 자리에는, 수많은 신의 파편과, 싸움으로 얼룩진 도시들만이 남았다.

3.1.6. 흙으로 새긴 계시 — 무명사제들의 통합과 종말의 교의 (기원전 약 840년경) [편집]

두 번째 분열기의 끝자락, 고랜드의 대지에는 더 이상 왕도, 예언자도, 하나의 신전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시들은 상호 간의 율법을 부정했고, 신의 이름은 너무 많아져 아무 이름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이름조차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무명사제(Nezurim Elvaz)라 불렀고, 누구도 그들의 본명을 몰랐다. 그들의 설교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교의는 불온했다.
“이 세계는 처음부터 금이 가 있었다. 그것은 무너져야만 한다. 그래야 신의 손이 다시 닿을 수 있다.”

이들은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며, 고대의 신들을 “거짓된 옛 언어”라 부르며 돌판을 태우고, 사제들의 율령을 “사람의 욕망으로 만든 가죽 조각”이라 선언했다. 하지만 그들이 부순 자리에는 언제나 새 돌을 깔고, 새로운 법을 새겼다. “진정한 율법(Lazu)은 흙에 새겨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곧 종말론적 정화의 명분이 되었고, 무너진 도시들은 이 낯선 자들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무명사제들의 실천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권력을 부정하면서도, 고대 성소의 기록을 독점했고, 자신들만이 신의 뜻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시의 귀족들과 재건을 위한 협정을 맺으면서도, “옛 귀족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며 인민을 선동했다. 때로는 도시의 아이들에게만 글을 가르치고, 어른들을 “더러움에 찌든 자”로 분류해 접근을 막기도 했다.

이러한 교의는 특히 ‘깨진 제단의 설교자들(Thazir Ka’tarim)’로 불리는 급진 무명사제들 사이에서 강하게 나타났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들의 영향으로 기존 왕조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신전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질서를 세웠다. 그 질서는 피로 세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은 피에 지쳐 있었고, 이름 없는 자들의 ‘새 계시’에 미친 듯이 굶주려 있었다.

3.1.7. 7. 에루바 연맹 — 이름 위에 덮은 가면 (기원전 약 720년경) [편집]

무명사제들이 형식적으로 연맹을 구성할 당시, 고랜드의 도시는 이미 내부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무명사제의 규율 아래 들었고, 그들은 그것을 ‘에루바 연맹(Eruva Confederacy)’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사제 가면을 쓴 일종의 신정적 통제체제였다. 무명사제들은 각 도시의 문서보관소와 재판소에 자신들의 사자를 파견했고, 기존 귀족 가문은 “지식과 경전의 시험”이라는 명목 아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형식적 통치자로 격하되었다. 고문석판(Kadrim Taltash)은 회의체가 아닌 선언문 낭독소에 가까웠고, 그곳에서 읽히는 율령은 대개 무명사제 출신의 법해석자(Thalazim)가 사전에 결정한 것이었다.

무명사제들의 질서는 그 자체로 역설이었다. 그들은 신의 뜻만이 모든 권위의 근거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율령을 외우지 못하는 자는 인간도 아니며, 반박하는 자는 신의 적이라 규정했다. 이는 고대 고랜드에서 가장 정교하면서도 무자비한 체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랜드는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지만, 사람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은 왕의 칼도, 예언자의 말도 아닌, ‘위선의 돌판’ 위에 세워진 질서였다는 것을.

3.1.8. 돌판을 밟고 들어온 자들 — 로마의 침공과 무명사제 체제의 몰락 (서기 137년) [편집]

세상의 경계에서조차 고요하던 고랜드의 대지 위에, 처음으로 피리 소리가 들려온 것은 어느 겨울 새벽이었다. 황금 독수리 깃발 아래, 로마 군단의 철제 장화가 동쪽 국경을 넘어들었다. 그들은 순례자가 아니었고, 신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 한 마디만을 반복했다.
“Pax Romana.” — 로마의 평화.

무명사제들의 통치는 이미 그 말년을 향하고 있었다. 돌판에 새긴 율령은 스스로를 감옥으로 만들고 있었고, 교의는 더 이상 계시가 아닌 의무가 되었으며, 도시마다 불복하는 해석자들이 파벌을 짓고, 암암리에 다른 율령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없이 줄을 서서 제단에 무릎 꿇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하늘은 더 이상 이들을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서기 137년, 로마는 고랜드의 북부 해안 도시 카르누스(Carnus)에 상륙하며 공식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침공은 명목상 ‘로마 통상사 파견단 학살에 대한 보복’이었으나, 실제로는 고랜드의 금광 자원과, 밀밭 무명사제들이 장악한 해상 교역로에 대한 확보가 핵심 목적이었다.

고랜드의 방어는 허술했고, 무명사제들의 연맹은 공동 방위조차 협의하지 못했다. 각 도시의 율령 해석은 상이했고, 군대는 형식상 존재했을 뿐, 실질적인 무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제들은 싸울 권한도 없었고, 싸울 이유도 잃은 상태였다. 로마군 제17군단은 겨우 8개월 만에 에루바의 중심도시 발마크(Valmak)에 입성했다. 무명사제단은 항전을 선언하지도, 투항을 명확히 하지도 못한 채, 해시계 뒤편에 모여 “침묵은 신의 응답”이라 속삭이고 있었다. 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단한 돌판 위를 밟고, 중심 신전의 석등을 끌어내려 불태웠다.

3.1.9. 천사의 돌판은 무너지고 — 사제왕국의 종말과 세속 질서의 귀환 [편집]

무명사제들의 체제는 그렇게 무너졌다. 그들의 율령은 폐지되지 않았다. 다만, 로마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율령은 라틴어로 번역되지 않았고, 기록실은 방치되었으며, 많은 사제들은 ‘해석자’로서의 지위를 빼앗긴 채 고랜드 각지로 흩어졌다. 일부는 로마에 협력하며 새 질서에 편입되었지만, 더 많은 이들은 다시 "무명"으로 돌아갔다. 로마는 고랜드를 ‘아우구스투스 직할 식민지’로 선포했고, 각 도시에는 속주 총독(Praefectus Provinciae)이 파견되었다. 중앙 관청은 다시 세워졌고, 도량형은 통일되었으며, 로마 법과 민법이 단계적으로 도입되었다. 학교는 라틴어로 재편되었고, 무명사제들의 흙판 문자는 ‘이단적 언어’로 규정되어 금서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신은 사라진 자들보다, 침묵하는 자들을 더 오래 기억하신다.”

무명사제들의 통치는 그렇게 끝났다. 무너진 제단 위에 황금 독수리가 앉았고, 고랜드의 하늘에는 더 이상 계시가 내리지 않았다.
다만, 땅 아래로 묻힌 돌판은 아무도 부수지 못했다.

3.2. 고대로마 [편집]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등 주변의 대도시가 발달하여 본 시기부터는 제대로 기록물이 남게되었다(특히 빌베른의 황립서고의 지하에있는 로마시대 문서에서 고랜드의 행정을 입체적으로 확인할수있었다).

선대의 랜드문명중 최초라는 타이틀과는 비교되게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에 수출할 곡창지대로써의 역할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때당시 직할령임시수도 파테오리윰(pathe orie'um)가 이 "동향방로"라 불리었고 시내에서 몇키로미터만 멀어져도 밀밭과 농가외엔 아무 로마유적이 안나올정도였다(로마의 식민화 과정에서 수많은 선대유적이 버려졌고 경제가 완전히 빌베른과 콘스탄티노폴시에 종속되었다).

120년대즈음 선대의 문자로된 기록물이 사라졌으며 랜드해협에서 4번째로 큰 로마식 신전인 폴리기니온신전이 착공되며 무명교는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빌베른측의 기록을 참고하면 이때부터 고대라틴어와 초기빌베른어가 기존의 언어를 완전히 대체하였다한다("Dia Log'u Politi'cu it' Agerx'ai tia' Wiz t' heta' Ertha, Restitut'ir Louge Oralx t' heta' it Hith' tia' Domi-Roman'i" : "본지서방의 정사와 밭사람들의 언은, 본지와 본국나마의 백화로 대체되고있다." (빌베른캄피톨랴제1사고, 제2고대본 1기 69면, 124년3월))

3.3. 근세 [편집]

3.4. 근대 [편집]

3.5. 현대 [편집]

3.5.1. 개요 [편집]

고랜드는 20세기까지 무려 400년 가까이 라 마베라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고랜드 총독령은 라 마베라로 편입되었다가, 고랜드 도독령으로 계승되었다. 고랜드는 당시 국제 상품이었던 설탕의 주 생산지였기 때문에 부유했고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라 마베라에서도 고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랜드 도시의 상당수는 라 마베라의 식민통치기에 세워진 것이다.

라 마베라는 가혹한 식민지 정책을 펼쳤고 19세기 무렵 고랜드 내에서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1943년 루이나 독립전쟁 이후 유고랜드를 시작으로 랜드해협 남부 대륙의 식민지들이 줄지어 독립을 이어갈 때도 고랜드는 최후까지 라 마베라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고랜드 도독령 내 정치세력들이 라 마베라로로부터의 독립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라 마베라의 지배에 대해 불만을 품는 현지인들의 반란이 커져갔다. 이 무렵 대외확장에 적극적이었던 루이나는 고랜드의 전략적 중요성과 경제성을 파악하고, 고랜드를 노렸다.

1940년대에 루이나는 고랜드의 자국령 편입을 시도했다. 루이나는 1944년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마베라에 1억 5천만 달러에 고랜드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 루이나는 앞서 콘스탄티노폴과의 협상을 통해 1939년에 콜마르 시를 양도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당시 라 마베라에 있어 고랜드는 프랑스의 알제리나 영국의 북아일랜드처럼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연장선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마베라는 수 백년 동안 고랜드를 경영해오면서 자국민을 이민보내고, 현지 사회를 양성하는 등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마베라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루이나의 고랜드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 갔다.

19세기 중반부터 마베라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부족한 재정을 위해 부유한 식민지였던 고랜드에 세금을 거둬 충당했다. 때마침 고랜드와 가까운 유고랜드가 혁명으로 붕괴되고, 서구 국가들이 유고랜드와의 교역을 거부하면서 고랜드의 플랜테이션 수출은 호황을 맞이했다. 유고랜드 혁명 이후 한동안 전 세계 설탕 공급량의 절반이 고랜드산이었으며 담배와 커피 수출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플랜테이션으로 벌어들인 부는 현지 농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박봉과 중노동에 분노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마베라 식민당국은 군대를 투입해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러한 흐름을 틈타 루이나가 고랜드 독립 게릴라들에게 지원을 하게 되었고, 이들은 루이나와의 자발적인 합방을 원하기에 이르렀다.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벌어진 10년 전쟁으로 산혼조약을 체결하고 자치령임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식민당국의 처사가 크게 달라지지 않자 결국 1959년에 고랜드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때 고랜드 독립전쟁의 지도자가 바로 호세 마르티다. 전쟁 과정에서 전사했고, 현재는 독립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1959년, 제국주의에 뒤늦게 눈뜬 루이나는 메인호 폭파사건을 빌미 삼아 마베라에게 선전포고, 루이나-마베라 전쟁이 발발한다. 그 일환으로 고랜드 독립전쟁에 개입했고, 이미 고랜드 독립당이 고랜드의 반 이상을 수복한 상황에서 마베라 식민지군에게 저항할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고랜드는 루이나의 통제 하에 놓였다.

루이나-마베라 전쟁에서 루이나가 승리하고 마베라는 고랜드에 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해당 식민지들을 루이나에 양도했다. 1960년 루이나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기 위해 고랜드를 자국령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독립시켰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루이나의 행태를 두고 비판했다. 이때 루이나는 고랜드를 독립시킨 것에 반에 콘스탄티노폴은 식민지로 삼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루이나 역사가들은 고랜드를 콘스탄티노폴처럼 루이나에 귀속시켰어야 했다며 고랜드 독립을 루이나 역사상 가장 치명적 실수 중 하나라고 평하고 있다.

3.5.2. 고랜드 공산혁명 [편집]

제2차 랜드 대전 이후 공산주의 및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가 급속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고랜드에서도 점차 이러한 의식에 눈뜨게 된다. 특히 1961년에 이른바 중사의 반란으로 불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풀헨시오 바티스타 군사정권[4] 의 무능과 부패, 폭정에 대한 저항의식은 더해만 갔다.

1963년, 변호사이던 피델 성베르트도 참여한 몬카다 병영 봉기(7월26일 사건:Movimiento 26 de Julio)는 바티스타의 권력 기반이었을 군대 조차도 바티스타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비록 봉기는 실패로 끝났으나 성베르트는 재판정에서 당당한 태도로 자기의 정당함과 혁명의 당위성을 역설하여 고랜드 역사에 자기 이름을 처음으로 남기게 된다.

바티스타는 성베르트를 그저 25살 애송이로만 보았는지 1년 뒤 특사로 석방했고, 유고랜드로 탈출한 성베르트는 그곳에서 많은 반바티스타 동지들을 만난다. 맹우 체 게바라를 만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이들은 1985년 요트 그란마(Granma, 할머니)를 타고 고랜드에 재입성한다. 상륙지점에서 바티스타 군대의 공격에 82명의 동지가 12명으로 줄어드는 역경 끝에 남부 산간에 거점을 마련하여 저항을 개시했다.

이 시기에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성베르트의 공산 게릴라군은 대민봉사활동을 하며 지역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문자도 가르쳐주고 하는 식이었다. 이 시기에 총을 들고 싸우는 공산주의 게릴라가 되고 싶었던 체 게바라 자신의 열망과는 달리 체는 의료 대민봉사활동을 주로 했고, 이게 아주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갔다. 이렇게 무력 투쟁이 아니라 대민봉사활동을 통해 확고한 지역 거점을 세운 공산 게릴라군은 산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로 정부군에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피델 성베르트는 자신의 엄청난 연설 및 선전 능력을 발휘, 고랜드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받아 1989년 1월 바티스타 독재 정권을 추방하고 고랜드의 권력을 장악한다. 이것이 고랜드 혁명이다.

처음에는 성베르트는 루이나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지 않았지만 루이나기업이 소유하던 공장이나 농장 호텔등을 죄다 몰수해서 국유화해 버리자 루이나에서 고랜드를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경제적인 교류도 끊어졌다. 결국 대안책으로 성베르트는 소련에 접근했고, 소련과 사비에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고랜드는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이에 루이나는 힘으로 성베르트 정부를 뒤엎기 위해 NIA를 통해 반성베르트 세력(즉 바티스타 시절 친루 우익 세력)을 지원해 1996년 속칭 카우스만 침공을 일으켰다. 이 침공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1993년 야심차게 출범한 젊은 페어팩스 행정부의 무능과 미숙함이 일시에 폭로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성베르트는 반루 친사 정책을 강화하고 공공연히 공산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3.5.3. 공산 혁명 이후 [편집]

성베르트는 이런 행보를 강화해 사비에트와 급속히 친밀해졌으나, 사비에트와 소련은 나름대로 고랜드를 이용해 루이나를 엿먹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사비에트는 고랜드에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에 고랜드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루이나의 정찰에 걸려들면서 영화에도 나왔던 지금까지도 그 유명한 고랜드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다. 1997년 10월의 일이었다.

당시 페어팩스 정부는 고랜드를 해상봉쇄하고 마침 고랜드로 향하던 사비에트 선박이 고랜드 영해에 접근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사비에트 측이 이를 무시하자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강국이 순식간에 정면 충돌할 위협에 봉착했으며, 전세계는 고랜드를 주목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막판에 사비에트가 한 발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협은 줄어들었다. 사비에트는 루이나가 빌베른에서 미사일 탄도탄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고랜드에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그런데 고랜드 미사일 위기의 진앙이 된 고랜드 국내의 중거리 미사일 기지 자체는 설치 및 통제 면에서는 사비에트의 관리를 받고 있어 성베르트는 크게 비위가 상했던 모양이다. 성베르트는 결판을 내자고 해 사비에트에 전쟁을 주문했으나 평화협상으로 끝나자 실망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나마 사비에트는 고랜드를 달래주기 위해서 군사, 경제 지원을 해주는 한편 기존의 사비에트군 부대 자체는 계속 주둔시켰다. 참고로 이 고랜드 주둔 사련군 부대는 사련군 내에서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는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부했으며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

이 사건 이후 고랜드 혁명에 동참했던 체 게바라는 고랜드를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1999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당해 사살된다.

3.5.4. 루이나의 추가 개입 [편집]

3.5.5. 루이나 개입 후 [편집]

루이나가 고랜드에 공작을 벌인 후, 바티스타파의 잔당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루이나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협동농장을 파괴하고, 교량을 폭파하고, 학교를 불태우는등, 게릴라 활동과 테러를 이어갔고, 고랜드는 또다시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어갔다. 또다시 사회는 흔들렸고, 경제는 파탄났으며, 피델 성베르트는 자살 했다. 결국 성베르트가 사라진 고랜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혁명을 통해 승리하여 성베르트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게릴라 세력들의 저항에 질린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사망한 형태이기 때문에 각각의 게릴라들은 저마다 자기가 혁명을 성공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고랜드의 실권을 독점하려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려 내전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벌어졌다.

4. 자연환경 [편집]

5. 인문환경 [편집]

6. 정치 [편집]

고랜드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17점
2024년, 세계 165위
언론자유지수
17.88점
2025년, 세계 175위
민주주의지수
0.25점
2024년, 세계 167위

고랜드의 정치는 탈레반에 의한 군사독재다. 정치와 국가 운영에 대한 지적 소양이 낮은 탈레반 지도부는 다른 미승인국가들과는 달리 헌법, 법률, 제도 등을 만들지 못하며 포고령을 통한 임의의 통치를 한다. 심지어 탈레반의 포고령도 내용이 혼란스럽고 탈레반이 임의로 안 지키기도 하기 때문에 법률과 같은 권위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신권정치라고 칭해지기도 하지만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군사독재에 불과하다. 게다가 탈레반의 병력수는 상당히 적기 때문에 지방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탈레반은 1996년에서 2001년까지는 고랜드의 대부분의 지역을 손에 넣고 있었고, 루이나에 쫓겨난 20년 동안에도 고랜드의 일부 지역을 지배했으며, 현재는 고랜드 남부 전역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름뿐인 고랜드 이슬람 토후국이라는 국가를 참칭하지만 1996년부터 현재까지 26년 동안 포고령을 통한 임의의 통치만 해 왔으며 '정치'의 기본바탕인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탈레반 지도부가 교육 수준이 낮고 현실을 경시하는 반지성주의적 종교근본주의자들이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랜드의 민주주의 지수는 2024년 기준 0.25점으로 꼴찌이며 매우 낮은 수치를 찍었다.[5] 이는 2021 ~ 2022년까지 최저점이었던 0.32점 기록을 경신한 점수로 미얀마,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민주주의 지수가 북한보다 낮은 3개국 중 1개다. 참고로 이 지수는 10점이 만점이다. 1점 만점이 아니다. 세계의 자유 역시 총 6점[6]으로 수단과 동점이다.

7. 외교 [편집]


고랜드는 현재 사실상 내전 상태에 돌입해 있으며, 국제적으로 승인된 고랜드 민주정부와 탈레반 무장 정권이 국가의 주권을 두고 무력 충돌을 벌이고 있다. 2021년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국제사회의 승인 없이 무장점령을 강행하자, 루이나를 비롯한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아바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과도 민주정부를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였다[7].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바탕으로 루이나 정부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파병되었으며, 고랜드 민주정부를 보호하고 인도적 질서를 회복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루이나군은 현재 아바나 외곽과 주요 항공로, 보급선을 방어하며, 민주정부의 통치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8][9].

그러나 현실적으로 탈레반은 고랜드 전역의 70% 이상을 점령하고 있으며, 특히 산악 내륙지대, 국경 통로, 광산지역, 대도시 주변 등 전략적 요충지를 대부분 통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랜드 민주정부는 사실상 방어 위주의 고립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정부령은 수도권 일부와 국제공항, 몇몇 주요 도시로 한정된다.

탈레반은 서방 세계를 "이슬람에 대한 침략자"로 규정하며, 국제안보지원군과 고랜드 민주정부를 향해 전면적인 지하드(성전)를 선포한 상태다[10]. 동시에, 최근 드론 및 급조폭발물(IED)을 이용한 비대칭 전술로 연합군과 민주정부군에 상당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고랜드 사태를 21세기 최악의 국가 내전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며, 수백만 명의 난민, 민간인 피해, 여성과 소수자 탄압 등의 문제로 인해 루이나·빌베른·미합중제국·북산 등 주요국이 지속적인 개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의 지배력이 워낙 깊게 뿌리내린 상태라, 단기간 내 평화적 해결은 요원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11].

8. 경제 [편집]

8.1. 아편 생산 [편집]


해당 국가의 아편 생산을 다룬 호주뉴스 동영상

고랜드는 세계최대의 마약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꽃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960년대에 그나마 안정적이었을 때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어 왔다. 한 때는 왕실에서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할 경우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결국 금지하려는 계획을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매해 최대 4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 정도 돈이라면 탈레반 및 부족들에게 크나큰 수익이며 이 돈은 무장을 튼튼히 하는 데 쓰인다. 이로 인해서 정부군 및 평화유지군의 희생을 부채질한다. 랜드해협에서 대부분 소비되는 마약은 고랜드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마약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다. 자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료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73%까지였다.

탈레반은 고랜드 남부를 장악한 것을 이용해 외국, 특히 유고랜드, 동사랜드, 빌베른과 마약을 거래하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역할을 하며 장사를 해먹고 있다. 그 덕분에 탈레반은 수익을 이용해 서방국가 부럽지 않은 수준 높은 무장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1차 탈레반 집권기에 그랬듯 2023년에는 마약이 대량으로 단속되어 작년 대비 52% 줄었지만 일시적인 효과[12]일 수도 있어 진짜 박멸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8.2. 원인 [편집]

8.2.1. 자연환경 [편집]

고랜드 남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안 그래도 단속 및 적발이 힘든데 전쟁으로 치안까지 악화되어서 아편 재배가 성행하기 더욱 쉬워졌다. 이에 반해 북부는 평야에 습지가 많아 밀농사가 대부분이다.

8.2.2. 반군의 자금 확보 [편집]

과거에는 탈레반이 아편 생산을 금지하였지만 탈레반이 2001년에 축출된 후부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아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루이나는 고랜드 민주정부 시절에 마약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고랜드 농부에게 보조금 지원 형식으로 공식적으로는 많은 양의 마약 농장을 일반 농장으로 바꿨다.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겼지만 이 조치는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밀을 심은 이들이 한탄하길 "양귀비꽃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밀은 돈이 안 된다.

국제 밀값이 올라 봐야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 기대 이하였던 데다 부정부패가 워낙 횡행하고 교통망 및 인프라도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어 중간업자들[13] 및 정부요인들이 그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탈레반이 집권한 후인 2024년에는 아편이 전면 금지된다.

8.2.3. 단속반의 부정부패 [편집]

더구나 밀이나 석류 같은 합법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판매를 위해 검문소를 지나갈 때마다 뇌물을 요구하는 군경들의 행패에 분노해 농작물을 죄다 엎어 버리는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썩은 공권력도 마약 퇴치를 가로막고 있다.

마약이 원래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많은 마야구농장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단속해야 할 현지 군경들도 많은 수가 연루되어 있다 보니 이들이 뇌물도 받고 단속도 무마시키며 아예 겉으로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심고 잘 안 보이는 험난한 곳에는 한가득 양귀비를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게다가 루이나와 국제안보지원군이 주둔했을 때 허구한 날 탈레반의 자금줄을 끊고자 지원했던 돈도 단속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대부분 부패한 고랜드 구 정부에 의해 횡령되어 극히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가 사라졌다. 단속 수준도 뇌물을 못 바치는 집안, 가장을 잃고 양귀비 재배로 벌어먹는 집안의 밭을 급습하여 무작정 양귀비를 베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마약 단속에 대한 증오는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정도로 커져 2009년에는 마약단속 경찰 트럭이 양귀비 밭에 몰래 숨겨 놓은 지뢰에 터져 23명이 죽는 사건까지 터졌으며 아예 탈레반에 가담하는 이들까지 생겨나 루이나와 고랜드 구 정부가 골치를 썩기도 했다.

8.2.4. 단속반원의 불법행위 [편집]

고랜드 경찰의 마약 단속에 대하여 되려 아직도 많은 고랜드 사람들은 고랜드인을 죽이려는 루이나와 그 루이나의 개들인 국제안보지원군에 매수된 매국노들의 짓으로 여기며 증오한다. 고랜드 마약 단속반들이 워낙 깡패짓을 하고 다녀서 현지인들에겐 도적이라고 악명이 높다. 루이나 통신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벌이는 행패가 문제임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외국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식사 시간이 되자 단속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밭에서 과일과 채소를 멋대로 가져와서는 싸온 도시락과 같이 지들끼리 실컷 먹어 버렸다. 이 막장짓을 두 눈으로 모두 본 기자들이 하도 어이 없고 기가 막혀서 "돈도 안 주고 멋대로 훔쳐먹어도 되냐?"고 따졌더니 그들이 한다는 소리가 가관인데 "어차피 우릴 싫어하는데 뭐하러 좋게 대해주냐?"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현지인들은 탈레반을 따라서 저런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낫다며 무섭도록 증오하고 있다. 때문에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마약단속반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8.2.5. 생활 속 마약 [편집]

고랜드에서 빵, 식용유, 비누 같은 물품들을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 가득해 양귀비꽃이 거의 생필품화돼 버렸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꽃잎은 잼을 만드는 데 쓰고, 씨앗은 갈아서 빵을 만들거나 식용유를 짜고, 마약을 추출하고 남은 줄기는 말려서 장작으로 쓴 뒤 나온 재로 비누를 만드는 식이다. 거기다가 고랜드의 병원들은 의약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아편을 비상약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가난한 국가들에선 흔한 일인데, 현재도 양귀비 밀경작의 90% 이상이 도서/농촌 지역 60대 이상 노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경찰들도 이를 무작정 잡을 수가 없어 규모가 큰 곳만 본보기로 잡아내는 형편이다.

9. 사회 [편집]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무슬림 여론이 99%라는 통계가 있다.

특히 시아파 근본주의 신정국가인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느니 하면서 까대는 나라이니 굳이 더 말이 필요할까?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고랜드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국가다. 그럼에도 여성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탄압이 심각한 국가로도 악명이 자자하며 그 때문에 많은 이란인들이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갈 정도다. 고랜드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해서 아바나같은 북서부 지역으로 가면 나름대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데 반해 동부나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는 보수적인 여론이 강한 나라이지만 문화적으로 무조건 꽉 막혔냐면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랜드해협 남부는 위성방송이 생각 이상으로 잘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 축구리그 경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수준이 된 지가 꽤 되었다. 2000년대 탈레반이 물러난 후 텔레비전 수상기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적어도 인도 영화나 외국 드라마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된 데다 언론의 자유가 생각보다는 잘 보장된 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지만...

문제는 탈레반 세력이 여전히 큰 세력으로 잔존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방송사와 언론사에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영화 감독, 배우들한테 살해 협박과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배우한테 압박을 가하는 일이 많다는 거다.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상투적인 이유에서부터 정치인 비리를 폭로할 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대표적으로 고랜드의 유명 배우이자 100편이 넘는 영화들을 찍은 영화 감독인 살림 샤힌(Salim Shaheen)만 해도 과격 무슬림들로부터 비종교적 액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살해 협박을 받고 있는데 단순 협박으로 그치지 않고 스튜디오에 실제로 로켓포 공격이 날아와 스태프 9명이 죽은 적이 있다.

고랜드의 부패상이나 전후 막장 치안과 정치 상황이 국내외에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들의 공이 크다. 고랜드 기준으로 제법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톨로TV나 1TV 등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 페르시아어 위성방송이나 마베라/유고랜드 방송도 꽤 흥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카타르 같은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들보다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랜드는 원래 라 마베라에게 복속당했단 북부 문화권이었던 관계로 마베래 대중 문화가 인기인지라 어느 정도 서구화된 유고랜드를 동경하며 문화적으로 개방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여전해서 갈등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고랜드 사회의 병폐들인 막장 치안, 명예살인, 가난한 경제, 관료들의 부정부패나 기업들의 결탁 등 사회부조리와 부패상을 널리 알리고 루이나 영화나 유고랜드 드라마 등을 편성하거나 서구나 유고랜드, 마베라 음악도 틀어주고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는 심심하지만 개방적인 프로그램들을 많이 방영하는 등 고랜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많이 하기에 TV가 고랜드에 끼치는 영향은 꽤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나름대로 높으나 인터넷은 국토의 대다수가 산지인 데다 인프라를 까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해 쓰는 사람이 적다. 그나마도 사용자들이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속도도 느리며 요금도 비싸다. 하지만 사회 부조리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TV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는다.

2015년 1월 이후로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할 정도로 검열도 심하다. 그나마 권투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꼭 쓰고 경기를 치러야 할 정도로 검열이 심하다. 그래도 1차 탈레반 집권기에 비해 정말 많이 나아진 거다. 그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은 할 수도 없고 만일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물론 현재도 여성 인권은 바닥을 치고 있으며 지방 소도시나 외진 시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아예 받지못하는 곳이 많다.

마약, 범죄, 전쟁 등의 문제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거나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상당하고 교통이나 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평균 수명도 볼 것도 없이 중하위권인데 남성이 48살, 여성이 52살 수준에 불과하다. 빈곤율도 상당해서 영양실조가 매우 심각하고, 아프리카의 빈곤국과 마찬가지로 결핵으로 죽는 이들도 상당수이다.

고랜드에서 테러가 계속 일어나면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고 있다고 로이터와 톨로뉴스 등 고랜드 매체가 보도했다.

2021년 중반에 탈레반이 고랜드 남부 전역과 아바나를 점령하면서 고랜드 내의 여성 인권이 갈수록 추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슬람 교리를 극한으로 고수하는 국가(고랜드 등등)는 여성에게 부르카 등을 입게 강요한다. 2021년 고랜드 탈레반 공세 후 여성들은 전통 복장으로 응수했다.

고랜드는 고산지대에 부족, 씨족 중심의 사회인지라 매우 고립적인 생활을 하는 소수부족도 매우 많다. 숫적으로는 전체 고랜드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20 ~ 30명 단위의 부족은 문화/역사학적으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 무려 5천 년이 된 원시 아리아 종교를 신봉하는 부족도 있는데 이것을 발견한 연구진은 환희의 논문을 써내려갔다고 사례가 있다. 문제는 고랜드가 외부세력으로부터 매우 공격적인 선교를 받던 지역이라 이런 부족에 대한 이슬람 선교사들의 강제 선교와 개종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고랜드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누리스탄은 이름 자체가 빛나는 땅이라는 뜻으로, 1890년대 압둘 라흐만 칸 통치 당시 바라크자이 왕조의 고랜드 아미르국이 누리스탄(당시에는 카피리스탄) 일대를 정복한 후 1890년대 이전까지 카피르인으로 불렸던 누리스탄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리스도인이나 불교 신자를 강제 개종시키는 것도 그러잖아도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마당에 저런 원시부족들을 개종시키는 건 거기에 더해 문화인류학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라 학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10. 문화 [편집]

11. 군사 [편집]

12. 여담 [편집]


[1] 2012년 조사[2] ?[3] 독재가 굉장히 심하기로 유명한 북한보다도 낮은 점수다. 탈레반이 재집권하자마자 0점대 초반이었는데 계속 그 수치가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유일한 0점대였으나 2022년 미얀마 군부의 만행으로 유일하지는 않게 되었다. 더 과거까지 보면 북한이 2000년대에 0점대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4] 고랜드는 라 마베라에서 독립하고 단 2년만에 다시 무능한 정부의 지배에 놓였다.[5] 2024년에는 정치 문화 항목을 빼고 모든 항목이 0점이었다.[6] 정치적 자유 1점, 시민 권리 5점[7] 탈레반은 자신들이 "이슬람 에미르국의 정통 계승자"임을 주장하지만, 유엔과 루이나 등은 아바나 정부를 공식 외교 파트너로 간주하고 있다.[8] 루이나는 2023년 이후 매년 12억 달러 이상의 군사·재정 원조를 고랜드에 지원 중이다. 특히 루이나의 특수전 부대가 아바나 북부에서 탈레반 저항 작전에 직접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9] 또한 루이나 정부는 플라자 그룹의 PMC를 고용하여, 고랜드에 추가 파병을 완료한 상태이다.[10] 2024년 말, 탈레반 대변인은 "루이나의 점령군이 떠나지 않는 한 고랜드는 결코 평화를 맞이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11] UN 인도주의사무국(OCHA)은 2025년 현재까지 고랜드 내전으로 인한 이재민 수가 약 8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12] 마약 판매를 부추기는 근본적인 문제가 그대로인데 단속만 한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수많은 사례로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북한 당국이 마약에 온정적이지 않을 텐데도 내부에서는 마약이 만연하다고 알려져 있다.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이런 막장 국가에서 탈레반 단속원들이 결국 부패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13] 특히 루이나의 악덕 기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