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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록 이전
2.1. 기적, 재난, 그리고 빈자리
3. 초상사
3.1. 1921년: 산타 이네스 사건3.2. 1920~1930년대: 네 개의 이름3.3. 1930~1940년대: 전쟁이 실험실이 되다3.4. 1950~1980년대: 보이지 않는 군비 경쟁
3.4.1. 계측 혁명과 등급의 탄생3.4.2. 계단 계획3.4.3. 유폭 실험3.4.4. 루이나의 길
3.5. 1960년대 말~1980년대: 균열3.6. 1990년대: 검은 지진3.7. 2000년대: 적들이 서로를 발견하다3.8. 201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UBATM
4. UBATM
4.1. 기능4.2. 한계와 비판
5. 연표6.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초상사(超象史)는 인류가 신비(神秘) 현상을 최초로 공식 관측한 1921년부터 현재까지의 초상 관련 역사를 총칭하는 용어다.

초상사에는 공식 역사가 없다. 어느 나라도 신비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으므로, 남아 있는 것은 봉인된 파일, 유출된 교정쇄, 사망한 연구원의 수기, 정보기관 사이를 오간 전문(電文)의 파편뿐이다. 이 문서는 각 시기를 대표하는 기록 한 조각에서 시작해, 그 조각이 가리키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인용된 기록은 모두 작중 세계에서 봉인 해제되지 않은 자료이며, 출처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2. 기록 이전 [편집]

2.1. 기적, 재난, 그리고 빈자리 [편집]

1921년의 사건이 최초로 공식 관측된 초상이었을 뿐, 인류의 역사에는 훨씬 이전부터 신비의 흔적이 산재해 있었다. 초상 연구자들이 이를 소급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이후의 일이지만, 과거의 사료를 다시 들여다보면 놀랍도록 일관된 패턴이 반복된다.

중세 유럽에서 기적이라 불렸던 사건들 중 상당수는 교회가 성인 시성(諡聖)의 근거로 삼은 목격담에 기반한다.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수도사, 강물이 갈라진 것을 목격했다는 군중, 손을 대지 않고 병자를 낫게 했다는 사제. 당대의 기록은 이를 신의 의지로 설명했지만, 훗날 초상 연구자들은 이 중 일부를 자연발현자의 초기 사례로 분류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의 생존자 증언 중에는 무너지는 잔해가 특정 구역을 빗겨 갔다거나, 화염 속에서 수십 명이 멀쩡히 살아 나왔다는 기록이 섞여 있다. 1940년대 포르투갈 정보부가 초상 연구를 시작하면서 이 기록들을 재검토했고, 구출된 생존자 중 한 명의 행적이 이후 수십 년 동안 어떤 사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도 설명되지 않는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1917년 서부전선에서 독일군 소대 전체가 참호 안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사건, 1918년 이탈리아 전선에서 포격이 한 병사를 중심으로 반경 수 미터를 비켜 간 기록이 대표적이다. 두 사건 모두 전쟁의 혼란 속에서 기록 누락이나 전투 혼선으로 처리되었다. 이외에도 고대 중국, 중동, 랜드해협 동부 등 기록물이 발달한 지역에서 신비로 추정되는 현상이 여러 차례 기록되었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빈자리'라 부르는 현상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사건 직후 모든 기록에서 사라진다. 죽었다는 기록도, 떠났다는 기록도 없다. 초상사 연구자들은 이 빈자리를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능력자 본인이 스스로 자취를 감춘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이미 그 시대에 능력자를 '회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자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그러나 1921년 이후 국가들이 한 일을 생각하면, 그 이전에 아무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믿기는 어렵다.

3. 초상사 [편집]

3.1. 1921년: 산타 이네스 사건 [편집]

남은 것은 팔 한 짝, 신발 한 켤레, 그리고 벽에 기대 앉은 채 허리 아래가 없는 남자. 절단면이 없다. 자른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없는 것이다.
— 브라질 내무부 조사팀 제2차 현장 일지, 1921년 3월

1921년 3월, 브라질 북동부의 작은 해안 마을 산타 이네스 두 마르에서 152명이 사흘 만에 사라졌다. 일부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고, 일부는 신체의 일부만 남은 채 발견되었다. 브라질 연방 경찰은 처음에 전염병을 의심했고, 이후에는 집단 실종 사건으로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현장에 파견된 조사관들이 맞닥뜨린 것은 기존의 어떤 범주로도 설명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건물은 멀쩡했고, 토양에서는 어떤 독성 물질도 검출되지 않았으며, 남은 신체 부위들은 절단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경계면에서 깔끔하게 끝나 있었다.

사건은 공식적으로 원인 불명의 집단 실종으로 기록되었고 언론에는 제한적으로만 보도되었다. 그러나 브라질 내무부 산하의 소규모 조사팀은 극비로 조사를 계속했다. 생존자 면담에서 하나의 증언이 반복되었다. 사건 전 마을 전체가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 두려움의 중심에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팀은 소녀를 끝내 찾지 못했다. 초상사 최초의 공식 기록은 동시에 최초의 공식 '빈자리'이기도 했다.

훗날 연구자들은 이 사건을 공간 계통 자연발현자의 폭주로 재분류했다. 절단면 없이 끝나는 신체는 공간 조작에서 관측되는 물질 병합 현상의 전형적 흔적이었다. 그러나 이 재분류로도 설명되지 않는 사실이 하나 남았다. 1970년대에 계측 장비를 들고 현장을 다시 찾은 조사단이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 터에서 미약한 간섭장을 검출한 것이다. 능력자가 없는 곳에서 간섭장이 검출된 첫 사례였다. 당시에는 잔류 현상으로 기록되고 넘어갔다. 마을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도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았다.

브라질 내무부의 파일은 1923년 국가 안전 문서 1류로 재분류되어 봉인되었다. 이 보고서가 전 세계 초상 연구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당시의 누구도 알지 못했다.

3.2. 1920~1930년대: 네 개의 이름 [편집]

우리가 다루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불일치(Discrepancy)다. 세계가 있어야 할 상태와 실제 상태 사이의 불일치. 그리고 불일치는 언제나 한 사람을 중심으로 발생한다.
— 영국 비공개 분과 내부 각서, 1927년

브라질 조사팀의 보고서는 외교 채널을 통해 몇몇 국가의 정보기관에 비공식적으로 전달되었다. 반응은 나라마다 달랐고, 각국은 같은 현상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미국은 처음에 회의적이었다. 1923년 보고서를 접한 국무부 담당자는 이를 남미 특유의 과장된 민간 전설로 치부했다. 그러나 국방부 내의 소수 집단은 달랐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브라질에 조사원을 파견했고, 1925년 내부 메모에서 현상의 진위와 무관하게 이것이 사실이라면 군사적 함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집단은 스스로를 섹션 그레이(Section Gray)라 불렀고, 현상을 '변칙적 초월(Anomalous Transcendence)'이라 명명했다. 이 용어는 한 세기 뒤 국제 기구의 이름에 남게 된다.

영국은 보다 신속했다. MI6 산하의 비공개 분과가 1924년 물리적 증거 수집에 착수했고, 1927년에는 독자적인 이론화 작업을 시작했다. 영국이 먼저 주목한 것은 군사적 활용이 아니라 위험의 통제였다. 현상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대중에게 알려지면 사회 질서의 붕괴는 불가피하다는 문구가 내부 보고서에 반복된다. 영국 연구자들이 쓴 '불일치'라는 용어와 "한 사람을 중심으로 발생한다"는 관찰은 훗날 주관현실 이론의 원형이 되었다.

소련은 가장 적극적이었다. 1920년대 중반 과학 아카데미 내부에 비밀 분과가 설립되었고, 이들은 현상을 '이상 반응(аномальная реакция)'이라 부르며 유물론적으로 해석했다. 신이나 초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아직 해명되지 않은 물질적 메커니즘이라는 시각은 소련 이데올로기와 잘 맞았고, 덕분에 소련의 초상 연구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국가 지원을 쉽게 받았다.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 독자 연구에 착수했다. 만주 점령 이후 육군 내 특수 부서가 점령지의 이상 현상 목격담을 분류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처음부터 철저히 군사적으로 접근했다. 일본이 쓴 '특이(特異)'라는 말은 훗날 다른 맥락에서 되살아난다.

이 시기 어느 나라도 서로가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정보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고, 그 결과 같은 현상에 대해 네 개의 이름, 네 개의 이론, 네 개의 윤리 기준이 병렬적으로 발전했다.

3.3. 1930~1940년대: 전쟁이 실험실이 되다 [편집]

피험체 17호, 3일차. 전기 자극 후 좌측 벽면 온도 급상승. 피험체 사망. 벽면은 다음 날까지 식지 않음.
— 관동군 특기반 실험 기록 발췌, 1939년

2차 세계대전은 초상 연구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치 독일은 1934년부터 아넨에르베(Ahnenerbe) 산하에 초상 관련 비밀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이들은 아리아 혈통에 신비 발현 능력이 집중된다는 이데올로기적 전제에서 출발했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용소 피수용자를 대상으로 강제 각성 실험을 자행했다. 전기 자극, 극한 환경 노출, 약물 투여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수백 명이 사망했고, 각성에 성공한 극소수는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발현되어 시설 내부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나치의 연구는 성과보다 피해가 훨씬 컸지만, 그 기록은 전후 연합국이 고스란히 수거해 후속 연구에 활용했다.

일본은 더 체계적이었다. 731부대와 병렬하여 만주에는 특기반이라는 별도 조직이 존재했다. 이들은 현지 주민과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각성 가능성을 실험했고, 각성에 성공한 피실험자의 발동 조건을 분석했다. 특기반의 방법론은 나치보다 훨씬 정밀했고, 이들이 남긴 데이터는 전후 일본의 비밀 초상 연구 기관이 물려받았다.

연합국이라고 손이 깨끗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섹션 그레이는 1940년대 중반부터 자국 내 강제 수용된 일본계 미국인 중 발현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선별해 비밀 시설로 이송했다. 영국은 식민지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와 인도 출신 피실험자를 관찰 실험했다는 사실이 후대의 내부 고발로 알려졌다.

소련은 이 시기에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43년, 소련 연구팀은 특정 조건 아래에서 능력 발현이 반복 재현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들은 이를 조건 반사의 확장이라는 파블로프식 언어로 표현했고, 이 틀 안에서 능력자의 훈련과 통제 방법론을 발전시켰다. 명상, 약물, 자극, 반복 훈련으로 이어지는 오늘날의 발현 훈련 과정은 이때 소련이 만든 뼈대를 거의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세계는 원자폭탄이라는 새로운 공포와 함께,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공포를 품고 있었다.

3.4. 1950~1980년대: 보이지 않는 군비 경쟁 [편집]

핵은 세어서 협상할 수 있다. 이것은 셀 수도 없고, 세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다.
— SIGMA 프로그램 전략 평가서, 1957년

냉전의 도래는 초상 연구에 새로운 긴박감을 불어넣었다.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경쟁과 병행하여, 상대가 능력자를 군사 자산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확신 아래 자국 연구를 대폭 확장했다. 핵과 달리 초상의 경쟁은 그 존재 자체를 드러낼 수조차 없었다.

섹션 그레이는 1950년대 중반 SIGMA 프로그램이라는 대규모 비밀 프로젝트로 재편되었다. 전국의 자연발현자 탐지 및 등록, 자원자와 피강제 대상 양쪽을 포함한 인위적 각성 실험, 각성된 능력자를 군사 작전에 통합하는 교리 개발이 핵심이었다. SIGMA는 외형상 특수 재능 지원 연구소로 위장되었고, 일부 참가자는 자신이 무엇에 참여하는지조차 고지받지 못했다.

소련은 이미 실전 운용 단계에 있었다. KGB 산하 제14국이 능력자를 정보 수집, 암살, 시설 파괴 작전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아원이나 국가 시설에서 어린 시절부터 선별되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연구·훈련 대상이 된 인물이었다. 소련의 초상 전력은 1960년대에 최소 두 차례 서방 정보 시설에 대한 실제 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훗날 파악되었다.

3.4.1. 계측 혁명과 등급의 탄생 [편집]

이 시기 초상 연구를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무기가 아니라 계측이었다. 1960년대 말 뇌 자기장을 측정하는 기술이 등장하자, 미국과 소련의 연구진은 거의 동시에 능력자의 뇌에서 정상 뇌파에 없는 파형을 발견했다. 간섭장이 처음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능력자는 증언이 아니라 수치로 식별되었고, 검사로 발현자를 걸러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SIGMA는 1970년대 초 간섭장 강도와 제어 물리량 수를 기준으로 한 6단계 척도를 도입했다. 오늘날 0급에서 5급까지의 등급체계는 이 SIGMA 척도가 국제 표준이 된 것이다. 척도는 관리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사람을 숫자로 바꾸었다. 등급이 매겨진 순간부터 능력자는 개인이 아니라 자산이었다.

3.4.2. 계단 계획 [편집]

가장 악명 높은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1961년 시작된 계단 계획(Project STAIRCASE)이다. 연구자들은 이론상 최고 수준의 능력, 즉 훗날 6급으로 불리게 되는 단계를 인위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 실험하려 했다. 이미 각성한 고위 능력자에게 약물, 전기 자극, 장기간의 감각 박탈을 동시에 가하는 복합 프로토콜이 시행되었다. 세 명의 피실험자 중 두 명은 실험 도중 사망했고, 한 명은 능력이 폭주하여 시설 일부를 파괴한 뒤 영구 격리되었다. 계획은 중단되었지만 데이터는 폐기되지 않았다.

3.4.3. 유폭 실험 [편집]

소련에서는 유폭 실험이라 불리는 프로젝트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진행되었다. 능력자의 신비를 의도적으로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여 임계 붕괴를 유도하고, 그 순간의 에너지 방출을 무기화하려는 시도였다. 실험은 수차례 붕괴를 관찰하는 데 성공했으나, 1969년 시설 내부의 물리 법칙이 국소적으로 왜곡되는 사고로 연구진 전체가 사망했다. 소련은 멈추지 않았고, 1971년 두 번째 사고 뒤에야 실험을 종료했다. 그러나 붕괴 직전 능력자의 간섭장이 극도로 농축된다는 관측 결과는 살아남아, 1980년대 간섭장 응축제의 이론적 출발점이 되었다.

3.4.4. 루이나의 길 [편집]

서방 진영에 속한 루이나는 이 시기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루이나는 SIGMA식 대규모 각성 프로그램 대신, 소수의 능력자를 선발해 신체를 개조하고 의체화하여 요원으로 운용하는 길을 택했다. 요인 암살부대에서 출발한 이 조직은 능력자의 신체를 국가가 직접 관리함으로써 통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그 요원들을 국내외 극비 작전에 투입했다. 1978년 군정기에 이 조직이 국내 정치에 동원된 전력은 이후 루이나 정부에 무거운 부담으로 남았다. 자세한 내용은 AEC-OCA 문서 참고.

3.5. 1960년대 말~1980년대: 균열 [편집]

우리는 무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기는 도망치지 않는다.
— 1974년 프랑스 남부 시설 유출 교정쇄, 서문

통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부터였다. 일부 능력자들이 조직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거나 자신이 겪은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1968년 SIGMA 출신 능력자가 언론사에 접촉하려다 실종되었고, 소련에서는 1972년 제14국 소속 능력자가 서방으로 망명을 시도했다. 이 사건들은 미소 양측 모두에게 새로운 종류의 공포를 심어주었다. 능력자는 무기인 동시에 스스로 의지를 가진 존재였다.

1974년 프랑스 남부의 비밀 시설에서는 내부 연구원 두 명이 시설 관련 문서를 빼돌려 언론사에 전달하려 했다. 프랑스 정보기관이 인쇄 직전에 막았지만, 이미 몇 부의 교정쇄가 외부에 유출된 상태였다. 이 교정쇄들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유럽 초상 연구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돌아다니는 문서가 되었다. 같은 해 동독에서는 슈타지 산하 초상 연구 부서의 실험 중 피실험자의 능력이 예상치 못한 형태로 발현되어 시설 외부에서 가시적인 현상이 관측되었고, 인근 주민들이 이를 목격했다. 이 사건은 내부적으로 드레스덴 잡음이라 기록되었다.

1980년대에는 미국의 5월 계획이 결정적인 실패로 끝났다. 특정 능력자의 발동 패턴을 분석해 다른 인간의 신경계에 강제로 이식하려던 이 실험에서, 이식을 받은 피실험자들은 예외 없이 심각한 신경계 손상을 입었고 일부는 뇌사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대상이 교도소 수형자였다는 점이었다. 1988년 이 사실이 의회 일부 의원들에게 내부 경로로 알려지면서 SIGMA 전체가 대규모 감사를 받았다. 프로그램은 외형상 축소되었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지하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5월 계획의 실패는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능력은 '이식'되지 않는다. 이후 각국의 연구는 능력을 옮기는 대신 능력자를 관리하거나 기계로 우회하는 방향으로 갈라졌다.

같은 시기 냉전의 진영 논리는 초상 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동서 양 진영의 위성국들은 종주국의 방법론을 이식받아 자국 시설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쿠바는 소련의 방법론을, 한국, 서독, 이탈리아는 SIGMA 체계를 따랐다. 초상 연구는 열강의 전유물이 아니라 냉전 질서 전체에 분산된 비밀 인프라가 되어 있었다.

루이나에서는 1980년 헌정 회복 이후 의체 조직의 국내 정치 개입이 문제가 되면서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개편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루이나 정부는 이 조직을 해체하는 대신, 1980년대 중반 능력자가 아닌 '사람 아닌 신비'를 관리하는 조직으로 전용했다. 산타 이네스 마을 터의 잔류 간섭장처럼 능력자가 없는 곳에서 관측되는 현상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관리 대상으로 명문화한 것은 루이나가 처음이었다. 일본이 1930년대에 썼던 '특이'라는 말이 이때 특이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당시 다른 나라들은 이를 소국의 기묘한 행정 분류 정도로 여겼다.

3.6. 1990년대: 검은 지진 [편집]

진원 깊이 0km. 관측소는 계기 오류로 보고했다. 계기는 정상이었다.
— 1994년 중동 관측망 기록에 대한 UBATM 소급 분석 보고서

1990년대는 양 진영 모두 초상 전력의 실전화에 가장 근접한 시기였다. 소련은 1991년을 전후해 제14국의 운용 규모를 대폭 확장했다.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이 시기 소련이 작전 가능 상태로 분류한 능력자 수는 역대 최대였다. 이들 중 일부는 동유럽 위성국의 친서방 정치 운동을 억압하는 작전에 투입되었다는 정황이 있으며, 일부 사건에서 목격된 설명 불가능한 현상들이 훗날 능력자 개입의 증거로 재분류되었다. 미국 역시 공세적이었다. SIGMA의 후계 조직은 제3세계에서 자연 각성한 발현자를 선제 포섭하는 선취 작전을 전개했다.

1994년, 중동의 한 분쟁 지역에서 서방과 소련 계통의 능력자가 같은 작전 공간에서 맞닥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있었다. 현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물리 현상은 공식적으로 지진으로 처리되었지만, 지진학자들은 진원 깊이가 지표면이라는 점을 설명하지 못했다. 양국 정보기관은 모두 이것이 능력자 간 충돌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사건은 이후 검은 지진이라는 비공식 명칭으로 회자되었다. 검은 지진이 남긴 경고는 분명했다. 능력자를 전략 자산으로 직접 충돌시키는 것은 통제 가능한 교전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물리 재앙이었다. 양 진영 모두 이를 인지했지만, 어느 쪽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다.

3.7. 2000년대: 적들이 서로를 발견하다 [편집]

현장에 도착한 팀은 여섯이었다. 서로의 장비를 본 순간, 여섯 팀 모두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 중 누구도 이것을 한 것이 아니다.
— 2005년 핀란드 회동 기록, 미국 측 대표 발언 요약

계기는 2002년 9월 동남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초상 현상이었다. 반경 수백 미터 구역 안에서 모든 전자기기가 동시에 오작동했고, 수십 명이 동일한 환각을 경험했다. 미국과 소련은 물론 영국, 일본, 중국, 프랑스의 초상 기관이 각기 독립적으로 인원을 파견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조우는 적대적이라기보다 당혹스러웠다. 냉전의 적들이 같은 현상을 같은 방식으로 쫓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현상이 어느 한쪽의 소행이 아니라는 사실이 동시에 확인되었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현장에 능력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간섭장은 특정인이 아니라 도시의 한 구획 전체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각국 팀은 이를 각자의 용어로 기록했지만, 이 현상에 이미 이름과 관리 절차를 가진 나라는 루이나뿐이었다. 초상사에서 특이체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순간이었다.

2005년, 미국, 소련, 영국, 중국의 초상 연구 기관 실무 책임자들이 핀란드의 외딴 시설에서 비밀리에 회동했다. 루이나는 특이체 관리 경험을 이유로 실무진 자격으로 초청되었다. 이 자리에서 공유된 것은 정보보다 우려였다. 통제되지 않은 고위 능력자가 야기할 수 있는 피해는 전술핵에 준하거나 그것을 초월할 수 있으며, 어느 진영도 그런 사태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협력은 쉽지 않았다. 수십 년간 쌓인 불신에 더해, 냉전 중에 초상 전력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전략적 자살에 가깝다는 현실이 이후 수년간의 교착으로 이어졌다.

3.8. 201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UBATM [편집]

우리는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이 방을 만들었다. 그것이 함께 무언가를 보게 된 첫 번째 방이 되었다.
— UBATM 창설 총회 폐회사, 2018년 9월

교착을 깨뜨린 것은 대화가 아니라 사건이었다. 201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연 각성한 발현자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능력을 발현했다. 이 인물은 어느 국가의 등록 체계에도, 어느 진영의 포섭망에도 걸리지 않은 완전한 무소속이었다. 폭주 상태의 간섭장은 통상 반경의 수십 배로 팽창해 광역에 걸쳐 물리 법칙을 왜곡했고, 해당 지역의 위성 데이터는 72시간 동안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사망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

미국과 소련은 각각 독자 대응팀을 파견했고, 두 팀은 현장에서 마주쳤다.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현장 지휘관들은 본국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임시 협력을 결정했다. 이 협력의 결과 보고서가 양국 수뇌부에 동시에 도달했을 때, 처음으로 구조적인 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정치 수준에서 공유되었다.

2013년, 최초의 다국적 초상 정보 공유 협정이 체결되었다. 냉전기의 핵 군비 통제 협상과 마찬가지로 이 협정은 신뢰가 아니라 필요의 산물이었다. 당사국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서독, 일본이었다. 핵심은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고위 능력자가 발생하면 상호 통보하고 필요시 공동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수년간 능력자의 법적 지위와 기밀 연구에 대한 상호 사찰 범위를 두고 난항을 겪었으나, 결국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타협에 이르렀다. 2018년 9월, UBATM(United Bureau for Anomalous Transcendence Management)이 공식 창설되었다. 이름은 한 세기 전 섹션 그레이의 용어에서 왔다. 본부는 오스트리아 빈에 설치되었고 창설 참여국은 38개국이었으며, 루이나도 그중 하나였다. 냉전 양 진영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이 기구는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다자 협력 체계로 평가받는다. UBATM은 공식적으로 미확인 물리 현상에 관한 국제 조사 협력 기구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었다. 초상이라는 단어는 공식 문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4. UBATM [편집]

4.1. 기능 [편집]

UBATM의 실질적 기능은 네 축으로 나뉜다. 전 세계 초상 사건의 공동 모니터링과 대응 조율, 각국 능력자 등록 체계를 연결하는 공통 데이터베이스의 운용, 비윤리적 실험과 능력자 학대에 관한 최소 기준의 설정과 상호 감시, 그리고 용어와 등급의 표준화다.

네 번째 기능은 눈에 띄지 않지만 실질적이었다. 백 년 동안 네 개의 이름으로 불리던 현상은 UBATM 이후 '신비'라는 공통 명칭과 주관현실, 간섭장, 0급에서 5급까지의 등급이라는 공통 언어를 갖게 되었다. 세 번째 기능은 상징적이었다. 수십 년간 국가들이 묵인하거나 자행한 일들에 대해 적어도 명문화된 금지선을 긋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루이나의 요구로 특이체 역시 UBATM의 관리 범위에 포함되었다.

4.2. 한계와 비판 [편집]

UBATM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냉전은 창설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양 진영은 기구의 테두리 안에서 협력하는 동시에 테두리 밖에서 경쟁했다. 학대에 관한 최소 기준은 이미 관행이 된 방법론에 비하면 너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과거 실험의 책임 문제는 소위원회에 넘겨진 채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공통 데이터베이스에 각국이 실제로 얼마나 등록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5급 능력자 보유 수는 여전히 핵탄두 수와 같은 등급의 기밀이다.

UBATM은 냉전이 낳은 기구다. 적들이 공멸을 피하기 위해 만든 최소한의 공간. 1921년 브라질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 공포가 백 년을 돌아, 마침내 인류가 그것으로 서로를 죽이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함께 바라보기로 합의한 자리에 도달했다.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복판에 아주 작고 불완전한 공통의 방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그 방 안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묻기 시작했다. 신비가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관리해 온 것인가.

5. 연표 [편집]

연도
사건
1921
산타 이네스 사건, 최초의 공식 관측
1923~1927
미·영·소 각국 비밀 연구 착수
1934
아넨에르베 강제 각성 실험 개시
1943
소련, 발현 재현 성공
1950년대 중반
SIGMA 프로그램 출범, KGB 제14국 실전 운용
1961
계단 계획
1966~1971
유폭 실험
1960년대 말
간섭장 계측 성공
1970년대 초
SIGMA 6단계 척도 도입
1974
프랑스 교정쇄 유출, 드레스덴 잡음
1980년대
5월 계획 실패, 루이나 특이체 관리 개편
1988
SIGMA 의회 감사
1994
검은 지진
2002
동남아 도시급 특이체 사건, 각국 첫 조우
2005
핀란드 회동
2012
아프가니스탄 폭주 사태
2013
다국적 정보 공유 협정
2018
UBATM 창설

6. 관련 문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