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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랜드에서 넘어옴

 파일:슈발 로마 제국.png

[ 지도 ]
랜드해협의 지도
파일:랜드지도.jpg
[ 국가 ]
파일:NLTO 깃발.svg NLTO | 자본주의 진영
파일:Ruinaflag.png
파일:플로렌시아 국기.png
파일:유고랜드국기.png
파일:빌_베른.png
파일:마베라국기.png
파일:체르드깃발.png
파일:코스탄티뉘예.png
파일:booksan_flag.png
파일:헤르샤바문장.svg H.P. | 공산주의 진영
제3의 위치 | 중립 및 그외 진영
파일:싸볘트정부기.png
파일:추가예정.png
파일:D_Bundesflagge.png
파일:시스타니아국기.png
파일:치앙펭.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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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센츄리움깃발.png
파일:신동경국기.png
파일:벌건고랜드.png
파일:고랜드국기탈레반.png
※ 군청색은 NLTO 정회원국, 하늘색은 NLTO 비회원국이지만 자유진영인 국가.
※ 마찬가지로 진홍색은 HP 정회원국, 연홍색은 비회원국임.
※ 독자노선 국가들은 고유색으로 표기함.
설정상의 국가
파일:소련 국기.svg
파일:미제 국기.svg
파일:랜빛트리아-몽가리 제국.png
파일:비율어따팔아먹.png
파일:벨타_4국.png]]
파일:잉성국 국기.png]]
멸망한 국가]]
파일:괴뢰깃발.png
[ 기타 ]
ㅇㅇ
[미승인국] [B] 해당 열의 국가들은 설정등급 B등급으로 존재여부가 확실하지 않음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Сабьет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Union of Saviet Socialist Republics
파일:싸볘트린민기.png
파일:사비에트문장.png
인민기
파일:싸볘트정부기.png
정부기
국장
상징
국가
사비에트 연방 찬가 (Гимн ССР)
국화
장미
역사
수도
최대도시
크라슬리스크 (Kraslisk)
크라슬리스크
면적
2,270,000 km²
인문 환경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d700 > 인구
<colcolor=#ffd700 > 총인구
약 3억 3천만 명
민족 구성
남슬라브족 62%, 카스탄족 15%, 타르타르족 9%, 기타 14%
인구밀도
1 km²당 145명 (도시집중도 높음)
출산율
3.94
공용어
러시아어(공용어), 카스탄어, 일루리안어, 연방 언어법 보장
종교
국가 무신론 원칙 / 종교는 비공식 개인 영역
군대
사비에트 인민해방군 (Saviet People's Liberation Army, SPLA)
하위 행정구역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d700 > 광역자치단체

* 크라슬리스크 주
* 카스탄 주
* 제르보프 자치 주
* 동이베르 주
기초자치단체
인민평의회 구역 (район совета народа)
정치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d700 > 정치 체제
단일 사회주의 일당국가, 연방형 계획정치
민주주의지수
권위주의 (Freedom Index: 6.9/10)
국가 요인
<colcolor=#ffd700 >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국가원수)
미하일 인터루쇼프
총리
리디아 바르노바
계획경제위원장
미하일 크루포프
국방인민위원장
안드레이 케르세노프
대외인민위원장
아르만 슈트라세르
여당
사비에트 노동인민당 (SLP)
경제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d700 > 경제 체제
계획경제 기반 혼합체제 (중앙주도+일부 지방 분권)
명목 GDP
<colcolor=#ffd700 > 전체 GDP
9.2조 USD (2024 기준)
1인당 GDP
27,300 USD
GDP
(PPP)
전체 GDP
13.5조 USD
1인당 GDP
40,100 USD
국부
총 국부 약 48조 USD (2024년, 추정)
수출입액
수출
1.4조 USD
수입
1.3조 USD
외환보유액
8,900억 USD
신용 등급
BBB (국영 기준), 외채 의존도 낮음
화폐
공식 화폐
사비에트 루블 (Saviet Ruble)
ISO 4217
SVR
국가 예산
1년 세입
약 3.2조 USD
1년 세출
약 3.3조 USD
ccTLD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svt
국가 코드
SVT
국제 전화 코드
+837
단위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d700 >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6
도량형
미터법
외교
[ 펼치기 · 접기 ]
<colcolor=#ffd700 > 유엔 가입
1955년
무비자 입국
26개국과 상호 협정 체결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2.3. 국장2.4. 국가2.5. 국화2.6. 표어
3. 역사
3.1. 고랜드와 분화3.2. 고대 사랜드 제국3.3. 분열기와 슬라브인의 정착3.4. 제정 사랜드3.5. 장미 혁명과 사랜드 공화국3.6. 붉은 혁명3.7. 노스탈린 시대3.8. 인터루쇼프 시대3.9. 고랜드 전쟁과 재편3.10. 현대
4. 자연환경
4.1. 지형4.2. 기후4.3. 자원
5. 인문환경
5.1. 행정구역5.2. 인구5.3. 민족5.4. 언어5.5. 종교5.6. 주요 도시
6. 정치
6.1. 정치 체제6.2. 사비에트 노동인민당6.3. 현 지도부6.4. 인터루쇼프 가문
7. 외교
7.1. 루이나7.2. 헤르샤바 조약7.3. 청평7.4. 동사랜드7.5. 고랜드7.6. 소련
8. 경제
8.1. 개요8.2. 계획경제와 재편8.3. 산업8.4. 무역과 재정8.5. 통화
9. 사회
9.1. 교육9.2. 보건과 복지9.3. 통제와 감시
10. 문화
10.1. 문학10.2. 건축10.3. 체육
11. 군사12. 여담

1. 개요 [편집]

남랜드 동남쪽에 위치한 사회주의 국가. 수도이자 최대 도시는 크라슬리스크다.

랜드해협 최초의 문명인 고랜드에서 갈라져 나온 사랜드를 뿌리로 한다. 711년 성립한 제정 사랜드가 1,200년 가까이 이어지다 1917년 장미 혁명으로 무너졌고, 그 뒤를 이은 사랜드 공화국은 1946~1949년 붉은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연방으로 재편되었다.

면적 227만 km², 인구 약 3억 3천만 명으로 루이나·플로렌시아·라 마베라 연방과 함께 랜드해협 4대 강국으로 꼽히며, 공산주의 진영인 H.P.(헤르샤바 조약)의 맹주다. 1950년대 이래 루이나와 랜드해협 우주경쟁, 콘스탄티노폴 문제, 고랜드 미사일 위기 등에서 정면으로 맞서 왔고, 이 대립은 2026년 현재도 끝나지 않았다.

사비에트 노동인민당(SLP)의 일당 체제이며, 경제는 중앙 계획을 골격으로 하되 1990년대 '재편' 이후 일부 시장 요소를 허용한 혼합 체제로 운영된다.

2. 상징 [편집]

2.1. 국호 [편집]

정식 국호는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Сабьет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Union of Saviet Socialist Republics)이다. 1949년 붉은 혁명 직후 혁명정부가 새로 만든 이름으로, 옛 국호 사랜드(Саранд)에서 앞 음절을, 혁명의 기구였던 평의회(совет)에서 뒤 음절을 따왔다. 제정과 공화국 시기의 국호는 모두 '사랜드'였다.

'사랜드'는 지금도 지역명으로 살아 있어, 서방 언론이나 인접국 문서에서는 사비에트를 사랜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비에트 정부는 이를 혁명 이전 체제를 인정하는 뉘앙스로 받아들여 공식 문서에서의 사용에 항의해 왔다.

2.2. 국기 [편집]

적색 바탕의 깃대 쪽 윗부분에 금색 오각별을 두고, 그 아래에 금색 윤곽선으로 그린 장미 한 송이를 배치한 도안이다. 별은 당과 혁명을, 장미는 국화이자 1917년 장미 혁명을 상징한다.

2.3. 국장 [편집]

중부 대평원을 상징하는 밀 이삭 두 다발이 톱니바퀴와 장미를 감싸고, 위에는 오각별을, 아래 리본에는 국가 표어를 러시아어·카스탄어·일루리안어로 적은 형태다.

2.4. 국가 [편집]

「사비에트 연방 찬가」(Гимн ССР). 1949년 제정되었다. 노스탈린 사후 탈노스탈린화 과정에서 그를 찬양하던 2절 가사가 삭제되어, 공식 행사에서는 1절과 3절만 부른다.

2.5. 국화 [편집]

장미. 1917년 시위대가 가슴에 달았던 붉은 장미에서 유래한다. 장미 혁명은 본래 공산당이 아니라 공화파가 주도한 혁명이었으나, 노동인민당은 1917년을 '미완의 혁명', 1949년을 그 완성으로 규정하는 서사 속에서 장미를 국가 상징으로 흡수했다.

2.6. 표어 [편집]

"Пролета́рии всех стран, соединя́йтесь!"(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3. 역사 [편집]

상세 내용은 사비에트/역사 문서 참고.

3.1. 고랜드와 분화 [편집]

사비에트 역사의 출발점은 랜드해협 최초의 문명인 고랜드다. 기원전 1천년기 전반 북부 고원 분지에서 성립한 고랜드는 산정의 수원에서 지하 수로를 끌어내 농사를 지었고, 이 수로망을 관리하던 신관단이 곧 국가였다. 기원전 7~6세기부터 인구가 늘자 고랜드는 남쪽 강 하류의 저지대 평원에 식민 도시를 세우고, 그곳의 곡물을 고원으로 올려 보내는 공납 체계를 만들었다.

분화의 원인은 이 구조의 역전에 있었다. 저지대 도시들은 수백 년에 걸쳐 인구와 생산력에서 본국을 앞질렀지만, 수로 의례와 공납의 결정권은 여전히 고원 신관단이 쥐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 말 수십 년에 걸친 대가뭄이 닥치자 본국은 저지대의 공납을 크게 올리는 한편, 고원에서 발원해 평원으로 흐르는 강의 상류에 둑을 쌓아 물길을 고원 쪽으로 돌렸다. 저지대에서는 이를 '분수(分水)'라고 불렀다.

기원전 4세기 초 저지대 도시들은 연합해 공납을 거부하고 상류의 둑을 허물었다. 이후 약 30년간 이어진 분수 전쟁에서 고원군은 평원을 되찾지 못했고, 두 지역의 경계는 고원 가장자리에서 굳어졌다. 고랜드어에서 '고'는 높은 곳·근원을, '사'는 아래·낮은 곳을 뜻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인데, 본국이 저지대를 얕잡아 부르던 '사랜드(아랫땅)'를 저지대 쪽이 오히려 자칭으로 삼은 것이 국호의 기원이다.

고원은 산정 수원 신앙을 지켰고 평원은 강과 태양을 중심으로 신앙을 재편하면서, 두 지역은 이때부터 서로 다른 문화권으로 갈라졌다.

3.2. 고대 사랜드 제국 [편집]

기원전 3세기 무렵 저지대 도시 연합은 하나의 왕국으로 통합되어 동쪽과 남쪽으로 팽창했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청평 지역을 정복해 동방 변경의 거점으로 삼고, 도로와 요새, 총독부를 두어 조세와 징병을 시행했다.

반면 고랜드는 고원의 왕국으로 남았다. 기원전 67년 로마와 접촉한 고원의 '이름 없는 왕국'이 고랜드로 추정된다.

기원후 3세기 로마 제국의 침공으로 사랜드 제국은 급격히 약화되어 붕괴했고, 청평은 이때 사실상 독립했다.

3.3. 분열기와 슬라브인의 정착 [편집]

사랜드 제국 붕괴 후 평원은 약 400년간 소영주들이 난립하는 분열기에 들어갔다. 535년과 670년에 거듭된 흑사병이 인구를 크게 줄였고, 6~7세기에는 서북쪽에서 슬라브계 집단이 대거 이주해 평원에 정착했다.

이주민은 기존 사랜드인과 섞이며 평원의 다수 집단이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남슬라브족의 기원이다. 옛 사랜드어를 지킨 동남부 산지 주민은 카스탄족의 조상이 되었다.

3.4. 제정 사랜드 [편집]

상세 내용은 제정 사랜드 문서 참고.


711년 서부의 슬라브계 귀족인 인크론슈타트 공작 인터르스키 1세가 평원을 통일하고, 고대 사랜드 제국의 계승을 내세워 황제를 칭했다. 이후 1917년까지 1,200년 넘게 이어진 제정 사랜드는 사무탁호를 둘러싼 빌베른과의 분쟁, 14세기 몽골의 침입, 근세의 농노제 전제정을 거쳤다. 수도는 서부의 인터그라드였다.

3.5. 장미 혁명과 사랜드 공화국 [편집]

제1차 세계대전의 소모전과 기근은 제정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1917년 인터그라드에서 붉은 장미를 가슴에 단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고, 수비대 일부가 이에 합류하자 황제가 퇴위했다. 이 장미 혁명으로 제정 사랜드는 1,206년 만에 막을 내리고, 입헌 공화국인 사랜드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공화국은 토지 개혁을 끝내 매듭짓지 못했고, 정당 난립으로 내각이 수시로 교체되었다. 1920년대 초 소련과 코민테른의 지원을 받아 사랜드 공산당이 창당되었는데, 초기 간부 다수가 모스크바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러시아어가 당 내부의 사실상의 공용어가 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공화국은 군부 권위주의로 기울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국토가 전장이 되면서 통치 능력을 사실상 잃었다. 이 시기 공산당의 무장 조직인 인민군이 저항 세력으로서 정통성을 얻었다.

3.6. 붉은 혁명 [편집]

종전 이듬해인 1946년 공화국 정부와 인민군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다. 소련은 무기와 군사고문단을 보내 인민군을 지원했다. 1949년 인민군이 크라슬리스크와 인터그라드를 차례로 점령하면서 내전은 끝났고, 같은 해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선포되었다. 공산당은 사비에트 노동인민당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수도는 제정의 상징이던 인터그라드에서 크라슬리스크로 옮겨졌다.

내전 기간 동쪽의 동사랜드 인민공화국은 인민군의 후방 기지 역할을 했고, 1947년 띠엔화 협정으로 "혁명 승리 후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존중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1949년 12월 사비에트는 동사랜드 노동당 친사비에트파의 '원조 요청'을 명분으로 군대를 보내 동사랜드를 합병했고, 탈퇴권을 가진 구성 공화국이 아니라 한 단계 낮은 자치공화국으로 편입했다. 이것이 훗날 동사랜드 분리의 씨앗이 되었다.

3.7. 노스탈린 시대 [편집]

초대 지도자 노스탈린은 농업 집단화와 중공업 우선의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숙청을 단행했다. 대외적으로는 청평의 공업화 지원에 나서 공산권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는데, 1950년 청평이 요구한 500개 이상의 공장 건설은 비현실적이라며 규모를 줄여 승인했다.

노스탈린은 1951년 6월 사망했다. 후계 문제로 지도부가 몇 달간 마비된 사이 동사랜드 자치공화국 인민평의회가 연방 탈퇴를 의결했고, 이를 무효로 선언한 연방 정부에 맞서 인민적군이 봉기했다. 봉기는 이듬해 봄까지 진압되었으나, 인민적군은 산악 지대로 물러나 항전을 이어 갔다.

3.8. 인터루쇼프 시대 [편집]

노스탈린 사후 권력을 잡은 니키타 인터루쇼프는 1979년까지 약 28년간 집권했다. 그는 탈노스탈린화를 추진하는 한편, 1955년 파랜드의 헤르샤바에서 공산권 동맹인 헤르샤바 조약을 출범시켰고 같은 해 유엔에 가입했다.

1956년에는 청평과 청소합작 협정을 맺어 탄도미사일과 핵 기술 이전을 약속했으나, 청평의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치닫자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1959~1960년 원조를 줄이고 기술자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협정의 핵심 기술은 끝내 이전되지 않았다. 여기에 려우 즈카이의 핵전쟁 발언과 인터루쇼프에 대한 공개적인 조롱이 겹치며, 1960년대 초 두 나라는 결별했다.

결별 후 청평이 동사랜드의 인민적군을 지원하면서 동사랜드의 항전은 다시 격화되었다. 사비에트는 1962년 정전을 거쳐 1963년 크라슬리스크 조약으로 동사랜드의 분리를 승인했다.

같은 시기 사비에트는 루이나와의 우주경쟁에 뛰어들었다. 1959년에는 콘스탄티노폴의 혁명정부를 지원해 군사고문 약 180명과 기술자 약 600명을 파견했으나, 1970년 루이나의 침공으로 이들이 억류되었다가 같은 해 7월 송환되었다.

1975년에는 헤르샤바 조약 회원국 가운데 최초로 LSEC에 가입했다. 1977년에는 국경 하천의 섬을 두고 동사랜드와 국지 교전을 벌였고, 동사랜드가 국교를 끊었다. 1979년 니키타 인터루쇼프가 사망하자, 당은 원로 표트르 A. 스타로두보프를 제1서기 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으로 세웠다.

3.9. 고랜드 전쟁과 재편 [편집]

1979년 12월 25일, 병석의 스타로두보프가 이끌던 사비에트는 고랜드의 공산 정권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고랜드를 침공했다. 각지의 이슬람 무장세력이 모여들었고 1983년부터 루이나가 이들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면서, 전쟁은 10년 가까운 수렁이 되었다. 고랜드 측 선전은 이 전쟁을 "아랫땅이 다시 물길을 빼앗으러 왔다"는 분수 전쟁의 언어로 묘사했다. 사비에트군은 1989년 2월 15일 철수를 마쳤다.

고랜드의 공산 정권은 철군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1996년 탈레반에 수도 아바나를 내주고 북부로 밀려났으나 버텼고, 2001년 루이나가 공산 정권과 손잡고 탈레반을 공격할 때 사비에트는 탈레반을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1990년대 스타로두보프 이후의 지도부는 '재편'을 내걸고 국영기업의 자율 경영, 시장 구역 지정, 지방 분권을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이 개혁은 체제 전환이 아니라 계획경제의 보완으로 설계되었고, 사비에트는 일당 체제를 유지한 채 1990년대를 넘겼다. 1998년 니키타 인터루쇼프의 손자인 미하일 인터루쇼프가 제1서기 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에 올랐다.

3.10. 현대 [편집]

2001년 루이나와 고랜드 공산 정부가 맺은 벨포르 협정에 사비에트는 부속 의정서로 참여했으며, 서명자는 미하일 인터루쇼프였다. 2000년대 들어 루이나와의 신우주경쟁이 재개되었고, 냉전 구도는 2026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4. 자연환경 [편집]

4.1. 지형 [편집]

국토는 크게 세 지대로 나뉜다. 북부는 고랜드와 맞닿은 고원 지대로, 고대 고랜드 문명의 수원이 있던 곳이다. 중부는 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평원으로, 고대 사랜드가 성립한 무대이자 오늘날 인구와 농업의 중심이다. 동부는 동사랜드와 맞닿은 몬순 저지대로 하천이 많고 습지가 넓다.

서쪽으로는 유고랜드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은 바다에 면한다.

4.2. 기후 [편집]

북부 고원은 건조하고 겨울이 혹독하며, 중부 평원은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추운 대륙성 기후다. 동부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몬순 기후로, 우기의 홍수가 잦다.

4.3. 자원 [편집]

중부 평원의 흑토 곡창지대, 북부 고원의 석탄과 철광석, 남부 해안과 대륙붕의 석유·천연가스가 주요 자원이다.

5. 인문환경 [편집]

5.1. 행정구역 [편집]

연방은 주(州)와 자치 주로 구성된다. 크라슬리스크 주, 카스탄 주, 제르보프 자치 주, 동이베르 주 등이 있으며, 주 아래 기초 단위로 인민평의회 구역(район совета народа)을 둔다.

국호의 '공화국'은 각 주가 명목상 주권 공화국의 지위를 가진다는 데서 온 것으로, 헌법은 주에 연방 탈퇴권을 부여하고 있다. 자치 주와 자치공화국에는 이 권리가 없으며, 1951년 동사랜드 자치공화국의 탈퇴 의결은 바로 이 차이를 둘러싼 분쟁이었다. 실제 권한은 연방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5.2. 인구 [편집]

인구는 약 3억 3천만 명, 인구밀도는 1 km²당 145명이다. 인구의 상당수가 수도권과 중부 평원의 대도시에 몰려 있어 도시 집중도가 높다.

합계출산율은 3.94로 공산권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인데, 다자녀 가정에 주택 우선 배정과 연금 가산을 주는 출산 장려 정책의 영향이 크다.

5.3. 민족 [편집]

* 남슬라브족(62%): 6~7세기 평원에 정착한 슬라브 이주민의 후손.
* 카스탄족(15%): 고대 사랜드인의 후예로, 동남부 산지의 카스탄 주에 집중되어 있다.
* 타르타르족(9%): 14세기 몽골 침입 후 동부에 남은 집단의 후손.
* 기타(14%): 동부 국경 지대의 베트남계, 혁명 이후 정착한 러시아계, 북부의 고랜드계 등.

5.4. 언어 [편집]

공용어는 러시아어다. 혁명 간부층이 모스크바에서 교육받고 소련 군사고문단과 함께 내전을 치르면서 러시아어가 당과 군의 언어가 되었고, 1949년 여러 민족 사이의 중립적인 공용어라는 명분으로 연방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남슬라브족의 토착 방언은 제정기에도 표준 문어가 없었던 탓에 혁명 후 러시아어 교육에 빠르게 밀려났고, 오늘날 남슬라브족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모어로 쓴다. 카스탄어와 일루리안어는 연방 언어법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 공용어 지위를 보장받는다.

5.5. 종교 [편집]

국가 무신론을 원칙으로 하며, 종교는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개인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제정기의 국교였던 정교회가 남슬라브족 사이에 비공식적으로 남아 있고, 타르타르족 사이에서는 이슬람이 이어지고 있다. 카스탄족의 민속에는 고대 사랜드의 강·태양 신앙이 의례의 형태로 남아 있다.

5.6. 주요 도시 [편집]

* 크라슬리스크: 수도이자 최대 도시. 1949년 수도가 된 뒤 계획도시로 대대적으로 재건되었다.
* 인터그라드: 제정 사랜드의 옛 수도이자 제2의 도시. 군 지휘부가 자리한 군사 중심지다.

6. 정치 [편집]

6.1. 정치 체제 [편집]

사비에트 노동인민당이 영도하는 단일 사회주의 일당국가다. 최고 국가기관은 입법권을 가진 최고인민평의회이며, 그 주석이 국가원수를 맡는다. 행정은 총리가 이끄는 인민위원회가 맡고, 각 부문은 인민위원장이 이끄는 인민위원부로 나뉜다. 경제 계획은 국가계획위원회가 총괄하는데, 계획위원장이 국가 요인으로 꼽힐 만큼 위상이 높다는 점이 계획경제 국가로서의 특징을 보여 준다.

형식상 연방제지만 각 주의 인민평의회는 연방 계획의 집행 기관에 가깝다. 1990년대 재편 이후 일부 경제 권한이 지방으로 넘어갔을 뿐, 정치적 권한은 여전히 중앙에 집중되어 있다.

6.2. 사비에트 노동인민당 [편집]

1920년대 초 창당한 사랜드 공산당이 전신이며, 1949년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 최고 직위는 제1서기이며, 제1서기가 최고인민평의회 주석을 겸하는 것이 관례다.

6.3. 현 지도부 [편집]

* 제1서기 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미하일 인터루쇼프 (1998~)
* 총리: 리디아 바르노바
* 국가계획위원장: 미하일 크루포프
* 국방인민위원장: 안드레이 케르세노프
* 대외인민위원장: 아르만 슈트라세르

6.4. 인터루쇼프 가문 [편집]

니키타 인터루쇼프(1951~1979 집권)부터 현 주석 미하일(1998~)까지 3대에 걸쳐 당 최고위층을 배출한 가문이다. 니키타의 아들 역시 당 고위직을 지냈다. 1979년 이후 20년 가까이 가문과 무관한 지도자들이 이어지다 권력이 다시 이 가문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혁명국가에 사실상의 세습 명문가가 존재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당은 미하일의 선출이 정상적인 당내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7. 외교 [편집]

공산주의 진영 H.P.(헤르샤바 조약)의 맹주다. 1955년 유엔에 가입했고, 26개국과 상호 비자 면제 협정을 맺고 있다.

7.1. 루이나 [편집]

최대의 적대국. 두 나라는 1950년대부터 우주 공간의 군사적 활용을 두고 경쟁했고, 콘스탄티노폴과 고랜드에서 간접적으로 충돌했다. 루이나군이 주둔하는 유고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고랜드 국경은 두 진영이 직접 마주하는 최전선이다.

두 나라가 같은 표결에 참여하는 국제기구는 LSEC가 사실상 유일하며, 1978년 루이나의 LSEC 표결권 정지 안건에 사비에트는 찬성표를 던졌다.

7.2. 헤르샤바 조약 [편집]

1955년 파랜드의 헤르샤바에서 체결된 공산권의 군사·정치 동맹으로, 사비에트가 맹주다. 파랜드가 대표적인 회원국이다.

7.3. 청평 [편집]

1950년대에는 청평의 공업화를 지원한 후원국이었으나, 1956년 약속한 핵·미사일 기술은 원조 중단으로 끝내 이전되지 않았다. 1960년대 초 결별한 뒤 관계가 회복되지 않았으며, 결별 후 청평이 동사랜드의 인민적군을 지원한 일은 두 나라 사이의 또 다른 앙금으로 남아 있다.

7.4. 동사랜드 [편집]

옛 청평의 책봉국으로, 1945년 인민공화국을 세웠으나 1949년 사비에트가 무력으로 합병해 1963년까지 자치공화국으로 두었다. 1951년 탈퇴 의결과 봉기, 10년 넘는 항전 끝에 1963년 크라슬리스크 조약으로 분리되었고, 1977년 국경 하천의 섬을 둘러싼 국지 교전 이후 단교 상태다. 사비에트는 동사랜드가 국호에 '사랜드'를 쓰는 것에도 항의해 왔다.

7.5. 고랜드 [편집]

기원을 공유하는 가장 오래된 이웃이자 1979~1989년 전쟁의 상대국이다. 사비에트는 전쟁 뒤에도 고랜드 공산 정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7.6. 소련 [편집]

붉은 혁명의 후원자로, 사비에트의 당·군·행정 체계와 공용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8. 경제 [편집]

8.1. 개요 [편집]

2024년 명목 GDP는 약 9.2조 달러(1인당 27,300달러), 구매력 평가 기준 GDP는 약 13.5조 달러(1인당 40,100달러)다. 총 국부는 약 48조 달러로 추정된다. 신용등급은 BBB 수준이지만 외채 의존도가 낮다.

8.2. 계획경제와 재편 [편집]

붉은 혁명 이후 5개년 계획에 따른 중앙 계획경제를 운영해 왔다. 1990년대 재편으로 국영기업의 자율 경영, 소비재·서비스 부문의 시장 구역, 지방 정부의 제한적 재정 권한이 도입되었다.

현재도 에너지·중공업·군수·금융 등 기간산업은 국가 계획의 통제 아래 있고, 시장 요소는 계획의 빈틈을 메우는 보조 수단으로 규정된다.

8.3. 산업 [편집]

중공업과 군수·우주 산업이 경제의 중추다. 중부 평원은 랜드해협 최대의 곡창지대이며, 석유·천연가스·석탄 등 에너지 자원 수출이 외화 수입의 큰 몫을 차지한다.

8.4. 무역과 재정 [편집]

연간 수출은 약 1.4조 달러, 수입은 약 1.3조 달러이며, 외환보유고는 약 8,900억 달러다. 1975년 LSEC 가입 이후 공산권 밖과의 교역이 늘었고, LSEC는 이때부터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통계를 병행 표기하고 있다. 정부 세입은 약 3.2조 달러, 세출은 약 3.3조 달러다.

8.5. 통화 [편집]

사비에트 루블(SVR)을 쓴다.

9. 사회 [편집]

9.1. 교육 [편집]

전 과정 무상교육이며 수업은 러시아어로 진행된다. 카스탄어·일루리안어 사용 지역에서는 이중 언어 교육을 한다. 수학·물리·공학 분야의 영재 교육 체계가 발달해 우주·군수 산업의 인력 공급원이 되고 있다.

9.2. 보건과 복지 [편집]

무상 의료와 국가 배정 주택이 복지의 두 축이다. 주택 배정은 직장과 당 조직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주거 자체가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비판도 있다.

9.3. 통제와 감시 [편집]

국가보안위원회(KGB)가 방첩과 국내 사찰을 맡는다. 국내 거주 이전과 해외여행은 허가제이며, 언론과 출판은 당의 검열을 받는다.

10. 문화 [편집]

사비에트 문화는 고대 사랜드의 유산, 제정기의 정교회·귀족 문화, 혁명 이후의 사회주의 문화가 층층이 쌓인 구조다.

10.1. 문학 [편집]

현대 문학은 러시아어로 쓰인다. 노스탈린 시대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유일한 공인 양식이었고, 인터루쇼프 집권 초의 짧은 해빙기에 숙청과 집단화를 다룬 작품이 잠시 출간되었다가 다시 금지되었다. 카스탄족의 구전 서사시는 고대의 분수 전쟁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다.

10.2. 건축 [편집]

중부 평원에는 고대 사랜드의 도시 유적이, 인터그라드에는 제정기의 궁전과 교회가 남아 있다. 크라슬리스크는 1950년대 노스탈린 양식의 고층 관청과 대규모 공동주택 단지로 재건되어, 혁명 이후 도시 계획의 전형으로 꼽힌다.

10.3. 체육 [편집]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제도를 운영한다. 국제 대회에서 루이나와의 메달 경쟁은 체제 경쟁의 연장으로 다뤄진다.

11. 군사 [편집]

정규군은 사비에트 인민해방군(SPLA)이다. 육군·해군·공군·전략로켓군·우주군으로 구성되며,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지휘한다. 징병제를 시행한다.

핵보유국으로, 냉전기 최대 시기에는 루이나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 200기 이상과 전략폭격기 371대를 보유했다. 우주경쟁 이래 위성 요격과 궤도 정찰 등 우주 공간의 군사적 활용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 왔으며, 우주군은 이 경쟁의 산물이다.

실전 경험의 대부분은 1979~1989년 고랜드 전쟁에서 나왔다. 이 전쟁의 교훈은 대반란전 교리와 공수·특수부대 확충으로 이어졌다.

12. 여담 [편집]

* '분수(分水)'는 현대 사비에트 정치 용어에서 당의 노선을 이탈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고랜드와의 분화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린 영향이다.
* 제정 창건자 인터르스키 1세와 인터루쇼프 가문의 이름이 비슷해 서방에서는 인터루쇼프 가가 옛 황가의 방계라는 설이 돌지만 근거는 없다. 사비에트 국내에서는 금기시되는 농담이다.
* 루이나 공산당 내부에서는 사비에트를 제국주의에 맞선 대항축으로 보는 다수파와 관료제로 변질된 체제로 보는 소수파가 갈리며, 이 평가 차이가 2022년 좌파연대와의 통합이 무산된 직접적 원인이었다.
* 국가 도메인은 .svt, 국제 전화 코드는 +83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