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나 요리에서 넘어옴
분류
1. 개요 [편집]
루이나에서 굶지 않는 법은 간단하다. 루이나 사람이 만든 음식만 피하면 된다.
― 1980년대 해외 여행 안내서의 루이나 항목에서
루이나의 식문화를 다룬 문서.
루이나는 랜드해협에서 음식이 가장 맛없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청어를 식초 물에 삶아 젤리로 굳힌 음식, 생선 머리가 파이 껍질 밖으로 튀어나온 파이, 세 시간을 삶아 회색이 된 양배추, 맥주 찌꺼기로 만든 짠 검은 잼처럼, 외국인이 처음 보면 당황하는 음식이 '루이나 요리'의 대표로 꼽힌다. 루이나 사람들 스스로도 이를 부정하지 않으며, 자기 나라 음식을 깎아내리는 농담은 루이나식 유머의 단골 소재다.
루이나 음식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겹쳐 있다. 왕정기부터 이어진 '맛을 따지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절제의 전통, 19세기 산업화로 도시 노동자들이 싸고 빠르고 오래가는 음식만 먹게 된 것, 20세기 내내 두 번의 세계대전과 두 번의 랜드 전쟁을 거치며 반복된 배급제, 그리고 냉전기 윌리스 푸드를 비롯한 대형 식품 기업의 통조림과 냉동식품이 집밥을 밀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루이나에는 "루이나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이민자뿐이다"라는 유명한 농담이 있다. 다민족 국가인 루이나에서 외식업은 이민 1·2세가 사실상 이끌고 있으며, 루이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순위도 이민자들의 음식이 휩쓸고 있다. 농담이지만 통계로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것이 이 농담의 씁쓸한 점이다.
2. 특징 [편집]
2.1. 맛보다 배부름 [편집]
루이나 음식의 첫째 원칙은 맛이 아니라 배를 채우는 것이다. 루이나 사람들은 음식을 평가할 때 "맛있다"보다 "든든하다", "충분하다"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음식 맛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지금도 어딘가 경박한 일로 여겨지며, 나이 든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2.2. 오래 익히기 [편집]
루이나 요리는 재료를 지나치게 오래 익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소는 색이 빠져 회색이 될 때까지 삶고, 고기는 속까지 회색이 될 때까지 굽는다. 덜 익은 음식이 배탈을 일으킨다는 19세기 위생 교육과, 질 나쁜 배급 재료를 안전하게 먹으려던 전쟁기의 습관이 겹쳐 굳어진 것이다. 루이나 가정에서 "다 익었다"는 말은 곧 "더 이상 원래 모양을 알아볼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2.3. 식초와 그레이비 [편집]
양념의 자리는 식초와 그레이비가 차지한다. 루이나의 식당과 가정의 식탁에는 거의 언제나 맥아 식초 병이 놓여 있어, 생선이든 감자든 고기든 식초를 뿌려 먹는다. 청어를 식초에 절여 저장하던 항구 도시의 전통이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그레이비는 원래 고기를 구운 즙으로 만들었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윌리스 푸드의 그레이비 가루를 물에 타서 만드는 것이 보통이 되었고, 빵과 감자, 심지어 생선에도 붓는다.
2.4. 향신료를 멀리하는 전통 [편집]
루이나 전통 요리는 소금과 후추, 식초, 겨자 외의 향신료를 거의 쓰지 않는다. 왕정기 귀족들 사이에서는 향신료와 설탕을 듬뿍 쓰는 화려한 요리가 옛 빌베른 지배층의 사치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천하게 여겨졌고, 이 인식이 서민층까지 내려가 '향신료는 외국 것'이라는 통념으로 굳었다. 이 공백을 20세기 이후 이민자들의 요리가 채우게 된다.
3. 역사 [편집]
3.1. 고대와 중세 [편집]
로마인이 오기 전 이 땅에 살던 켈트계 사람들은 귀리와 보리, 양과 소, 바다에서 잡은 청어로 먹고살았다. 귀리죽과 보리빵, 소금에 절인 생선, 양의 내장을 채운 푸딩은 이때부터 이어진 음식으로 본다.
로마 지배기에는 발효 생선 소스와 포도주, 올리브유 같은 지중해 식문화가 들어왔지만, 로마가 물러난 뒤 대부분 사라졌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올덴버그 일대의 발효 생선 소스로, 지금도 올덴버그 가룸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이후 빌베른 지배기에 빌베른 귀족들은 향신료와 설탕을 아낌없이 쓴 화려한 요리를 즐겼으나, 루이나 사람들은 이를 지배자의 사치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마 지배기에는 발효 생선 소스와 포도주, 올리브유 같은 지중해 식문화가 들어왔지만, 로마가 물러난 뒤 대부분 사라졌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올덴버그 일대의 발효 생선 소스로, 지금도 올덴버그 가룸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이후 빌베른 지배기에 빌베른 귀족들은 향신료와 설탕을 아낌없이 쓴 화려한 요리를 즐겼으나, 루이나 사람들은 이를 지배자의 사치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3.2. 왕정기: 절제의 미덕 [편집]
1372년 루이나 왕국이 세워진 뒤, 왕실과 교회는 검소한 식탁을 미덕으로 내세웠다. 15~16세기에 잇따라 내려진 사치 금지령은 향신료와 설탕, 수입 포도주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귀족의 연회에 올릴 수 있는 요리 가짓수까지 제한했다. 빌베른 지배의 기억이 남아 있던 귀족들 사이에서는 "맛을 따지는 것은 빌베른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는 말이 격언처럼 쓰였다.
교회의 금식 전통도 영향을 주었다. 가톨릭의 금요일 금육과 정교회의 긴 금식 기간 동안 고기 대신 소금에 절인 청어와 귀리죽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이렇게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이 신앙심과 교양의 표시로 여겨졌다.
교회의 금식 전통도 영향을 주었다. 가톨릭의 금요일 금육과 정교회의 긴 금식 기간 동안 고기 대신 소금에 절인 청어와 귀리죽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이렇게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이 신앙심과 교양의 표시로 여겨졌다.
3.3. 산업화: 노동자의 식탁 [편집]
19세기 산업화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벨포르와 오보레, 콜마르 같은 공업 도시로 몰리면서 루이나의 식탁은 크게 바뀌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며 요리할 시간도, 부엌도, 돈도 없었다. 이들이 먹은 것은 싸고 빨리 먹을 수 있고 오래가는 음식, 곧 식초에 절인 청어와 딱딱한 빵, 큰 솥에 한꺼번에 끓인 채소 스튜, 공장 앞 노점의 고기 파이였다.
이 시기에는 식품 위조도 심각했다. 빵에 분필 가루를 섞고, 우유에 물을 타고, 상한 고기를 진한 그레이비로 덮어 파는 일이 흔해, 1875년 「식품순정법」이 만들어진 뒤에야 조금씩 줄었다. 농촌에서 이어지던 가정 요리의 전통은 이 시기 도시에서 거의 끊겼고, 통조림이 노동자 가정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식품 위조도 심각했다. 빵에 분필 가루를 섞고, 우유에 물을 타고, 상한 고기를 진한 그레이비로 덮어 파는 일이 흔해, 1875년 「식품순정법」이 만들어진 뒤에야 조금씩 줄었다. 농촌에서 이어지던 가정 요리의 전통은 이 시기 도시에서 거의 끊겼고, 통조림이 노동자 가정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3.4. 배급의 세기 [편집]
20세기 루이나는 네 번의 전쟁을 치르며 배급제를 거듭 겪었다. 1차 대전 말기(1917~1919)에 처음 설탕과 버터가 배급되었고, 2차 대전 때는 1940년부터 고기와 설탕, 버터, 달걀, 차가 모두 배급되었고, 설탕은 1947년, 마지막으로 고기는 1949년에야 배급이 풀렸다. 루이나 본토는 공격받지 않았지만, 상선이 잇따라 격침되면서 수입 식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정부는 모자란 재료로 끼니를 때우는 법을 가르치는 요리책 『승리의 식탁』(1941)을 펴냈다. 렌틸콩을 다져 거위 모양으로 빚은 '가짜 거위', 삶은 파스닙에 바나나 향을 입힌 '가짜 바나나', 감자와 통밀을 섞어 구운 회색의 국민 빵이 이 책에서 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이 음식들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배급은 1차 랜드 전쟁 중인 1960~1962년에 버터와 고기를 중심으로, 2차 랜드 전쟁 중인 1974~1977년에 설탕과 고기를 중심으로 다시 시행되었다. 2차 랜드 전쟁기의 배급은 검은 10년의 혼란과 겹쳐 특히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세 세대가 연달아 배급을 겪은 탓에, 루이나에는 지금도 '배급 세대'라는 말이 있고 음식을 남기는 것을 크게 꺼리는 문화가 남아 있다.
이 시기 정부는 모자란 재료로 끼니를 때우는 법을 가르치는 요리책 『승리의 식탁』(1941)을 펴냈다. 렌틸콩을 다져 거위 모양으로 빚은 '가짜 거위', 삶은 파스닙에 바나나 향을 입힌 '가짜 바나나', 감자와 통밀을 섞어 구운 회색의 국민 빵이 이 책에서 나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이 음식들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배급은 1차 랜드 전쟁 중인 1960~1962년에 버터와 고기를 중심으로, 2차 랜드 전쟁 중인 1974~1977년에 설탕과 고기를 중심으로 다시 시행되었다. 2차 랜드 전쟁기의 배급은 검은 10년의 혼란과 겹쳐 특히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세 세대가 연달아 배급을 겪은 탓에, 루이나에는 지금도 '배급 세대'라는 말이 있고 음식을 남기는 것을 크게 꺼리는 문화가 남아 있다.
3.5. 윌리스 푸드와 가공식품 시대 [편집]
2차 대전 이후 설탕 배급이 풀리던 1947년, 톨루즈의 캐러멜 공방에서 출발한 윌리스 푸드는 루이나 식탁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1차 랜드 전쟁 때 군에 납품한 통조림 전투식량이 전후 민간에 그대로 팔리면서, 다진 고기를 통조림에 굳힌 미트 블록이 루이나 가정의 상비 식품이 되었다.
1960년대에는 물에 타기만 하면 되는 그레이비 가루와 오븐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냉동 정식이 나왔다. 맞벌이가 늘고 수도권 통근 시간이 길어지면서, 퇴근한 부모가 냉동 정식을 데워 그레이비를 붓는 것이 루이나의 평범한 저녁 식사가 되었다. 윌리스 푸드를 비롯한 대형 식품 기업과 슈퍼마켓 체인이 식품 유통을 장악하면서 동네 정육점과 빵집, 생선 가게는 하나둘 사라졌고, 배급기에 끊긴 가정 요리의 맥은 사실상 이때 완전히 끊겼다.
3.6. 이민자와 외식 [편집]
이렇게 루이나 사람들이 부엌을 떠나는 동안, 루이나의 식당가를 채운 것은 이민자들이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의 러시아계 이민, 1940~1950년대의 소련 이주민, 1950~1980년대 산업화기의 중동·북아프리카 이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라 마베라와 유고랜드에서 온 이민자들이 저마다의 음식을 들고 왔다. 처음에는 같은 고향 사람들을 위한 작은 식당이었지만, 1970~1980년대 외식이 늘면서 루이나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 되었다.
이들의 음식은 아래 '이민자의 음식' 문단에서 따로 다룬다.
이들의 음식은 아래 '이민자의 음식' 문단에서 따로 다룬다.
4. 대표 음식 [편집]
루이나 요리로 불리는 음식 가운데 외국인에게 특히 악명 높은 것들이다. 루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도 좋아하는 사람과 질색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4.1. 청어 요리 [편집]
- 청어 젤리: 청어를 토막 내 식초 물에 삶은 뒤, 그 국물이 식으면서 젤리처럼 굳은 것을 그대로 떠먹는다. 회색빛 젤리 안에 뼈째 박힌 청어 토막이 보이는 모습 때문에 외국인이 가장 먹기 꺼리는 루이나 음식으로 꼽힌다. 원래 벨포르 부두 노동자들의 음식으로, 지금도 사우스벨포르의 오래된 가게에서 판다.
- 하늘 보는 파이: 통째로 넣은 청어 여러 마리의 머리가 파이 껍질 밖으로 튀어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양의 파이. 세인트 바룬의 어촌에서 폭풍이 그친 뒤 처음 잡은 청어로 구웠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세인트 바룬의 겨울 축제에 빠지지 않는다.
- 청어 빵: 식초와 양파에 절인 청어를 빵에 끼운 것. 루이나 청어 요리 가운데 외국인도 가장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 청어 아침: 훈제 청어를 버터에 데워 아침으로 먹는다. 집 안에 생선 냄새가 하루 종일 남는 것이 단점이다.
4.2. 고기와 내장 [편집]
- 검은 소시지: 돼지 피와 귀리, 지방을 채운 소시지. 아침 식사의 단골이다.
- 목동 푸딩: 양의 위에 다진 내장과 귀리, 양파를 채워 삶은 것. 켈트계 조상에게서 내려온 음식으로 여겨져, 국가 기념일이면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로 먹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즐겨 먹는 사람은 드물다.
- 주일 구이: 일요일에 소나 양 넓적다리를 통째로 오븐에 서너 시간 굽는 가정 요리. 속까지 회색이 될 때까지 굽는 탓에 회색 구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질긴 고기를 그레이비에 적셔 먹는다.
- 미트 블록: 다진 고기를 통조림에 굳힌 것. 1차 랜드 전쟁의 전투식량에서 나왔으며, 두껍게 썰어 튀기거나 빵에 끼워 먹는다.
4.3. 빵과 곡물 [편집]
- 국민 빵: 2차 대전 배급기의 통밀·감자 빵. 회색빛에 퍽퍽하지만, 배급 세대의 향수 때문에 지금도 '회색빵'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 그레이비 토스트: 구운 빵에 그레이비를 부어 먹는 아침 식사. 1960년대 그레이비 가루가 나온 뒤 퍼졌다.
- 오트 블록: 전날 끓인 귀리죽을 틀에 부어 굳힌 뒤, 두툼하게 썰어 기름에 지진 것. 학교 급식의 단골 메뉴로 악명 높다.
4.4. 채소 [편집]
- 세 시간 채소: 양배추와 당근, 순무를 큰 솥에 세 시간 가까이 삶은 것. 다 삶고 나면 채소의 색과 식감이 모두 사라져, 무엇을 넣었는지 맛으로는 알 수 없다는 농담이 따라붙는다.
- 으깬 순무: 삶은 순무를 버터 없이 으깬 것. 배급기에 감자 대신 먹던 음식이다.
4.5. 디저트 [편집]
- 주근깨 푸딩: 쇠기름을 넣은 반죽에 건포도를 박아 쪄 낸 푸딩. 건포도가 주근깨처럼 박힌 모양에서 이름이 나왔다. 그 위에 묽은 커스터드를 붓는다.
- 가짜 바나나: 삶아 으깬 파스닙에 바나나 향료와 설탕을 섞은 것. 2차 대전 배급기에 바나나를 구할 수 없어 만들어졌지만, 배급이 끝나고 진짜 바나나가 들어온 뒤에도 한동안 학교 급식의 디저트로 남았다.
- 젤리 위의 젤리: 색이 다른 젤리를 겹겹이 쌓아 굳힌 것. 생일과 결혼식에 빠지지 않는다.
4.6. 조미료와 스프레드 [편집]
- 에일 잼: 에일을 빚고 남은 효모 찌꺼기를 졸여 만든 짜고 쓴 검은 잼. 빵에 얇게 발라 먹는다. 가장 유명한 제품은 윌리스 푸드의 「브루 블랙」으로, 해외에 사는 루이나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음식이자 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동시에 꼽힌다.
- 그레이비 가루: 물에 타면 그레이비가 되는 가루. 1960년대 이후 루이나 가정의 필수품이다.
- 올덴버그 가룸: 로마 시대부터 이어졌다는 발효 생선 소스. 냄새가 매우 강해 올덴버그 밖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4.7. 음료 [편집]
- 미지근한 에일: 루이나에서는 에일을 차게 마시지 않고 저장고 온도 그대로 마시는 것이 정석이다. 벨포르 에일이 대표적이다.
- 달걀 에일: 데운 에일에 달걀과 설탕을 풀어 넣은 겨울 음료. 감기에 좋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 루이나식 커피: 17세기 벨포르 항구의 커피하우스에서 증권 거래가 시작되었을 만큼 커피의 역사는 길지만, 루이나 가정의 커피는 '물에 커피 향을 입힌 것'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묽다.
5. 지역 음식 [편집]
지역 | 대표 음식 |
청어 젤리, 청어 빵 | |
냉동 정식 | |
촬영장 샌드위치 | |
기관사 파이 | |
귀리죽, 오트 블록 | |
하늘 보는 파이 | |
장날 수프 | |
제철소 도시락 | |
올덴버그 가룸 | |
조선소 스튜 | |
해변 튀김 | |
윌리스 캐러멜 |
- 벨포르: 항구 도시답게 청어 요리가 중심이다. 다만 수도답게 이민자 식당이 가장 많은 도시여서, 시민들이 실제로 사 먹는 음식은 대부분 이민자들의 음식이다.
- 나보레: 거대한 공공임대 단지와 긴 통근 시간 때문에 루이나에서 냉동 정식 소비량이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 롱비치: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와 스태프에게 나눠 주던 샌드위치가 지역 음식이 되었다. 미트 블록과 에일 잼을 함께 끼운 것이 정석이다.
- 빈덴브루크: 철도 기관사들이 기관차의 보일러 위에 올려 데워 먹었다는 고기 파이. 한쪽 끝에는 고기를, 다른 쪽 끝에는 잼을 넣어 한 개로 식사와 디저트를 해결한다.
- 사보레: 루이나의 곡창 지대로, 귀리 요리가 발달했다. 오트 블록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어 사보레 사람들은 부정한다.
- 세인트 바룬: 하늘 보는 파이의 고향이다.
- 에포르: 상업 도시답게 장날이 끝난 뒤 팔고 남은 재료를 모두 한 솥에 넣어 끓이던 수프가 지역 음식이 되었다. 들어가는 재료가 날마다 달라 같은 맛을 두 번 볼 수 없다.
- 오보레: 제철소 노동자들이 들고 다니던 도시락. 삶은 감자와 미트 블록, 검은 소시지를 양철 통에 담는다.
- 올덴버그: 로마 시대 유적과 함께 발효 생선 소스가 남아 있다.
- 콜마르: 조선소 노동자들이 먹던, 감자와 순무와 값싼 고기를 넣은 묽은 스튜.
- 크레테: 해변에서 파는 생선 튀김. 바닷바람에 금방 눅눅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 톨루즈: 윌리스 푸드의 고향으로, 1947년 첫 제품인 윌리스 캐러멜이 지역 명물이다. 루이나 전통 음식 가운데 '그래도 이건 맛있다'는 평을 듣는 몇 안 되는 음식이다.
6. 식사 문화 [편집]
6.1. 하루 세 끼 [편집]
루이나의 전통적인 아침은 검은 소시지와 훈제 청어, 그레이비 토스트처럼 기름지고 든든한 음식이지만, 바쁜 평일에는 에일 잼을 바른 빵 한 쪽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점심은 직장인이라면 샌드위치, 학생이라면 학교 급식이다. 하루 중 가장 큰 식사는 저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냉동 정식이나 이민자 식당의 포장 음식으로 해결한다.
일요일 점심의 주일 구이는 루이나 가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직접 하는 요리'다. 온 가족이 모여 서너 시간 구운 고기와 세 시간 채소, 그레이비를 먹는 것이 전통이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이 전통도 이민자 식당의 일요일 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일요일 점심의 주일 구이는 루이나 가정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직접 하는 요리'다. 온 가족이 모여 서너 시간 구운 고기와 세 시간 채소, 그레이비를 먹는 것이 전통이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이 전통도 이민자 식당의 일요일 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6.2. 식탁 예절 [편집]
- 음식을 남기는 것은 큰 실례다. 배급 세대의 영향으로, 나이 든 사람 앞에서 음식을 남기면 꾸중을 듣기 쉽다.
- 음식 맛을 요란하게 칭찬하지 않는다. "정말 맛있다"보다 "충분히 먹었다", "든든하다"가 예의 바른 표현으로 여겨진다. 외국인이 루이나 가정에 초대받아 음식을 극찬하면, 주인은 오히려 어색해한다.
- 식초와 그레이비는 맛을 보기 전에 먼저 뿌려도 실례가 아니다. 오히려 뿌리지 않으면 음식이 부족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6.3. 금식일 [편집]
종교 인구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루이나에서는 금요일에 고기 대신 생선을 먹는 관습이 종교와 관계없이 널리 남아 있다. 금요일이면 학교 급식과 회사 구내식당에 청어 요리나 생선 튀김이 나오며, 이 때문에 루이나 사람들에게 금요일 점심은 '청어의 날'로 통한다.
7. 학교 급식 [편집]
루이나는 모든 공립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시행하지만, 루이나 학교 급식의 맛은 국가적인 농담거리다. 회색 미트볼과 오트 블록, 세 시간 채소, 가짜 바나나로 이어지는 식단은 루이나 사람들에게 공통된 어린 시절의 기억이며, 성인이 된 뒤에도 "급식보다는 낫다"는 말이 음식에 대한 최소한의 칭찬으로 쓰인다.
급식 재료와 조리의 상당 부분은 윌리스 푸드의 급식 자회사인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가 맡고 있다. 루이나의 학생회는 급식 식단을 스스로 정할 권한이 있지만, 학교와 업체 사이의 장기 계약 때문에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2000년대 후반에는 학생회들이 연합해 급식 거부 운동을 벌였고, 한 이민 2세 요리사가 방송으로 급식의 실태를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부 학교는 직영 조리로 돌아섰지만, 예산 부담과 업체의 로비로 몇 해 만에 대부분 다시 위탁으로 돌아갔다.
급식 재료와 조리의 상당 부분은 윌리스 푸드의 급식 자회사인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가 맡고 있다. 루이나의 학생회는 급식 식단을 스스로 정할 권한이 있지만, 학교와 업체 사이의 장기 계약 때문에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2000년대 후반에는 학생회들이 연합해 급식 거부 운동을 벌였고, 한 이민 2세 요리사가 방송으로 급식의 실태를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부 학교는 직영 조리로 돌아섰지만, 예산 부담과 업체의 로비로 몇 해 만에 대부분 다시 위탁으로 돌아갔다.
8. 이민자의 음식 [편집]
8.1.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이민자가 만든다" [편집]
루이나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이민자뿐이다.
― 루이나의 오래된 농담
이 농담은 198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면서 널리 퍼졌고, 지금은 루이나 사람들 스스로 가장 즐겨 하는 자기 비하 농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루이나 요리를 먹고 싶다면 할머니 집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이스트라인에 가라" 같은 변형도 있다.
농담이지만 통계는 이를 꽤 뒷받침한다.
항목 | 수치 |
외식업체 대표 중 이민 1·2세 | 약 68% |
'루이나 요리'를 내건 식당 | 약 4% |
외식 때 루이나 요리를 고르는 비율 | 약 7% |
8.2. 공동체별 음식 [편집]
- 슬라브계: 러시아 혁명 이후의 러시아계 이민과 1940~1950년대 소련 이주민이 펠메니와 보르시, 블리니, 피로시키를 들여왔다. 벨포르 이스트라인의 러시아 식당가는 루이나 외식 문화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 유대계: 벨포르를 중심으로 한 유대계 공동체의 델리에서 파는 훈제 소고기 샌드위치와 절인 오이, 베이글은 금융가 직장인의 점심으로 사랑받는다.
- 중동·북아프리카계: 1950~1980년대 산업화기에 공장 노동자로 온 이민자들이 케밥과 샤와르마, 팔라펠, 후무스를 들여왔다. 지금은 루이나 어느 도시에서나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외식 메뉴다.
- 남아시아계: 항구 도시에 정착한 상인과 선원들이 연 커리 하우스가 시초다. 커리는 루이나에서 가장 대중적인 외식 메뉴 가운데 하나다.
- 동남아시아계: 쌀국수와 볶음밥, 사테를 파는 식당이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동사랜드계 이민자의 쌀국수 가게는 해장 음식으로 인기다.
- 라 마베라계: 라 마베라 이민자들이 들여온 옥수수 요리와 고기 스튜, 매운 소스는 1990년대 이후 젊은 층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 유고랜드계: 1984년 유고랜드 독립 이후 늘어난 한국계와 아랍계 이민자들이 고기구이와 김치, 비빔밥, 아랍식 쌀 요리를 들여왔다. 한국계 식당의 고기구이는 회식 문화와 함께 퍼졌다.
8.3. 그레이비 샤와르마 [편집]
그레이비 샤와르마는 이민자 음식이 루이나의 '국민 음식'이 된 대표적인 예다. 1970년대 벨포르의 한 중동계 이민자 식당 주인이, 샤와르마의 향신료를 낯설어하는 루이나 손님들을 위해 고기 위에 그레이비를 부어 내놓은 것이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향신료와 그레이비가 섞인 이 기묘한 음식은 금세 퍼져, 2015년 국민 설문에서 루이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1위에 올랐다.
이 때문에 "루이나 사람들은 이민자의 음식에도 결국 그레이비를 붓는다"는 농담이 있으며, 루이나의 국민 음식조차 이민자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농담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이 때문에 "루이나 사람들은 이민자의 음식에도 결국 그레이비를 붓는다"는 농담이 있으며, 루이나의 국민 음식조차 이민자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앞서 말한 농담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9. 평가 [편집]
9.1. 국제적인 평판 [편집]
외국의 여행 안내서들은 오래전부터 루이나 음식에 박한 평가를 내려 왔다. 랜드해협의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루이나에서는 이민자 식당에만 가라"는 조언이 상식처럼 통하며, 빌베른과 플로렌시아 등 이웃 나라에서는 루이나 음식이 대표적인 놀림거리다. 루이나 사람들은 이런 평가에 크게 반발하지 않는 편이며, 오히려 먼저 나서서 자기 나라 음식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
9.2. 냉전과 음식 [편집]
냉전이 이어지는 지금도 사비에트의 대외 선전방송은 루이나 노동자들이 통조림과 냉동식품밖에 먹지 못한다며 루이나 음식을 자본주의의 비참함으로 그린다. 루이나 쪽에서는 사비에트의 빵 배급 줄을 비꼬는 것으로 맞받아치며, 두 나라의 선전전에서 음식은 단골 소재다. 다만 루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비에트 선전 가운데 유일하게 맞는 말이 음식 이야기"라는 농담도 있다.
9.3. 농담 [편집]
- 루이나 요리사의 세 가지 비밀 재료는 식초, 그레이비, 그리고 시간이다.
- 루이나 사람이 "충분히 먹었다"고 말하면 맛있었다는 뜻이고, "독특한 맛"이라고 말하면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뜻이다.
- 루이나 가정에서 채소의 원래 색을 본 사람은 장보기를 한 사람뿐이다.
- 루이나에서 가장 정직한 요리는 청어 젤리다.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 나기 때문이다.
10. 여담 [편집]
- 해외에 사는 루이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고 나가는 음식은 에일 잼과 그레이비 가루다. 정작 현지에서 루이나 음식점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 루이나 군 전투식량은 미트 블록과 오트 블록, 에일 잼이 기본 구성이어서, 동맹국 군인들 사이에서 교환 가치가 가장 낮은 전투식량으로 꼽힌다.
- 주일 구이를 몇 시간 구워야 하는지는 루이나 가정마다 의견이 갈리는 문제지만, 덜 구워야 한다는 의견은 거의 없다.
[1] 2023년 국가통계청 외식업 실태조사 및 2015년 국민 식생활 설문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