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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NGFISHER 발사.jpg
시험함 「헤이스팅스」에서 발사되는 KINGFISHER (1978년 2월, 제3차 시험)

1. 개요2. 명칭3. 개발 배경
3.1. 함대 위의 눈3.2. OSPREY 연구3.3. 1971년 8월
4. 개발 경위5. 구성
5.1. 미사일5.2. 요격체5.3. 발사함5.4. 궤도 감시망
6. 요격 방식7. 시험 이력
7.1. 1977년 5월 11일7.2. 시험 목록7.3. 파편
8. 배치와 운용9. 사비에트의 반응10. 센츄리움 궤도협정 이후11. 평가12. 여담13.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KINGFISHER(킹피셔, 물총새)는 루이나 해군이 개발하고 운용한 함정 발사식 직상승 위성 요격 미사일이다. 해군 제식명은 RAS-1. 순양함에서 수직으로 발사된 미사일이 상공을 지나는 위성을 향해 곧장 솟구쳐 올라가, 폭약 없이 요격체를 표적에 직접 충돌시켜 파괴하는 방식을 썼다.

1976년 9월 첫 시험에서 실패한 뒤 1977년 5월 11일 고도 380km의 자국 표적 위성을 요격하는 데 성공해 루이나 최초의 위성 요격 무기가 되었다. 1983년까지 7회 시험해 4회 성공했으며,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순양함 2척에 배치되었다.

사비에트의 야스트레브가 표적과 같은 궤도에 올라가 몇 시간에 걸쳐 따라붙는 무기였다면, KINGFISHER는 표적이 머리 위를 지나는 몇 분 사이에 끝내는 무기였다. 대신 사정 고도는 650km로 낮았고, 표적이 발사함 가까이를 지나가야만 쓸 수 있었다. 해군은 이 한계를 약점으로 보지 않았다. KINGFISHER의 표적은 루이나 함대를 감시하는 사비에트의 저궤도 정찰위성과 해양감시위성이었고, 함대를 보려는 위성은 반드시 함대 가까이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해군의 교리 문서는 이를 "함대를 보려면 함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KINGFISHER는 한 번도 사비에트의 위성을 공격하지 않았고, 모든 요격은 자국 표적을 대상으로 한 시험이었다. 1990년 퇴역했지만, 함정에서 우주 표적을 추적하고 직접 충돌로 파괴하는 기술은 2002년 착수된 해상 기반 미사일 방어 체계로 이어졌다. 사비에트가 이 체계를 "이름만 바꾼 KINGFISHER"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2. 명칭 [편집]

루이나 해군의 우주 사업에는 바닷새의 이름을 붙이는 관례가 있었다. 해군의 첫 인공위성은 「헤론(왜가리)」, 그 발사체는 「턴(제비갈매기)」이었다. 물총새는 물가의 높은 가지에 앉아 있다가 물고기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는 새인데, KINGFISHER는 반대로 바다에서 하늘의 먹잇감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친다. 해군 내부에서는 이 때문에 '거꾸로 나는 물총새'라는 별칭이 쓰였다.

제식명 RAS-1은 '루이나 위성 요격 미사일 1형(Ruina Anti-Satellite, Type 1)'의 약자다. 사비에트 정보당국은 이 미사일에 「오스트로가(Острога)」, 즉 '작살'이라는 식별명을 붙였다.

3. 개발 배경 [편집]

3.1. 함대 위의 눈 [편집]

1960년대 루이나 해군은 우주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군이었지만, 동시에 우주로부터 가장 많이 감시당하는 군이기도 했다. 해협과 그 인근 해역에 밀집한 루이나 함대는 1962년부터 사비에트의 사진 정찰위성 소바에 정기적으로 촬영되었고, 1970년대 초에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다. 사비에트가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쓰는 레이더 해양감시위성 「볼나(Волна)」를 궤도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볼나는 고도 250~280km의 낮은 궤도를 돌며 레이더로 해상의 함정을 탐지했다. 구름과 어둠에 가로막히는 사진 정찰위성과 달리 볼나는 날씨와 시간에 관계없이 루이나 함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고, 그 자료는 사비에트 대함 미사일 부대의 표적 정보로 쓰일 수 있었다. 해군은 전쟁이 벌어지면 루이나 함대가 사비에트 대함 미사일에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볼나에 발견될 것이라고 봤다. 함대를 지키려면 함대를 보는 눈부터 꺼야 했다.

3.2. OSPREY 연구 [편집]

해군이 위성 요격을 처음 검토한 것은 1962~1965년의 연구 계획 「OSPREY(물수리)」였다. OSPREY는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개조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상공의 위성을 파괴하는 구상이었고, 초기안에는 핵탄두를 쓰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1963년 루이나가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에 가입하면서 우주 핵폭발을 동반하는 핵 요격은 시험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1962년 사비에트의 고고도 핵실험으로 루이나의 TIDEMARK 4호와 헤론 3호가 기능을 잃은 경험은, 핵 요격이 상대의 위성뿐 아니라 자국의 위성까지 함께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비핵 요격은 당시 기술로는 실현 가능성이 낮았다. 국방부는 1965년 사비에트의 위성 위협이 아직 크지 않고 정찰위성 분야에서는 루이나가 앞서 있으므로 요격 무기 개발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OSPREY는 연구 단계에서 종료되었다. 다만 이 연구에서 축적된 탄도 계산과 함상 추적 기술은 이후 KINGFISHER의 바탕이 되었다.

3.3. 1971년 8월 [편집]

상황을 바꾼 것은 1968년 2월 사비에트 야스트레브의 첫 요격 성공이었다. 1969년 루이나 국가정보판단이 사비에트의 위성 요격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 국방부는 1970년 루이나도 같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소요를 제기했다. 해군과 공군은 또다시 맞붙었다. 공군은 본토의 고정 기지에서 발사하는 지상 발사형 요격 미사일을, 해군은 순양함에서 발사하는 KINGFISHER를 제안했다.

해군의 논리는 기동성이었다. 고정 기지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은 표적 위성이 기지 가까이를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함정은 표적의 궤도 아래로 직접 찾아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해군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표적인 볼나는 루이나 함대를 보기 위해 함대 가까이를 지나가야 했다. 1971년 8월 제22대 대통령 아서 W. 그랜트는 해군안을 승인했다. 같은 달 국방부는 궤도 핵무기 연구 HIGH TIDE도 해군의 반대를 받아들여 기각했는데, 이 때문에 1971년 8월은 루이나 해군 내부에서 '해군의 달'로 불리기도 한다.

4. 개발 경위 [편집]

개발은 해군 우주계획국이 맡았다. 사업 책임자는 해군 대령 토머스 R. 애버내시로, 그는 OSPREY 연구에도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미사일 본체는 그랜빌 항공기계가, 요격체의 적외선 탐색기는 노스게이트 전자가 개발했다.

가장 큰 기술적 과제는 폭약 없이 위성을 맞히는 것이었다. 직상승 방식에서는 요격체와 표적이 초속 약 8km의 상대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데, 이 속도에서 수십 cm의 오차는 곧 빗나감을 뜻했다. 해군은 두 가지 해법을 택했다. 첫째는 액체질소로 냉각한 적외선 탐색기로, 햇빛을 받아 데워진 위성의 열을 차가운 우주 배경에서 구별해 내는 방식이었다. 둘째는 충돌 직전 요격체 앞쪽에 강철 살 24개를 우산처럼 펼쳐 맞힐 수 있는 면적을 직경 4.2m로 넓히는 장치였다. 이 전개 장치는 개발진 사이에서 「파라솔」이라 불렸다.

개발이 진행되던 1974~1977년 루이나는 청북전쟁을 치렀다. 전쟁 기간 사비에트는 소바와 볼나로 해협과 청평 인근 해역의 루이나 함대를 상시 추적했고, 1975년 한 해에만 정찰위성 41기를 발사했다. 해군은 KINGFISHER의 조기 배치를 요구했지만 미사일은 전쟁 중에 완성되지 못했다. 첫 요격 성공은 1977년 5월, 정전협정 체결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7월이었다.

1974년부터 이듬해까지 「콜마르」급 순양함 2번함 「헤이스팅스」가 시험함으로 개조되었다. 후부 주포탑을 걷어 낸 자리에 대형 수직 발사관 2기와 미사일 4발을 수납하는 탄약고, 우주 표적 추적용 위상배열 레이더 「LOOKOUT」이 설치되었다.

5. 구성 [편집]

KINGFISHER 체계는 미사일, 요격체, 발사함, 그리고 해군의 궤도 감시망으로 이루어진다.

5.1. 미사일 [편집]

항목
제원
전장
10.6m
직경
  1. 0m
발사 중량
약 11.8t
추진
3단 고체 로켓
요격체
약 38kg
탐색기
냉각식 적외선
파괴 방식
직접 충돌
요격 고도
150~650km
비행 시간
약 4~7분

1단은 해군 1세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의 로켓 모터를 개량해 썼고, 2단과 3단은 새로 개발되었다. 3단 끝에 요격체가 실렸으며, 발사 후 3단 연소가 끝나면 요격체가 분리되어 스스로 표적을 찾아갔다. 미사일은 발사함의 수직 발사관에서 발사되었다.

5.2. 요격체 [편집]

요격체는 무게 약 38kg으로, 앞쪽의 적외선 탐색기, 가운데의 유도 전자장비, 둘레를 따라 배치된 소형 고체 추력기 48개, 그리고 접힌 채 실린 우산형 전개 장치로 구성되었다. 탐색기는 발사 직전 액체질소로 냉각되었고, 추력기는 하나씩 점화해 요격체의 진로를 옆으로 조금씩 틀었다.

요격체에는 폭약이 없었다. 초속 약 8km로 충돌하는 38kg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약 12억 J로, TNT 약 290kg이 폭발하는 것과 맞먹었다. 충돌 1~2초 전 강철 살 24개가 펼쳐지며 직경 4.2m의 원을 만들었고, 이 원의 어느 부분이든 표적에 닿으면 표적은 부서졌다.

5.3. 발사함 [편집]

시험과 배치는 모두 개조된 순양함에서 이루어졌다. 시험함 「헤이스팅스」에 이어 1978~1979년 같은 급의 「르노블」이 운용함으로 개조되었다. 두 함정은 각각 수직 발사관 2기와 미사일 4발을 갖췄으며, 우주 표적 추적용 위상배열 레이더 LOOKOUT이 표적 위성을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순간부터 추적했다. 생산된 미사일은 시험용 9발, 배치용 13발을 합해 모두 22발이었다.

5.4. 궤도 감시망 [편집]

표적 위성의 궤도는 해군이 1961년부터 북부 해안을 따라 운용해 온 궤도 감시 전파망이 산출했다. 이 전파망은 강력한 연속파 전파를 하늘로 쏘아 올려 그 위를 지나는 물체의 반사파를 여러 수신소에서 받아 내는 방식으로, 원래는 사비에트 위성을 추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브레스탄 해군기지의 해군 우주작전센터가 전파망의 자료로 표적의 궤도를 계산하고, 발사함이 가야 할 위치와 발사 시각을 산출해 함정에 전달했다.

6. 요격 방식 [편집]

KINGFISHER의 요격은 다음 순서로 이루어졌다.
  • 표적 궤도 산출: 해군 우주작전센터가 궤도 감시 전파망의 자료로 표적의 궤도를 확정한다.
  • 발사 위치 이동: 발사함이 표적의 지상 궤적 근처로 이동한다. 표적이 함정으로부터 수평 거리 약 500km 안쪽을 지나가야 요격할 수 있다.
  • 추적: 표적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면 LOOKOUT 레이더가 표적을 포착한다.
  • 발사: 표적이 요격 지점에 도달하기 수 분 전 미사일을 수직 발사한다.
  • 중간 유도: 함정 레이더가 미사일과 표적을 함께 추적하며 진로 수정 명령을 보낸다.
  • 종말 유도: 3단 연소 후 요격체가 분리되고, 적외선 탐색기가 표적을 포착해 추력기로 진로를 맞춘다.
  • 충돌: 충돌 1~2초 전 우산형 전개 장치를 펼치고 표적에 부딪친다.

표적이 레이더에 포착된 뒤 충돌까지는 10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명령을 받고 발사까지 최대 12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 있고 발사 후 요격까지 100~200분이 걸린 야스트레브와 비교하면, KINGFISHER는 상대가 발사를 알아채고 위성을 피하게 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러나 KINGFISHER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 요격 고도가 650km로 제한되어 고궤도 위성과 정지궤도 위성에는 닿을 수 없었다.
  • 표적이 발사함 가까이를 지나가지 않으면 함정이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이동해야 했다.
  • 파고 4m 이상의 거친 바다에서는 발사할 수 없었다.
  • 적외선 탐색기는 태양 쪽을 바라볼 때 눈이 부셔 표적을 놓칠 수 있었고, 지구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식은 위성은 찾기 어려웠다.
  • 함정 1척에 실을 수 있는 미사일은 4발뿐이었다.

해군은 이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한계가 실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볼나는 레이더 출력의 한계 때문에 고도 300km 아래를 돌아야 했고, 루이나 함대를 보기 위해서는 함대 가까이를 지나가야 했다. 사정 고도 650km는 볼나와 소바를 잡기에 충분했고, 함대를 따라다니는 KINGFISHER 함정은 이동하지 않아도 이미 표적이 지나갈 자리에 있었다.

7. 시험 이력 [편집]

7.1. 1977년 5월 11일 [편집]

1976년 9월 14일 첫 시험에서는 미사일 2단이 점화되지 않아 요격체가 표적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8개월 뒤인 1977년 5월 11일, 퀴냉 곶 해군 미사일 시험장에서 사흘 전 발사된 표적 위성이 고도 380km로 해협 북부 해역 상공을 지나는 순간, 「헤이스팅스」가 두 번째 KINGFISHER를 발사했다. 발사 4분 40초 뒤 요격체가 표적에 충돌했고, LOOKOUT 레이더는 표적이 파편 구름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는 루이나 최초의 위성 요격 성공이었다. 초기 시험의 표적 위성에는 탐색기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열을 내는 장치가 달려 있었으나, 1979년 제5차 시험부터는 이 장치를 떼고 햇빛에 데워진 위성의 열만으로 요격하는 실전형 조건으로 바뀌었다.

7.2. 시험 목록 [편집]

번호
일자
발사함
고도
결과
1
1976.09.14
헤이스팅스
380km
실패
2
1977.05.11
헤이스팅스
380km
성공
3
1978.02.23
헤이스팅스
520km
성공
4
1978.11.07
헤이스팅스
610km
실패
5
1979.08.29
르노블
450km
성공
6
1981.04.02
르노블
640km
실패
7
1983.06.16
르노블
290km
성공

실패 원인은 제1차가 2단 점화 실패, 제4차가 태양 방향의 섬광으로 인한 탐색기의 표적 포착 실패, 제6차가 우산형 전개 장치의 불완전 전개였다. 제6차 시험에서 요격체는 표적의 11m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 전개 장치가 정상적으로 펼쳐졌다면 맞힐 수 있었던 거리였다.

7.3. 파편 [편집]

KINGFISHER의 시험은 모두 고도 650km 이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요격으로 생긴 파편은 대기 저항을 받아 비교적 빨리 떨어졌다. 성공한 시험 4회에서 추적 목록에 오른 파편은 모두 약 410개였다. 대부분은 수개월에서 수년 안에 대기권에 재돌입했고, 가장 높은 고도에서 요격한 제3차 시험의 마지막 파편도 1994년에 소멸했다. 고도 1,000km 이상에서 요격한 파편이 지금도 궤도에 남아 있는 야스트레브와 대조되는 부분으로, 해군은 이를 근거로 KINGFISHER를 '깨끗한 요격'이라고 홍보했다.

8. 배치와 운용 [편집]

KINGFISHER는 1979년 실전 배치되어 「헤이스팅스」와 「르노블」에 각각 4발씩 탑재되었다. 두 함정은 번갈아 가며 해협의 주력 함대와 함께 움직였고, 평시에도 1척은 항상 미사일을 실은 채 해상에 있었다. 사용 권한은 대통령에게만 있었으며, 평시에 실제 위성을 공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해군은 당초 순양함 6척에 미사일 40발을 배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982년 6월 18일 사비에트의 대규모 전략 훈련, 이른바 '6시간 전쟁'에서 야스트레브가 LODESTAR를 모방한 표적을 요격한 뒤 루이나의 위성 요격 무기 예산은 공군의 AQ-7로 옮겨 갔다. 공군은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AQ-7이 몇 시간 안에 어느 궤도면이든 공격할 수 있는 반면, KINGFISHER는 함대 근처와 650km 이하에서만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83년 의회는 KINGFISHER의 배치 규모를 순양함 2척, 미사일 13발로 확정했고, 같은 해 6월 제7차 시험이 KINGFISHER의 마지막 시험이 되었다.

1984년 정지궤도 위기 때 KINGFISHER는 정작 위기의 무대였던 정지궤도에 닿을 수 없었다. 그러나 2004년 기밀 해제된 루이나 문서에 따르면, 위기 9일째 국방부는 「르노블」에 사비에트 볼나 위성의 지상 궤적 아래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사비에트가 이 움직임을 탐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전략잠수함 9척의 긴급 출항과 함께 이 명령이 위기를 키운 요인이 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9. 사비에트의 반응 [편집]

사비에트는 1977년 5월 첫 요격 시험을 자국 추적망으로 탐지했다. 당 기관지 《노동인민》은 이를 "제국주의의 궤도 해적질"이라고 비난했는데, 이 무렵 사비에트는 이미 9년째 야스트레브로 요격 시험을 하고 있었고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루이나 언론은 이 비난을 두고 "작살을 든 쪽이 물총새를 탓한다"고 꼬집었다.

사비에트의 대응은 쉽지 않았다. 볼나는 레이더 출력의 한계 때문에 궤도를 높일 수 없었고, 루이나 함대를 보려면 함대 가까이를 지나야 한다는 조건도 바꿀 수 없었다. 사비에트는 볼나의 수를 늘려 일부를 잃더라도 감시를 유지하는 방식을 택했고, 전시 대함 작전 계획에서 KINGFISHER 탑재 순양함을 최우선 표적으로 지정했다. 함대를 위성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든 함정이 오히려 위성이 가장 먼저 찾아야 할 함정이 된 셈이다.

10. 센츄리움 궤도협정 이후 [편집]

1987년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파편을 남기는 위성 요격 시험을 금지했다. KINGFISHER는 1983년 이후 이미 시험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협정으로 앞으로도 시험할 수 없게 되면서 체계를 유지할 명분이 약해졌다. 휴지기의 국방예산 삭감 속에서 KINGFISHER는 1990년 퇴역했고, 「헤이스팅스」는 이듬해 퇴역했다. 남은 미사일은 1992년까지 해체되었으며, 1발은 브레스탄 해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KINGFISHER가 남긴 것은 미사일보다 기술이었다. 함정의 레이더로 우주 표적을 추적하고, 직상승 미사일을 유도해, 폭약 없이 직접 충돌로 파괴하는 기술은 그대로 탄도미사일 요격에도 쓸 수 있었다. 2002년 루이나 국방부가 미사일방어국 주도로 착수한 해상 기반 중간단계 요격 체계는 KINGFISHER 계획에 참여했던 인력과 기술을 상당 부분 이어받았고, 사비에트는 이를 "이름만 바꾼 KINGFISHER"라고 비난했다.

그 비난은 2008년 현실이 되었다. 2008년 7월 루이나 해군은 고장으로 통제를 잃은 국가정찰국 위성 L-217을 해상 기반 요격 미사일로 격추했다. 작전명은 「TIDELINE」이었고, 요격 고도는 247km였다. 요격 미사일을 발사한 순양함은 퇴역한 KINGFISHER 운용함의 이름을 물려받은 2대 「르노블」이었다. 루이나는 추진제 450kg이 인구 밀집 지역에 떨어질 위험을 이유로 들었지만, 사비에트는 이것이 31년 만에 되살아난 KINGFISHER 시험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란은 2013년 사비에트의 센츄리움 궤도협정 탈퇴로 이어지는 협정 균열의 한 단계가 되었다.

상세 내용은 랜드해협 우주경쟁 문서 참고.

11. 평가 [편집]

KINGFISHER는 궤도 방어를 함대 방어의 연장으로 본 무기였다. 야스트레브가 궤도의 어느 위성이든 잡겠다는 무기였다면, KINGFISHER는 함대를 보러 오는 위성만 잡으면 된다는 무기였다. 이 좁은 목적 덕분에 KINGFISHER는 야스트레브보다 빠르고, 작고, 깨끗했다. 폭약 없이 직접 충돌로 위성을 파괴하는 방식을 실전 배치 무기로 구현한 것도 당시로서는 앞선 시도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그 좁은 목적은 한계이기도 했다. 발사함이 있는 곳에서만 쓸 수 있고, 고궤도에는 닿지 못하며, 함정 1척당 4발밖에 없는 무기는 궤도 전체를 다투는 경쟁에서는 쓰임새가 제한적이었다. 1983년 예산이 공군의 AQ-7로 넘어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KINGFISHER의 운명을 가른 것은 성능이 아니라, 우주를 누구의 공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해군과 공군의 오래된 경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12. 여담 [편집]

  • 시험함 「헤이스팅스」의 이름은 루이나 북부의 헤이스팅스 시에서 따왔다. 1981년 사비에트 볼나 14호가 추락하며 방사성 잔해를 흩뿌린 곳이 바로 헤이스팅스 시 관할 삼림지대였고, 이후 함정의 승조원들 사이에서는 "헤이스팅스는 볼나를 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라는 말이 돌았다.
  • 해군 우주계획국의 KINGFISHER 사무실 입구에는 물총새 박제가 걸려 있었는데, 누군가 박제를 거꾸로 매달아 둔 뒤로 아무도 바로잡지 않았다고 한다. 박제는 현재 브레스탄 해군박물관의 KINGFISHER 전시물 옆에 거꾸로 매달린 채 전시되어 있다.
  • 제6차 시험에서 요격체가 표적 11m 옆을 스쳐 지나간 뒤, 개발진은 전개 장치 「파라솔」의 살 하나하나에 번호를 새기고 전개 시험을 1,000회 넘게 반복했다. 제7차 시험의 성공 뒤 애버내시는 "우리가 11m를 줄이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 2008년 TIDELINE 작전 당시 2대 「르노블」의 함장은 1979년 제5차 시험 때 1대 「르노블」에서 LOOKOUT 레이더를 운용했던 부사관의 아들이었다.

13. 관련 문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