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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루이나의 과학 기술을 다루는 문서.
루이나는 랜드해협에서 가장 앞선 과학기술 국가다. 2024년 기준 연구개발비는 약 4,510억 달러로 명목 GDP의 3.5%에 이르며,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수는 미합중제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을 모두 보유한 핵보유국이며, 1950년대부터 사비에트와 우주경쟁을 벌여 온 우주 강국이기도 하다.
루이나 과학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국방이 연구개발을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레이더와 근접신관 개발에서 시작해 1950년대 핵 개발, 냉전기 우주경쟁, 1980년대 반도체 산업까지, 루이나의 주요 기술은 대부분 국방 연구에서 출발했다. 지금도 정부 연구개발비의 절반가량이 국방 분야에 쓰인다.
기초과학은 1950년 설립된 국립과학재단이 떠받친다. 국립과학재단은 목적을 정해 두지 않은 연구에 동료 심사로 연구비를 나누어 주는 기관으로, '답이 아니라 물음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내걸고 있다. 민간에서는 반도체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비의 3분의 2를 댄다.
주요 지표는 다음과 같다.
루이나는 랜드해협에서 가장 앞선 과학기술 국가다. 2024년 기준 연구개발비는 약 4,510억 달러로 명목 GDP의 3.5%에 이르며,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수는 미합중제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을 모두 보유한 핵보유국이며, 1950년대부터 사비에트와 우주경쟁을 벌여 온 우주 강국이기도 하다.
루이나 과학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국방이 연구개발을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레이더와 근접신관 개발에서 시작해 1950년대 핵 개발, 냉전기 우주경쟁, 1980년대 반도체 산업까지, 루이나의 주요 기술은 대부분 국방 연구에서 출발했다. 지금도 정부 연구개발비의 절반가량이 국방 분야에 쓰인다.
기초과학은 1950년 설립된 국립과학재단이 떠받친다. 국립과학재단은 목적을 정해 두지 않은 연구에 동료 심사로 연구비를 나누어 주는 기관으로, '답이 아니라 물음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내걸고 있다. 민간에서는 반도체와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연구개발비의 3분의 2를 댄다.
주요 지표는 다음과 같다.
항목 | 수치 |
연구개발비 | 약 4,510억 달러 (2024년) |
GDP 대비 연구개발비 | 3.5% (2024년) |
연구원 수 | 약 95만 명 (2024년) |
노벨 과학상 수상자 | 104명 (2025년까지) |
2. 역사 [편집]
2.1. 바다의 과학 (~1885) [편집]
루이나 과학의 출발점은 바다였다. 1531년 왕립 조선소가 세워진 뒤 조선과 항해는 국가의 핵심 기술이 되었고, 먼바다로 나가는 함대와 상선을 위해 천문 관측과 해도 제작, 해양 측량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1660년대에는 국왕의 후원으로 왕립 자연철학회가 세워져 천문학자와 수학자, 조선 기술자들이 모여들었다.
19세기에는 산업 재편과 함께 화학과 기계공학이 성장했다. 염료와 화약에서 시작한 화학 공업은 대학 실험실과 기업 연구소를 함께 키웠다. 1849년 벨포르에서 약국 겸 화학 실험실로 출발한 트라팔가는 루이나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연구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철도망이 전국으로 뻗어 나가면서 철도와 교량을 다루는 토목·기계공학도 대학의 주요 학과로 자리 잡았다.
19세기에는 산업 재편과 함께 화학과 기계공학이 성장했다. 염료와 화약에서 시작한 화학 공업은 대학 실험실과 기업 연구소를 함께 키웠다. 1849년 벨포르에서 약국 겸 화학 실험실로 출발한 트라팔가는 루이나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연구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철도망이 전국으로 뻗어 나가면서 철도와 교량을 다루는 토목·기계공학도 대학의 주요 학과로 자리 잡았다.
2.2. 공화국과 대학 (1885~1939) [편집]
1885년 공화국 수립 이후 대학은 가르치는 곳에서 연구하는 곳으로 바뀌어 갔다. 루이나 국립대학교를 중심으로 물리학과 화학 연구소가 들어섰고, 기업들도 공장 옆에 연구소를 세우기 시작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뒤에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대거 루이나로 건너왔다. 이들은 물리학과 수학, 화학 분야에서 루이나 학계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고, 러시아어로 쓰인 과학 문헌이 루이나 대학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다. 루이나가 지금도 과학기술 인재 이민에 적극적인 전통은 이때 시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뒤에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대거 루이나로 건너왔다. 이들은 물리학과 수학, 화학 분야에서 루이나 학계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고, 러시아어로 쓰인 과학 문헌이 루이나 대학에서 널리 읽히게 되었다. 루이나가 지금도 과학기술 인재 이민에 적극적인 전통은 이때 시작되었다.
2.3. 전쟁과 과학 (1939~1950) [편집]
제2차 세계대전은 루이나 과학의 성격을 바꾸었다. 정부는 전시과학연구개발국을 세워 대학과 기업의 과학자들을 전쟁 연구에 동원했다. 1932년부터 루이나 국립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있던 로런스 D. 페닝턴은 1940년부터 레이더와 근접신관 개발을 이끌었고, 이 밖에도 페니실린 대량 생산과 암호 해독용 계산기가 전시과학연구개발국의 성과로 꼽힌다. 국가가 돈을 대고 과학자에게 목표를 맡기면 짧은 시간에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때 증명되었다.
종전 뒤에는 이 체제를 평시에도 이어 갈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연구를 국가가 정한 목표에 맞출 것인가, 과학자의 호기심에 맡길 것인가, 연구비를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이 나눌 것인가, 과학계가 나눌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법안은 5년 가까이 표류하며 한 차례 거부권에 막혔다가 1950년 5월 10일 「국립과학재단법」으로 통과되었다.
그 사이 1949년에는 마틴 E. 로크하트 대통령이 루이나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페닝턴을 초대 소장에 앉혔다. 1949년 소련의 핵실험으로 냉전의 핵 경쟁이 시작되자, 루이나도 독자적인 핵무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종전 뒤에는 이 체제를 평시에도 이어 갈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연구를 국가가 정한 목표에 맞출 것인가, 과학자의 호기심에 맡길 것인가, 연구비를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이 나눌 것인가, 과학계가 나눌 것인가가 쟁점이었다. 법안은 5년 가까이 표류하며 한 차례 거부권에 막혔다가 1950년 5월 10일 「국립과학재단법」으로 통과되었다.
그 사이 1949년에는 마틴 E. 로크하트 대통령이 루이나 원자력연구소를 세우고 페닝턴을 초대 소장에 앉혔다. 1949년 소련의 핵실험으로 냉전의 핵 경쟁이 시작되자, 루이나도 독자적인 핵무기를 갖기로 한 것이다.
2.4. 핵과 우주 (1950~1978) [편집]
1950년대 루이나 과학은 핵 개발에 집중되었다. 원자력연구소 소장을 마친 페닝턴은 1957년 제19대 대통령에 올라 핵 개발 완성을 선언했고, 1958년 마르비크 해역에서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같은 해 1차 랜드 전쟁이 시작되면서, 루이나의 핵무기는 곧바로 사비에트를 억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과학자 출신 대통령이었던 페닝턴은 과학기술 정책을 크게 바꾸었다.
과학자 출신 대통령이었던 페닝턴은 과학기술 정책을 크게 바꾸었다.
- 대통령 직속으로 과학기술성을 두고 국립 연구소들을 재편했다.
- 전략핵잠수함 사업을 시작하고, 지상·해상·공중의 3축 핵 억지 체계를 제안했다.
- 원자력 발전 3개년 계획을 세워 내해 연안에 첫 상업용 원자로를 착공했다.
- 국립대학의 이공계 정원을 두 배로 늘리고 과학기술 장학금을 만들었다.
1950년대 후반 사비에트가 먼저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자 루이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기술보다 정치적 충격이 더 컸다. 1958년 7월 29일 「항공우주법」이 제정되어 국가항공자문위원회를 모체로 항공우주국(RASA)이 세워졌고, 같은 해 국방고등연구계획국도 설립되었다. 항공우주법은 항공우주국을 평화적 활동만 하는 민간 기관으로 두고, 군사 목적의 우주 활동은 국방부에 맡겼다. 1961년 9월 6일에는 정찰위성을 맡는 국가정찰국이 비밀리에 설치되었다.
루이나는 1959년 첫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고, 1962년 첫 유인 궤도 비행에 성공했다. 1970년대에는 지구 저궤도에 우주정거장을 띄워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우주경쟁은 달이나 행성 탐사보다 정찰위성과 조기경보위성, 위성 요격 무기 같은 우주의 군사적 활용에 집중되었다. 루이나는 유인 달 착륙을 시도하지 않았다.
1차 랜드 전쟁 중이던 1962년 10월 28일 사비에트는 자국 내륙 상공 290km에서 고고도 핵실험을 벌였다. 궤도 위의 핵폭발이 인공위성과 통신에 준 피해는 루이나와 사비에트 모두를 놀라게 했고, 1964년 3월 대기권과 우주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이 맺어졌다. 1965년에는 벨포르와 크라슬리스크를 잇는 직통선이 개설되었다.
1977년 2차 랜드 전쟁 중 겪은 석유 수급 위기로 에너지부가 신설되면서, 원자력 연구와 국립 연구소는 에너지부로 넘어가고 과학기술성은 폐지되었다. 원자력 발전도 이때부터 크게 늘었다.
2.5. 우주경쟁의 절정과 첨단 산업 (1978~2000) [편집]
1980년 헌정이 회복된 뒤 정부는 국방 연구개발 예산으로 반도체와 항공 전자 산업을 키웠다. 군용 전자 부품을 만들던 업체들이 민수용 반도체로 영역을 넓혔고, 국방고등연구계획국과 국립과학재단의 연구비가 초기 기술 개발을 뒷받침했다. 이것이 1990년대 이후 루이나가 첨단 산업 국가로 바뀌는 발판이 되었다.
우주경쟁은 1980년대에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1984년 5월 정지궤도 위기 때 사비에트의 궤도 연구 위성 1127호가 루이나의 조기경보위성 WATCHFIRE 4호에 40km까지 다가가자, 루이나는 전략잠수함 9척을 출항시켰고 사비에트의 조기경보 체계는 오경보까지 냈다. 위기는 직통선 교신으로 끝났지만, 양국은 우주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을 규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987년 10월 21일 체결된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궤도 핵무기를 금지하고 조기경보위성과 직통선 위성을 보호하며, 잔해를 남기는 위성 요격 시험을 금지했다.
1991년에는 국가정찰국이 궤도에서 텅스텐 막대를 떨어뜨려 지하 시설을 타격하는 비핵 전략 무기 신의 지팡이를 비밀리에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가정찰국의 존재 자체도 1992년 9월 18일에야 공식 확인되었다.
우주경쟁은 1980년대에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1984년 5월 정지궤도 위기 때 사비에트의 궤도 연구 위성 1127호가 루이나의 조기경보위성 WATCHFIRE 4호에 40km까지 다가가자, 루이나는 전략잠수함 9척을 출항시켰고 사비에트의 조기경보 체계는 오경보까지 냈다. 위기는 직통선 교신으로 끝났지만, 양국은 우주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을 규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1987년 10월 21일 체결된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궤도 핵무기를 금지하고 조기경보위성과 직통선 위성을 보호하며, 잔해를 남기는 위성 요격 시험을 금지했다.
1991년에는 국가정찰국이 궤도에서 텅스텐 막대를 떨어뜨려 지하 시설을 타격하는 비핵 전략 무기 신의 지팡이를 비밀리에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가정찰국의 존재 자체도 1992년 9월 18일에야 공식 확인되었다.
2.6. 신우주경쟁과 인공지능 (2000~현재) [편집]
2000년대 들어 우주경쟁이 다시 불붙었다. 루이나는 해상 미사일 방어 체계를 늘려 갔고, 2008년 7월에는 해군의 함정 발사 요격 미사일 킹피셔로 위성 L-217을 격추했다. 사비에트는 이를 궤도협정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보았고, 2013년 6월 탈퇴를 통보해 협정은 같은 해 12월 17일 효력을 잃었다. 협정이 사라진 뒤 루이나는 신의 지팡이를 궤도에 배치했고, 2023년 고랜드 남부 산악 지대의 지하 시설을 타격하는 데 처음 사용했다.
2010년 11월 18일에는 루이나와 라 마베라가 공동 소유한 궤도 연산 위성 트리 다이어그램(수형도의 설계자)이 발사되었다. 위성 본체는 마베라가 만들고, 연산 장치와 냉각 기술은 루이나가 맡았다. 연산 장치에 들어간 초전도 칩 1만 8천여 개는 루이나 국립 저온물리연구소가 개발했다. 공식 용도는 일기예보이지만 공개된 자료로는 연산 시간의 32%만 기상에 쓰여, 나머지 용도를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인공지능이 과학기술의 중심 분야가 되었다. 스쿱 파운더리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 연산용 칩을 주력으로 삼았고, 트라팔가는 mRNA 백신 플랫폼과 인공지능 신약 탐색 시스템을 내놓았다. 군사 우주 작전은 우주군이 맡게 되었고, 2020년 7월 24일에는 우주군 산하에 외국 위성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정보 부대 스페이스 델타 7이 창설되었다.
2010년 11월 18일에는 루이나와 라 마베라가 공동 소유한 궤도 연산 위성 트리 다이어그램(수형도의 설계자)이 발사되었다. 위성 본체는 마베라가 만들고, 연산 장치와 냉각 기술은 루이나가 맡았다. 연산 장치에 들어간 초전도 칩 1만 8천여 개는 루이나 국립 저온물리연구소가 개발했다. 공식 용도는 일기예보이지만 공개된 자료로는 연산 시간의 32%만 기상에 쓰여, 나머지 용도를 둘러싼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인공지능이 과학기술의 중심 분야가 되었다. 스쿱 파운더리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 연산용 칩을 주력으로 삼았고, 트라팔가는 mRNA 백신 플랫폼과 인공지능 신약 탐색 시스템을 내놓았다. 군사 우주 작전은 우주군이 맡게 되었고, 2020년 7월 24일에는 우주군 산하에 외국 위성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정보 부대 스페이스 델타 7이 창설되었다.
3. 연구개발 체계 [편집]
3.1. 재원 [편집]
2024년 기준 연구개발비의 재원별 비중은 다음과 같다.
재원 | 비중 |
기업 | 67% |
정부 | 28% |
대학·비영리 | 5% |
정부 연구개발비의 절반가량은 국방 분야에 쓰이고, 나머지는 보건·의학, 기초과학, 에너지, 우주 순으로 많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의회 과학·우주위원회가 감독한다.
3.2. 정부 연구 기관 [편집]
기관 | 소속 | 분야 |
독립기관 | 기초과학 | |
독립기관 | 민간 우주·항공 | |
국방부 | 국방 첨단 기술 | |
국방부 | 정찰위성 | |
원자력청·국립 연구소 | 에너지부 | 원자력, 고에너지 물리 |
국립보건원 | 보건부 | 의학·보건 |
기후환경부 | 기후 |
국립과학재단은 기초과학 연구비를 나누어 주는 기관이다. 이사장과 과학자 24명으로 이루어진 국가과학이사회가 운영하며, 연간 예산은 약 90억 달러다. 연구비는 익명의 동료 심사로 배분되고, 연구비 담당관 상당수는 2~3년씩 순환 근무하는 대학 연구자들이다. 대학 혼자 운영하기 어려운 대형 망원경과 가속기, 남극 기지도 국립과학재단이 짓고 운영한다. 의학 연구는 국립보건원이, 군사 연구는 국방부가 맡기 때문에 국립과학재단의 지원 대상에서 빠진다.
항공우주국은 유인 우주비행과 지구·행성 과학, 우주망원경, 항공 연구를 맡는 민간 우주 기관이다. 직원은 약 1만 8천 명이며, 발사를 맡는 머서필드 우주센터와 항공 연구를 맡는 콜드리지 비행연구소, 비행 관제를 맡는 핼로란 우주비행센터를 운영한다.
원자력 연구는 1949년 세워진 원자력연구소의 맥을 잇는 에너지부 산하 원자력청과 국립 연구소들이 맡는다. 핵무기 설계와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가 이곳에 모여 있고, 외국인 연구자도 많이 일하기 때문에 에너지부 정보방첩국이 연구 보안을 감시한다.
3.3. 대학 [편집]
대학은 기초연구의 중심이다. 루이나 국립대학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루이나 최고의 연구 대학이며,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가장 많이 배출했다. 공학에서는 루이나 공과대학과 세인트 바룬 전기공학대학, 수학과 물리학에서는 톨루즈 수리과학대학과 크레테 응용물리연구소, 생명과학에서는 사보레 생명과학연구대학과 오보레 분자생명과학대학이 손꼽힌다.
대학의 연구비는 대부분 국립과학재단과 국립보건원, 국방부에서 나온다. 국방 연구비를 받는 대학 연구실은 연구 결과의 공개와 외국인 연구원 채용에 제한을 받는데, 학문의 자유와 연구 보안 사이의 균형은 대학가의 오래된 쟁점이다.
대학의 연구비는 대부분 국립과학재단과 국립보건원, 국방부에서 나온다. 국방 연구비를 받는 대학 연구실은 연구 결과의 공개와 외국인 연구원 채용에 제한을 받는데, 학문의 자유와 연구 보안 사이의 균형은 대학가의 오래된 쟁점이다.
3.4. 기업 [편집]
연구개발비의 3분의 2는 기업이 낸다.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분야는 반도체로, 스쿱 파운더리 같은 위탁생산 기업과 중소 설계 기업들이 인공지능 칩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제약·바이오에서는 트라팔가가 mRNA 플랫폼과 인공지능 신약 탐색, 항체 공학에 강하다. 방산에서는 루이나 방위산업공사와 민간 방산 기업이 국방 연구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에너지에서는 루이나 에너지 공사의 자회사인 루이나 에너지 기술연구원이 수소와 에너지 저장 기술을 연구한다.
4. 분야별 현황 [편집]
4.1. 원자력 [편집]
루이나는 1958년 첫 핵실험 이후 핵보유국이다. 페닝턴 정부가 제안한 3축 체계에 따라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전략핵잠수함, 전략폭격기를 모두 운용하며, 루이나군에서 해군의 발언권이 가장 강한 것도 전략핵잠수함이 핵 억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1963년 1차 랜드 전쟁을 끝낸 오로아 조약과 함께 루이나와 사비에트는 핵을 쓰지 않고 서로의 본토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비밀 양해를 주고받았다.
원자력 발전은 1950년대 후반 페닝턴 정부의 원자력 발전 계획에서 시작해, 1970년대 후반 석유 위기 이후 크게 늘었다. 지금은 전력 생산의 3분의 1가량을 원자력이 차지한다. 원자력 시설의 안전 규제는 에너지부 산하 독립규제위원회인 핵안전위원회가 맡는다.
원자력 발전은 1950년대 후반 페닝턴 정부의 원자력 발전 계획에서 시작해, 1970년대 후반 석유 위기 이후 크게 늘었다. 지금은 전력 생산의 3분의 1가량을 원자력이 차지한다. 원자력 시설의 안전 규제는 에너지부 산하 독립규제위원회인 핵안전위원회가 맡는다.
4.2. 우주 [편집]
루이나의 우주 개발은 민간과 군사로 나뉜다. 민간 우주는 항공우주국이, 군사 우주는 국방부와 국가정찰국, 우주군이 맡는다. 항공우주국은 지구 저궤도의 우주정거장과 우주망원경, 행성 탐사선을 운영하지만, 유인 비행은 지구 궤도에 머물러 있다.
군사 우주 분야에서 루이나는 랜드해협 최고 수준이다. WATCHFIRE 계열 조기경보위성과 국가정찰국의 정찰위성이 사비에트의 미사일 발사와 궤도 활동을 감시하고, 우주군 스페이스 델타 7이 외국 위성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위성 요격 무기로는 해군의 함정 발사 미사일 킹피셔와 공군의 공중 발사 미사일 AQ-7이 있다. 사비에트는 공궤도 위성 요격 무기 야스트레브로 맞서고 있다.
4.3. 반도체·컴퓨팅·인공지능 [편집]
반도체는 루이나 최대의 수출 산업이자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많은 분야다. 1980년대 국방 연구에서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지금 위탁생산과 설계에 강하며, 2010년대 후반부터는 인공지능 연산용 칩이 중심이 되었다. 초전도 소자와 극저온 연산은 루이나 국립 저온물리연구소가 앞서 있는 분야로, 트리 다이어그램의 연산 장치도 이 연구소에서 나왔다.
첨단 반도체와 장비의 수출은 산업안보국이 엄격히 통제하며, 사비에트를 비롯한 공산권으로의 수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첨단 반도체와 장비의 수출은 산업안보국이 엄격히 통제하며, 사비에트를 비롯한 공산권으로의 수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4.4. 생명과학·의학 [편집]
의학 연구는 국립보건원이 이끈다. 루이나는 기대수명이 세계 최상위권인 나라로, 의학 연구 성과와 두터운 공적 의료보험이 그 바탕으로 꼽힌다. 제약 분야에서는 트라팔가가 mRNA 기반 호흡기 백신과 표적 항암 치료제를 내놓았고, 대학 연구소와 바이오 신생 기업들이 그 주변에 모여 있다.
4.5. 기후·에너지·극지 [편집]
4.6. 기밀 연구 [편집]
루이나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 가운데에는 존재조차 공개되지 않은 분야가 있다. 이른바 신비 연구는 최고 등급의 국가 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연구 기관과 예산, 성과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다. 랜드해협 국가들이 다른 지역보다 군사 기술에서 앞서 나간 배경에 이 연구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5. 노벨상 [편집]
루이나는 2025년까지 노벨 과학상 수상자 104명을 배출했다. 미합중제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분야 | 수상자 |
물리학상 | 39명 |
화학상 | 33명 |
생리학·의학상 | 32명 |
수상자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몰려 있다. 국립과학재단이 출범한 1950년 이후 기초과학 연구비가 크게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수상자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루이나로 건너온 이민자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망명 과학자부터 오늘날의 외국인 연구자까지 이민이 루이나 과학을 키워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상 업적은 국방 연구에서 파생된 물리학과 전자공학, 그리고 국립보건원이 지원한 생명과학 분야가 많다.
6. 문제점 [편집]
6.1. 국방 편중 [편집]
정부 연구개발비의 절반가량이 국방에 쓰이면서, 국방과 거리가 먼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외된다는 비판이 있다. 국방 연구는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연구가 학계와 산업에 얼마나 돌아오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6.2. 기밀주의 [편집]
군사 우주와 원자력 분야의 비밀주의도 자주 문제가 된다. 국가정찰국은 설립 뒤 30년 넘게 존재 자체가 비밀이었고, 정부는 2023년 신의 지팡이 사용을 처음에는 부인했다가 뒤늦게 인정했다. 트리 다이어그램의 연산 시간 대부분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의회의 감독이 미치지 못하는 연구가 너무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6.3. 기초연구에 대한 압력 [편집]
국립과학재단의 '목적을 정하지 않는 연구 지원' 원칙은 예산 압박이 커질 때마다 도전을 받는다. 연구비를 산업 수요에 맞추라는 요구가 되풀이되고, 특정 학문 분야를 지원 대상에서 빼자는 법안이 발의된 적도 있다. 남극 기지와 쇄빙선 유지비가 국립과학재단 예산의 큰 몫을 차지해, 시설을 고칠 때마다 다른 연구비가 줄어드는 문제도 있다.
6.4. 연구 보안과 개방 [편집]
냉전이 이어지는 랜드해협에서 루이나는 외국인 과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을 감시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국립 연구소와 국방 연구를 하는 대학 연구실에는 외국인 연구자가 많고, 정보 유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외국인 연구자 전반에 대한 감시가 강화된다. 이 때문에 우수한 외국인 연구자들이 루이나를 떠난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