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나군에서 넘어옴
루이나군 Ruina Armed Forc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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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
소속 | |||||||||||||||||||||||||
통수권자 | 루스탈지아 그래이 (대통령) | ||||||||||||||||||||||||
국방장관 | 알렉산드로 마르케스 | ||||||||||||||||||||||||
합동참모의장 | 새뮤얼 J. 하코트 공군 대장 | ||||||||||||||||||||||||
군종 | |||||||||||||||||||||||||
상비군 | 828,300명 (2024년 기준) | ||||||||||||||||||||||||
예비군 | 7,799,500명 (2021년 기준) | ||||||||||||||||||||||||
시 방위군 | 129,000명 (2023년 기준) | ||||||||||||||||||||||||
전시 최대 가용 인원 | 69,250,000명 (2021년 기준) | ||||||||||||||||||||||||
병역제도 | 징병제 (남녀, 260일) 모병제 (외인부대) | ||||||||||||||||||||||||
육군력 | |||||||||||||||||||||||||
해군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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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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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 |||||||||||||||||||||||||
국방비 | 5,500억 달러 (2024년 기준) | ||||||||||||||||||||||||
1. 개요 [편집]
루이나군(Ruina Armed Forces), 약칭 루군(淚軍)은 루이나의 국군이다. 육군·해군·공군·해병대·우주군의 5군으로 이루어지며, 평시에는 국방부가, 작전에서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에서 통합작전사령부로 이어지는 지휘 계통이 군을 이끈다.
2024년 기준 상비군은 828,300명, 국방비는 5,500억 달러로 세계 3위 규모다. 남녀를 모두 징집하는 징병제 국가여서 예비군이 780만 명에 이르며, 외국인 지원자로 이루어진 외인부대를 따로 운용한다. 1958년부터 핵무기를 보유했으며, 공군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전략폭격기, 해군의 전략핵잠수함으로 3축 핵 억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루이나군은 랜드해협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군대다. 루이나가 라 마베라와 플로렌시아를 대신해 랜드해협 북부의 패권국이 된 뒤로, 루이나가 주도하는 랜드해협 질서에 정면으로 맞서 동등한 경쟁을 벌인 나라는 사비에트뿐이었다. 그만큼 해외 개입이 잦아, 우방으로부터는 '랜드해협의 경찰', 비판자들로부터는 '도를 넘는 패권국의 군대'라는 평가를 함께 받는다.
2024년 기준 상비군은 828,300명, 국방비는 5,500억 달러로 세계 3위 규모다. 남녀를 모두 징집하는 징병제 국가여서 예비군이 780만 명에 이르며, 외국인 지원자로 이루어진 외인부대를 따로 운용한다. 1958년부터 핵무기를 보유했으며, 공군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과 전략폭격기, 해군의 전략핵잠수함으로 3축 핵 억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루이나군은 랜드해협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군대다. 루이나가 라 마베라와 플로렌시아를 대신해 랜드해협 북부의 패권국이 된 뒤로, 루이나가 주도하는 랜드해협 질서에 정면으로 맞서 동등한 경쟁을 벌인 나라는 사비에트뿐이었다. 그만큼 해외 개입이 잦아, 우방으로부터는 '랜드해협의 경찰', 비판자들로부터는 '도를 넘는 패권국의 군대'라는 평가를 함께 받는다.
2. 운영 기조 [편집]
2.1. 문민통제와 해외 개입 [편집]
루이나군은 의회와 여론의 견제를 받는 문민통제 아래 있다. 그럼에도 루이나는 다른 나라에서 특수작전과 대규모 군사 행동을 자주 벌여 왔다. 2002년 빌베른 침공처럼 국제기구가 '국제법의 명백한 위반'으로 규정한 작전도 있었지만, 루이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회가 전쟁을 막기보다 사후에 추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루이나 문민통제의 한계로 꼽힌다.
2.2. 화력 선행 [편집]
루이나군은 병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전면전을 최대한 피하고, 전면전을 벌이더라도 지상군을 마지막에 투입한다. 먼저 순항 미사일과 항공기로 적의 지휘 체계와 방공망, 기간 시설을 두드려 전력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린 뒤, 육군과 해병대를 보내 전선을 형성한다. 걸프 전쟁과 2차 랜드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화력 투사보다 앞서 특수부대와 정보기관이 상대국 내부를 교란해 국가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 방식 덕분에 루이나 지상군은 이미 힘이 빠진 적을 상대로 싸우게 된다. 2001년 고랜드 안정화작전에서는 주력이 고랜드 북부에 상륙하기도 전에 제101공수사단이 먼저 침투해 반군의 주요 시설을 파괴했다. 다만 이 작전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작전으로 평가된다. 적을 빠르게 무너뜨리는 데는 능하지만, 무너뜨린 뒤의 질서를 세우는 데는 서툴다는 것이 루이나군의 오래된 약점이다.
이 방식 덕분에 루이나 지상군은 이미 힘이 빠진 적을 상대로 싸우게 된다. 2001년 고랜드 안정화작전에서는 주력이 고랜드 북부에 상륙하기도 전에 제101공수사단이 먼저 침투해 반군의 주요 시설을 파괴했다. 다만 이 작전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작전으로 평가된다. 적을 빠르게 무너뜨리는 데는 능하지만, 무너뜨린 뒤의 질서를 세우는 데는 서툴다는 것이 루이나군의 오래된 약점이다.
2.3. 전진 방어 [편집]
루이나군은 본토로 향하는 위협을 해외 주둔지에서 미리 차단하고 해외 동맹국을 보호하는 전진 방어 전략을 쓴다. 루이나는 북쪽에 확실한 우방을 두고 있고, 동쪽은 콘스탄티노폴과 포틸락스 해협에 막혀 있으며, 남쪽은 바다다. 이 때문에 본토 방위는 시 방위군과 해안경비대에 맡기고, 핵심 전력은 유고랜드와 북산, 해외 기지에 배치할 수 있다.
3. 인적 자원 [편집]
3.1. 수뇌부 [편집]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국방장관은 문민 공무원으로서 대통령을 대신해 군을 지휘·감독하며, 현역 군인은 국방장관이 될 수 없다. 군인 최선임자는 합동참모의장이다.
직위 | 이름 |
대통령 | |
국방장관 | 알렉산드로 마르케스 |
합동참모의장 | 새뮤얼 J. 하코트 공군 대장 |
합동참모차장 | 이사벨 R. 캐번디시 해군 대장 |
육군참모총장 | 윌리엄 F. 대버너 대장 |
해군참모총장 | 재임스 컬비 대장 |
공군참모총장 | 에이브러햄 L. 웨스트코트 대장 |
해병대사령관 | 토머스 E. 갤브레이스 대장 |
우주군참모총장 | 마야 S. 린드크비스트 대장 |
3.2. 차관 [편집]
루이나에는 군종별 부처가 따로 없다. 그 대신 국방부에 군종별 차관을 두어, 각 군의 인사·예산·획득 같은 행정을 문민이 관리하도록 했다. 1980년 헌정 회복 뒤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려고 만든 제도다.
직위 | 이름 |
국방부 부장관 (제1차관) | 니컬러스 H. 펨브로크 |
육군 담당 차관 | 엘리너 J. 브래드퍼드 |
해군 담당 차관 | 마커스 아들러 |
공군 담당 차관 | 다리우스 K. 몬테이로 |
획득·기술 담당 차관 | 프랜시스 L. 오그던 |
정책 담당 차관 | 레아 M. 코르니시 |
해병대는 해군 담당 차관이, 우주군은 공군 담당 차관이 함께 맡는다.
3.3. 루이나 합동참모본부 [편집]
합동참모본부는 합동참모의장과 합동참모차장, 육군·해군·공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우주군참모총장, 시 방위군 협의회 의장으로 이루어진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에게 군사 문제를 조언하는 것이 주 임무이며, 부대를 직접 지휘하지는 않는다. 합동참모의장의 임기는 4년이고, 육·해·공군이 돌아가며 맡는 것이 관례다.
합동참모본부가 작전 지휘권을 갖지 않게 된 것은 1978년의 경험 때문이다. 10.10 군사반란 당시 국방참모본부와 육군본부가 작전 지휘권과 정보 조직을 함께 쥐고 있었고, 반란군은 이를 이용해 하룻밤 만에 수도를 장악했다. 1986년 「국방조직법」 개정으로 작전 지휘는 대통령·국방장관에서 통합작전사령부로 곧바로 이어지게 되었고, 합동참모본부는 조언과 전력 기획만 맡게 되었다.
합동참모본부가 작전 지휘권을 갖지 않게 된 것은 1978년의 경험 때문이다. 10.10 군사반란 당시 국방참모본부와 육군본부가 작전 지휘권과 정보 조직을 함께 쥐고 있었고, 반란군은 이를 이용해 하룻밤 만에 수도를 장악했다. 1986년 「국방조직법」 개정으로 작전 지휘는 대통령·국방장관에서 통합작전사령부로 곧바로 이어지게 되었고, 합동참모본부는 조언과 전력 기획만 맡게 되었다.
3.4. 루이나 통합작전 사령부 [편집]
통합작전사령부는 여러 군종의 부대를 한데 지휘하는 사령부로, 지역별 사령부 6곳과 기능별 사령부 5곳이 있다. 각 군은 부대를 기르고 갖추어 통합작전사령부에 보내고, 실제 작전은 통합작전사령부가 지휘한다.
사령부 | 담당 |
지역 사령부 | |
북부사령부 | 본토, 북랜드해 |
남부사령부 | 랜드해협 남부, 빌베른 |
중앙사령부 | 유고랜드, 고랜드 |
지중해·아프리카사령부 | 지중해, 북아프리카 |
인도태평양사령부 | 서태평양, 동남아시아, 한국 |
미주사령부 | 동태평양, 남아메리카 |
기능 사령부 | |
전략사령부 | 핵 억지, 미사일 방어 |
특수작전사령부 | 특수작전 |
수송사령부 | 전략 수송 |
사이버사령부 | 사이버 작전 |
우주사령부 | 우주 작전 |
2002년 빌베른 침공은 남부사령부가 지휘했고, 유고랜드 주둔 루이나군은 중앙사령부 예하의 주유고랜드 루이나군사령부가 지휘한다.
4. 편제 [편집]
군종 | 현역 | 주요 임무 |
352,000명 | 지상 작전, 미사일 방어 | |
175,200명 | 해양 작전, 전략핵잠수함 | |
212,400명 | 항공 작전, ICBM·전략폭격기 | |
해병대 | 76,500명 | 상륙 작전, 신속 대응 |
12,200명 | 위성, 우주 감시 |
- 육군: 가장 큰 군종으로, 징집병 대부분이 육군에서 복무한다. 외인부대도 육군 소속이다.
- 해군: 세계 3위 규모의 해군으로, 루이나군 안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하다.
- 공군: 1943년 육군 항공대에서 독립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공군이 운용한다.
- 해병대: 상륙 작전과 해외 신속 대응을 맡는 독립 군종이다. 전차와 해병항공대를 따로 갖추고 있다.
- 우주군: 2010년대 말 공군 우주사령부를 모체로 독립한 가장 젊은 군종이다.
이 밖에 각 시의 시 방위군(129,000명)은 평시에는 시의 지휘를 받아 재난 구호와 치안 지원을 맡고, 전시에는 육군과 공군에 편입된다. 국토안보부 소속인 해안경비대는 평시에는 연안 경비와 해상 법집행을 맡고, 전시에는 해군의 지휘를 받는다.
5. 계급 [편집]
구분 | 계급 | 급여 등급 |
장성 | 원수 | 전시에만 |
대장 | O-10 | |
중장 | O-9 | |
소장 | O-8 | |
준장 | O-7 | |
장교 | 대령 | O-6 |
중령 | O-5 | |
소령 | O-4 | |
대위 | O-3 | |
중위 | O-2 | |
소위 | O-1 | |
부사관 | 선임원사 | E-9 |
원사 | E-8 | |
상사 | E-7 | |
중사 | E-6 | |
하사 | E-5 | |
병 | 병장 | E-4 |
상병 | E-3 | |
일등병 | E-2 | |
이등병 | E-1 |
계급 체계는 5군이 같으며, 해군은 부사관 계급을 함정 직책에 따라 부르기도 한다. 원수는 전시에 의회의 동의를 받아서만 둘 수 있는데, 루이나 역사에서 원수가 임명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뿐이다. 징집병은 이등병으로 입대해 병장까지 진급할 수 있으며, 하사부터는 직업군인이다.
6. 루이나군의 무기와 장비 [편집]
6.1. 보병 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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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육군 장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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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해군 장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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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공군 장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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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기타 장비 [편집]
- 새총: 소형 무인 정찰기를 띄우는 발사대로 쓴다. 활주로 없이 손으로 당겨 날릴 수 있어 소부대에서 인기가 많다.
- 전투식량(MRE): 한 끼에 약 1,250kcal를 담은 개별 포장 전투식량이다. 메뉴는 24종이며, 해마다 장병 시식 평가로 하위 메뉴를 교체한다.
7. 처우 [편집]
루이나의 군인 처우는 병역 체계에 따라 뚜렷이 나뉜다. 루이나는 징병제와 모병제를 함께 운영한다. 자국민에게는 의무 복무를 부과하고, 외국인에게는 자발적 모병제로 외인부대를 운영한다. 두 체계는 복무 목적과 근무 환경, 보상, 전역 뒤의 지위에서 큰 차이가 있다.
7.1. 징집병 [편집]
루이나 국적자는 남녀 모두 20세 무렵 260일 동안 군에 복무한다. 징집병은 대부분 본토의 군사시설과 방위 부대에 배치되어 평시에는 경계와 재난 대응, 순찰을 맡는다. 다만 루이나는 늘 어디선가 군사 작전을 벌이는 나라이기 때문에, 본토의 부대도 상시 전투 대비 태세를 유지하며 비상시에는 해외 파병에 나설 수 있다.
징집병의 급여는 높지 않지만, 정부는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을 줄이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직업훈련과 학자금 지원, 복학 보조, 공공기관 취업 가산점이 대표적이며, 이 업무는 국방부 소속 전환지원청이 맡는다.
징집병의 급여는 높지 않지만, 정부는 복무로 인한 경력 단절을 줄이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직업훈련과 학자금 지원, 복학 보조, 공공기관 취업 가산점이 대표적이며, 이 업무는 국방부 소속 전환지원청이 맡는다.
7.2. 외인부대 [편집]
외인부대는 외국인 지원자로 이루어진 육군 소속 부대다. 외국인 병사는 계약을 맺고 자발적으로 입대하며, 주로 고위험 지역과 해외 파병, 전방 부대에 투입된다. 그만큼 징집병보다 훨씬 많은 급여와 의료·후생 지원, 가족 송금 프로그램을 받는다.
5년 이상 성실히 복무한 외국인 병사는 루이나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시민권은 국적뿐 아니라 사회보장과 장기 체류, 공공기관 취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외인부대는 일부 외국인에게 군대라기보다 새 삶으로 가는 통로로 여겨진다.
5년 이상 성실히 복무한 외국인 병사는 루이나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다. 시민권은 국적뿐 아니라 사회보장과 장기 체류, 공공기관 취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외인부대는 일부 외국인에게 군대라기보다 새 삶으로 가는 통로로 여겨진다.
7.3. 복지 [편집]
루이나는 징병제 국가여서 군 복무보다 전역 뒤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복무 중에는 식사와 숙소를 제공하고, 격오지나 위험 지역에 파견된 장병에게는 위험에 상응하는 특별 수당을 준다. 문화 시설과 여가 활동을 지원하며, 정신 건강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고랜드 전쟁 이후로는 귀환 장병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가 보훈부의 주요 사업이 되었다.
그럼에도 군인 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된다. 징집병 처우를 더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하고, 정부는 재정 부담과 효율성 사이에서 제도를 조금씩 고쳐 가고 있다.
그럼에도 군인 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된다. 징집병 처우를 더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하고, 정부는 재정 부담과 효율성 사이에서 제도를 조금씩 고쳐 가고 있다.
7.3.1. 연금 [편집]
장기 복무를 택한 직업군인은 일정 기준을 채우면 군인연금을 받는다.
- 20년 이상 복무하면 최종 기준급여의 40%를, 25년 이상 복무하면 50%를 매달 받는다.
- 고위급으로 진급하는 등 특정 요건을 채우면 최대 60%까지 오른다.
- 2010년 개정 규정에 따라 중장은 기준급여의 90%, 대장은 100%를 연금으로 받는다.
직업군인은 급여 일부를 중앙퇴직저축투자위원회가 운용하는 퇴직저축계정에 적립할 수도 있다. 공무원과 군인이 함께 쓰는 이 계정의 적립금과 수익은 퇴역할 때 일시금으로 받거나 연금과 함께 나누어 받을 수 있다. 장기 복무자는 이 밖에 군인복지기금에서 상이 보조금과 복무 명예수당을 받는다.
월급만 보면 크지 않지만 복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연금과 수당을 합친 총 보상이 크게 늘어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국방부는 이를 통해 전문 인력의 유출을 막고 장기 복무를 유도한다.
7.4. 월급 [편집]
루이나군의 급여는 계급과 복무 연수에 따른 호봉제다. 징집병의 급여는 계급별로 조금씩 오르지만, 직업군인의 급여는 계급과 연차가 오를수록 가파르게 오른다. 2024년 기준 월 기본급은 다음과 같다.
계급 | 월 기본급 |
병 | |
훈련병·이등병 | 1,733.1달러 |
일등병 | 1,916.9달러 |
상병 | 2,034.9달러 |
병장 | 2,427.3달러 |
부사관 | |
하사 | 2,181~3,094.8달러 |
중사~원사 | 최대 4,896.3달러 |
선임원사 | 최대 5,673.6달러 |
장교 | |
소위 | 2,905.2달러부터 |
소령 | 6,593.1달러 (10년 이상) |
대령 | 9,625.2달러 (19년 이상) |
준장~소장 | 12,000~13,000달러 |
중장 | 14,056.8달러 |
대장 | 16,289.9달러 |
이등병의 기본급은 시간당 약 12달러로 루이나의 최저임금 수준이다. 여기에 전방 근무수당과 파병수당, 위험지역 근무수당, 직책수당, 자격수당이 더해지기 때문에 실제 받는 돈은 기본급보다 많고, 특정 기술을 가진 상병·병장은 월 실수령액이 3,000달러를 넘기도 한다.
직업군인에게는 기술 병과 수당과 언어 자격 수당, 장기복무 정근수당, 주거 보조 수당(관사를 받지 못한 경우), 가족 부양 수당이 붙는다. 의무·전산·공병·정찰 같은 전문 병과나 군사 자격증 보유자는 기본급의 15~40%를 수당으로 더 받으며, 고위 장교와 선임 부사관 가운데에는 직책 성과급을 합쳐 월 실수령액이 2만 달러를 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루이나군의 월급 자체는 다른 선진국 군대보다 낮은 편이지만, 복지와 연금, 수당, 전역 뒤 혜택을 합친 총 보상은 매우 크다. 루이나에서 직업군인은 지금도 안정된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길로 여겨진다.
7.5. 전사자 보험금 [편집]
복무 중 숨진 장병의 유족은 세 가지 보상을 받는다.
- 사망 보상금: 전사하거나 공무 중 숨진 장병의 유족에게 일시금 15만 달러를 지급한다. 사망 72시간 안에 일부를 먼저 지급해 장례비로 쓸 수 있게 한다.
- 군인단체생명보험: 모든 장병이 자동으로 가입하는 생명보험으로, 최대 50만 달러를 보장한다. 직업군인은 보험료를 급여에서 공제하고, 징집병의 보험료는 국가가 낸다.
- 유족연금: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에게 숨진 장병 기준급여의 55%를 연금으로 지급한다. 자녀의 대학 학비는 보훈부가 지원한다.
징집병까지 같은 보험을 국가 부담으로 보장하게 된 것은 1960년대 1차 랜드 전쟁 이후다. 그 전까지 징집병 유족은 직업군인 유족보다 훨씬 적은 보상을 받았고, 같은 전장에서 같은 이유로 숨졌는데 보상이 다르다는 비판이 제도를 바꾸었다.
7.6. 사회적 대우 [편집]
징병제 국가인 루이나에서 군 복무는 대부분의 국민이 거치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군인을 특별한 계층으로 대하기보다 '누구나 한 번은 거치는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병역을 마친 청년은 공공주택 배정에서 복무 기간을 대기 기간으로 인정받고, 공공기관 채용에서도 가산점을 받는다.
직업군인, 특히 장교단에 대한 시선은 이와 조금 다르다. 1978년 10.10 군사반란과 2년의 군정을 겪은 루이나 사회에는 장교단이 정치에 나서는 것을 경계하는 정서가 깊게 남아 있다. 퇴역 장성이 정계에 진출하면 군정 시절과 비교하는 비판이 따라붙고, 현역 군인의 정치적 발언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반대로 전쟁에서 돌아온 사병들은 오랫동안 사회의 관심 밖에 있었는데, 청북전쟁 제대군인들이 반전 학생들과 함께 무장조직 10월 전선을 만든 일은 그 단절이 낳은 극단적인 결과로 꼽힌다.
직업군인, 특히 장교단에 대한 시선은 이와 조금 다르다. 1978년 10.10 군사반란과 2년의 군정을 겪은 루이나 사회에는 장교단이 정치에 나서는 것을 경계하는 정서가 깊게 남아 있다. 퇴역 장성이 정계에 진출하면 군정 시절과 비교하는 비판이 따라붙고, 현역 군인의 정치적 발언은 법으로 엄격히 제한된다. 반대로 전쟁에서 돌아온 사병들은 오랫동안 사회의 관심 밖에 있었는데, 청북전쟁 제대군인들이 반전 학생들과 함께 무장조직 10월 전선을 만든 일은 그 단절이 낳은 극단적인 결과로 꼽힌다.
8. 특징 [편집]
8.1. 용병 [편집]
루이나군은 외인부대 말고도 민간군사기업에 크게 기댄다. 해외 기지 경비와 수송, 정비, 교육훈련, 요인 경호 같은 업무 상당 부분이 민간군사기업에 맡겨져 있으며, 분쟁 지역에서는 민간군사기업 인원이 루이나군 병력보다 많은 경우도 있다. 가장 큰 계약자는 플라자 그룹의 민간군사기업 계열사다.
민간군사기업에 대한 비판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정부가 정규군을 보내면 의회의 승인과 여론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일을 계약으로 처리해 책임을 피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체복무 제도와 얽힌 문제다. 정부가 지정한 기업에서 병역을 대신하는 대체복무 요원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군사기업에 배치되어, 징집된 국민이 사실상 민간 기업의 값싼 인력으로 쓰인다는 지적을 받는다.
민간군사기업에 대한 비판은 두 갈래다. 하나는 정부가 정규군을 보내면 의회의 승인과 여론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일을 계약으로 처리해 책임을 피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체복무 제도와 얽힌 문제다. 정부가 지정한 기업에서 병역을 대신하는 대체복무 요원 가운데 상당수가 민간군사기업에 배치되어, 징집된 국민이 사실상 민간 기업의 값싼 인력으로 쓰인다는 지적을 받는다.
9. 역사 [편집]
루이나군의 뿌리는 왕정기의 왕립 육군과 왕립 함대다. 1885년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군은 공화국의 군대가 되었고, 군 행정은 국가군무원이 맡았다. 1921년 국가군무원이 국방부로 개편되었고, 1943년 10월 24일 국방부 개편으로 육군·해군·공군이 각 참모총장이 지휘하는 독립 군종이 되면서 지금의 체제가 갖추어졌다. 1958년에는 첫 핵실험에 성공해 핵보유국이 되었다.
9.1. 반역의 아이콘 [편집]
루이나군의 역사에서 가장 무거운 이름은 10.10 군사반란이다. 1978년 10월 10일 밤 육군 참모차장 비달 파브르 중장과 군 정보사령관 필립 갤러거 소장이 반란을 일으켜,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연행하고 대통령에게서 사후 재가를 받아 냈다. 이튿날 파브르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비상위원회가 권력을 쥐었고, 군정은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무너질 때까지 2년 동안 이어졌다.
군이 공화국을 겨눈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다.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때는 군대가 파업 노동자에게 발포해 11명이 숨졌다. 냉전기 국방부 특무처는 제방 계획으로 극우 조직을 길러 극좌의 범행으로 위장한 테러를 벌이게 했고, 스틸워터 계획으로 비판 언론인을 사찰하고 살해했다. 이 사건들 때문에 루이나군은 공화국을 지키는 군대인 동시에 공화국을 위협해 온 군대라는 이중의 기억을 안고 있다.
헌정 회복 이후의 개혁은 이 기억에서 출발했다. 국방부에 군종별 문민 차관을 두었고, 1986년 「국방조직법」 개정으로 합동참모본부에서 작전 지휘권을 떼어 냈으며, 군 정보기관이 자국 군인의 정치적 견해를 수집하는 일을 금지했다. 1997년 중앙대법원은 10.10 군사반란 가담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성공한 반란도 처벌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군이 공화국을 겨눈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다.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때는 군대가 파업 노동자에게 발포해 11명이 숨졌다. 냉전기 국방부 특무처는 제방 계획으로 극우 조직을 길러 극좌의 범행으로 위장한 테러를 벌이게 했고, 스틸워터 계획으로 비판 언론인을 사찰하고 살해했다. 이 사건들 때문에 루이나군은 공화국을 지키는 군대인 동시에 공화국을 위협해 온 군대라는 이중의 기억을 안고 있다.
헌정 회복 이후의 개혁은 이 기억에서 출발했다. 국방부에 군종별 문민 차관을 두었고, 1986년 「국방조직법」 개정으로 합동참모본부에서 작전 지휘권을 떼어 냈으며, 군 정보기관이 자국 군인의 정치적 견해를 수집하는 일을 금지했다. 1997년 중앙대법원은 10.10 군사반란 가담자들에게 유죄를 확정하며 "성공한 반란도 처벌 대상"이라고 판시했다.
9.2. 성공한 전쟁 [편집]
- 제2차 세계대전: 본토가 한 번도 공격받지 않은 채 연합국의 병기창 역할을 했다. 1940~1941년 대서양-랜드해 전투에서 독일 수상함대의 통상파괴전을 막아 냈다.
- 그레이 라인 작전(1984): 해상 봉쇄선을 펼쳐 웨스타시아의 핵무기 해상 수송을 막았다.
- 걸프 전쟁(1991): 순항 미사일과 항공기로 이라크군을 먼저 무력화한 뒤 지상군을 투입해 짧은 기간에 승리했다. 루이나군 화력 선행 교리의 원형으로 꼽힌다.
- 빌베른 침공(2002): 13일 만에 빌베른 방위군을 해산시키고 에뜨레아 헤리에타를 붙잡았다. 루이나군 전사자는 23명이었다. 군사적으로는 결정적 승리였지만, 국제법 위반 논란과 침공 직후 수도 아퀼레아의 약탈을 막지 못한 문제를 남겼다.
- 오리온 작전(2011): 1.19 사건의 배후인 알자미아 지도자 이브라힘 나쉬디를 유고랜드에서 사살했다.
9.3. 실패한 전쟁 [편집]
- 베트남 전쟁: 1964년 통킹 만 사건을 계기로 개입했으나 뚜렷한 성과 없이 발을 뺐다. 개입의 근거가 된 8월 4일 교전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뒤에 드러나면서, 정부가 전쟁을 위해 사건을 부풀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 콘스탄티노폴 침공(1970): 빠르게 점령했지만 점령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이 되었다. 루이나군이 물러난 뒤 콘스탄티노폴은 명목상 루이나 보호령인 무정부지대로 남았다.
- 루이나-고랜드 전쟁(2001~2021): 1.19 사건 뒤 개입해 20년 동안 싸웠으나, 협상 없는 일방 철수로 끝났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0. 문제점 [편집]
10.1. 해외 개입의 일상화 [편집]
루이나군의 가장 큰 문제로는 해외 군사 행동이 일상이 되었다는 점이 꼽힌다. 의회와 여론의 견제가 있는데도 특수작전과 공습, 무인기 타격이 끊이지 않고, 상당수는 작전이 끝난 뒤에야 공개된다. 2020년 트리넬 국제공항 공습처럼 우방국의 수도에서 벌인 작전도 있었다. 전쟁 권한을 대통령이 사실상 독점하고 의회는 사후에 추인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온다.
10.2. 인권 문제 [편집]
루이나군은 해외 작전에서 여러 인권 문제에 얽혀 있다. 청북전쟁 때 띠에우리엔의 부역자 색출에 육군 부대가 배속되어 있었고, 1981년 엘모소테의 학살을 주도한 엘살바도르 장교들은 루이나 군사학교 출신이었다. 유고랜드 주둔군의 범죄도 되풀이되었는데, 1987년 하다드 성폭행 사건과 1996년 진양지구 부부 살인 사건은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에 대한 반발을 키웠다.
10.3. 노후화와 비싼 무기 [편집]
군종마다 장비 문제의 양상이 다르다. 해군은 함정의 평균 함령이 약 47년에 이를 만큼 노후화가 심하고, 1982년 프로젝트 300이 낡은 함정을 개조해 숫자를 채웠다는 비판을 받는다. 공군은 반대로 F-47과 B-21, 센티넬 같은 값비싼 신형 무기를 한꺼번에 도입하면서 예산 부담이 커졌다. 군종끼리 예산을 두고 벌이는 경쟁도 국방 개혁의 걸림돌로 꼽힌다.
10.4. 징병의 형평성 [편집]
남녀 모두를 징집하는 루이나에서도 징병의 형평성은 오래된 논쟁거리다. 1970년대 10월 전선이 공개한 징병 명부는 징집과 병과 배치가 특정 지역과 계층에 쏠려 있음을 보여 주었다. 대체복무 요원이 민간군사기업의 값싼 인력으로 쓰인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