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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차 랜드 전쟁에 참전한 나라와 세력을 다루는 문서.
2차 랜드 전쟁에는 연합국 5개국과 라 마베라 왕당파 정부, 동맹국 5개 세력이 참전했다. 양측이 동원한 병력은 모두 합쳐 약 2,360만 명에 이르렀다. 1차 랜드 전쟁과 달리 두 진영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라는 이념의 선으로 나뉘었지만, 동맹국 안에서는 사비에트와 청평, 사비에트와 동사랜드가 서로 반목하고 있어 진영의 결속은 연합국보다 훨씬 약했다.
2차 랜드 전쟁에는 연합국 5개국과 라 마베라 왕당파 정부, 동맹국 5개 세력이 참전했다. 양측이 동원한 병력은 모두 합쳐 약 2,360만 명에 이르렀다. 1차 랜드 전쟁과 달리 두 진영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라는 이념의 선으로 나뉘었지만, 동맹국 안에서는 사비에트와 청평, 사비에트와 동사랜드가 서로 반목하고 있어 진영의 결속은 연합국보다 훨씬 약했다.
2. 연합국 [편집]
2.1. 루이나 [편집]
루이나는 연합국의 맹주였다. 개전 당시의 토머스 데이븐포트 대통령은 체르드 침공과 청북전쟁 참전을 결정했고, 1977년 취임한 리처드 잭슨 대통령이 바젤 정전협정으로 전쟁을 마무리했다. 루이나는 체르드 전선, 남부 전선, 청북전쟁의 세 곳에 지상군을 보냈으며, 해상 작전 전반을 맡았다.
루이나 해군은 콘스탄티노폴을 점령하고 있던 덕에 포르틸락해협을 완전히 통제했고, 해협 이북의 내해에까지 들어가 라 마베라 혁명정부와 체르드를 봉쇄했다. 루이나는 남부 전선에서 사비에트군과 직접 싸우면서도 1963년의 비밀 양해에 따라 사비에트 본토는 공격하지 않았다.
남녀를 모두 징집하는 루이나에서 세 개의 전선과 콘스탄티노폴 점령을 동시에 감당한 부담은 컸다. 전쟁 기간은 국내의 검은 10년이 정점에 이른 시기와 겹쳤고, 특히 1975년 띠에우리엔 대학살 이후 반전 여론이 급격히 커졌다.
루이나 해군은 콘스탄티노폴을 점령하고 있던 덕에 포르틸락해협을 완전히 통제했고, 해협 이북의 내해에까지 들어가 라 마베라 혁명정부와 체르드를 봉쇄했다. 루이나는 남부 전선에서 사비에트군과 직접 싸우면서도 1963년의 비밀 양해에 따라 사비에트 본토는 공격하지 않았다.
남녀를 모두 징집하는 루이나에서 세 개의 전선과 콘스탄티노폴 점령을 동시에 감당한 부담은 컸다. 전쟁 기간은 국내의 검은 10년이 정점에 이른 시기와 겹쳤고, 특히 1975년 띠에우리엔 대학살 이후 반전 여론이 급격히 커졌다.
2.2. 플로렌시아 [편집]
플로렌시아는 자크 르몽 총리 아래에서 연합국 가운데 가장 많은 약 411만 명을 동원했다. 체르드와 국경을 맞댄 플로렌시아에게 해협 북부의 공산화는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었고, 플로렌시아군은 1974년 5월부터 체르드 전선의 서쪽 축을 맡았다. 남부 전선에도 원정군을 보냈으나 청북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다.
1975년 가을 루이나의 병력이 청북전쟁으로 쏠린 뒤에는 체르드 전선의 부담을 상당 부분 플로렌시아군이 떠안았다. 플로렌시아에게 2차 랜드 전쟁은 1976년 10월 오로아 휴전협정으로 끝났다.
1975년 가을 루이나의 병력이 청북전쟁으로 쏠린 뒤에는 체르드 전선의 부담을 상당 부분 플로렌시아군이 떠안았다. 플로렌시아에게 2차 랜드 전쟁은 1976년 10월 오로아 휴전협정으로 끝났다.
2.3. 웨스타시아 [편집]
앨빈 카펜트리 요크 연방대통령의 웨스타시아는 개전 첫날 라 마베라 왕당파 정부의 요청으로 국경을 넘어 전쟁의 문을 열었다. 웨스타시아군은 마베라 전선의 주력으로 1976년 트리넬 탈환을 이끌었고, 동시에 남부 전선에서는 괴뢰국 유고랜드를 지켜야 했다.
웨스타시아가 동원한 약 222만 명에는 유고랜드에서 징집한 병력이 포함되어 있다. 숙적 라 마베라의 왕실을 도와 왕정을 되찾아 주었다는 사실은 전후 요크 정권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웨스타시아가 동원한 약 222만 명에는 유고랜드에서 징집한 병력이 포함되어 있다. 숙적 라 마베라의 왕실을 도와 왕정을 되찾아 주었다는 사실은 전후 요크 정권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2.4. 빌베른 [편집]
알렉산드르 노바크 대통령의 빌베른은 루이나·북산과 맺은 랜드 안보 3국 동맹에 따라 참전했다. 빌베른 해군은 사비에트 동부 해안을 봉쇄했고, 1974년 10월 동사랜드가 참전한 뒤에는 동남 해역에서 동사랜드와 싸웠다. 남부 전선에도 소규모 원정군을 보냈다.
2.5. 북산 [편집]
오가미 잇토 내각총리대신의 북산은 1974년 7월 25일 청평을 침공해 청북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이다. 북산군은 동부 전선의 주력이었지만 뇌우 작전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1975년 4월 쑤옹안에서 밀려나면서, 결국 루이나의 직접 참전에 기대게 되었다.
바젤 정전협정에 따라 북산군은 5년 동안 루이나의 감독 아래 재편되어야 했다. 이로써 1957년 하쿠센 조약 이후 이어진 루이나에 대한 북산의 의존은 더욱 깊어졌다.
바젤 정전협정에 따라 북산군은 5년 동안 루이나의 감독 아래 재편되어야 했다. 이로써 1957년 하쿠센 조약 이후 이어진 루이나에 대한 북산의 의존은 더욱 깊어졌다.
2.6. 라 마베라 왕당파 정부 [편집]
1973년 4월 혁명으로 트리넬을 잃은 상페드로 3세가 남부에서 세운 정부다. 군 지휘는 라파엘 데 모랄레스 원수가 맡았다. 왕당파는 병력은 많았지만 무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웨스타시아의 직접 개입과 연합국의 무기 지원에 의존했다. 1976년 7월 트리넬을 되찾은 뒤 상페드로 3세는 퇴위했고, 상페드로 4세가 즉위했다.
2.7. 유고랜드 [편집]
1958년부터 웨스타시아의 괴뢰국이었던 유고랜드는 웨스타시아의 지휘 아래 병력을 동원했다. 1973년 11월 사비에트의 공격으로 국토의 상당 부분이 점령되었고, 1976년까지 남부 전선의 전장이 되었다. 전쟁 중 유고랜드 독립운동은 오히려 활발해졌다.
3. 동맹국 [편집]
3.1. 사비에트 [편집]
레오니트 브레자코프 서기장의 사비에트는 공산진영의 중심이었다. 사비에트는 처음에는 해협 북부의 혁명에 신중했으나, 진영 안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1973년 9월 체르드·라 마베라 혁명정부와 군사 협정을 맺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루이나가 포르틸락해협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사비에트는 북부의 동맹국을 직접 도울 수 없었고, 대신 1973년 11월 유고랜드를 공격해 남부 전선을 열었다.
사비에트는 남부 전선과 바다에서 연합국과 싸우는 한편, 1974년 3월 NLTO 가입 신청이라는 평화 공세를 펼쳤다가 거부되자 5월 14일 해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다. 사비에트는 끝까지 루이나 본토를 공격하지 않았고 핵무기도 쓰지 않았다.
사비에트의 전쟁 경제는 소련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 1976년 북부의 동맹국이 모두 무너지고 남부 전선에서도 밀려나자, 사비에트는 10월 2일 오로아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사비에트는 남부 전선과 바다에서 연합국과 싸우는 한편, 1974년 3월 NLTO 가입 신청이라는 평화 공세를 펼쳤다가 거부되자 5월 14일 해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다. 사비에트는 끝까지 루이나 본토를 공격하지 않았고 핵무기도 쓰지 않았다.
사비에트의 전쟁 경제는 소련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 1976년 북부의 동맹국이 모두 무너지고 남부 전선에서도 밀려나자, 사비에트는 10월 2일 오로아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3.2. 청평 [편집]
청평은 복원된 황실의 류톈화 황제가 국가원수였으나, 1970년 려우 즈카이가 죽은 뒤 실권은 권력투쟁에 휩싸인 당 지도부에 있었다. 청평은 약 461만 명을 동원해 동맹국 가운데 가장 큰 병력을 냈다. 정규군 외에 인민유격대와 지방 방위조직, 국토해방인민전선이 북산·루이나 연합군과 싸웠다.
청평은 1960년 이후 사비에트와 결별한 상태였고, 사비에트로부터는 소규모 무기만 받았다. 청평은 수도 띠에우리엔을 빼앗기고도 끝까지 국가를 지켜 냈고, 1977년 7월 바젤 정전협정으로 전쟁을 끝냈다.
청평은 1960년 이후 사비에트와 결별한 상태였고, 사비에트로부터는 소규모 무기만 받았다. 청평은 수도 띠에우리엔을 빼앗기고도 끝까지 국가를 지켜 냈고, 1977년 7월 바젤 정전협정으로 전쟁을 끝냈다.
3.3. 동사랜드 [편집]
쩐 반 럼 국가평의회 위원장의 동사랜드는 1974년 10월 빌베른 해군의 선박 나포를 계기로 참전해 동남 해역에서 빌베른과 싸웠다. 동사랜드는 1963년 사비에트에서 떨어져 나온 나라였기 때문에 두 나라의 동맹은 공동의 적 앞에서 이루어진 불편한 동거였다.
동사랜드는 청북전쟁에는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 청평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피란민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오로아 휴전협정으로 전투가 멈추자 사비에트와의 갈등이 다시 불거졌고, 1977년 3월 바익롱 섬 교전과 5월 단교로 이어졌다.
동사랜드는 청북전쟁에는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 청평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피란민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오로아 휴전협정으로 전투가 멈추자 사비에트와의 갈등이 다시 불거졌고, 1977년 3월 바익롱 섬 교전과 5월 단교로 이어졌다.
3.4. 체르드 [편집]
1972년 11월 혁명으로 들어선 아르만 체르노프 대통령의 체르드 공산 정권은 라 마베라 혁명정부에 의용군을 보내고 콘스탄티노폴의 반루이나 저항 세력을 지원했다. 1974년 4월 루이나의 침공을 받은 뒤에는 남부 산악지대에서 끈질기게 저항했으나, 1976년 3월 수도 비셰나르가 함락되면서 무너졌다. 체르노프와 지도부는 사비에트로 망명했다.
3.5. 라 마베라 혁명정부 [편집]
1973년 4월 혁명으로 수도 트리넬을 장악한 공산 정부로, 마테오 콘티가 총리를, 엔조 바르차니가 마베라 인민해방군 사령관을 맡았다. 혁명정부는 북부 산악지대와 수도권을 기반으로 3년 동안 버텼으나, 체르드가 무너진 뒤 고립되어 1976년 7월 트리넬을 잃었다. 지도부는 사비에트로 망명했다.
4. 비교전국 [편집]
4.1. 소련 [편집]
소련은 1950년 사비에트와 맺은 동맹 조약에 따라 무기와 연료, 군사고문단을 보냈으나 병력은 파견하지 않았다.
4.2. 고랜드 [편집]
고랜드는 1973년 쿠데타로 바티스타 다우드 칸이 집권해 왕국에서 공화국이 되었다. 다우드 칸 정권은 공산주의자와 이슬람주의자를 함께 탄압하며 중립을 지켰고, 사비에트가 유고랜드 공격을 위해 요청한 영토 통과도 거절했다.
4.3. 콘스탄티노폴 [편집]
콘스탄티노폴은 1970년부터 루이나의 점령 아래 있었다. 루이나군은 도시의 무장 저항 세력과 싸우며 포르틸락해협을 통제했고, 1974년 3월 체르드의 루이나군 기지 포격은 루이나가 체르드를 침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5년 가을 청북전쟁의 회색의 불꽃 작전이 시작되면서 루이나군의 병력과 예산의 우선순위는 콘스탄티노폴에서 동부로 넘어갔다.
4.4. 델라웨어 [편집]
델라웨어는 1차 랜드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중립을 지켰다. 1976년 10월 2일 사비에트·동사랜드와 연합국의 휴전협정은 델라웨어의 헨셀슈타인 연방식민정부 오로아에서 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