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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전후 연합국
2.1. 루이나2.2. 플로렌시아2.3. 웨스타시아2.4. 빌베른2.5. 북산
3. 전후 동맹국
3.1. 사비에트3.2. 청평3.3. 동사랜드3.4. 체르드3.5. 라 마베라
4. 국제 질서의 변화
4.1. 봉쇄선의 확정4.2. 북부 중립국 지대4.3. 확전 방지의 관행
5. 평가6.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2차 랜드 전쟁의 결과와 영향을 다루는 문서.

2차 랜드 전쟁은 해협 북부와 남부에서는 연합국의 승리로, 동부에서는 교착으로 끝났다. 전쟁을 거치며 랜드해협은 루이나 중심의 NLTO와 사비에트 중심의 해르샤바 조약기구로 나뉘었고, 그 사이에 북부 중립국들이 자리 잡았다. 이 구도는 큰 틀에서 2026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승전국 루이나는 전쟁의 대가로 국내에서 깊은 혼란을 겪었고, 패전한 쪽에서도 체제가 바뀐 나라와 살아남은 나라의 운명이 크게 엇갈렸다.

2. 전후 연합국 [편집]

2.1. 루이나 [편집]

루이나는 전쟁을 통해 랜드해협의 패권을 굳혔다. 해협 북부에서 루이나에 맞설 수 있는 나라는 더 이상 남지 않았고, 체르드는 중립국이, 라 마베라는 친루이나 왕국이 되었다. 바젤 정전협정으로 북산군의 재편까지 감독하게 되면서 루이나는 해협 북부와 동부의 군사 질서를 사실상 혼자 설계하는 위치에 올랐다.

국내 사정은 정반대였다. 전쟁 기간은 검은 10년의 무장 폭력이 정점에 이른 시기와 겹쳤다. 1975년 11월 청북전쟁 제대군인과 반전 학생들이 10월 전선을 결성해 징병사무소를 습격했고, 1977년 4월에는 혁명적 노동자동맹이 전 하원의장 앙리 뒤발을 납치해 5월에 살해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제대군인들의 생계와 상처는 1970년대 후반 사회 불안의 큰 원인이 되었다.

1977년 취임한 리처드 잭슨 대통령은 바젤 정전협정으로 전쟁을 끝냈지만 국내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했고, 1978년 실각했다. 이어 들어선 군정은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무너질 때까지 이어졌다. 루이나 정부는 띠에우리엔 대학살에 대해 1976년 조사 결과에서 밝힌 공식 입장을 지금까지 바꾸지 않고 있다.

2.2. 플로렌시아 [편집]

플로렌시아는 연합국 최대의 병력을 보낸 대가로 다시 무거운 재정 부담을 떠안았다. 1차 랜드 전쟁 이후 겨우 회복되던 수출 산업은 또다시 성장을 멈추었고, 전쟁 막바지에는 반전 여론이 거세졌다.

그럼에도 플로렌시아는 체르드라는 오랜 위협을 해소했다. 1차와 2차 랜드 전쟁 모두에서 적국이었던 체르드가 중립국이 되면서, 플로렌시아의 동부 국경은 오랜만에 안정을 되찾았다.

2.3. 웨스타시아 [편집]

웨스타시아의 요크 정권은 라 마베라에 왕정을 되돌려 놓은 공로를 내세워 권력을 굳혔다. 웨스타시아는 전후 NLTO에 가입했고, 1960년대부터 이어진 개발 계획으로 고도 성장을 이어 갔다.

그러나 왕정 복귀를 도운 일은 라 마베라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했다. 웨스타시아군의 철수가 늦어지고 국경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곧 원래의 적대로 돌아갔고, 이는 1983년 마테르 전쟁과 이듬해 웨스타시아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2.4. 빌베른 [편집]

빌베른은 랜드 안보 3국 동맹과 NLTO 회원국으로서의 지위를 지켰다. 동남 해역에서 동사랜드와 싸운 경험은 이후 빌베른 해군이 남부 해안 방위에 무게를 두는 계기가 되었다.

2.5. 북산 [편집]

북산은 청북전쟁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바젤 정전협정에 따라 북산군은 5년 동안 루이나의 감독 아래 재편되었고, 북산은 1978년 루이나 군정과 밀착하는 등 루이나에 대한 의존을 더욱 깊게 했다.

3. 전후 동맹국 [편집]

3.1. 사비에트 [편집]

사비에트는 해협 북부의 동맹국을 모두 잃었다. 체르드와 라 마베라의 공산 정권이 무너지면서 해협 북부로 공산주의를 넓히려던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고, 망명한 두 나라의 지도부는 사비에트의 보호 아래 남은 생을 보냈다.

대신 사비에트는 해르샤바 조약기구를 통해 해협 남부의 위성국들을 더 단단히 묶었다. 전쟁 중 탄생한 해르샤바 조약기구는 전후 사비에트 진영의 중심 기구가 되었고, 해협을 사이에 둔 남북 대치는 이때 제도화되었다.

전쟁 중 덮어 두었던 진영 내부의 갈등은 휴전 직후 다시 터져 나왔다. 1977년 3월 2일 사비에트와 동사랜드의 순찰대가 바익롱 섬에서 교전했고, 5월 동사랜드는 사비에트와의 국교를 끊었다. 1979년 사비에트는 고랜드를 침공해 10년에 걸친 전쟁에 빠져들었다.

3.2. 청평 [편집]

청평은 수도 띠에우리엔을 빼앗기고도 국가를 지켜 냈다. 바젤 정전협정에 따라 점령지를 단계적으로 돌려받았지만, 북산과의 사이에 그어진 잠정 정전관리선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두 나라 관계의 불씨로 남았다.

전쟁이 끝난 뒤 청평은 1978년 정돈 회의를 거쳐 체제를 다시 세웠고, 당의 이름을 인민혁명당으로 바꾸었다. 루이나와는 지금까지도 국교가 없다.

3.3. 동사랜드 [편집]

동사랜드는 전쟁이 끝나자 다시 제3세력 노선으로 돌아갔다. 1977년 사비에트와의 단교는 동사랜드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1979년 쩐 반 럼이 사망한 뒤 응우옌 흐우 딘이 뒤를 이었다.

3.4. 체르드 [편집]

체르드는 1976년 비셰나르 조약에 따라 중립국이 되었다. 공산당은 불법화되었고, 체르드는 의원내각제 공화국으로 정치 체제를 다시 세웠다. 루이나군은 1977년 말까지 철수했다.

중립국이 된 체르드는 1차와 2차 랜드 전쟁 내내 이어진 반루이나 노선을 버렸다. 체르드는 중립국이면서도 1983년 마테르 전쟁 때 웨스타시아에 맞서 라 마베라 편에서 참전했는데, 이 전쟁에서 라 마베라를 지원한 나라는 2차 랜드 전쟁 때 체르드의 적이었던 루이나였다.

3.5. 라 마베라 [편집]

라 마베라는 상페드로 4세 아래 왕국으로 돌아갔다. 새 정부는 공산당을 불법화하는 한편 내전의 원인이 된 농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토지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혁명정부를 지지했던 북부와 왕정을 지지했던 남부 사이의 골은 오래 메워지지 않았다.

왕정을 되찾는 데 웨스타시아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라 마베라 왕실에 빚이자 굴욕으로 남았다. 라 마베라는 이후 루이나와 가까워져 훗날 NLTO 회원국이 되었고, 1983년에는 루이나의 지원 아래 웨스타시아와 마테르 전쟁을 치렀다.

4. 국제 질서의 변화 [편집]

4.1. 봉쇄선의 확정 [편집]

2차 랜드 전쟁으로 랜드해협의 봉쇄선이 확정되었다. 해협 북부에는 루이나·플로렌시아·빌베른·북산을 중심으로 한 NLTO가, 해협 남부에는 사비에트와 위성국들의 해르샤바 조약기구가 자리 잡았다. 1차 랜드 전쟁이 열강의 이권 다툼이었다면, 2차 랜드 전쟁 이후의 해협은 두 체제가 마주 선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4.2. 북부 중립국 지대 [편집]

체르드가 중립국이 되면서 해협 북부에는 체르드·시스타니아·델라웨어로 이어지는 중립국 지대가 생겼다. 이 나라들은 NLTO와 해르샤바 조약기구 어느 쪽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두 진영 사이의 완충 지대 역할을 했다.

4.3. 확전 방지의 관행 [편집]

루이나와 사비에트는 이 전쟁에서 서로의 군대와 직접 싸우면서도 본토 공격과 핵무기 사용을 끝까지 피했다. 1963년의 비밀 양해가 실전에서 지켜졌다는 경험은 이후 두 나라가 대립하면서도 직접 충돌의 선을 넘지 않는 관행의 바탕이 되었다.

5. 평가 [편집]

2차 랜드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기록되지만, 승리의 내용은 전역마다 달랐다. 해협 북부에서는 공산 정권들이 무너졌으나, 동부에서는 수도를 빼앗고도 청평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루이나는 대외적으로 패권을 굳혔지만 그 대가로 국내에서 정치 폭력과 군정을 겪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이어진 두 차례의 랜드 전쟁을 하나의 긴 분쟁으로 본다. 1차 랜드 전쟁이 남긴 해협 문제와 패전국의 불만이 10년 뒤 다시 터졌고, 2차 랜드 전쟁이 그 문제를 이념의 대립으로 바꾸어 굳혔다는 것이다.

6. 관련 문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