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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츄리움 궤도협정
Centurium Orbital Accord
Центуриумское соглашение об орбите
루이나 공화국과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궤도상 군사활동의 제한과 조기경보 수단의 보호에 관한 협정
종류
양자 군비통제 협정
서명
1987년 10월 21일
서명 장소
발효
1988년 6월 1일
실효
2013년 12월 17일
사비에트 탈퇴
서명자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
루이나 대통령
니콜라이 S. 트로핀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당사국
구성
전문, 본문 16개조
부속서 2, 의정서 1
정본 언어
영어, 러시아어

1. 개요2. 명칭3. 배경
3.1. 조약 밖의 궤도3.2. 1984년 5월3.3. AQ-7 시험
4. 협상
4.1. 제1단계: 의제 (1985년 11월~1986년 6월)4.2. 제2단계: 메치와 요격 무기 (1986년 9월~1987년 3월)4.3. 제3단계: 센츄리움 공식 (1987년 4월~10월)
5. 서명과 비준6. 조약문
6.1. 전문6.2. 제1조(정의)6.3. 제2조(궤도 핵무기의 금지)6.4. 제3조(보호 위성)6.5. 제4조(파편을 남기는 요격 시험의 금지)6.6. 제5조(발사의 통보)6.7. 제6조(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우주물체의 제거)6.8. 제7조(검증)6.9. 제8조(센츄리움 상설협의위원회)6.10. 제9조(궤도 긴급 사태의 통보)6.11. 제10조(원자력 전원을 탑재한 우주물체)6.12. 제11조(다른 국제협정과의 관계)6.13. 제12조(제3국과의 관계)6.14. 제13조(개정)6.15. 제14조(유효기간과 탈퇴)6.16. 제15조(비준과 발효)6.17. 제16조(정본)
7. 부속서와 부속 문서
7.1. 부속서 1: 보호 위성의 등재7.2. 부속서 2: 운반 수단과 발사 시설의 폐기7.3. 의정서7.4. 1991년 부속 합의서
8. 이행
8.1. 메치의 폐기8.2. 조용한 15년
9. 균열과 탈퇴
9.1. 미사일 방어 (2002~2003)9.2. L-217 격추 (2008)9.3. 보호 위성 목록 분쟁 (2009)9.4. 사비에트의 기상위성 파괴 (2011)9.5. 탈퇴 (2013)
10. 실효 이후11. 평가12. 여담13.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1987년 10월 21일 중립국 센츄리움에서 루이나와 사비에트가 체결한 양자 군비통제 협정이다. 궤도와 부분궤도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양국의 조기경보위성과 직통선 통신위성을 '보호 위성'으로 지정해 그 파괴·접근·방해를 금지했으며, 궤도에 파편을 남기는 위성 요격 시험을 금지했다. 1988년 6월 1일 발효되어 랜드해협 우주경쟁의 제1차 경쟁을 사실상 끝낸 문서로 평가된다.

협정의 핵심은 제3조의 보호 위성 조항이다. 탄도미사일이 해협을 건너는 데 7분 안팎이면 충분한 환경에서, 상대의 조기경보위성에 다가가는 행위는 선제공격의 준비와 구별되지 않았다. 1984년 정지궤도 위기에서 이를 체감한 양국은 상대가 먼저 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고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서로의 눈을 지켜 주는 것이라는 데 합의했다. 이 때문에 협정은 흔히 "서로의 눈을 찌르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요약된다.

반면 협정은 궤도를 비무장화하지 않았다. 위성 요격 무기의 보유와 개발, 파편을 남기지 않는 요격 시험, 정찰위성의 운용, 보호 위성이 아닌 위성에 대한 전파 방해는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협정은 25년간 유지되었지만, 이 공백과 몇몇 조항의 모호함이 2000년대 들어 차례로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2013년 6월 17일 사비에트가 탈퇴를 통보했고, 협정은 6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17일 효력을 잃었다.

2. 명칭 [편집]

정식 명칭은 「루이나 공화국과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간의 궤도상 군사활동의 제한과 조기경보 수단의 보호에 관한 협정」이다. 영어 정본의 명칭은 Agreement between the Republic of Ruina and the Union of Saviet Socialist Republics on the Limitation of Military Activities in Orbit and the Protection of Means of Early Warning, 러시아어 정본의 명칭은 Соглашение между Республикой Руина и Союзом Савь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об ограничении военной деятельности на орбите и защите средств раннего предупреждения이다.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협상과 서명이 이루어진 장소에서 딴 통칭으로, 루이나에서는 이 이름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사비에트에서는 '센츄리움 협정'이라는 약칭이 주로 쓰였으며, 루이나 군사 문헌에서는 핵심 조항을 가리켜 '보호 위성 협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3. 배경 [편집]

3.1. 조약 밖의 궤도 [편집]

루이나와 사비에트는 1967년 우주조약 체제에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사비에트는 조약이 "두 초강대국이 궤도를 나눠 갖기 위한 문서"라며 서명을 거부했고, 루이나는 서명했지만 1968년 3월 14일 상원의 비준 동의안이 재적 3분의 2에 7표 모자라 부결되었다. 이후 20년간 랜드해협의 궤도는 궤도 핵무기를 금지하는 어떤 국제 규범의 적용도 받지 않았고, 사비에트는 1968년부터 부분궤도 폭격체계 「메치」를 실전 배치했다. 양국이 함께 가입한 우주 관련 조약은 1963~1964년의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이 사실상 유일했다.

3.2. 1984년 5월 [편집]

협정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4년 5월 11일부터 23일까지의 정지궤도 위기였다. 사비에트의 「궤도 연구 위성 1127호」가 루이나의 조기경보위성 WATCHFIRE 4호로부터 40km 거리까지 접근하자, 루이나는 이를 선제공격에 앞서 루이나의 눈을 멀게 하려는 사전 작업일 수 있다고 판단해 경계태세를 올리고 전략잠수함 9척을 긴급 출항시켰다. 사비에트는 이를 다시 선제공격 준비로 해석했다. 12일간 직통선으로 17차례 교신한 끝에 1127호가 물러나면서 위기는 끝났지만, 양국 군부는 조기경보위성에 대한 접근이 그 의도와 관계없이 전쟁을 부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3.3. AQ-7 시험 [편집]

1985년 봄 양국은 중립국 센츄리움의 중재로 궤도 문제에 관한 협상을 그해 11월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두 달을 앞둔 9월 26일 루이나 공군이 공중발사 요격 미사일 AQ-7로 고도 530km의 자국 기상위성을 파괴하면서 협상은 시작도 전에 무산될 뻔했다. 사비에트는 이를 "궤도 환경에 대한 도발"로 규정하고 협상 불참을 경고했다. 협상은 결국 예정대로 열렸지만, 사비에트 대표단은 첫 회담에서 AQ-7 시험으로 생긴 파편 285개의 목록을 회의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4. 협상 [편집]

협상은 1985년 11월 12일부터 1987년 10월까지 센츄리움에서 모두 14차례 열렸다. 루이나 측 수석대표는 에드워드 J. 휘트먼 대사, 사비에트 측 수석대표는 대외인민위원회 제1부위원장 게오르기 A. 말리셰프였으며, 센츄리움 외무부의 아르노 L. 페터스가 중재자로 회담을 주재했다.

4.1. 제1단계: 의제 (1985년 11월~1986년 6월) [편집]

제1~5차 회담은 무엇을 협상할지를 두고 공전했다. 루이나는 사비에트의 메치 폐기와 조기경보위성 보호를 의제로 요구했고, 사비에트는 위성 요격 무기 전반의 금지를 요구했다. 사비에트의 요구는 루이나의 KINGFISHER와 AQ-7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이 경우 사비에트의 야스트레브도 함께 폐기해야 했다. 루이나는 요격 무기 금지는 검증이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요격 무기는 발사체와 겉모습이 다르지 않고, 궤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요격 무기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루이나의 논리였다.

4.2. 제2단계: 메치와 요격 무기 (1986년 9월~1987년 3월) [편집]

제6~8차 회담에서 양측은 한 발씩 물러섰다. 사비에트는 메치 폐기 협상에 응하는 대신 요격 무기의 '보유'가 아니라 '파편을 남기는 시험'을 금지하는 방안을 받아들였고, 루이나는 자국이 보유하지 않은 궤도 핵무기의 금지 조항을 사비에트와 똑같이 지는 대칭 구조를 수용했다. 보유 대신 시험을 막는 방식은 검증이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파편은 양국의 궤도 추적망에 반드시 잡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의 최대 쟁점은 '부분궤도'의 정의였다. 사비에트는 메치가 궤도를 한 바퀴 다 돌지 않으므로 궤도 무기가 아니라는 주장을 1968년부터 유지해 왔다. 루이나는 궤도 속도에 도달한 모든 물체를 규제 대상에 넣는 정의를 요구했고, 사비에트는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탄도미사일은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문구를 얻어 냈다. 이 합의는 제1조 제3호로 정리되었다.

미사일 방어 문제도 이 단계에서 제기되었다. 사비에트는 대기권 밖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무기도 위성을 요격할 수 있으므로 협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루이나는 미사일 방어는 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며 거부했다. 양측은 이 문제를 조문에서 아예 빼는 것으로 타협했다. 협정에 적히지 않은 이 타협은 15년 뒤 협정을 무너뜨리는 첫 균열이 되었다.

4.3. 제3단계: 센츄리움 공식 (1987년 4월~10월) [편집]

마지막 쟁점은 보호 위성에 대한 접근 금지 거리였다. 루이나는 정지궤도에서 100km를, 사비에트는 20km를 제시했다. 루이나는 1984년 1127호의 40km 접근이 전략잠수함을 출항시킬 만큼 위협적이었다는 점을 들었고, 사비에트는 정지궤도에서 20k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요격이 불가능하다는 기술적 근거를 댔다. 1987년 6월 9일 제9차 회담에서 페터스는 정지궤도 50km, 그 밖의 궤도 25km라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양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안은 이후 '센츄리움 공식'으로 불리게 된다. 정지궤도 50km라는 거리는 1984년의 40km 접근이 협정 아래에서라면 명백한 위반이 되도록 정한 것이었다.

레이저 조항도 이 단계에서 추가되었다. 루이나는 1976년 타르칸 섬광 사건 이후 사비에트가 지상 레이저로 위성의 센서를 멀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의심해 왔고, 파괴와 접근만 금지하면 레이저 조사라는 우회로가 남는다고 주장했다. 사비에트는 타르칸 사건에 대해서는 끝까지 언급하지 않은 채 레이저 조사와 전파 방해를 '방해'에 포함하는 문구에 동의했다. 이 문구는 제3조 제3항이 되었다.

협상 대표단은 1987년 10월 제14차 회담에서 최종 문안에 가서명했다.

5. 서명과 비준 [편집]

협정은 1987년 10월 21일 센츄리움에서 루이나 제25대 대통령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와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니콜라이 S. 트로핀이 서명했다. 두 정상이 직접 만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루이나 상원의 비준 동의 과정에서는 협정이 사비에트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루이나가 가진 KINGFISHER와 AQ-7은 시험을 할 수 없게 되는 반면 사비에트의 야스트레브는 1982년 이후 이미 시험을 멈춘 상태였고, 사비에트가 폐기하는 메치는 이미 WATCHFIRE 때문에 전략적 가치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찬성 측은 메치의 폐기와 현장 사찰의 수용이 사비에트로서는 처음 있는 양보이며, 보호 위성 조항은 7분의 해협에서 루이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라고 반박했다. 1988년 3월 15일 비준 동의안은 재적 3분의 2를 11표 넘겨 통과되었다. 20년 전 우주조약의 비준 동의안이 7표 차로 부결되었던 바로 그 상원이었다.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는 1988년 4월 26일 만장일치로 협정을 비준했다. 1988년 6월 1일 센츄리움에서 비준서가 교환되면서 협정은 발효되었다.

6. 조약문 [편집]

협정은 전문과 본문 16개조, 부속서 2개, 의정서 1개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는 본문 전문(全文)과 조항별 해설이다.

6.1. 전문 [편집]

루이나 공화국과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하 "당사국"이라 한다)은,
궤도에서의 군사활동이 당사국 사이에 오해와 오판을 불러일으켜 핵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조기경보 수단의 안전이 전략적 안정의 필수적 조건임을 확인하며,
우주물체의 접근이 그 의도와 관계없이 공격의 준비와 구별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음을 인정하고,
궤도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당사국 공동의 이익임을 고려하며,
궤도에서의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실효적 조치를 취하기를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전문 넷째 문단의 "우주물체의 접근이 그 의도와 관계없이 공격의 준비와 구별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음"이라는 구절은 1984년 정지궤도 위기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그 교훈을 적은 것으로 해석된다. 협상 기록에 따르면 루이나는 초안에 "1984년 5월의 사태"를 명시하자고 제안했으나, 사비에트가 이 경우 1127호의 의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며 반대해 지금의 문구가 되었다.

6.2. 제1조(정의) [편집]

제1조(정의) 이 협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우주물체"란 궤도 또는 부분궤도에 투입된 인공 물체와 그 구성 부분 및 그 운반체를 말한다.
2. "궤도"란 물체가 지구 둘레를 1회 이상 도는 궤적을 말한다.
3. "부분궤도"란 궤도 속도에 도달한 물체가 지구 둘레를 1회 완전히 돌기 전에 지표로 돌아오도록 설계되거나 그렇게 운용되는 궤적을 말한다. 다만, 궤도 속도에 도달하지 아니하는 탄도미사일의 궤적은 제외한다.
4. "핵무기"란 핵분열 또는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모든 폭발 장치를 말한다.
5. "요격 무기"란 우주물체를 파괴하거나 그 기능을 상실시킬 목적으로 설계된 무기를 말한다.
6. "요격 시험"이란 요격 무기의 성능을 확인할 목적으로 우주물체를 표적으로 하여 요격을 실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7. "파편"이란 요격 또는 폭발의 결과로 발생한 물체로서 당사국의 궤도 추적 수단으로 추적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8. "직통선"이란 벨포르와 크라슬리스크 사이에 설치된 정부 간 직통 통신망을 말한다.
9. "위원회"란 제8조에 따라 설치되는 센츄리움 상설협의위원회를 말한다.


제3호는 협상 제2단계의 산물로, 사비에트가 1968년부터 유지해 온 "메치는 궤도를 한 바퀴 다 돌지 않으므로 궤도 무기가 아니다"라는 논리를 무력화하기 위한 조항이다. 기준을 '한 바퀴'가 아니라 '궤도 속도 도달'에 둠으로써 메치는 명백히 규제 대상이 되었다. 사비에트는 그 대가로 단서를 얻어 내 K-7을 비롯한 탄도미사일이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다.

제6호의 정의는 이후 협정의 운명을 가른 조항 가운데 하나다. '요격 시험'을 "성능을 확인할 목적"으로 한정한 이 정의 때문에, 같은 요격이라도 목적을 달리 주장하면 제4조의 적용을 피할 여지가 생겼다. 2011년 사비에트는 자국 퇴역 기상위성의 파괴를 "시험이 아닌 폐기"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가 바로 이 호였다.

6.3. 제2조(궤도 핵무기의 금지) [편집]

제2조(궤도 핵무기의 금지) ① 각 당사국은 핵무기를 탑재한 우주물체를 궤도 또는 부분궤도에 배치하거나 배치를 시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각 당사국은 궤도 또는 부분궤도에서 핵무기를 시험하여서는 아니 되며, 핵무기의 탑재를 모의한 운반 수단을 부분궤도로 비행시키는 시험도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각 당사국은 제1항에 따른 배치를 목적으로 하는 운반 수단과 그 발사 시설을 개발·생산·보유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각 당사국은 이 협정의 발효일부터 3년 이내에 제3항에 해당하는 운반 수단과 발사 시설을 부속서 2에서 정하는 절차에 따라 모두 폐기한다.


형식상으로는 양국에 똑같이 적용되는 대칭 조항이지만, 실제로 폐기할 대상을 가진 나라는 사비에트뿐이었다. 루이나는 1969~1971년 궤도 핵무기 연구 HIGH TIDE를 진행했으나 배치하지 않았다. 제4항에 따라 사비에트는 사르다 발사장의 메치 발사대 18기와 운반 로켓을 폐기해야 했다.

제2항 후단은 핵탄두를 싣지 않은 운반 수단의 부분궤도 비행 시험까지 금지한 것이다.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이 이미 우주에서의 핵폭발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이 조항의 실질적 의미는 1967년 KESTREL이 포착한 것과 같은 메치의 무장 없는 비행 시험을 막는 데 있었다.

6.4. 제3조(보호 위성) [편집]

제3조(보호 위성) ① 각 당사국은 부속서 1에 등재된 상대 당사국의 위성(이하 "보호 위성"이라 한다)을 파괴하거나 손상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 기능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각 당사국은 자국의 우주물체를 보호 위성으로부터 정지궤도에서는 50킬로미터, 그 밖의 궤도에서는 25킬로미터 이내로 접근시켜서는 아니 된다. 다만, 상대 당사국의 사전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보호 위성을 향한 레이저 조사, 전파 방해 및 이에 준하는 행위는 제1항의 방해로 본다.
④ 각 당사국은 매년 1월 1일 부속서 1을 갱신하여 상대 당사국에 통보한다. 부속서 1에 새로 등재하는 위성은 조기경보 또는 직통 통신을 주된 임무로 하는 것에 한한다.


협정의 핵심 조항이다. 보호의 대상은 조기경보위성과 직통선 통신위성 두 종류로 한정되었다. 둘 다 상대가 먼저 쏘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리고 위기 때 오해를 풀 통로와 직결된 위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찰위성과 항법위성, 해양감시위성은 보호 대상에서 빠졌는데, 이들은 전쟁을 수행하는 수단이지 전쟁을 막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 양측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제2항의 50km와 25km는 협상 제3단계에서 합의된 '센츄리움 공식'이다. 정지궤도 밖의 궤도에 더 짧은 거리를 둔 것은 고타원궤도나 저궤도에서는 상대 속도가 빨라 25km만 떨어져 있어도 요격 기동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기술적 판단 때문이었다. 단서의 '사전 동의'는 고장 위성의 점검이나 충돌 회피처럼 부득이한 접근을 위한 것이었으나, 협정이 유지된 25년 동안 실제로 동의가 요청된 사례는 2건에 불과했다.

제3항은 루이나가 타르칸 섬광 사건을 염두에 두고 요구한 조항이다. 물리적 파괴나 접근이 없더라도 레이저나 전파로 센서와 통신을 무력화하는 것 역시 '방해'로 간주함으로써, 보호의 범위를 기능의 유지까지 넓혔다.

제4항 후단의 "주된 임무"라는 표현은 협정의 가장 큰 약점이 되었다. 1980년대의 조기경보위성은 조기경보만 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하나의 위성이 조기경보와 미사일 방어용 표적 추적, 통신 중계를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2009년 루이나가 등재한 WATCHFIRE III를 사비에트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이 위성의 '주된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었다.

6.5. 제4조(파편을 남기는 요격 시험의 금지) [편집]

제4조(파편을 남기는 요격 시험의 금지) ① 각 당사국은 궤도에 파편을 남기는 요격 시험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표적이 자국의 우주물체인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요격 무기의 개발·생산·보유와 파편을 남기지 아니하는 요격 시험은 이 협정에 따라 제한되지 아니한다. 다만, 제3조의 적용을 받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당사국은 요격 시험의 결과 예상하지 못한 파편이 발생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과 추적 자료를 상대 당사국에 통보하여야 한다.


협상 제2단계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사비에트가 요구한 요격 무기 전면 금지 대신 '파편을 남기는 시험'만 금지함으로써, 양국은 요격 무기를 그대로 보유하면서 그 신뢰도를 실제 요격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파편은 양국의 추적망에 반드시 잡히므로 위반 여부를 검증하기 쉽다는 것이 이 방식의 장점이었다.

제1항 후단의 "표적이 자국의 우주물체인 경우에도"라는 문구가 중요하다. 제1차 경쟁 기간 양국이 실시한 모든 요격 시험은 자국 표적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 문구가 없었다면 조항은 사실상 아무것도 금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2항에 따라 요격체를 표적에 접근시키되 기폭하지 않는 비파괴 시험은 허용되었고, 사비에트는 협정 발효 후 야스트레브로 이러한 시험을 두 차례 실시했다.

이 조항은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분쟁의 중심이 되었다. 2008년 루이나의 L-217 격추에 대해 사비에트는 이 조의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2011년 사비에트의 기상위성 파괴에 대해서는 루이나가 같은 주장을 했다. 두 사건 모두 행위를 한 쪽은 그것이 '요격 시험'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6.6. 제5조(발사의 통보) [편집]

제5조(발사의 통보) ① 각 당사국은 궤도 또는 부분궤도에 우주물체를 투입하기 위한 모든 발사에 대하여 발사 예정 시각 72시간 전까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상대 당사국에 통보한다.
1. 발사장
2. 발사 예정 시간대
3. 투입 예정 궤도의 경사각과 고도의 범위
4. 투입 예정 우주물체의 수
② 각 당사국은 제1항에 따라 통보한 발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통보한다.
③ 제1항의 통보에는 우주물체의 임무를 포함하지 아니한다.
④ 이 조에 따른 통보는 직통선을 통하여 한다.


해협의 7분이라는 조건에서 예고 없는 로켓 발사는 조기경보위성에 탄도미사일 공격과 똑같이 잡혔다. 발사 통보는 상대의 조기경보망이 우주 발사를 공격으로 오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1982년 6월 18일 사비에트가 약 6시간 사이에 탄도미사일과 요격 미사일, 위성을 잇달아 발사한 '6시간 전쟁'이 이 조항의 필요성을 보여 준 사례로 거론되었다.

제3항은 양국이 모두 원한 조항이다. 발사 사실은 알리되 무엇을 쏘는지는 알리지 않음으로써, 양국은 군사 위성의 임무를 비밀로 유지하면서도 오인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6.7. 제6조(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우주물체의 제거) [편집]

제6조(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우주물체의 제거) ① 당사국은 자국의 우주물체가 통제를 상실하여 그 재돌입이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우주물체를 궤도에서 제거할 수 있다. 이 경우 제4조 제1항은 적용하지 아니한다.
② 제1항에 따라 우주물체를 제거하려는 당사국은 실시 예정 시각 72시간 전까지 제거의 사유와 방법, 실시 예정 고도, 예상되는 파편의 규모를 상대 당사국에 통보하여야 한다.
③ 상대 당사국은 제2항에 따른 통보를 받은 경우 위원회에서의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협의의 요청은 제거의 실시를 정지시키지 아니한다.
④ 제1항에 따른 제거는 파편이 궤도에 오래 남지 아니하도록 가능한 한 낮은 고도에서 실시하여야 한다.


통제를 잃은 위성이 인구 밀집 지역에 떨어지는 경우에 대비한 예외 조항이다. 1981년 사비에트 볼나 14호의 추락처럼 위험한 물질을 실은 위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요격으로 이를 미리 제거하는 것을 허용했다.

문제는 '중대한 위험'의 판단을 제거하려는 당사국이 스스로 한다는 점, 그리고 제3항 단서에 따라 상대국의 협의 요청이 제거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2008년 7월 루이나는 통제를 잃은 국가정찰국 위성 L-217을 이 조항에 따라 격추했다. 루이나는 72시간 전 통보 의무를 지키고 고도 247km라는 낮은 고도에서 요격해 제4항도 준수했다고 주장했지만, 사비에트는 위험의 판단이 일방적이었고 실제로는 해상 기반 요격 미사일의 성능 시험이었다며 제4조 위반이라고 맞섰다.

6.8. 제7조(검증) [편집]

제7조(검증) ① 각 당사국은 이 협정의 준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인정된 국제법 원칙에 합치하는 방식으로 자국이 보유한 국가 기술 수단을 사용한다.
② 각 당사국은 제1항에 따라 이 협정의 준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운용되는 상대 당사국의 국가 기술 수단을 고의로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각 당사국은 국가 기술 수단에 의한 검증을 저해하는 고의적 은폐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제2조 제4항에 따른 폐기의 이행은 부속서 2에서 정하는 현장 사찰로 확인한다.


'국가 기술 수단'은 정찰위성과 궤도 추적 레이더, 신호정보 수단을 완곡하게 가리키는 표현이다. 제2항은 상대의 정찰위성이 협정 준수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한 이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정찰위성을 보호 위성에 넣지 않은 공백을 일부 메우는 조항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협정은 어떤 위성이 국가 기술 수단인지 목록을 두지 않았다. 루이나는 협상 과정에서 정찰위성도 목록에 넣자고 요구했으나, 전시 요격 대상을 스스로 좁히게 된다는 이유로 사비에트가 반대했다. 결국 목록 없는 문구만 남았고, 어떤 정찰위성이 그 순간 '협정의 준수를 확인하기 위하여 운용'되고 있었는지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제2항은 실제로 원용된 적이 없다.

제4항은 사비에트가 처음으로 자국 영토 안의 군사 시설에 대한 외국의 현장 사찰을 받아들인 조항이다. 루이나 상원의 비준 동의 과정에서 찬성 측이 가장 강조한 조항이기도 했다.

6.9. 제8조(센츄리움 상설협의위원회) [편집]

제8조(센츄리움 상설협의위원회) ① 당사국은 이 협정의 목적과 규정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하여 센츄리움 상설협의위원회를 설치한다.
②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다룬다.
1. 이 협정의 준수와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의 협의
2. 부속서 1의 등재에 대한 이의의 협의
3. 제6조 제3항에 따른 협의
4. 궤도 물체의 추적 자료 교환에 관한 사항
5. 이 협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조치의 검토
③ 위원회는 각 당사국이 임명하는 대표 1명과 그 보좌진으로 구성하며, 연 2회 이상 센츄리움에서 회합한다. 어느 당사국이든 요청하면 15일 이내에 임시 회합을 연다.
④ 위원회의 결정은 당사국 대표의 합의로 한다.
⑤ 위원회의 운영에 관한 세부 사항은 의정서로 정한다.


협정의 이행을 관리하는 상설 기구다. 위원회는 협정이 유지된 25년 동안 정기 회합 52회, 임시 회합 9회를 열었다. 제2항 제4호에 근거해 1991년 궤도 물체 목록을 정기적으로 교환하는 부속 합의가 체결되었는데, 이는 상대의 위성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추적망이 충돌 회피라는 공동의 목적에 쓰인 첫 사례였다.

그러나 제4항의 합의 원칙은 위원회를 분쟁 해결 기구가 아니라 분쟁 확인 기구로 만들었다. 어느 한쪽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2002년 이후의 주요 분쟁은 모두 위원회에 상정되었지만 한 건도 해결되지 않았다.

6.10. 제9조(궤도 긴급 사태의 통보) [편집]

제9조(궤도 긴급 사태의 통보) ① 각 당사국은 자국의 보호 위성에 대하여 제3조를 위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행위를 탐지한 경우 직통선을 통하여 즉시 상대 당사국에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요청을 받은 당사국은 12시간 이내에 답변하여야 한다.
③ 각 당사국은 자국의 우주물체가 고장 등으로 통제를 잃어 상대 당사국의 보호 위성에 접근할 우려가 있는 경우 즉시 그 사실을 상대 당사국에 통보하여야 한다.
④ 당사국은 이 협정에 따른 통보와 협의를 위하여 직통선을 상시 유지한다.


1984년 정지궤도 위기의 교훈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 조항이다. 당시 사비에트는 1127호가 추진기 고장으로 표류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 설명이 나온 것은 위기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뒤였다. 제3항은 이런 경우 상대가 묻기 전에 먼저 알리도록 의무화했고, 제2항은 질문을 받은 쪽이 12시간 안에 답하도록 했다. 12일 걸렸던 1984년의 확인 과정을 1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것이 이 조항의 취지였다.

협정이 유지된 기간 동안 이 조항에 따른 설명 요청은 모두 4건이 있었으며, 모두 12시간 안에 답변이 이루어졌다.

6.11. 제10조(원자력 전원을 탑재한 우주물체) [편집]

제10조(원자력 전원을 탑재한 우주물체) ① 원자력 전원을 탑재한 우주물체를 운용하는 당사국은 그 우주물체가 고장으로 대기권에 재돌입할 우려가 있는 경우 즉시 상대 당사국에 통보하고, 예상되는 재돌입 시각과 지역, 탑재된 방사성 물질의 종류와 양을 알려야 한다.
② 제1항의 우주물체에서 나온 방사성 잔해가 상대 당사국의 영역에 떨어진 경우, 그 우주물체를 운용한 당사국은 상대 당사국의 요청에 따라 잔해의 수색과 회수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제공하고 그 비용을 부담한다.


1981년 볼나 14호 추락 사건에서 나온 조항이다. 당시 루이나는 4개월에 걸친 수색 작전 GLEANER로 방사성 파편 47점을 회수하고 1,380만 달러를 사비에트에 청구했지만, 사비에트는 1983년 그 가운데 410만 달러만 지급했다. 협상에서 사비에트는 앞으로의 비용 전액 부담을 받아들였고, 루이나는 그 대가로 1981년 사건의 미지급액 970만 달러에 대한 청구를 포기했다.

이 조항은 원자로를 탑재한 사비에트 해양감시위성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었지만 문구는 대칭으로 쓰였다. 협정이 유지된 기간 동안 이 조항이 적용된 사고는 없었다.

6.12. 제11조(다른 국제협정과의 관계) [편집]

제11조(다른 국제협정과의 관계)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당사국이 다른 국제협정에 따라 지는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표준적인 조항이지만, 우주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두 나라 사이의 협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양국이 함께 지는 우주 관련 의무는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뿐이었고, 이 조항은 그 의무가 협정으로 약화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루이나 상원의 비준 청문회에서는 이 협정이 사실상 랜드해협판 우주조약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참에 우주조약 자체를 다시 비준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6.13. 제12조(제3국과의 관계) [편집]

제12조(제3국과의 관계) ① 각 당사국은 이 협정의 규정에 저촉되는 국제적 의무를 지지 아니한다.
② 각 당사국은 제3국의 영역이나 시설을 이용하여 이 협정이 금지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항은 동맹국의 영토나 발사장을 이용한 우회를 막기 위한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당사국이 제3국을 '이용하는' 경우만 규율할 뿐, 제3국이 스스로 하는 행위는 다루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오늘날 통합공군 산하에 우주미사일군을 둔 유고랜드는 루이나의 동맹국이지만 협정의 당사국이 아니었으므로, 그 우주 전력은 처음부터 협정의 규율 밖에 있었다. 협정은 루이나와 사비에트 두 나라의 행동만을 묶었고, NLTO와 해르샤바 조약기구의 다른 회원국들은 그 바깥에 있었다.

6.14. 제13조(개정) [편집]

제13조(개정) ① 각 당사국은 이 협정의 개정을 제안할 수 있다.
② 개정은 제15조에서 정하는 절차에 따라 효력을 발생한다.


협정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1998년 제2차 재검토 회의에서 루이나가 '주된 임무'의 정의를 보완하는 개정을 제안했으나, 사비에트는 미사일 방어 문제를 함께 다루지 않으면 개정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서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6.15. 제14조(유효기간과 탈퇴) [편집]

제14조(유효기간과 탈퇴) ① 이 협정은 무기한 효력을 가진다.
② 각 당사국은 이 협정의 대상과 관련된 비상한 사태가 자국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하였다고 판단하는 경우 주권을 행사하여 이 협정에서 탈퇴할 권리를 가진다. 탈퇴하려는 당사국은 탈퇴 6개월 전에 상대 당사국에 그 결정을 통보하여야 하며, 그 통보에는 자국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한 것으로 판단하는 비상한 사태에 관한 설명을 포함하여야 한다.
③ 당사국은 이 협정이 발효한 후 5년마다 위원회에서 이 협정의 운용을 재검토한다.


제2항의 탈퇴 조항은 당시 군비통제 조약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 것이다. 탈퇴의 요건인 '비상한 사태'와 '최고 이익'은 모두 탈퇴하려는 당사국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되어 있어, 사실상 6개월 전 통보만으로 언제든 탈퇴할 수 있었다. 2013년 6월 17일 사비에트는 이 조항에 따라 탈퇴를 통보했으며, 통보문에 적힌 '비상한 사태'는 루이나의 해상 기반 미사일 방어 체계였다.

제3항에 따른 재검토 회의는 1993년, 1998년, 2003년, 2008년 네 차례 열렸다. 1993년 회의는 메치 폐기 완료를 확인하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끝났지만, 2003년 회의부터는 미사일 방어 문제로 공동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고, 2008년 회의는 L-217 격추 직후에 열려 개막 이틀 만에 결렬되었다.

6.16. 제15조(비준과 발효) [편집]

제15조(비준과 발효) ① 이 협정은 각 당사국의 헌법 절차에 따라 비준되어야 한다.
② 이 협정은 비준서를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루이나 상원은 1988년 3월 15일, 사비에트 최고인민평의회는 같은 해 4월 26일 협정을 비준했다. 비준서는 1988년 6월 1일 센츄리움에서 교환되었다.

6.17. 제16조(정본) [편집]

제16조(정본) 이 협정은 1987년 10월 21일 센츄리움에서 동등하게 정본인 영어와 러시아어로 각 2부씩 작성되었다. 당사국은 그 등본 1부를 센츄리움 정부에 기탁한다.
루이나 공화국을 위하여
리처드 앨런 베인브리지
루이나 공화국 대통령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위하여
니콜라이 S. 트로핀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최고인민평의회 주석


양자 협정에서 제3국에 등본을 기탁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는 협상을 중재한 센츄리움에 대한 예우인 동시에, 어느 한쪽이 협정문을 임의로 해석하거나 부인하지 못하도록 중립국을 증인으로 세운다는 의미가 있었다. 센츄리움 정부는 협정이 실효된 뒤에도 등본을 보관하고 있다.

7. 부속서와 부속 문서 [편집]

7.1. 부속서 1: 보호 위성의 등재 [편집]

부속서 1(보호 위성의 등재)
1. 각 당사국이 부속서 1에 등재할 수 있는 위성은 12기를 넘지 못한다.
2. 등재 통보에는 위성의 명칭, 국제 식별 부호, 궤도 요소 및 주된 임무를 포함한다.
3. 각 당사국은 제3조 제4항에 따른 정기 갱신 외에도 새로 발사한 위성을 발사 후 30일 이내에 임시로 등재할 수 있다. 임시 등재는 다음 정기 갱신 때까지 효력을 가진다.
4. 상대 당사국은 등재 통보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등재된 위성이 제3조 제4항의 요건을 충족하지 아니한다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5. 제4항에 따라 이의가 제기된 위성은 위원회의 협의가 끝날 때까지 등재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
6. 이 협정 발효 시의 보호 위성 목록은 별표와 같다.


협정 발효 당시 등재된 보호 위성은 다음과 같다.
구분
루이나
사비에트
조기경보위성
WATCHFIRE 4기
마야크 5기
직통선 통신위성
2기
2기
계
6기
7기

루이나의 WATCHFIRE 4기는 모두 정지궤도에, 사비에트의 조기경보위성 「마야크(Маяк)」 5기는 정지궤도 2기와 고타원궤도 3기로 나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제3조 제2항의 접근 금지 거리는 루이나 위성에는 모두 50km가, 사비에트 위성에는 50km와 25km가 섞여 적용되었다.

제5항은 협정 전체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규정으로 평가된다. 이의가 제기된 위성은 위원회의 협의가 끝날 때까지 보호받지 못하는데, 제8조 제4항에 따라 위원회는 합의로만 결정할 수 있었다. 즉 상대국이 이의를 제기하고 끝까지 동의하지 않으면, 그 위성은 영원히 보호 위성이 될 수 없었다. 이 규정은 사실상 각 당사국에 상대국 보호 위성에 대한 거부권을 준 셈이었고, 2009년 분쟁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7.2. 부속서 2: 운반 수단과 발사 시설의 폐기 [편집]

부속서 2(궤도 핵무기 운반 수단과 발사 시설의 폐기)
1. 폐기 대상은 제2조 제3항에 해당하는 운반 수단과 그 발사 시설 및 지원 시설로 하며, 그 목록은 별표와 같다.
2. 폐기는 다음 각 목의 방법으로 한다.
가. 발사대: 발사 구조물을 철거한 뒤 기초를 폭파하고 매립한다.
나. 운반 로켓: 추진제를 배출한 뒤 세 토막 이상으로 절단한다.
다. 탄두 구획: 원형을 알아볼 수 없도록 압착한다.
3. 폐기하는 당사국은 각 폐기 작업의 일정을 실시 60일 전까지 상대 당사국에 통보한다.
4. 상대 당사국은 폐기 기간 중 6회 이내의 현장 사찰을 실시할 수 있다. 사찰단은 10명 이내로 하며, 사찰 요청 후 72시간 이내에 입국하여 7일 이내 체류한다.
5. 폐기하는 당사국은 폐기를 마친 날부터 30일 이내에 최종 보고서를 상대 당사국에 제출한다.


부속서 2의 별표에는 사르다 발사장의 메치 발사대 18기와 부분궤도 운반 로켓 전량, 탄두 구획, 연료 저장고를 비롯한 지원 시설이 올라 있었다. 형식은 폐기하는 당사국을 특정하지 않는 일반 규정이었지만, 실제로 적용된 나라는 사비에트뿐이었다.

7.3. 의정서 [편집]

협정과 함께 서명된 「센츄리움 상설협의위원회의 운영에 관한 의정서」는 위원회의 구성과 절차를 정했다. 주요 내용은 위원회 회의의 비공개, 의사록의 비공개(양측이 합의한 경우에만 공개), 센츄리움에 두는 소규모 사무국, 위원회 경비의 균등 분담, 회의장의 센츄리움 정부 제공 등이다.

7.4. 1991년 부속 합의서 [편집]

1991년 양국은 제8조 제2항 제4호에 근거해 「궤도 물체 추적 자료의 교환에 관한 부속 합의서」를 체결했다. 양국은 이 합의에 따라 각자의 궤도 추적망이 산출한 궤도 물체 목록을 매주 교환하고, 자국 위성과 상대국 위성 또는 파편 사이에 충돌 위험이 예측되면 72시간 전에 통보하기로 했다. 상대의 위성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추적망이 처음으로 충돌 회피라는 공동의 목적에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합의로 받아들여졌다.

8. 이행 [편집]

8.1. 메치의 폐기 [편집]

사비에트는 1988년 8월 메치 발사대의 폐기를 시작했다. 루이나 사찰단은 1988년 9월 첫 현장 사찰을 위해 사르다에 들어갔는데, 루이나 사람이 사비에트의 발사장에 공식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사찰은 부속서 2가 허용한 6회를 모두 채워 실시되었고, 1990년 5월 18일 마지막 사찰에서 18기 전부의 폐기가 확인되었다. 폐기 기한보다 1년 이상 이른 완료였다.

사찰 과정에서 사비에트는 사찰단의 동선을 엄격히 제한했지만, 부속서 2가 정한 절차는 대체로 준수되었다. 1993년 제1차 재검토 회의는 양측이 공동 성명에서 "제2조와 부속서 2의 의무가 완전히 이행되었다"고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8.2. 조용한 15년 [편집]

발효 이후 약 15년간 협정은 대체로 순조롭게 운용되었다. 파편을 남기는 요격 시험은 한 번도 없었고, 보호 위성 가까이 상대의 위성이 접근한 사례도 없었다. 사비에트는 제4조 제2항에 따라 야스트레브로 표적에 접근하되 기폭하지 않는 비파괴 시험을 두 차례 실시했으며, 루이나는 이를 협정 위반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협정은 양국의 요격 무기 자체도 퇴장시켰다. 실제 요격으로 신뢰도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루이나 공군의 AQ-7은 1988년 취소되었고 해군의 KINGFISHER는 1990년 퇴역했다. 사비에트의 야스트레브도 1993년 상시 발사 대기 태세를 해제하고 1996년 퇴역했다. 협정이 요격 무기의 보유를 금지하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제1세대 요격 무기가 모두 사라진 것은, 시험할 수 없는 무기를 유지할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9. 균열과 탈퇴 [편집]

9.1. 미사일 방어 (2002~2003) [편집]

첫 균열은 협상 때 조문에서 빼 두었던 바로 그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 루이나 국방부는 미사일방어국 주도로 해상 기반 중간단계 요격 체계의 개발에 착수했다. 대기권 밖에서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이 체계는 기술적으로 저궤도 위성도 요격할 수 있었다. 사비에트는 위원회 임시 회합을 요청해 이 체계가 협정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주장했으나, 루이나는 미사일 방어는 협정의 대상이 아니며 협상 당시 양측이 이를 조문에 넣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 2003년 제3차 재검토 회의는 이 문제로 공동 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채 끝났다.

9.2. L-217 격추 (2008) [편집]

2008년 7월 루이나 해군은 통제를 잃은 국가정찰국 위성 L-217을 해상 기반 요격 미사일로 고도 247km에서 격추했다. 루이나는 제6조를 근거로 들었고, 72시간 전 통보와 낮은 고도에서의 요격이라는 요건을 모두 지켰다고 밝혔다. 사비에트는 제6조 제3항에 따라 위원회 협의를 요청했으나, 같은 항 단서에 따라 협의 요청은 격추를 멈추지 못했다. 사비에트는 격추 이후 이것이 안전 조치를 가장한 해상 기반 요격 미사일의 성능 시험이며 제4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열린 제4차 재검토 회의는 개막 이틀 만에 결렬되었다.

9.3. 보호 위성 목록 분쟁 (2009) [편집]

2009년 1월 1일 정기 갱신에서 루이나는 차세대 조기경보위성 WATCHFIRE III를 부속서 1에 등재했다. 사비에트는 60일 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WATCHFIRE III가 조기경보뿐 아니라 해상 기반 요격 체계의 표적 추적 기능도 갖추고 있어 제3조 제4항의 '조기경보를 주된 임무로 하는' 위성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속서 1 제5항에 따라 WATCHFIRE III는 즉시 보호 위성의 지위를 잃었다.

루이나는 곧바로 사비에트의 신형 조기경보위성 마야크 III의 등재에 같은 논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마야크 III가 사비에트 항공우주방위 체계의 통신 중계 기능을 겸한다는 이유였다. 이로써 양국의 차세대 조기경보위성은 모두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 협정의 보호 위성 목록에는 수명이 다해 가는 구세대 위성들만 남았다. 서로의 눈을 지켜 주기로 한 조항이, 무엇이 눈인가를 두고 무너진 것이다.

9.4. 사비에트의 기상위성 파괴 (2011) [편집]

2011년 9월 3일 사비에트는 지상에서 발사한 요격 미사일로 고도 830km의 자국 퇴역 기상위성을 파괴했다. 추적 목록에 오른 파편만 2,100개가 넘었다. 루이나는 위원회 임시 회합을 요청하고 제4조 위반을 주장했지만, 사비에트는 이것이 요격 무기의 "성능을 확인할 목적"의 요격 시험이 아니라 퇴역 위성의 폐기라고 반박했다. 제1조 제6호의 정의를 그대로 원용한 논리였다. 사비에트는 제6조도 원용하지 않았는데, 고도 830km의 위성은 재돌입 위험이 없어 제6조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비에트는 협정의 어느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 요격을 한 셈이 되었다.

9.5. 탈퇴 (2013) [편집]

2013년 6월 17일 사비에트는 제14조 제2항에 따라 협정 탈퇴를 통보했다.
루이나 공화국이 배치를 확대하고 있는 해상 기반 요격 체계는 궤도의 우주물체를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2008년 7월 실제로 그 능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협정 제4조가 제한하고자 한 바로 그 능력이 협정의 바깥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이러한 사태가 협정의 대상과 관련된 비상한 사태로서 자국의 최고 이익을 위태롭게 하였다고 판단한다.

사비에트 대외인민위원회의 협정 탈퇴 통보문 중, 2013년 6월 17일

루이나 정부는 "사비에트가 협정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해 온 끝에 협정 자체를 버렸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탈퇴는 6개월 뒤인 2013년 12월 17일 효력을 발생했고,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발효 25년 6개월 만에 실효되었다.

10. 실효 이후 [편집]

협정이 사라지자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제3조의 접근 금지 구역이었다. 2015년 3월 사비에트의 정지궤도 사찰 위성 「텐」 2호가 WATCHFIRE III 1호로부터 12km 거리까지 접근해 7주간 머물렀다. 협정이 유효했다면 50km 규정의 명백한 위반이었고, 1984년에는 40km 접근만으로 전략잠수함 9척이 출항했다. 그러나 이번에 루이나는 외교 경로로 항의하는 데 그쳤다. 조기경보가 여러 궤도와 여러 위성에 분산되면서, 위성 한 기에 대한 위협이 더 이상 억지력 전체에 대한 위협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2년 루이나는 파편을 남기는 직상승 위성 요격 시험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협정 제4조의 내용을 협정 없이 혼자 지키겠다는 선언이었지만, 사비에트는 동참하지 않았다.

2024년 양국은 센츄리움에서 '궤도 행동 규범'에 관한 협의를 11년 만에 재개했다. 의제는 근접 접근 시의 사전 통보, 파편 생성 시험의 금지, 조기경보 기능의 상호 보호로, 사실상 센츄리움 궤도협정의 제3조·제4조·제9조를 다시 쓰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협의는 무엇을 조기경보 위성으로 볼 것인가라는 2009년의 문제에 다시 부딪혀 2025년 이후 중단된 상태다.

11. 평가 [편집]

센츄리움 궤도협정은 랜드해협 우주경쟁의 가장 위험한 시기를 끝낸 문서로 평가된다. 궤도 핵무기를 실제로 폐기시켰고, 사비에트가 처음으로 자국 군사 시설에 대한 현장 사찰을 받아들이게 했으며, 조기경보위성을 서로 지켜 주는 것이 곧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는 인식을 제도로 만들었다. 보호 위성이라는 개념은 이후 다른 지역의 군비통제 논의에서도 참고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협정이 유지된 25년 동안 양국은 궤도 문제로 1984년과 같은 위기를 다시 겪지 않았다.

비판은 협정이 무너진 방식에 모인다. 협정이 무너진 네 지점, 즉 미사일 방어, '요격 시험'의 정의, 보호 위성의 '주된 임무', 위원회의 합의 원칙은 모두 협상 당시 합의하지 못한 문제를 모호한 문구로 덮어 두거나 아예 조문에서 뺀 곳이었다. 1987년의 협상가들은 당장의 합의를 위해 해석의 여지를 남겼고, 그 여지는 기술이 변하고 양국 관계가 나빠지자 그대로 분쟁의 근거가 되었다. 또 협정이 핵무기와 보호 위성만을 다루고 재래식 궤도 군비는 사실상 방치했다는 점에서, 협정이 제1차 경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제2차 경쟁의 규칙을 정해 주었을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역사학자 마들렌 R. 고티에는 1998년 저서 《보이지 않는 고지》에서 이 협정을 두고 "무엇을 금지했는지보다 무엇을 금지하지 못했는지가 더 오래 살아남을 문서"라고 썼다. 협정이 실효되기 15년 전의 평가였다.

12. 여담 [편집]

  • 서명식이 열린 센츄리움의 회의장에는 양국이 선물한 위성 모형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루이나는 WATCHFIRE를, 사비에트는 프레드베스트니크 1호를 보냈다. 서로가 상대에게 가장 위협적으로 느꼈던 위성을 골랐다는 해석이 있다.
  • 1988년 9월 첫 현장 사찰 당시 루이나 사찰단은 사르다 발사장 제12발사대 옆에 보존된 휘어진 철조망 울타리를 보고 그 용도를 물었지만, 사비에트 측 안내원은 "기념물"이라고만 답했다. 사찰단 보고서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훼손된 울타리"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이 1961년 사르다 발사장 참사의 흔적이라는 사실은 이듬해 사비에트가 참사를 공식 인정한 뒤에야 알려졌다.
  • 제3조 제2항의 50km와 25km는 모두 센츄리움 중재자 페터스가 제9차 회담 전날 밤 호텔 객실에서 계산기로 산출한 숫자였다고 한다. 페터스는 훗날 회고에서 "두 나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를 찾은 것이지, 옳은 숫자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 협상 대표단은 14차례의 회담 동안 한 번도 공동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양측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기자들 앞에 선 것은 서명식 당일이었다.
  • 센츄리움 정부에 기탁된 협정 등본은 협정 실효 후에도 센츄리움 국립문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2023년 협정 체결 36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13. 관련 문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