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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나 역대 대통령 |
루스탈지아 그래이 Rustalgia Gray | Рустальгия Серы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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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루스탈지아 그래이 Rustalgia Gray |
출생 | 1992년 10월 23일 (33세) |
국적 | |
신체 | 141cm, 38kg, 혈액형 B형 |
종교 | 무교 |
직업 | 루이나 대통령 |
소속 | 루이나 행정부 |
소속 정당 | |
학력 | |
병역 | 육군 제101공수특전여단 (병장 만기전역) |
서명 | |
1. 개요 [편집]
루이나의 11대 대통령이자, 첫 여성 대통령이자, 최연소 대통령이다.
2. 생애 [편집]
=== 유년기===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1992년 10월 23일, 루이나 남부 해안에 자리한 항만 도시 롱비치 시에서 태어났다. 항구 특유의 조용한 바닷바람과,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롱비치 시립병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비교적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둘째 딸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롱비치 도심 개발공사의 토목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지역 보건소의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정치나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가정 안에서는 늘 시사 문제에 대한 토론과 책 읽기가 장려되는 분위기였다[1].
어릴 적 루스탈지아는 조용하면서도 관찰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도 그녀는 혼자 모래를 만지며 가상의 국가를 구상하거나, 벤치에 앉아 그림책을 끝까지 읽고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다섯 살 때는 가족과 함께 방문한 해양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래는 왜 포유류인데 바다에 사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말을 들은 부모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백과사전을 사주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루스탈지아는 한 번 관심을 가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을 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도서관 사서와 친해져 도서관에 출입증도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
롱비치 시립초등학교 시절, 루스탈지아는 또래보다 두세 배 빠른 속도로 읽고 쓰는 능력을 익혔다. 2학년 때 이미 6학년 수준의 독해력을 갖췄고, 교과서를 넘어 고전문학과 역사책에 흥미를 보였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과목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논술과 토론, 작문 시간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성격 자체는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에, 외향적인 아이들 틈에 섞이는 일은 드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만화영화 이야기에 끼지 못해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담임교사에게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건 좋아하지 않니?”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루스탈지아는 “그 아이들이 하는 얘기보다 이 책이 더 흥미롭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녀는 또한 초등학교 시절 학생자치회 회장을 맡기도 했으나, 그것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루스탈지아가 가장 똑똑하니까 그냥 해보라”고 몰아준 결과였다. 루스탈지아는 내심 불편해했지만, 맡은 일은 성실히 해냈고, 그 경험은 훗날 정치인이 된 후 “가장 처음 경험한 대표성의 무게”로 종종 언급되었다.
롱비치 시에서의 마지막 시절은 루스탈지아에게 차분한 유년기의 끝자락으로 기억된다. 13세가 되던 해,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에 따라 수도 벨포르 시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사 전날 밤 그녀는 어린 동생에게 “이제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책을 읽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3].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1992년 10월 23일, 루이나 남부 해안에 자리한 항만 도시 롱비치 시에서 태어났다. 항구 특유의 조용한 바닷바람과,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롱비치 시립병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비교적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둘째 딸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롱비치 도심 개발공사의 토목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지역 보건소의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정치나 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가정 안에서는 늘 시사 문제에 대한 토론과 책 읽기가 장려되는 분위기였다[1].
어릴 적 루스탈지아는 조용하면서도 관찰력이 매우 뛰어난 아이였다. 또래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도 그녀는 혼자 모래를 만지며 가상의 국가를 구상하거나, 벤치에 앉아 그림책을 끝까지 읽고 앉아 있는 일이 많았다. 다섯 살 때는 가족과 함께 방문한 해양 박물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래는 왜 포유류인데 바다에 사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말을 들은 부모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백과사전을 사주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루스탈지아는 한 번 관심을 가지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향을 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도서관 사서와 친해져 도서관에 출입증도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
롱비치 시립초등학교 시절, 루스탈지아는 또래보다 두세 배 빠른 속도로 읽고 쓰는 능력을 익혔다. 2학년 때 이미 6학년 수준의 독해력을 갖췄고, 교과서를 넘어 고전문학과 역사책에 흥미를 보였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과목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논술과 토론, 작문 시간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하지만 성격 자체는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에, 외향적인 아이들 틈에 섞이는 일은 드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만화영화 이야기에 끼지 못해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그녀는, 담임교사에게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건 좋아하지 않니?”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루스탈지아는 “그 아이들이 하는 얘기보다 이 책이 더 흥미롭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녀는 또한 초등학교 시절 학생자치회 회장을 맡기도 했으나, 그것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출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루스탈지아가 가장 똑똑하니까 그냥 해보라”고 몰아준 결과였다. 루스탈지아는 내심 불편해했지만, 맡은 일은 성실히 해냈고, 그 경험은 훗날 정치인이 된 후 “가장 처음 경험한 대표성의 무게”로 종종 언급되었다.
롱비치 시에서의 마지막 시절은 루스탈지아에게 차분한 유년기의 끝자락으로 기억된다. 13세가 되던 해,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의 근무지 이동에 따라 수도 벨포르 시로 이주하게 되었고, 이사 전날 밤 그녀는 어린 동생에게 “이제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책을 읽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3].
2.1. 청소년기 [편집]
벨포르로 이주한 루스탈지아는 벨포르 시립제3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도시와 학교 모두에게서 조용한 충격을 안긴 존재였다. 학업 성취는 매우 뛰어났지만, 전형적인 ‘모범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자주 졸았고, 과제를 마지막 날 새벽에 제출하는 일이 많았지만, 성적은 항상 전교 최상위권이었다. 이른바 ‘불성실한 천재’라는 모순적인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시기였다.
그러나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지 학교 성적이 아니었다. 루스탈지아는 15세였던 2007년, 첫 번째 저서 《평균의 종말》을 집필·출간하며 루이나 지성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책은 교육과 사회 제도 전반에 내재된 ‘평균 중심 사고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한 철학적 에세이로, 출간 당시 “고등학생이 쓴 글이 맞느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논리 구조와 문체가 정제되어 있었다.
《평균의 종말》에서 루스탈지아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단지 학교 성적이 아니었다. 루스탈지아는 15세였던 2007년, 첫 번째 저서 《평균의 종말》을 집필·출간하며 루이나 지성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 책은 교육과 사회 제도 전반에 내재된 ‘평균 중심 사고방식’을 통렬하게 비판한 철학적 에세이로, 출간 당시 “고등학생이 쓴 글이 맞느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논리 구조와 문체가 정제되어 있었다.
《평균의 종말》에서 루스탈지아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평균’은 아무도 되지 못하는 숫자다. 우리는 평균을 기준으로 교육하고, 정책을 만들고, 사람을 평가하지만, 실제로 평균이라는 존재는 통계적 허상일 뿐이다. 한 아이가 수학은 98점이지만 언어는 42점이라면, 그는 평균적으로 70점이 아니다. 그는 ‘모순된 곡선’이며, 우리는 그 곡선을 존중해야 한다.”
이 책은 벨포르 철학회와 루이나 청소년학술상 심사위원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루스탈지아는 단숨에 ‘청소년 작가’가 아닌, ‘청년 철학자’라는 수식어로 언론에 소개되었다. 출판사 측은 초판을 2,000부만 찍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며, 수개월 만에 4쇄를 돌파하였다[4].
이후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동안 꾸준히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왜 도덕인가?》(2009.09.30) – 도덕적 판단의 기원과 타자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
《공정하다는 착각》(2010.01.03) – ‘공정’이라는 단어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수사로 기능한다는 비판.
《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11.06.15) – 엘리트주의 비판과 대의제 구조의 권력 집중 문제.
《집단 착각: 우리는 소수인가?》(2012.08.06) – 집단 내 ‘침묵의 다수’ 개념을 해체하며, 집단사고의 취약성과 허구를 분석.
이 책들 모두는 고등학생이 썼다는 점에서 이미 놀라웠지만, 각 책이 한 권의 에세이를 넘어서 사회 담론을 구성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예컨대 《공정하다는 착각》은 이후 루이나 교육개혁 시민단체들이 공정성 담론을 비판할 때 인용한 대표적 문헌이 되었으며, 《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이후 루스탈지아가 정치에 입문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학교 측은 그녀가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명성을 얻자, 언론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자율학습 시간을 배려하는 특례 조치를 도입했다. 하지만 루스탈지아는 이에 대해 “나는 작가이기 전에 학생이며, 시민으로서 생각할 자유를 지키고 싶다”고 말하며 특별대우를 거절했다[5].
고등학교 4학년 말, 그녀는 교지 편집장으로부터 졸업생 대표 작문을 부탁받았지만, 끝내 고사했다. 대신 자신의 책 한 권을 도서관에 기증하며, 이렇게 메모를 남겼다: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읽을 것이고, 읽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안 읽을 것이다. 모든 책이 그런 식이다.”
친구 관계는 좁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녀는 여러 무리 속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어울리는 타입이 아니었고,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도서관 구석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곤 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루스탈지아는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군중의 리듬에 맞추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6]. 반면 그녀와 가까웠던 소수의 친구들은 “정말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말이 많고, 농담도 잘하는 아이였다”며, 대중의 이미지와 실제의 괴리를 지적하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이나 자율 봉사 같은 학교 생활 참여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학생회는 물론, 체육대회에도 최소한의 참가만 했으며, 학교 행사 사진첩에도 그녀는 자주 빠져 있었다. 그에 대해 한 교사는 “자신의 에너지를 어설픈 사회화에 소모하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였다. 그 대신 확실히, 자기 안의 질서와 논리에 충실했다”고 평가했다[7].
루스탈지아는 훗날 대통령이 된 이후, 당시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늘 정답을 요구했고, 나는 늘 다음 질문이 궁금했다. 그러니까 나는 학교가 아니라, 세상을 더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8]. 이 말은 한동안 루이나 청소년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학생 포스터나 명언 카드에 실리기도 했다.
재임 중 그녀가 SNS에 공개한 고등학교 시절 사진 한 장은 특히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구겨진 교복 상의, 세일러 리본이 흐트러진 채 매어져 있고, 발에는 신발도 신지 않은 모습. 사진 속 그녀는 피곤한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마치 “이제 그만 찍어도 돼?”라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팬들은 이 사진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대통령의 기원”이라는 밈을 만들었고, 많은 일러스트와 2차 창작물이 이 한 장면을 토대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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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본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사진은 그냥 한 시기의 나일 뿐이다. 다만, 그때도 지금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몸에 너무 많은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10].
2.2. 청년기 [편집]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2010년, 고등학교 4학년 재학 중 조기졸업 시험에 응시해 전체 수석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가을 루이나 국립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입학 당시 그녀는 전국에서 가장 어린 신입생 중 한 명이었지만, 학문적 깊이와 문제의식은 이미 교수진 사이에서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대학 생활에서 그녀는 특별히 튀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동아리나 축제, 교류 활동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강의실과 도서관, 하숙집과 작은 서점들을 오가는 일상을 조용히 반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은 교내 신문이나 철학 세미나, 법학비평회 같은 비공식 지식 공동체 안에서는 압도적이었다.
대학 2학년 때인 2012년 8월 13일, 루스탈지아는 전혀 뜻밖의 장르인 포토에세이 《루스탈지아가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를 출간한다. 사진과 짧은 산문,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폐허 위에 선 젊은이의 일기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성공이나 이상 같은 말로 포장된 세계가 청년들에게 얼마나 무력하고 폭력적인지를 이야기하며, 각 장마다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듯 문장을 남긴다.
대학 생활에서 그녀는 특별히 튀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동아리나 축제, 교류 활동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강의실과 도서관, 하숙집과 작은 서점들을 오가는 일상을 조용히 반복했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감은 교내 신문이나 철학 세미나, 법학비평회 같은 비공식 지식 공동체 안에서는 압도적이었다.
대학 2학년 때인 2012년 8월 13일, 루스탈지아는 전혀 뜻밖의 장르인 포토에세이 《루스탈지아가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를 출간한다. 사진과 짧은 산문,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폐허 위에 선 젊은이의 일기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성공이나 이상 같은 말로 포장된 세계가 청년들에게 얼마나 무력하고 폭력적인지를 이야기하며, 각 장마다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쓰듯 문장을 남긴다.
“너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좋다. 세상이 너에게 이름을 요구한다면, 잠시만 고개를 들어, 하늘이 바뀌는 모습을 봐줘. 그건 네가 아니어도 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니까.”
— 《루스탈지아가 드립니다》 中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루이나 청년층의 ‘비정규 시대의 감수성’을 정리한 첫 인물적 기록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년 후, 공공도서관 청년문학 코너에 정식 비치된다[11].
이듬해인 2013년 12월 13일, 그녀는 다시 본래의 장르로 돌아와 《정의의 유예》를 출간한다. 이 책은 명백히 법학적이고 정치철학적인 글로, 형평성과 정의, 권리 보장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다루며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루이나 청년층의 ‘비정규 시대의 감수성’을 정리한 첫 인물적 기록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년 후, 공공도서관 청년문학 코너에 정식 비치된다[11].
이듬해인 2013년 12월 13일, 그녀는 다시 본래의 장르로 돌아와 《정의의 유예》를 출간한다. 이 책은 명백히 법학적이고 정치철학적인 글로, 형평성과 정의, 권리 보장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다루며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오늘, 지금, 이 순간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정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유예되고, 유예는 곧 정지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고통은 조사 중이고, 누군가의 죽음은 검토 중이며, 누군가의 권리는 검열 중이다. 유예는 현실의 가면을 쓴 부정이다. 정의가 유예되는 순간, 사회는 신뢰를 잃는다. 신뢰를 잃은 사회는 법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은 종이 위에 적힌 절차일 뿐 공동체의 기반이 될 수 없다.”
《정의의 유예》는 루이나 법철학회에서 “현실 정치와 실정법 사이에서 윤리적 이상이 어떻게 침묵되는지를 파헤친 고전적 문제작”이라 평가받았으며, 일부 법학자들은 ‘전공자들이 써야 할 글을 한 학생이 먼저 썼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루스탈지아는 제37회 루이나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였지만, 변호사 사무실이나 대학원 진학 대신, 군 복무를 선택한다. 그녀는 합격자 발표 직후 SNS에 짧은 글을 남겼다.
“이 나라는 정의를 유예했지만, 나는 유예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실전으로 가겠다.”
그리고 얼마 후, 제39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자원입소하면서, 그녀의 군인 시절이 시작된다. 이는 곧 루이나 역사상 이론과 현실을 모두 밟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길을 예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2.3. 군 시절 [편집]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사법시험 합격 직후 자원 입대를 선택하며, 대중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녀는 사법연수원 면제를 포기하고 제39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6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수료하였다. 그리고 훈련병 평가 중 최상위권에 선발되어 특전병으로 차출되었고, 이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0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에 배속된다.
그녀의 보직은 대대본부 작전과 소속 교육병, 흔히 말하는 작전행정병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결국 책상 앞에서 일만 하던 것 아니냐"는 폄하가 있었지만, 이는 당시 루이나 특전사의 편제 구조와 훈련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특전여단이 확장되면서, 사병 특전병도 전투 인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작전과나 교육과 소속 병력이라 해도 기본 훈련과 고급 교육 이수는 필수였다. 루스탈지아 또한 정규 편성된 팀 소속은 아니었으나, 전투분야 주특기 ‘폭파’를 부여받았고, 심지어 수중 침투 훈련(스쿠버)까지 자원해 이수하였다.
이 가운데 68회의 강하는 행정병으로서는 이례적인 수치였다. 월계 공수휘장 기준(60회 이상)을 훌쩍 넘는 기록으로, 이는 일반적인 특전병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하 배정 명단을 작성하는 병사가 자신이 먼저 뛰는 식으로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후임 병사는 회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보직은 대대본부 작전과 소속 교육병, 흔히 말하는 작전행정병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결국 책상 앞에서 일만 하던 것 아니냐"는 폄하가 있었지만, 이는 당시 루이나 특전사의 편제 구조와 훈련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특전여단이 확장되면서, 사병 특전병도 전투 인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작전과나 교육과 소속 병력이라 해도 기본 훈련과 고급 교육 이수는 필수였다. 루스탈지아 또한 정규 편성된 팀 소속은 아니었으나, 전투분야 주특기 ‘폭파’를 부여받았고, 심지어 수중 침투 훈련(스쿠버)까지 자원해 이수하였다.
이 가운데 68회의 강하는 행정병으로서는 이례적인 수치였다. 월계 공수휘장 기준(60회 이상)을 훌쩍 넘는 기록으로, 이는 일반적인 특전병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하 배정 명단을 작성하는 병사가 자신이 먼저 뛰는 식으로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후임 병사는 회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하 배정을 짤 때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서 선임이던 루스탈지아 이병이 항상 먼저 뛰었죠. ‘내가 먼저 뛸게, 그다음 넣자’라는 식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본인이 제일 많이 뛰었어요. 강하를 즐기기도 했고요.”
루스탈지아는 ‘소속은 작전과, 삶은 낙하산 위에 있다’는 농담을 동료들 사이에서 듣기도 했다. 훈련이 끝나고는 동료 특전병들이 쓰러질 때까지 버피 테스트를 반복하며 체력 테스트를 이어갔고, 심지어 야간 사격 및 도시 전투 훈련에서도 성적 우수자 표창을 받은 바 있다.
그녀의 복무 태도는 간부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전대대 출신 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폭파 훈련에서 이등병 신분으로 최우수 성적을 기록한 유일한 사례가 루스탈지아였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훈련 최우수자 표창은 통상 장교나 부사관, 혹은 전문 경력병에게 주어지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등병 계급으로 그것도 최초 훈련에서 해당 성적을 낸 사례는 보고된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역 당시 간부들은 그녀에게 진지하게 ‘군 생활을 계속해보라’며 직업군인 전환(말뚝 박기)을 권유하였고, 일부는 특전교육대 교관 추천까지 고려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스탈지아는 예정대로 병역을 마친 뒤 전역하였고, 정치의 길로 천천히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녀의 군 복무 경력은 이후에도 정치인으로서 유일무이한 실전 공수부대 출신 이력으로 남았으며, 일부 정치인들의 병역 기피 논란과 대비되며 루스탈지아의 대표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는 군 이력’으로 기능했다.
루이나 대통령중 현역 군인으로 군사작전에 참여한 몇 안되는 대통령중 한명이다. 그녀의 첫 실전은, 2014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당시의 루이나 특수작전이었다. 당시 루이나는 해상 치안 회복과 인도주의 통로 확보를 명분으로 다국적 연합작전에 참가했으나, 실제 목적은 북부 바리 지역에 은닉된 비정부 무장조직의 전략시설 제거에 있었다[12].
루스탈지아는 이 작전 중 ‘블랙스완 3차 파생안’이라 명명된 극비 후방 침투 팀에 배속되었고, 이등병 신분으로 전방 감시 및 폭파 보조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은 새벽 3시경, 해상에서 투입된 공수부대가 해안선 인근으로 침투해, 세인트가브리엘 통신소 및 C형 연료저장기지를 기습 폭파하는 임무였다. 루스탈지아는 현지 지형도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무전수의 명령 없이 지휘계통에 혼선이 생긴 상황 속에서, 기폭장치 케이블을 손으로 연결하고 기지 내로 잠입해 폭파 절차를 수동으로 완료했다는 보고가 남아 있다[13].
이 작전은 정식 훈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규모의 임무였지만, 루스탈지아는 당시 이등병으로서 표창 대상이 아니었고, 정식 언론 발표 없이 비공식 내부 감사장만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14].
후일 그녀는 이 경험을 두고, 한 차례만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정의감은 그날 깨졌다. 전선에 정의는 없고, 책임만 있었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15].
2.4. 정치 입문, 현재 [편집]
루스탈지아 그래이가 처음으로 대중의 시선 한복판에 등장한 것은 군 복무 직후였다. 2015년 4월 14일 발생한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사고는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사고 발생 이틀 후, 루스탈지아는 광장을 찾아 유가족들과 함께 천막에 앉았고, 이내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그녀는 당시 현장에서 명확한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무대 뒤에서 조용히 물을 건네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은 곧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콜턴 정부는 곧바로 언론을 동원해 그녀를 '선동가'로 몰아세웠지만, 이후 비난 여론이 대통령 지침에 따른 왜곡 보도였음이 드러나며 여론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 사건은 루스탈지아의 정치 진입을 가속화시켰고, 그녀는 그해 말 사회민주당의 외부 정책 자문역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그리고 2016년, 그녀는 고향 롱비치로 돌아가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는 민주공화당 소속 보수 성향 시장이 8년째 연임 중이었고, 지역 사회는 구조적 정체와 부패,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루스탈지아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민 중심 행정”과 “정치 없는 행정”을 기치로 내걸었고, 단일토론회에서 현직 시장의 부동산 비리 의혹을 폭로하며 일약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60.2%의 득표율로 당선, 루이나 역사상 최연소 광역단체장이자 첫 여성 롱비치 시장이 되었다. 재임 중 '청년 정착 예산제', '공공수도 기본료 무료화 시범사업', '투명시정 시민회의' 등 다수의 제도를 도입했고, 특히 고등학교 무상급식 정책은 벨포르 수도권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시장 재임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으며, '말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장'이라는 평을 들었다. 대외노출은 줄이고, 정책 설계와 집행에 집중한 그녀는 결국 2019년 말, 사회민주당 중앙당의 요청을 받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한 예비 캠프에 합류하게 된다.
2020년, 사회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최연소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그녀는 유세 연설 첫 마디에서 이렇게 말했다.
콜턴 정부는 곧바로 언론을 동원해 그녀를 '선동가'로 몰아세웠지만, 이후 비난 여론이 대통령 지침에 따른 왜곡 보도였음이 드러나며 여론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 사건은 루스탈지아의 정치 진입을 가속화시켰고, 그녀는 그해 말 사회민주당의 외부 정책 자문역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그리고 2016년, 그녀는 고향 롱비치로 돌아가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는 민주공화당 소속 보수 성향 시장이 8년째 연임 중이었고, 지역 사회는 구조적 정체와 부패,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루스탈지아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민 중심 행정”과 “정치 없는 행정”을 기치로 내걸었고, 단일토론회에서 현직 시장의 부동산 비리 의혹을 폭로하며 일약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60.2%의 득표율로 당선, 루이나 역사상 최연소 광역단체장이자 첫 여성 롱비치 시장이 되었다. 재임 중 '청년 정착 예산제', '공공수도 기본료 무료화 시범사업', '투명시정 시민회의' 등 다수의 제도를 도입했고, 특히 고등학교 무상급식 정책은 벨포르 수도권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시장 재임기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으며, '말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움직이는 시장'이라는 평을 들었다. 대외노출은 줄이고, 정책 설계와 집행에 집중한 그녀는 결국 2019년 말, 사회민주당 중앙당의 요청을 받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위한 예비 캠프에 합류하게 된다.
2020년, 사회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최연소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고, 그녀는 유세 연설 첫 마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후광도, 가문도, 재벌도 등에 업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질문 하나뿐입니다. ‘이 나라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예’라고 답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21년 5월 9일,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제11대 루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71.1%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며, 루이나 정치사에 남을 승리를 거둔다. 제1야당 민주공화당 후보는 19.4%의 저조한 득표율에 그쳤고, 최종 표차는 5170만 표 이상, 루이나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차이를 기록했다.
3. 루스탈지아 정부 [편집]
4. 평가 [편집]
5. 비판/논란 [편집]
6. 어록 [편집]
사람의 인생이란 한철의 봄과 같은데, 그 한철 가기 전에 져버리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11대 대선 당시 루스탈지아와 민주공화당 후보 다니엘 잭슨이 토론하던 중 루이나의 자살율에 대해 얘기하며 나온 루스탈지아의 명언
애국이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더 나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실천입니다.2023년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한 루이나 애국당 당원들에게 한 말
우리는 정의를 외치는 데 익숙하지만, 실천하는데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행동해야할 때입니다.유고랜드 내전 개입 당시 대국민 담화
한 사회의 수준은 가장 취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로 결정됩니다.복지 예산안 확대를 요구하기 위해 의회에 방문한 당시 발언.
정부는 유한하지만 역사는 유구합니다.2022년 신년사에서
법의 유일한 목적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게 위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당한 행위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국가로 통합되었으며, 법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지향해야합니다. 처벌은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닌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보복의 동기는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리려는 욕망에 불과하며, 이는 윤리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악의이자 잔인함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상원의원 여러분들에게, 부도덕한 국가의 복수를 멈추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을 위해 사형제도를 폐지하길 간곡히 요청합니다.2023년 1월 4일 루이나 의회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요청하는 연설
<tablealign=Center><tablewidth=780><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c1d1f><bgcolor=#808080><:>10.24 시민혁명 추모 연설문 | |||||
영어 |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c1d1f><bgcolor=#808080><:>한국어 | ||||
Dear citizens of Ruina, And to everyone gathered here today, Today, once again, we stand beneath the flag of gray, white, and ash. This flag, fluttering in the wind, is not merely a blend of colors. It embodies our history, our convictions, the countless nights and mornings we’ve endured. And at its center lies one enduring question: What is democracy? Democracy is not just a piece of paper in a ballot box. It is the quiet hope—and the rightful expectation—of a dockworker leaving home at five in the morning in Toulouse, believing he can live with dignity today. Democracy is found in an old classroom in Saboret, when a teacher turns to her students and asks, “What kind of world do you want to create?” Democracy is the fisherman of Saboret posting a handwritten complaint on the city hall bulletin board, and the farmer of Colmar walking into the polling station with a mail-in envelope. It is the elderly woman’s gentle smile after receiving a seat on the Belfor subway, and the morning news heard over the radio by a longshoreman headed to work in Long Beach. Democracy begins not with the cry of “I am right,” but with the quiet humility of “I might be wrong.” It is a skepticism—not of people, but of certainty— a tension born from the refusal to grant blind trust, and in that tension, a mutual respect. Democracy is not made complete by a “yea” or “nay” in the chamber. It is reborn in the silent attentiveness of a citizen at a forum in Obores, listening without interrupting. It is rekindled when a high school student council in Toulouse starts a petition to change school rules, each signature bringing democracy back to life. Democracy is not a relic of holidays or monuments. It is a living, breathing system decided anew each day. It is the habit of obeying the signal even when no one is watching. It is the choice to see someone who speaks a different language, prays to a different god, or holds a different opinion not as an enemy, but as a fellow citizen. It is the placard held in silence before a department store, the gaze of a lone protester occupying a street corner, and the question whispered to oneself by an MIA officer before writing a report. Democracy is also fear. Fear that we may forget its spirit. Fear that power may once again seek to rule over the people. Fear that violence, in the name of the majority, might rise to erase what is different. But I would say this. Democracy is not fear, but caution. Not suspicion, but responsibility. Not an answer, but a continuous question. Democracy lives not in speeches shouted from podiums, but in the conversations shared over kitchen tables. It is the moment a Belfor taxi driver and a passenger—after fierce debate—still exchange farewells. It is the fact that an inmate in Ephor can prepare their own defense. It is the right of a single mother in Long Beach to email her local representative. We often explain democracy as “majority rule.” But real democracy is not about how well we count the decisions of the many— it is about how steadfastly we protect the rights of the few. Fellow citizens, Forty-five years ago today, the lily bloomed once more upon this land. On a plaza crushed under the boots of soldiers, on the names of the disappeared, in the shadows of torture chambers, we planted the flower of democracy again. That day, we cried out, “The Nation exists for us, not the other way around.” And from that day forward, Ruina became a nation of its citizens once more. But what we gained was not completion, but a beginning. What we were guaranteed was not safety, but duty. What we reclaimed was not control, but accountability. Democracy is the sum of many discomforts. It slows quick decisions, delays simple answers, and makes the straightforward seem complicated. But in that slowness and complexity, we see each person clearly. We listen—so that no voice is erased. Democracy is the courage for today's victor to bow to tomorrow's victor. It is the humility to admit that a lone voice of dissent may have been right all along. That is why democracy is a system where education budgets outlast defense debates, where law comes before popularity, and where we care less about who shouts loudest— and more about who quietly listens. We must teach the children of Ruina, Voting is not the end of your voice, but the beginning. We must remind our ministers, All power comes from the people—and must always return to them. We must ask our legal scholars, Justice is not simply the right outcome— but the fair process. And we must give space to our journalists and artists, To speak uncomfortable truths. To imagine other ways of seeing. To question old answers with new questions. Citizens, Democracy is always precarious. Its greatest enemy is not violence, but indifference. Its deepest wound is not exclusion, but cynicism. So today, I ask you once more. Politics is not someone else's job—it is yours. The Nation is not an ideology—it is your life. Ruina is not a memory—it is the story you are writing now. The lily still blooms today. Beneath our gray flag, as long as we do not forget each other’s names, as long as we proclaim each other’s rights, we are alive. And that name for being alive, that way of facing one another—that is democracy. Ruina’s democracy is not yet complete. But it will not fall. Because today, you—who stand in this square— you are that democracy. Thank you. For Ruina. For its people. For the future yet to come. |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시, 회색과 백색과 회백의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 깃발은 단지 색의 조합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신념, 그 수많은 밤과 아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단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그저 투표함 속의 종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새벽 다섯 시, 톨루즈 항만에서 일터로 나서는 노동자가 오늘도 존엄하게 살 수 있으리라 믿는 그 막연한 기대이자 권리입니다. 민주주의는 사보레의 낡은 교실에서 교사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 “너희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니?” 하고 묻는 목소리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보레의 어부가 시청 게시판에 붙이는 항의문이며, 콜마르의 농부가 투표소에 들고 온 우편 투표봉투입니다. 벨포르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은 할머니의 눈웃음이며, 롱비치 항구에서 출근하는 노동자가 라디오로 듣는 아침 뉴스입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내가 옳다”는 목소리보다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의심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절반 이상의 경우에서 옳다는 생각에 대한 조용한 불신입니다.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긴장 속의 존중,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의사당의 찬반 버튼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보레에서 열린 토론회 한구석에서, 누구의 말도 가로막지 않고 귀 기울인 시민의 침묵 속에서 살아납니다. 톨루즈의 고등학교 학생회가 규칙을 바꾸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하는 순간, 그들의 펜촉 아래서 민주주의는 다시 태어납니다. 민주주의는 기념비나 국경일의 유산이 아니라, 매일 다시 결정되는 현재형의 체제입니다. 그것은 감시자가 없을 때도 신호를 지키는 습관이며, 나와 다른 언어, 다른 종교, 다른 의견을 가진 이웃을 적이 아니라 동료시민으로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백화점 앞에서 조용히 펼친 피켓 한 장이고, 거리 한복판에서 자리를 차지한 일인시위자의 눈빛이며, MIA 요원이 조사보고서를 쓰기 전 스스로 되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는 또한 두려움입니다. 언제든 우리가 그 정신을 망각할까 하는 두려움, 언제든 권력이 시민 위에 군림하려 들까 하는 경계, 언제든 ‘다수’라는 이름으로 ‘다름’을 지우려는 폭력이 다시 고개를 들까 하는 조심스러움.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는 두려움이 아니라 조심스러움이고, 의심이 아니라 의무이며, 정답이 아니라 질문의 지속입니다. 민주주의는 광장의 연설보다, 주방에서 나누는 대화에 있습니다. 그것은 벨포르의 택시기사와 손님이 논쟁 끝에 서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며, 에포르의 재소자가 자기 변호를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며, 롱비치의 싱글맘이 지역의원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진짜 민주주의는 “다수의 결정”이 아니라 “소수의 권리”를 얼마나 지킬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입니다. 시민 여러분, 45년 전 오늘, 이 땅에 다시 백합이 피었습니다. 군화에 짓밟힌 광장 위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 위에서, 전기고문실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꽃을 다시 심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외쳤습니다. “국가는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루이나는 다시 시민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 우리가 보장받은 것은 안전이 아니라 의무, 우리가 되찾은 것은 통제력이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불편의 총합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신속한 결정을 느리게 만들고, 분명한 해답을 보류하게 하며, 단순한 일처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느림과 복잡함 속에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단 한 번의 목소리도 지워지지 않도록 귀 기울입니다. 민주주의는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승자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용기이며, 소수의 반대가 다수의 결정보다 먼저 역사에 옳았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국방비보다 교육예산이 더 오래 논의되는 구조이며, 인기보다 법이 우선하는 절차이며, 누가 큰 소리를 내는가보다, 누가 조용히 듣는가를 따지는 문화입니다. 우리는 루이나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투표는 목소리의 시작이지,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루이나의 장관들에게 상기시켜야 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언젠가는 반드시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루이나의 법률가들에게 요청해야 합니다. 정의란 곧 “적절한 결과”가 아니라 “공정한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루이나의 언론과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 다르게 볼 수 있는 상상력, 그리고 낡은 정답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유. 시민 여러분, 민주주의는 늘 위태롭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무관심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며, 소외가 아니라 냉소가 민주주의의 가장 깊은 상처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정치는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입니다. 국가는 이념이 아니라 당신의 삶입니다. 루이나는 기억이 아니라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백합은 오늘도 다시 피고 있습니다. 저 회색기 아래서,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는 한, 서로의 권리를 부르짖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그 살아 있음의 이름, 그 눈을 맞대고 서 있는 태도,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루이나의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광장에 함께 선 여러분이 바로 그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 ||||
7. 여담 [편집]
7.1. 성품 [편집]
대통령실의 모든 비서관들에게 존칭을 쓴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고, 종편 등에서 여러 방송을 진행했던 한 방송인은 루스탈지아 대통령의 인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흠 잡을 부분이 없는 분'이라고 극찬했다. 심지어 연일 루스탈지아 정부를 향해 비판을 쏟아내는 민주공화당 당대표 앨리엇 스콧 또한 '부드럽고 비교적 진솔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인간적으로는 호감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다.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의원들 역시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내렸다. 이처럼 '정치인 루스탈지아'는 몰라도 '인간 루스탈지아'의 인품에는 호감이 간다는 평가가 많다.
7.2. 인기 [편집]
단순히 정치적 지지를 넘어선 루스탈지아 개인에 대한 '인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대통령 취임 이후 열성적인 지지를 받으며, 여느 정치인들의 팬클럽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탄탄한 '팬덤'을 자랑한다. 물론 후술할 외모의 영향도 충분히 존재한다.
'루스탈지아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지지층들은 단일하고 가시적인 조직 체계의 성격은 상당히 희미한 편이다. 지지층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들이 있긴 하지만 이곳들이 친루스탈 지지층의 전체 여론을 통제하거나 주도하는 '지휘부'의 역할은 당연히 하지 못한다. 일부 과도한 극성팬덤이 형성되어 커뮤니티 상에서 반감을 불러모으기도 한다.
캘러핸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을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불렸는데, 루스탈지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보내는 지지는 그를 훨씬 뛰어넘는 굳건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취임 이후 5년 동안 지지율 60~80%대를 유지한다.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취임 1년차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가 기존 1위였던 리처드 전 대통령을 23%p 차이로 추월해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존재감 때문에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인으로서 정당에 가까운 상징성을 가지는 수준의 정치적 입지로 격상되는 것 같다”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실장은 이 추세로 간다면 퇴임 지지율이 50퍼는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루이나갤럽 조사 기준으로 페어팩스 정부 이후 어떤 정권이든 퇴임 직전 지지율은 50%는 고사하고 30%를 넘는 정부도 없다. 심지어 취임 5년차인 2025년 3월 4주차부터 7월까지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60%대 였으며 그중 대부분도 80% 이상 이었다는 것이며 5월 1주차엔 81%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어떠한 정부도 이러하였던 적은 없었다.
특히 청년 지지율이 비교적 높다. 지지율이 조정세에 접어들었지만 19세~30대의 지지율이 보통 60~70%대를 유지하며 1위~2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의외로 40대의 지지율이 유독 높은 편이다. 2024년 모고를 방문했을 때도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
'루스탈지아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은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지지층들은 단일하고 가시적인 조직 체계의 성격은 상당히 희미한 편이다. 지지층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들이 있긴 하지만 이곳들이 친루스탈 지지층의 전체 여론을 통제하거나 주도하는 '지휘부'의 역할은 당연히 하지 못한다. 일부 과도한 극성팬덤이 형성되어 커뮤니티 상에서 반감을 불러모으기도 한다.
캘러핸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을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불렸는데, 루스탈지아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보내는 지지는 그를 훨씬 뛰어넘는 굳건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취임 이후 5년 동안 지지율 60~80%대를 유지한다.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취임 1년차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가 기존 1위였던 리처드 전 대통령을 23%p 차이로 추월해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존재감 때문에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인으로서 정당에 가까운 상징성을 가지는 수준의 정치적 입지로 격상되는 것 같다”고 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실장은 이 추세로 간다면 퇴임 지지율이 50퍼는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루이나갤럽 조사 기준으로 페어팩스 정부 이후 어떤 정권이든 퇴임 직전 지지율은 50%는 고사하고 30%를 넘는 정부도 없다. 심지어 취임 5년차인 2025년 3월 4주차부터 7월까지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60%대 였으며 그중 대부분도 80% 이상 이었다는 것이며 5월 1주차엔 81%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 어떠한 정부도 이러하였던 적은 없었다.
특히 청년 지지율이 비교적 높다. 지지율이 조정세에 접어들었지만 19세~30대의 지지율이 보통 60~70%대를 유지하며 1위~2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의외로 40대의 지지율이 유독 높은 편이다. 2024년 모고를 방문했을 때도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
7.3. 금괴 [편집]
루스탈지아 대통령이 수백 톤~수천 톤에 달하는 금괴를 소유하고 있다는 황당한 루머가 퍼진 적이 있다. 반박할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루머인지라, 오히려 지지자들과 사회민주당이 '금괴왕 루스탈지아'를 소재로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 보수 진영에서 루스탈지아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쓴 헛소문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소문일 것이다. 본인도 알고있는 듯 하며, 사실이길 바란다고 언급한 적도 있다.
7.4. 외모 [편집]
이목구비가 차분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고, 얼굴형은 전체적으로 갸름한 푠으로, 지나치게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각이 있어 권위 있는 인상을 준다. 피부가 창백한 편이지만, 자연스러운 홍조가 있어서 차가운 느낌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을 형성한다.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통하는지 미국 순위 선정 매체 ‘하티스트 헤즈 오브 스테이트’(Hottest Heads of State)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24년에는 2위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상위권인 것은 변함없다.
자기자신도 그 인기를 이해하고있는지 되게 잘써먹는다.
7.5. 기타 [편집]
8. 대중매체에서 [편집]
넷플릭스 드라마 〈타임리스〉에서 2차 랜드전쟁의 발릭파판 정유공장 포격작전을 말하며 미래의 루이나의 대통령이 되는 루스탈지아의 아버지가 구축함에 타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P 천장사마가 작사, 작곡한 노래 <대통령이 된다면 | 실・부・프레지던트>를 직접 부른 영상이 공식 트위터에 올라와있다. [20]
일본의 P 천장사마가 작사, 작곡한 노래 <대통령이 된다면 | 실・부・프레지던트>를 직접 부른 영상이 공식 트위터에 올라와있다. [20]
9. 저술활동 [편집]
* 《평균의 종말》 2007년 7월 18일
* 《왜 도덕인가?》 2009년 9월 30일
* 《공정하다는 착각》 2010년 1월 3일
* 《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2011년 6월 15일
* 《집단 착각: 우리는 소수인가?》 2012년 8월 6일
* 《루스탈지아가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2012년 8월 13일
* 《정의의 유예》 2013년 12월 13일
* 《루이나가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루스탈지아가 답하다》 2017년 1월 17일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2019년 3월 12일
* 《위대한 국민의 나라》 2022년 4월 13일
* 《왜 도덕인가?》 2009년 9월 30일
* 《공정하다는 착각》 2010년 1월 3일
* 《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2011년 6월 15일
* 《집단 착각: 우리는 소수인가?》 2012년 8월 6일
* 《루스탈지아가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2012년 8월 13일
* 《정의의 유예》 2013년 12월 13일
* 《루이나가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루스탈지아가 답하다》 2017년 1월 17일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2019년 3월 12일
* 《위대한 국민의 나라》 2022년 4월 13일
[1] 2023년 루스탈지아 어머니의 회고 인터뷰, 『벨포르 인사이트』[2] 롱비치 시립 제1도서관 사서 인터뷰, 2021[3] 루스탈지아 동생의 회고 증언, 2024년 6월 방송 인터뷰[4] 『루이나 출판문화연감』 2008년판, 평균의 종말 초판 계약 및 인세 기록[5] 벨포르 시립고등학교 기록문서 2010년 교무일지 중[6] 동급생 인터뷰, 『벨포르 청춘잡지』 2023년 9월호[7] 2025년 루이나 교육사연구회 구술기록 중[8] 루이나 중앙방송 인터뷰, 2023년 10월 23일[9] 트위터[10] 루스탈지아 X(구 트위터) 게시물, 2023년 3월 12일[11] 벨포르 공공도서관 연간 추천도서 2013년[12] 루이나 국방부 대외비 작전보고서 14-SSOM-BR-12호 현재 공개[13] 작전 종료 후 작성된 작전조서 중 개인행동 보고서, 국방기록원 제C-1447/5 현재 공개[14] 군정보국 감사 통보문서, 2014년 9월자[15] 루이나 대통령실 구술채록, 제34회 안보교육 세미나 연설 중[16] 트위터[17] 트위터[18] 정책과 말투는 전혀 귀엽지 않다[19] 또한 자신의 보좌관으로 이상한거 그리지 말라고 한적도 있다.[20] P천장사마가 해당 영상에, "대통령님, 제 입에 레진을 붓지 말아주세요"라고 댓글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