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루스탈지아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군 시절 === 루스탈지아 그래이는 사법시험 합격 직후 자원 입대를 선택하며, 대중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그녀는 사법연수원 면제를 포기하고 제39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해 6주간의 기본 군사훈련을 수료하였다. 그리고 훈련병 평가 중 최상위권에 선발되어 특전병으로 차출되었고, 이후 육군 특수전사령부 제10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에 배속된다. 그녀의 보직은 대대본부 작전과 소속 교육병, 흔히 말하는 작전행정병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결국 책상 앞에서 일만 하던 것 아니냐"는 폄하가 있었지만, 이는 당시 루이나 특전사의 편제 구조와 훈련 운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특전여단이 확장되면서, 사병 특전병도 전투 인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작전과나 교육과 소속 병력이라 해도 기본 훈련과 고급 교육 이수는 필수였다. 루스탈지아 또한 정규 편성된 팀 소속은 아니었으나, 전투분야 주특기 ‘폭파’를 부여받았고, 심지어 수중 침투 훈련(스쿠버)까지 자원해 이수하였다. 이 가운데 68회의 강하는 행정병으로서는 이례적인 수치였다. 월계 공수휘장 기준(60회 이상)을 훌쩍 넘는 기록으로, 이는 일반적인 특전병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하 배정 명단을 작성하는 병사가 자신이 먼저 뛰는 식으로 ‘시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후임 병사는 회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 “강하 배정을 짤 때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서 선임이던 루스탈지아 이병이 항상 먼저 뛰었죠. ‘내가 먼저 뛸게, 그다음 넣자’라는 식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본인이 제일 많이 뛰었어요. 강하를 즐기기도 했고요.” 루스탈지아는 ‘소속은 작전과, 삶은 낙하산 위에 있다’는 농담을 동료들 사이에서 듣기도 했다. 훈련이 끝나고는 동료 특전병들이 쓰러질 때까지 버피 테스트를 반복하며 체력 테스트를 이어갔고, 심지어 야간 사격 및 도시 전투 훈련에서도 성적 우수자 표창을 받은 바 있다. 그녀의 복무 태도는 간부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전대대 출신 예비역 대령에 따르면, 폭파 훈련에서 이등병 신분으로 최우수 성적을 기록한 유일한 사례가 루스탈지아였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훈련 최우수자 표창은 통상 장교나 부사관, 혹은 전문 경력병에게 주어지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등병 계급으로 그것도 최초 훈련에서 해당 성적을 낸 사례는 보고된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전역 당시 간부들은 그녀에게 진지하게 ‘군 생활을 계속해보라’며 직업군인 전환(말뚝 박기)을 권유하였고, 일부는 특전교육대 교관 추천까지 고려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스탈지아는 예정대로 병역을 마친 뒤 전역하였고, 정치의 길로 천천히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녀의 군 복무 경력은 이후에도 정치인으로서 유일무이한 실전 공수부대 출신 이력으로 남았으며, 일부 정치인들의 병역 기피 논란과 대비되며 루스탈지아의 대표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는 군 이력’으로 기능했다. 루이나 대통령중 현역 군인으로 군사작전에 참여한 몇 안되는 대통령중 한명이다. 그녀의 첫 실전은, 2014년 소말리아 내전 개입 당시의 루이나 특수작전이었다. 당시 루이나는 해상 치안 회복과 인도주의 통로 확보를 명분으로 다국적 연합작전에 참가했으나, 실제 목적은 북부 바리 지역에 은닉된 비정부 무장조직의 전략시설 제거에 있었다[* 루이나 국방부 대외비 작전보고서 14-SSOM-BR-12호 현재 공개]. 루스탈지아는 이 작전 중 ‘[[블랙스완 3차 파생안]]’이라 명명된 극비 후방 침투 팀에 배속되었고, 이등병 신분으로 전방 감시 및 폭파 보조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은 새벽 3시경, 해상에서 투입된 공수부대가 해안선 인근으로 침투해, 세인트가브리엘 통신소 및 C형 연료저장기지를 기습 폭파하는 임무였다. 루스탈지아는 현지 지형도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무전수의 명령 없이 지휘계통에 혼선이 생긴 상황 속에서, 기폭장치 케이블을 손으로 연결하고 기지 내로 잠입해 폭파 절차를 수동으로 완료했다는 보고가 남아 있다[* 작전 종료 후 작성된 작전조서 중 개인행동 보고서, 국방기록원 제C-1447/5 현재 공개]. 이 작전은 정식 훈장을 수여받을 수 있는 규모의 임무였지만, 루스탈지아는 당시 이등병으로서 표창 대상이 아니었고, 정식 언론 발표 없이 비공식 내부 감사장만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군정보국 감사 통보문서, 2014년 9월자]. 후일 그녀는 이 경험을 두고, 한 차례만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정의감은 그날 깨졌다. 전선에 정의는 없고, 책임만 있었다. 내가 그걸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루이나 대통령실 구술채록, 제34회 안보교육 세미나 연설 중].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