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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랜드해협 조약 기구
North Landstrait Treaty Organization
Organisation du Traité de l'Land Nord
약칭
NLTO
OTLN
표어
Animus In Consulendo Liber
(숙고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
설립
1969년 4월 4일(북랜드해 조약)
본부
루이나 벨포르 시티
회원국
3개국(발족 당시)
5개국(현재)
공용어
영어, 프랑스어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 [1]
군사위원장
주세페 카보 드라고네 해군대장[2]
연합군 최고사령관
크리스 카볼리 육군대장 [3]


1. 개요2. 명칭3. 역사


1. 개요 [편집]


북랜드해협 조약 기구는 냉전이 시작된 1969년, 집단안전보장조약인 북랜드해 조약에 의해 탄생한 루이나와 플로렌시아 등 서방 국가들의 군사동맹이다. 본부는 루이나의 수도 벨포르에 위치한다. 수장은 북랜드해협 조약 기구 사무총장으로, 현임 사무총장은 마르크 뤼터이다.

2. 명칭 [편집]

흔히 쓰이는 두문자어인 NLTO는 영어 'North Landstrait Treaty Organization'의 줄임말이다.

프랑스어군에 속한 일부 국가에서는 'Organisation du Traité de l'Land Nord'의 두문자어인 OTLN으로 표기한다. 때문에 특정한 국적이 아닌 NLTO군의 소속으로 참전하는 병력이나 공동소유하는 기체의 경우 NLTO-OTLN 이라는 두 개의 식별문을 모두 표기한 휘장을 사용한다.

3. 역사 [편집]

1963년 제1차 랜드 대전이 끝난 직후 사비에트의 물밑 작업으로 1 ~ 2년 사이에 랜드해협 남부가 도미노처럼 모두 공산화되자 루이나·플로렌시아 등 서방 국가들은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사비에트의 팽창주의와 군사적인 위협이 서방으로까지 확대되자 위협을 느낀 국가들은 군사적 동맹을 창설하기로 긴급히 합의하고, 이에 양측 간에 냉전이 시작되며 1969년 4월 4일, 북대서양 조약이 조인되어 NLTO가 창설되었다. 8월 24일부터 조약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4월 4일을 창설일로 본다. NLTO 창설 국가는 루이나, 플로렌시아, 빌베른이었으나, 현재는 북산과 라 마베라가 참여해서 5개국이다.
당사국은 북랜드해협 또는 남부 그 어떤 국가에서든 발생하는 회원국 중 하나 이상에 대한 무력 공격이 회원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는데 동의하며, 따라서 그러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는 경우 유엔 헌장 제51조에 의해 인정된 개별적 혹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북랜드해협 지역의 안보를 복원 및 유지하기 위해 무력의 사용을 포함한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행동을 개별적으로 혹은 다른 당사국들과 협력하여 실행함으로써 당사국을 지원할 것에 합의한다. 이러한 무력 공격과 그 결과 취해진 모든 조치는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 종료된다.

북랜드해협 조약 기구 헌장 제5조

NLTO는 사비에트에 대항하는 서방의 군사동맹이지만 초기에는 그러한 성격이 명확하지 않았다. 사비에트는 랜드해협의 안보에 이바지하고 싶다며 1974년 3월 NLTO 가입을 신청한 바 있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된 것도 아닌 당시 회원국 간 격론 끝에 반려되었다. 1973년 3월 5일 이오시프 노스탈린이 사망한 후 사비에트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일단은 게오르기 말렌코프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들어섰지만, 그 밑에서 스탈린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차기 후보들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권력을 두고 경쟁관계인 이들이었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노스탈린 시절에서 벗어나 억압적인 사회분위기도 풀고, 서방과의 긴장 관계도 풀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농업, 경공업도 양성해서 조금은 살만한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때마침 중앙아시아에서 유전이 대거 터지자 석유 등 자원 수출을 위해서라도 서방과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었다. 그래서 굴라크 수용자들을 석방하고 북한, 중국을 압박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루이나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사비에트가 NLTO 가입 신청 의사를 내비친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며 1974년은 루이나를 비롯한 서방권도 사비에트에 대한 변화와 개방에 대한 기대가 잠시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사비에트의 권력 암투는 라브렌티 베리야의 처형 이후 인터루쇼프가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는 것으로 빠르게 정리되어 갔고, 이후 사비에트는 남부랜드의 민주화 움직임을 탄압하고 군비를 증강하는 등 냉전이 더욱 첨예해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사비에트는 NLTO가 반공 동맹을 형성했다고 맹비난하면서 불과 닷새 후인 5월 14일, 사비에트의 위성국가들을 모아 해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다.
[1] 플로렌시아 (직책 미정)[2] 전 빌베른 국방참모총장.[3] 루이나 육군 참모총장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