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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알드리크 왕조 (1372~1493)
2.1. 두 문장 전쟁
3. 발레리안 왕조 (1493~1603)4. 카엘몬트 왕조 (1603~1689)5. 빌베른계 (1689~1716)6. 린데나우 왕조 (1716~1882)
6.1. 참칭 왕
7. 계승 위기와 계승전쟁 (1882~1885)
7.1. 에드먼드 3세의 급사7.2. 목수왕의 옹립7.3. 의회의 거부7.4. 두 진영7.5. 전쟁 경과7.6. 왕위의 소멸7.7. 이후
8. 왕위 요구자9. 계보도10.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루이나의 역대 군주와 왕가 계보. 1372년 알드리크 1세벨포르 추대회의에서 즉위하면서 성립하였고, 1882년 에드먼드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한 뒤 벌어진 루이나 계승전쟁을 거쳐 1885년 왕위 자체가 소멸하기까지 510년간 다섯 왕가가 왕위를 이었다.

루이나 왕권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기원이 정복이 아니라 추대에 있다는 점이다. 알드리크 1세는 빌베른 속왕국 체제를 무너뜨린 뒤에도 스스로 왕관을 쓰지 않고, 1372년 벨포르에 귀족·성직자·도시 대표를 소집해 추대를 받는 형식을 택했다. 이 계약적 성격은 이후 500년 동안 왕권과 의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근거로 반복해서 인용되었으며, 최종적으로 1885년 왕정 폐지의 법리적 명분이 되었다.

2. 알드리크 왕조 (1372~1493) [편집]

서부 구릉의 유력 귀족 가문으로, 빌베른 말기 지방 방위와 조세 징수를 맡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웠다. 문장은 참나무 아래의 은사슴. 왕권의 계약적 성격과 참의회(후일 의회)의 기원이 모두 이 왕조기에 형성되었다.
군주
재위
관계
주요 사건
1
1372~1394
창건
2
1394~1417
1대 장남
3
1417~1441
2대 차남
4
1441~1459
3대 아들
5
1459~1470, 1471~1472
3대 조카
6
1470~1471
4대 아들
7
1472~1493 †
5대 동생

2.1. 두 문장 전쟁 [편집]

1459년 코르윈 1세 사후 왕위 계승권을 두고 알드리크 왕조의 두 분가가 벌인 내전. 참나무 문장을 쓴 카일런 분가와 물수리 문장을 쓴 모르베인 분가의 대립이었기에 이 이름이 붙었다. 30여 년에 걸친 소모전 끝에 양 분가의 남계는 사실상 절멸했고, 1493년 헬반 언덕 전투에서 알드리크 3세가 전사하며 종결되었다.

3. 발레리안 왕조 (1493~1603) [편집]

서부 고지의 발레리안 백작가. 5세기 빌베른의 진출을 저지한 암브로스 발레리안의 후손을 자처했으며, 이 계보 주장을 정통성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 레온하르트 2세의 종교 개혁으로 루이나 교회가 창설되었고, 몰수한 수도원 재산이 왕립 조선소와 상비 함대에 투입되면서 이후 해양 팽창의 밑천이 되었다.

4. 카엘몬트 왕조 (1603~1689) [편집]

루이나 남부 고지의 대공가. 이 지역은 로마 시대 방벽 이남에 위치해 켈트계 관습과 언어가 가장 오래 유지된 곳으로, 알드리크 1세의 통일 이후에도 반자치 대공국으로 남아 있었다. 1603년 엘리사벨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남부 고지 대공 제이머스 4세가 루이나 왕위를 겸하면서 두 정치체의 인적 결합이 성립했다.
군주
재위
관계
주요 사건
13
1603~1626
발레리안가 방계
14
1626~1647 †
13대 차남
-
1647~1659
-
15
1659~1680
14대 장남
16
1680~1689 폐위
14대 차남

5. 빌베른계 (1689~1716) [편집]

1688년 왕위협약의 결과 성립한 과도적 왕통. 이 시기 루이나는 빌베른의 공채 제도, 중앙은행, 해상보험과 장기 차입 방식을 통째로 이식받았으며, 이는 이후 한 세기 동안 제국을 지탱한 재정 기반이 되었다.
군주
재위
관계
주요 사건
17
1689~1702
16대 조카·사위
17
1689~1695
16대 장녀
공동왕
18
1702~1716
16대 차녀

6. 린데나우 왕조 (1716~1882) [편집]

대륙 북부 린데나우 선제후가. 레온하르트 2세의 여계 후손으로, 개신교 계승법에 따라 아나 1세의 왕위를 이었다. 게오르크 1세가 루이나어에 서툴러 각의를 주재하지 못한 것을 계기로 내각 수반 관행이 굳어졌고, 이후 왕권은 꾸준히 의례적 지위로 물러났다. 제국의 최전성기와 몰락, 그리고 왕정의 종식이 모두 이 왕조의 재위기에 일어났다.
군주
재위
관계
주요 사건
19
1716~1730
아나 1세 6촌
20
1730~1760
19대 아들
21
1760~1820
20대 손자
22
1820~1830
21대 장남
23
1830~1840
21대 삼남
24
1840~1878
21대 손녀
25
1878~1882 †
24대 장남

6.1. 참칭 왕 [편집]

칭호
인물
기간
옹립
주요 사건
제이머스 3세
1883~1885

7. 계승 위기와 계승전쟁 (1882~1885) [편집]

정식 명칭은 루이나 계승전쟁(1882~1885)이나, 왕당파가 옹립한 인물의 본업 때문에 흔히 목수왕 전쟁으로 불린다. 루이나 왕정을 종식시킨 마지막 내전이다.

7.1. 에드먼드 3세의 급사 [편집]

1882년 4월, 즉위 4년째의 에드먼드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했다. 왕은 대륙 하르슈타트가 출신의 아델하이트 왕비와 혼인했으나 자녀를 두지 못했고, 린데나우 왕조의 직계는 여기서 끊겼다. 계승법상 가장 가까운 방계는 대륙에 흩어진 린데나우가 분가들이었으나, 이들은 여러 대에 걸쳐 루이나와의 관계가 옅어진 상태였고 의회 안에 지지 기반도 없었다.

7.2. 목수왕의 옹립 [편집]

교착이 이어지자 아델하이트 왕비는 전혀 다른 계보를 꺼내 들었다. 1689년 왕위협약으로 폐위되어 대륙으로 망명한 제이머스 2세의 후손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계열은 망명 2세대 만에 궁정에서 밀려나 뮈롱이라는 평민 성을 쓰며 대륙 북부 항구도시에 정착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왕가와의 연결이 거의 잊혀진 상태였다. 왕비의 친정인 하르슈타트가가 18세기에 이 망명 계열과 혼인 관계를 맺은 적이 있어 계보를 추적할 수 있었다.

왕비가 지목한 인물은 대륙의 항구도시 벨덴에서 선박 목수로 일하던 40대의 가스파르 뮈롱이었다. 그는 루이나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자신의 혈통에 대해서도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1882년 겨울, 왕비는 그를 벨포르로 불러들여 「제이머스 3세」로 즉위시킬 것을 요구했다. 기반도 지지 세력도 없는 인물을 왕위에 앉힐 경우 실권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7.3. 의회의 거부 [편집]

의회는 즉각 거부했다. 반대 논거는 세 가지였다.
  • 헌정 논거 — 뮈롱의 계열은 1689년 왕위협약으로 이미 계승권을 상실했으므로, 그를 세우는 것은 협약 이후 200년간 쌓인 헌정 질서 전체를 무효화하는 일이다.
  • 추대 논거 — 국왕을 세우는 권한은 1372년 벨포르 추대회의 이래 왕비 개인이 아니라 대표기구에 있다.
  • 주권 논거 — 루이나어도 하지 못하는 인물을 대륙 출신 왕비가 데려와 앉히는 것은 사실상 외국의 섭정이다.

1883년 2월, 의회는 「왕위 계승에 관한 결의」를 가결해 뮈롱의 계승권을 부인했다. 왕비는 이를 월권으로 규정하고 의회 해산 칙령을 발했으나, 국왕이 부재한 상태에서 발해진 칙령의 효력을 두고 사법부까지 둘로 갈라졌다.

7.4. 두 진영 [편집]

진영
정식 명칭
기반
지도부
은사슴단(왕당파)
왕위수호동맹
남부 고지, 내륙 대지주, 육군 다수, 국교회 고교회파
벨포르 연합(의회파)
의회연합
내해 연안 상업도시, 조선·철강 자본, 해군 전부, 비국교회

은사슴단이라는 통칭은 알드리크 왕조의 옛 문장에서 딴 은사슴 휘장에서 유래했다. 은사슴단은 상대 진영을 조롱해 「장부파」라 불렀다.

7.5. 전쟁 경과 [편집]

1883년 4월, 남부 고지 주둔 육군 2개 사단이 왕비 지지를 선언하고 북상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병력의 다수를 확보한 은사슴단이 유리했으나, 해군이 사실상 전부 의회 편에 서면서 왕당파는 해상 보급과 대륙으로부터의 지원을 차단당했다. 내해 연안 공업 지대와 벨포르의 금융 기관을 장악한 의회파는 무기·탄약·철도 수송에서 압도적 우위를 확보했고, 근세 이래 루이나의 국력이 바다와 산업에 있었다는 사실이 내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883년 가을 이후 전선은 남부 고지 입구에서 교착되었고, 겨울을 넘기며 왕당파의 보급이 무너졌다. 1884년 여름 의회군이 남부 고지로 진격해 이듬해 초 왕당파의 마지막 거점이 함락되었으며, 아델하이트 왕비는 대륙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항구에서 체포되었다. 3년에 걸친 내전으로 약 6만 명이 사망했다.

7.6. 왕위의 소멸 [편집]

1885년 5월, 의회는 1372년 이후 처음으로 벨포르 추대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이 회의는 새 왕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회의는 왕을 세울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먼저 확인한 뒤, 바로 그 권한을 사용해 왕위 자체를 폐지한다고 결의했다. 510년 전 알드리크 1세에게 왕관을 씌운 것과 같은 형식의 회의가, 같은 장소에서 왕관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같은 해 국민투표로 공화국 헌법이 확정되며 제1공화국이 출범했다. 새 헌법은 군주제로의 복귀를 금지하고, 상비 육군의 규모와 지휘 계통에 강한 의회 통제를 두었다. 내전에서 육군이 왕당파의 주력이었다는 기억은 이후 한 세기 가까이 루이나 정치에서 군에 대한 뿌리 깊은 경계심으로 남았다.

7.7. 이후 [편집]

  • 아델하이트 —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나 사형은 면하고 종신 국외 추방. 1901년 대륙에서 사망.
  • 가스파르 뮈롱 — 재판에서 왕관을 원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의회는 그를 정치적 도구로 판단해 방면했다. 벨덴으로 돌아가 목수 일을 계속하다 1898년 사망.
  • 은사슴단 지도부 — 주요 인사 11명 처형, 다수 유형.

8. 왕위 요구자 [편집]

가스파르 뮈롱이 후사를 남기지 않아 카엘몬트 망명 계열은 그의 죽음과 함께 끊겼다. 오늘날 루이나 왕위를 주장하는 계열은 대륙에 남은 린데나우가 분가들뿐이며, 그 주장이 루이나 정치에서 실질적 의미를 가진 적은 없다. 제6공화국 헌법은 군주제로의 복귀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9. 계보도 [편집]


[알드리크 왕조]
알드리크 1세 (1372~1394)
└ 알드리크 2세 (1394~1417)
├ (장남, 요절)
└ 에드먼드 1세 (1417~1441)
├ 코르윈 1세 (1441~1459) ── 코르윈 2세 (1470~1471) ※ 카일런 분가
└ (동생) ── 에드먼드 2세 (1459~1470 / 1471~1472) ※ 모르베인 분가
└ 알드리크 3세 (1472~1493) †헬반 언덕

[발레리안 왕조] ※ 모르베인가 상속녀와의 혼인으로 계승권 통합
레온하르트 1세 (1493~1520)
└ 레온하르트 2세 (1520~1549)
├ 아드리안 1세 (1549~1554)
├ 마르그리트 1세 (1554~1558)
├ 엘리사벨 1세 (1558~1603)
└ (장녀) ── … ── 제이머스 1세

[카엘몬트 왕조] ※ 남부 고지 대공가와의 인적 결합
제이머스 1세 (1603~1626)
└ 카렐 1세 (1626~1647) †처형
├ 카렐 2세 (1659~1680)
└ 제이머스 2세 (1680~1689) 폐위 → 대륙 망명
├ 마리엔 2세 (1689~1695) ═══ 빌럼 3세 (1689~1702)
├ 아나 1세 (1702~1716)
└ (망명 계열) ── … ── 가스파르 뮈롱 「제이머스 3세」(자칭, 1883~1885)

[린데나우 왕조] ※ 레온하르트 2세의 여계 후손
게오르크 1세 (1716~1730)
└ 게오르크 2세 (1730~1760)
└ (왕세자, 조졸)
└ 게오르크 3세 (1760~1820)
├ 게오르크 4세 (1820~1830)
├ 빌헬름 4세 (1830~1840)
└ (사남) ── 아멜리아 1세 (1840~1878)
└ 에드먼드 3세 (1878~1882) † 무사(無嗣) 사망

10. 관련 문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