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마르 Colmar | |||
시장 (市章) | |||
시기 (市旗) | 로고 | ||
FORGED TOGETHER | |||
국가 | |||
지위 | 루이나의 시 | ||
시청 소재지 | 시청 광장 1, 콜마르 20001 | ||
면적 | 전체 | 1,688.24km² | |
육지 | 1,592.38km² | ||
하위 행정구역 | 11구 | ||
인구[1] | 8,012,436명 (2023) | ||
인구밀도 | 5,032명/km² (2023) | ||
광역권 인구[2] | 10,840,000명 (2023) | ||
기후 | |||
1인당 평균 소득[3] | $69,880 (2022) [4] | ||
GDP | 도시 | $9,640억 (2023) | |
광역 | $1조 2,970억 (2023) | ||
시장 | |||
시의회 (55석) | 30석 | ||
21석 | |||
4석 | |||
하원의원 (17석) | 10석 | ||
7석 | |||
지역번호 | 033 | ||
1. 개요 [편집]
콜마르(Colmar)는 루이나의 공업도시다. 2023년 기준 인구는 약 801만 명으로, 루이나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다. 19세기 말 벨포르, 빈덴브루크와 함께 루이나 산업화를 이끈 공업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조선과 자동차, 정밀기계 산업이 도시 경제를 떠받친다. 시 외곽으로는 사보레와 이어지는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어, 공장 지대와 농지가 함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콜마르는 루이나 노동운동의 무대였다. 1934년 콜마르 조선소 파업 때는 파업 지도부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조선소와 차량공장의 노동조합은 루이나에서 가장 강한 노조로 자랐다. 1959년에는 좌파 단체 혁명적 노동자동맹(RWL)이 이곳에서 결성되기도 했다.
검은 10년 동안 콜마르는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973년 콜마르 중앙교도소의 수형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행동대를 결성했고, 1974년 5월 22일에는 극우 조직 공화국의 방패 강경파와 경찰이 4시간 넘게 총격전을 벌인 콜마르 시청 광장 총격전으로 19명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 단위 특공대가 창설되었다. 1977년에는 베르통 정밀공업 콜마르 공장이 폭파되어 노동자 4명이 숨졌고, 1979년 1월에는 차량공장 노조 대의원 로베르 J. 셰뉘가 무장조직 RWL에게 살해되어 장례에 5만 명이 모였다.
지금의 콜마르에는 루이나 해군 제1함대의 콜마르 해군지원단지와 공군 헤이든 공군기지가 있으며, 콜마르 농업기술대학과 콜마르 토목기술대학이 있다. 강한 노조를 바탕으로 사회민주당이 오랫동안 시정을 맡아 왔고, 시청 광장에는 1974년 총격전의 희생자 19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다.
콜마르는 루이나 노동운동의 무대였다. 1934년 콜마르 조선소 파업 때는 파업 지도부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조선소와 차량공장의 노동조합은 루이나에서 가장 강한 노조로 자랐다. 1959년에는 좌파 단체 혁명적 노동자동맹(RWL)이 이곳에서 결성되기도 했다.
검은 10년 동안 콜마르는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973년 콜마르 중앙교도소의 수형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행동대를 결성했고, 1974년 5월 22일에는 극우 조직 공화국의 방패 강경파와 경찰이 4시간 넘게 총격전을 벌인 콜마르 시청 광장 총격전으로 19명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 단위 특공대가 창설되었다. 1977년에는 베르통 정밀공업 콜마르 공장이 폭파되어 노동자 4명이 숨졌고, 1979년 1월에는 차량공장 노조 대의원 로베르 J. 셰뉘가 무장조직 RWL에게 살해되어 장례에 5만 명이 모였다.
지금의 콜마르에는 루이나 해군 제1함대의 콜마르 해군지원단지와 공군 헤이든 공군기지가 있으며, 콜마르 농업기술대학과 콜마르 토목기술대학이 있다. 강한 노조를 바탕으로 사회민주당이 오랫동안 시정을 맡아 왔고, 시청 광장에는 1974년 총격전의 희생자 19명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