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스 푸드 Willis Food|уиллис фуд | |||||||||||||||||
법인명 | Willis Food Co. Уиллис Фуд 윌리스 푸드 | ||||||||||||||||
국가 | |||||||||||||||||
본사 | 톨루즈 서부 아벨린 호숫가 윌리스 캠퍼스 | ||||||||||||||||
설립일 | 1947년 3월 3일 (윌리스 제과) 1956년 5월 14일 (윌리스 푸드) | ||||||||||||||||
전신 | 윌리스 제과 | ||||||||||||||||
창업자 | 새뮤얼 J. 윌리스 (1919~1998) | ||||||||||||||||
업종명 | 곡물 무역·식품·음료 (곡물·유지, 농업 서비스, 육가공, 음료, 스낵 외) | ||||||||||||||||
경영진 | CEO 캐롤라인 윌리스 (2016년~) | ||||||||||||||||
이사회 | 의장 해럴드 벤턴 (2019년~) | ||||||||||||||||
사업 국가 | 54개국 | ||||||||||||||||
직원 수 | 416,000명 (2025년, 연결) | ||||||||||||||||
상장 여부 | 비상장 | ||||||||||||||||
| |||||||||||||||||
| |||||||||||||||||
1. 개요2. 역사
2.1. 창업 (1947~1957)2.2. 전쟁과 군납 (1958~1963)2.3. 곡물로의 역진출 (1961~1972)2.4. 금수 위기와 세대교체 (1973~1988)2.5. 세계화와 수직계열화 (1989~2008)2.6. 규제의 시대와 현재 (2009~)
3. 사업3.1. 곡물·유지 부문3.2. 농업 서비스 부문3.3. 단백질 부문3.4. 식품원료 부문3.5. 음료 부문3.6. 스낵·가공식품 부문3.7. 급식·신선식품 부문3.8. 물류·포장·금융 부문
4. 시장 지위5. 지배구조6. 재무7. 관련 인물8. 기술 및 혁신9. 비판 및 논란10. 기타1. 개요 [편집]
윌리스 푸드(Willis Food, Уиллис Фуд)는 루이나 톨루즈에 본사를 둔 곡물 무역·식품·음료 기업이다. 곡물과 유지작물을 사들여 저장·운송·수출하는 곡물 무역을 본업으로 하면서, 그 곡물로 사료와 식품원료를 만들고, 다시 그 원료로 과자와 탄산음료를 만들어 소매점 진열대까지 직접 배송한다. 밭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거의 모든 단계에 한 회사가 서 있는 셈이다. 2025년 연결 매출은 2,470억 달러, 직원은 41만 6천 명으로 플라자 그룹에 이어 루이나에서 두 번째로 크고, 단일 기업으로는 루이나 최대다.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기업 가운데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출발은 과자였다. 1947년 참전 군인 새뮤얼 J. 윌리스가 톨루즈의 창고 한 칸에서 캐러멜을 끓이던 '윌리스 제과'가 전신이며, 1차 랜드 전쟁 때 녹지 않는 전투식량 초콜릿 바를 군에 납품하면서 전국 규모의 회사가 되었다. 전쟁 중 설탕과 밀가루가 모자라 공장을 세운 경험은 회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윌리스는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제분소와 곡물 엘리베이터를 사들이며 거꾸로 곡물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냉전기 정부의 식량원조 사업을 대행하면서 1972년에는 곡물 매출이 과자 매출을 넘어섰다. 오늘날 매출의 절반 가까이는 곡물·유지 트레이딩에서 나오지만, 루이나 소비자에게 윌리스는 여전히 퍼시픽 소다와 크리스피 골드 감자칩의 회사다.
윌리스는 루이나에서 독점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루이나 곡물 저장 능력의 44%, 곡물 수출의 57%, 탄산음료 시장의 51%, 짭짤한 스낵 시장의 63%를 차지하고, 랜드해협 역내 곡물 교역의 3분의 1이 윌리스를 거친다. "빵 한 조각에도 윌리스의 손이 세 번 닿는다"는 말처럼, 곡물 가격부터 농가 계약, 매장 진열대, 학교 급식판까지 윌리스가 닿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다. 2차 랜드 전쟁 중에는 적국인 사비에트에 곡물을 팔았다는 금수 위반 의혹까지 받았다. 그러나 윌리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제재다운 제재를 거의 받지 않았다. 해외 법인을 앞세우고, 서류상 회사를 쪼개고, 법이 금지한 계약을 법이 금지하지 않은 계약으로 바꾸어 법망을 빠져나가는 솜씨 때문에 "법의 문장은 지키고 법의 취지는 비켜 가는 회사"라는 평을 듣는다. 특정 정권과 유착했다는 의혹은 드물지만, 어느 정부든 윌리스 없이 식량 정책을 펼 수 없었다는 점이 윌리스 권력의 본질이라는 분석이 많다.
출발은 과자였다. 1947년 참전 군인 새뮤얼 J. 윌리스가 톨루즈의 창고 한 칸에서 캐러멜을 끓이던 '윌리스 제과'가 전신이며, 1차 랜드 전쟁 때 녹지 않는 전투식량 초콜릿 바를 군에 납품하면서 전국 규모의 회사가 되었다. 전쟁 중 설탕과 밀가루가 모자라 공장을 세운 경험은 회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윌리스는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제분소와 곡물 엘리베이터를 사들이며 거꾸로 곡물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고, 냉전기 정부의 식량원조 사업을 대행하면서 1972년에는 곡물 매출이 과자 매출을 넘어섰다. 오늘날 매출의 절반 가까이는 곡물·유지 트레이딩에서 나오지만, 루이나 소비자에게 윌리스는 여전히 퍼시픽 소다와 크리스피 골드 감자칩의 회사다.
윌리스는 루이나에서 독점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루이나 곡물 저장 능력의 44%, 곡물 수출의 57%, 탄산음료 시장의 51%, 짭짤한 스낵 시장의 63%를 차지하고, 랜드해협 역내 곡물 교역의 3분의 1이 윌리스를 거친다. "빵 한 조각에도 윌리스의 손이 세 번 닿는다"는 말처럼, 곡물 가격부터 농가 계약, 매장 진열대, 학교 급식판까지 윌리스가 닿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다. 2차 랜드 전쟁 중에는 적국인 사비에트에 곡물을 팔았다는 금수 위반 의혹까지 받았다. 그러나 윌리스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제재다운 제재를 거의 받지 않았다. 해외 법인을 앞세우고, 서류상 회사를 쪼개고, 법이 금지한 계약을 법이 금지하지 않은 계약으로 바꾸어 법망을 빠져나가는 솜씨 때문에 "법의 문장은 지키고 법의 취지는 비켜 가는 회사"라는 평을 듣는다. 특정 정권과 유착했다는 의혹은 드물지만, 어느 정부든 윌리스 없이 식량 정책을 펼 수 없었다는 점이 윌리스 권력의 본질이라는 분석이 많다.
2. 역사 [편집]
2.1. 창업 (1947~1957) [편집]
창업자 새뮤얼 J. 윌리스는 1919년 톨루즈에서 제분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때 병참부대 하사관으로 복무하면서 전투식량 보급을 맡았는데, 병사들에게 나눠 준 초콜릿이 더위에 녹아 포장째 버려지는 일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이 경험은 10여 년 뒤 회사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1946년 제대한 새뮤얼은 이듬해 1947년 3월 3일 아내 에디스 윌리스와 함께 톨루즈 구시가의 창고 한 칸을 빌려 캐러멜 공방 '윌리스 제과'를 열었다. 첫 제품인 '윌리스 캐러멜'은 전후 설탕 배급이 풀리던 시기와 맞물려 톨루즈 일대에서 인기를 끌었다. 1950년대 초에는 비스킷과 판 초콜릿으로 제품을 늘렸고, 1953년 첫 공장을 세웠다.
1956년 5월 14일 윌리스 제과는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상호를 '윌리스 푸드'로 바꾸었다. 새뮤얼은 훗날 "과자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회고했지만, 당시 윌리스 푸드는 톨루즈에 공장 2곳과 직원 340명을 둔 지역 제과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1946년 제대한 새뮤얼은 이듬해 1947년 3월 3일 아내 에디스 윌리스와 함께 톨루즈 구시가의 창고 한 칸을 빌려 캐러멜 공방 '윌리스 제과'를 열었다. 첫 제품인 '윌리스 캐러멜'은 전후 설탕 배급이 풀리던 시기와 맞물려 톨루즈 일대에서 인기를 끌었다. 1950년대 초에는 비스킷과 판 초콜릿으로 제품을 늘렸고, 1953년 첫 공장을 세웠다.
1956년 5월 14일 윌리스 제과는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상호를 '윌리스 푸드'로 바꾸었다. 새뮤얼은 훗날 "과자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회고했지만, 당시 윌리스 푸드는 톨루즈에 공장 2곳과 직원 340명을 둔 지역 제과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2.2. 전쟁과 군납 (1958~1963) [편집]
1958년 1차 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국방부는 더운 전선에서도 녹지 않는 고열량 휴대식량을 공모했다. 윌리스는 코코아버터의 일부를 경화 식물성 유지로 바꾸고 분유와 귀리가루를 섞어 녹는점을 크게 높인 초콜릿 바를 내놓았고, 이 제품이 1958년 11월 '필드 바(Field Bar)'라는 이름으로 전투식량에 채택되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삶은 감자보다 조금 나은 맛"이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한여름 전선에서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점 하나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1억 개가 납품되었다. 윌리스는 건빵과 분말 음료도 함께 납품했다.
1961년 윌리스는 파산 직전의 지역 병입회사 노바 보틀링을 인수했다. 노바 보틀링의 콜라 '퍼시픽 소다'는 동네 가게에서나 팔리던 음료였지만, 윌리스는 국방부와 "전선 어디서든 병사 한 명에게 콜라 한 병을 5센트에"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후방 기지 14곳에 이동식 병입 공장을 세웠다. 병입 공장의 건설비 상당 부분은 군수 예산으로 충당되었다. 전쟁 5년 동안 윌리스의 매출은 23배로 늘었다.
1963년 오로아 조약으로 전쟁이 끝나자, 전선에서 필드 바와 퍼시픽 소다를 먹고 마신 수십만 명의 제대 군인이 윌리스의 첫 번째 전국 단위 고객이 되었다. 윌리스는 필드 바를 민수용으로 다시 배합해 1964년 시판했고, 퍼시픽 소다는 1960년대 중반 루이나 탄산음료 시장 1위에 올랐다.
1961년 윌리스는 파산 직전의 지역 병입회사 노바 보틀링을 인수했다. 노바 보틀링의 콜라 '퍼시픽 소다'는 동네 가게에서나 팔리던 음료였지만, 윌리스는 국방부와 "전선 어디서든 병사 한 명에게 콜라 한 병을 5센트에"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후방 기지 14곳에 이동식 병입 공장을 세웠다. 병입 공장의 건설비 상당 부분은 군수 예산으로 충당되었다. 전쟁 5년 동안 윌리스의 매출은 23배로 늘었다.
1963년 오로아 조약으로 전쟁이 끝나자, 전선에서 필드 바와 퍼시픽 소다를 먹고 마신 수십만 명의 제대 군인이 윌리스의 첫 번째 전국 단위 고객이 되었다. 윌리스는 필드 바를 민수용으로 다시 배합해 1964년 시판했고, 퍼시픽 소다는 1960년대 중반 루이나 탄산음료 시장 1위에 올랐다.
2.3. 곡물로의 역진출 (1961~1972) [편집]
전쟁은 윌리스에게 원료의 무서움도 가르쳤다. 1960년 설탕과 밀가루 공급이 끊겨 필드 바 생산이 3주 동안 멈추었고, 국방부로부터 계약 해지 경고까지 받았다. 새뮤얼은 이때 "원료를 사는 회사는 원료를 파는 회사에게 진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지금도 윌리스의 사훈처럼 인용된다.
윌리스는 1961년 톨루즈 제분소를 인수한 데 이어, 1963년에는 파산한 벨포르 평야 곡물조합의 엘리베이터 17기를 사들였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농가에서 곡물을 사들여 저장하고 철도와 배로 내보내는 거점 시설로, 이것을 가진 쪽이 지역의 곡물 흐름을 쥔다. 윌리스는 1960년대 내내 경영난에 빠진 지역 엘리베이터를 사 모아 1972년에는 벨포르 평야에만 140기가 넘는 엘리베이터를 거느렸다.
결정적인 기회는 정부의 식량원조 사업이었다. 루이나 정부는 1962년 대외식량원조법을 제정해 국내 잉여 곡물을 사들여 북산, 빌베른, 웨스타시아 등 동맹국과 랜드해협 바깥의 개발도상국에 원조했는데, 곡물의 수매·저장·선적은 민간 업체에 맡겼다. 엘리베이터망을 갖춘 윌리스는 이 사업의 최대 수탁업체가 되었고, 1969년에는 원조 곡물의 41%를 윌리스가 취급했다. 정부의 식량원조는 공산권의 영향력을 막는 냉전 외교 수단이었고, 윌리스는 그 외교의 물류를 떠맡으며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업체가 되었다.
1964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해외 판매와 해운 계약, 환 위험 관리를 맡는 자회사 윌리스 인터내셔널 SA를 세웠다. 스위스의 낮은 세율과 엄격한 기업 비밀주의를 활용한 것으로, 이 법인은 훗날 금수 위반 의혹과 이전가격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66년에는 옥수수 습식 제분 공장을 세워 전분과 포도당 시럽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8년에는 곡물 운반선 6척으로 해운 자회사 윌리스 마린을 출범시켰다.
1972년 윌리스의 매출은 31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 해 처음으로 곡물 부문 매출이 소비재 부문 매출을 넘어섰다. 사내에서는 이 해를 "과자 회사가 곡물 회사가 된 해"라고 부른다.
윌리스는 1961년 톨루즈 제분소를 인수한 데 이어, 1963년에는 파산한 벨포르 평야 곡물조합의 엘리베이터 17기를 사들였다. 곡물 엘리베이터는 농가에서 곡물을 사들여 저장하고 철도와 배로 내보내는 거점 시설로, 이것을 가진 쪽이 지역의 곡물 흐름을 쥔다. 윌리스는 1960년대 내내 경영난에 빠진 지역 엘리베이터를 사 모아 1972년에는 벨포르 평야에만 140기가 넘는 엘리베이터를 거느렸다.
결정적인 기회는 정부의 식량원조 사업이었다. 루이나 정부는 1962년 대외식량원조법을 제정해 국내 잉여 곡물을 사들여 북산, 빌베른, 웨스타시아 등 동맹국과 랜드해협 바깥의 개발도상국에 원조했는데, 곡물의 수매·저장·선적은 민간 업체에 맡겼다. 엘리베이터망을 갖춘 윌리스는 이 사업의 최대 수탁업체가 되었고, 1969년에는 원조 곡물의 41%를 윌리스가 취급했다. 정부의 식량원조는 공산권의 영향력을 막는 냉전 외교 수단이었고, 윌리스는 그 외교의 물류를 떠맡으며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업체가 되었다.
1964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 해외 판매와 해운 계약, 환 위험 관리를 맡는 자회사 윌리스 인터내셔널 SA를 세웠다. 스위스의 낮은 세율과 엄격한 기업 비밀주의를 활용한 것으로, 이 법인은 훗날 금수 위반 의혹과 이전가격 분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66년에는 옥수수 습식 제분 공장을 세워 전분과 포도당 시럽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고, 1968년에는 곡물 운반선 6척으로 해운 자회사 윌리스 마린을 출범시켰다.
1972년 윌리스의 매출은 31억 달러에 이르렀고, 이 해 처음으로 곡물 부문 매출이 소비재 부문 매출을 넘어섰다. 사내에서는 이 해를 "과자 회사가 곡물 회사가 된 해"라고 부른다.
2.4. 금수 위기와 세대교체 (1973~1988) [편집]
1973년 7월 14일 2차 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는 8월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적성국 교역 금지 조치」를 발동해 곡물·사료·비료를 포함한 모든 물자의 공산권 수출을 막았다. 윌리스는 다시 군납에 나서 2세대 필드 바와 퍼시픽 소다를 전선에 보냈고, 전쟁 수요로 국내 곡물가가 오르면서 곡물 부문도 호황을 누렸다.
1976년 11월, 종전 한 달여 뒤 진보 일간지 《라 부아》가 윌리스 인터내셔널 SA가 전쟁 중 제3국 무역상을 거쳐 사비에트에 대량의 곡물을 팔았다고 폭로했다. 1977년 하원 청문회가 열렸지만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판매 주체가 스위스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1978년 제정된 대외무역관리령에는 해외 자회사를 통한 우회 수출을 처벌하는 조항이 들어갔고, 이 조항은 지금도 '윌리스 조항'으로 불린다.
1979년 새뮤얼은 건강을 이유로 물러났고, 장남 로버트 A. 윌리스가 2대 CEO에 올랐다. 1978~1980년 군정기에 윌리스는 정부의 곡물가 동결 요구에 비축분을 풀어 협조했을 뿐 눈에 띄는 특혜를 받지 않았다. 군정의 기업으로 불리는 플라자 그룹과 달리 윌리스에 군정 유착 의혹이 드문 것은 이 때문이다.
로버트는 곡물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곡물을 먹는 쪽으로 사업을 넓혔다. 1983년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을 인수해 윌리스 프로틴을 세우고, 병아리와 사료를 대고 농가에 사육을 맡기는 육계 계열화 방식을 루이나에 처음 본격 도입했다. 사료를 팔던 회사가 가축의 주인이 된 것이다. 1981년 공정거래법 제정으로 출범한 루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1984년 윌리스의 곡물 엘리베이터 지배력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윌리스는 엘리베이터 상당수를 서류상 분리하는 방식으로 1989년 무혐의 처분을 받아 냈다.
1976년 11월, 종전 한 달여 뒤 진보 일간지 《라 부아》가 윌리스 인터내셔널 SA가 전쟁 중 제3국 무역상을 거쳐 사비에트에 대량의 곡물을 팔았다고 폭로했다. 1977년 하원 청문회가 열렸지만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판매 주체가 스위스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1978년 제정된 대외무역관리령에는 해외 자회사를 통한 우회 수출을 처벌하는 조항이 들어갔고, 이 조항은 지금도 '윌리스 조항'으로 불린다.
상세 내용은 금수 위반 의혹 문단 참고.
1979년 새뮤얼은 건강을 이유로 물러났고, 장남 로버트 A. 윌리스가 2대 CEO에 올랐다. 1978~1980년 군정기에 윌리스는 정부의 곡물가 동결 요구에 비축분을 풀어 협조했을 뿐 눈에 띄는 특혜를 받지 않았다. 군정의 기업으로 불리는 플라자 그룹과 달리 윌리스에 군정 유착 의혹이 드문 것은 이 때문이다.
로버트는 곡물을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곡물을 먹는 쪽으로 사업을 넓혔다. 1983년 도축장과 육가공 공장을 인수해 윌리스 프로틴을 세우고, 병아리와 사료를 대고 농가에 사육을 맡기는 육계 계열화 방식을 루이나에 처음 본격 도입했다. 사료를 팔던 회사가 가축의 주인이 된 것이다. 1981년 공정거래법 제정으로 출범한 루이나 공정거래위원회가 1984년 윌리스의 곡물 엘리베이터 지배력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윌리스는 엘리베이터 상당수를 서류상 분리하는 방식으로 1989년 무혐의 처분을 받아 냈다.
2.5. 세계화와 수직계열화 (1989~2008) [편집]
1990년대 윌리스는 랜드해협 각국으로 뻗어 나갔다. 북산, 빌베른, 플로렌시아, 유고랜드의 제분·사료 회사를 잇따라 인수했고, 랜드해협 바깥의 곡물 산지에 수출 터미널을 세웠다. 1990년 12개국이던 사업 국가는 2000년 38개국으로 늘었다. 소비재 쪽에서는 1987년 스포츠음료 '아이스필드', 1993년 생수 '클리어스프링'을 내놓았다.
1994년에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창업 2세대 방계 가족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 현금화를 요구하면서 상장 압력이 거세졌는데, 윌리스는 종업원지주신탁이 방계 가족의 지분을 사들이게 해 상장을 피했다. 상장하면 부문별 실적과 거래 내역을 공시해야 하는데, 윌리스는 이것을 무엇보다 꺼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1998년 로버트가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이 되고, 첫 가문 밖 경영인인 토머스 H. 레이놀즈가 3대 CEO가 되었다. 2001년 루이나-고랜드 전쟁이 시작되자 국방부는 병영 식당 운영을 민간에 맡기기 시작했고,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는 국내 병영과 해외 기지의 식당을 대거 수주했다. 윌리스로서는 세 번째 전쟁 특수였다. 2004년에는 곡물 파생상품을 다루는 윌리스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세워 농가와 식품회사의 가격 위험 관리를 대행하는 한편, 자기 계정으로도 대규모 거래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7~2008년 세계 곡물가 폭등은 윌리스에 사상 최대의 이익을 안겼다. 2008 회계연도 순이익은 전년의 2.6배로 뛰었는데, 같은 시기 루이나의 빵값은 1년 새 31% 올랐다. 의회는 곡물 폭리 청문회를 열고 곡물 초과이윤 특별세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상원에서 폐기되었다.
1994년에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창업 2세대 방계 가족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 현금화를 요구하면서 상장 압력이 거세졌는데, 윌리스는 종업원지주신탁이 방계 가족의 지분을 사들이게 해 상장을 피했다. 상장하면 부문별 실적과 거래 내역을 공시해야 하는데, 윌리스는 이것을 무엇보다 꺼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1998년 로버트가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이 되고, 첫 가문 밖 경영인인 토머스 H. 레이놀즈가 3대 CEO가 되었다. 2001년 루이나-고랜드 전쟁이 시작되자 국방부는 병영 식당 운영을 민간에 맡기기 시작했고,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는 국내 병영과 해외 기지의 식당을 대거 수주했다. 윌리스로서는 세 번째 전쟁 특수였다. 2004년에는 곡물 파생상품을 다루는 윌리스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세워 농가와 식품회사의 가격 위험 관리를 대행하는 한편, 자기 계정으로도 대규모 거래를 벌이기 시작했다.
2007~2008년 세계 곡물가 폭등은 윌리스에 사상 최대의 이익을 안겼다. 2008 회계연도 순이익은 전년의 2.6배로 뛰었는데, 같은 시기 루이나의 빵값은 1년 새 31% 올랐다. 의회는 곡물 폭리 청문회를 열고 곡물 초과이윤 특별세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상원에서 폐기되었다.
2.6. 규제의 시대와 현재 (2009~) [편집]
2009년 4대 CEO에 오른 데이비드 K. 오스틴은 이익 변동이 큰 곡물 트레이딩의 비중을 줄이고 식품원료와 정밀농업으로 사업을 넓혔다. 2012년 출시한 농가용 정밀농업 플랫폼 '윌리스 팜링크'는 계약 농가의 토양·기상·수확량 자료를 모으는 창구가 되었다. 리처드 콜턴 정부(2013~2017)의 규제 완화 기조 속에서 윌리스는 2014년 스낵 시장 2위 하비스트 크라운을 인수했다.
2016년 창업자의 손녀이자 로버트의 딸인 캐롤라인 윌리스가 5대 CEO에 올랐다. 제네바의 윌리스 인터내셔널에서 곡물 트레이더로 경력을 시작한 인물로, 18년 만에 가문 출신 CEO가 돌아온 셈이다. 2019년 로버트가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투자은행가 출신 해럴드 벤턴이 가문 밖 인사로는 처음으로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2021년 출범한 그래이 정부는 식량 주권과 농민 보호를 내걸고 윌리스를 정조준했다. 2022년 세계 곡물가 급등으로 윌리스가 사상 최대인 2,7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자,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곡물 게시가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윌리스는 2025년 동의의결로 위법 판단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곡물 트레이더에게 재고와 거래 내역 보고 의무를 지우는 식량안보법 개정안은 2024년 발의된 뒤 지금까지 의회에 계류 중이다.
캐롤라인 체제의 윌리스는 저당 음료와 식물성 단백질을 새 성장축으로 내세우고, 2040년까지 공급망 전체의 온실가스 순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감축 비용의 상당 부분을 계약 농가의 설비 교체 의무로 떠넘긴다는 비판도 받는다.
2016년 창업자의 손녀이자 로버트의 딸인 캐롤라인 윌리스가 5대 CEO에 올랐다. 제네바의 윌리스 인터내셔널에서 곡물 트레이더로 경력을 시작한 인물로, 18년 만에 가문 출신 CEO가 돌아온 셈이다. 2019년 로버트가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투자은행가 출신 해럴드 벤턴이 가문 밖 인사로는 처음으로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2021년 출범한 그래이 정부는 식량 주권과 농민 보호를 내걸고 윌리스를 정조준했다. 2022년 세계 곡물가 급등으로 윌리스가 사상 최대인 2,7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자,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곡물 게시가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윌리스는 2025년 동의의결로 위법 판단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곡물 트레이더에게 재고와 거래 내역 보고 의무를 지우는 식량안보법 개정안은 2024년 발의된 뒤 지금까지 의회에 계류 중이다.
캐롤라인 체제의 윌리스는 저당 음료와 식물성 단백질을 새 성장축으로 내세우고, 2040년까지 공급망 전체의 온실가스 순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감축 비용의 상당 부분을 계약 농가의 설비 교체 의무로 떠넘긴다는 비판도 받는다.
3. 사업 [편집]
윌리스의 사업은 곡물을 사고파는 상류(上流)와 그 곡물로 먹을거리를 만들어 파는 하류(下流)로 나뉜다. 상류는 이익률이 낮지만 물량이 막대하고, 하류는 물량은 작아도 이익률이 높다. 곡물·유지와 농업 서비스, 식품원료를 묶은 상류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내고, 단백질과 음료, 스낵, 급식을 묶은 하류가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낸다. 두 쪽이 서로의 원료와 판로가 되어 준다는 점이 윌리스의 가장 큰 강점이자 독점 논란의 뿌리다.
3.1. 곡물·유지 부문 [편집]
3.1.1. 윌리스 그레인 [편집]
윌리스의 본체이자 최대 사업부다. 루이나와 랜드해협 각국의 농가에서 옥수수, 보리, 밀, 대두, 유채를 사들여 저장하고, 철도와 바지선, 곡물선으로 실어 국내 제분·사료 회사와 해외 수입국에 판다. 루이나 국내에 직영 곡물 엘리베이터 238기와 장기 계약으로 묶인 파트너 엘리베이터 131기, 수출 터미널 7곳을 운영하며, 해외에는 곡물 산지와 소비지에 걸쳐 수출입 터미널 41곳을 가지고 있다. 유지작물을 짜서 식용유와 사료용 박(粕)을 만드는 착유 공장도 이 부문에 속한다.
곡물 트레이딩의 이익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산지와 소비지의 가격 차, 수확기와 비수기의 가격 차, 곡물 등급 간의 가격 차를 저장과 운송으로 메우는 것이 곡물 회사의 일이고, 그 차이를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아는 쪽이 돈을 번다. 윌리스가 전 세계에 깔아 둔 엘리베이터와 터미널, 선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정보망이다.
곡물 트레이딩의 이익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산지와 소비지의 가격 차, 수확기와 비수기의 가격 차, 곡물 등급 간의 가격 차를 저장과 운송으로 메우는 것이 곡물 회사의 일이고, 그 차이를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하게 아는 쪽이 돈을 번다. 윌리스가 전 세계에 깔아 둔 엘리베이터와 터미널, 선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정보망이다.
3.1.2. 윌리스 인터내셔널 SA [편집]
1964년 스위스 제네바에 세운 국제 트레이딩 법인이다. 루이나 밖에서 이루어지는 곡물 거래의 계약 주체이자 해운 용선, 환 위험 관리를 맡는다. 서류상 윌리스 해외 곡물 매출의 대부분이 이 법인에서 발생하며, 그만큼 이익도 이곳에 쌓인다. 2차 랜드 전쟁 중의 금수 위반 의혹과 2017~2022년 이전가격 과세 분쟁이 모두 이 법인을 무대로 벌어졌다.
3.2. 농업 서비스 부문 [편집]
윌리스 애그리서비스는 농가에 종자와 비료, 농약, 배합사료를 팔고 영농자금을 빌려준다. 윌리스가 개발한 스낵용 감자 품종 '골드크레스트'와 사료용 옥수수 교잡종 여러 종의 종자권을 가지고 있으며, 배합사료 시장의 29%를 차지한다. 이 부문의 핵심은 '윌리스 파트너 프로그램'이라는 계약재배 제도다. 루이나 안에서만 약 3만 8천 호의 농가가 이 프로그램에 묶여 있는데, 농가는 윌리스에게서 종자와 비료를 외상으로 받고 수확물을 윌리스에 우선 팔며, 외상 대금은 수확물 대금에서 공제된다. 정밀농업 플랫폼 윌리스 팜링크도 이 부문에서 운영한다.
3.3. 단백질 부문 [편집]
윌리스 프로틴은 닭, 돼지, 소를 도축·가공해 정육과 가공육을 만든다. 루이나 육계 도계 물량의 34%를 차지하는데, 이 가운데 대부분은 윌리스가 병아리와 사료, 약품을 대고 농가가 축사와 노동을 대는 계열화 방식으로 생산된다. 가축의 소유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윌리스에 있고, 농가는 사육 수수료를 받는다. 곡물 부문에서 사료를 사 가는 가장 큰 고객이 바로 단백질 부문이다.
3.4. 식품원료 부문 [편집]
윌리스 인그리디언츠는 옥수수와 밀, 유지작물을 가공해 전분, 포도당 시럽, 고과당 옥수수 시럽, 식물성 유지, 단백질 분리물 같은 식품원료를 만든다. 고객은 루이나와 랜드해협 각국의 식품·음료 회사인데, 그 가운데에는 윌리스 스낵·윌리스 베버리지와 매대에서 경쟁하는 회사들도 많다. 경쟁사가 윌리스에게서 원료를 사야 하는 구조는 윌리스가 원료 가격으로 경쟁사의 원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의혹을 낳았다.
3.5. 음료 부문 [편집]
윌리스 베버리지는 루이나 탄산음료 시장의 51%를 차지하는 최대 음료 회사다. 1961년 인수한 퍼시픽 소다를 중심으로 탄산음료, 스포츠음료, 주스, 생수, 커피 음료를 만들며, 루이나 전역에 병입 공장 22곳을 운영한다. 해외에서는 랜드해협 각국에 현지 병입 업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진출해 있다.
브랜드 | 종류 | 출시 |
퍼시픽 소다 | 콜라 | 1961년 인수 |
노바 제로 | 무설탕 콜라 | 1998년 |
오차드 | 주스 | 1974년 |
아이스필드 | 스포츠음료 | 1987년 |
클리어스프링 | 생수 | 1993년 |
블랙포트 | 커피 음료 | 2009년 |
3.6. 스낵·가공식품 부문 [편집]
윌리스 스낵은 루이나 짭짤한 스낵 시장의 63%를 차지한다. 원래 윌리스 제과 시절의 과자 사업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감자칩과 옥수수칩이 주력이다. 2014년 하비스트 크라운을 인수하면서 2위 업체까지 품었고, 그 뒤로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시장이 되었다. 필드 바는 지금도 군에 납품되며, 민수용 제품은 등산객과 캠핑족 사이에서 복고 상품으로 팔린다.
브랜드 | 종류 | 출시 |
윌리스 캐러멜 | 캐러멜 | 1947년 |
필드 바 | 초콜릿 바 | 1958년 |
크리스피 골드 | 감자칩 | 1965년 |
모닝 오츠 | 시리얼 | 1969년 |
해리어 | 옥수수칩 | 1971년 |
하비스트 크라운 | 크래커·팝콘 | 2014년 인수 |
3.7. 급식·신선식품 부문 [편집]
윌리스 프레시 푸드는 세척·절단 채소, 계란, 유제품, 냉동식품 같은 신선식품을 식당과 학교, 소매점에 공급한다. 루이나 영양지원청이 운영하는 전국 240개 학교급식지원센터 공급액의 38%가 윌리스 몫이다.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는 병영 식당과 병원, 기업 구내식당, 경기장 매점을 운영하며, 국내 병영 식당의 63%를 맡고 있다.
3.8. 물류·포장·금융 부문 [편집]
윌리스 마린은 곡물선과 바지선 180여 척을 운용하며 윌리스의 곡물을 실어 나른다. 컨테이너 해운은 하지 않으며, 곡물 이외의 벌크 화물은 플라자 그룹의 해운 계열사와 제휴한다. 윌리스 패키징은 음료 병과 캔, 스낵 봉지를 만든다. 윌리스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곡물 선물과 옵션으로 농가와 식품회사의 가격 위험을 관리해 주는 금융 자회사로, 톨루즈 곡물거래소의 최대 거래자 가운데 하나다.
4. 시장 지위 [편집]
윌리스는 루이나 곡물·식품 산업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1위이며, 몇몇 분야에서는 사실상의 독점 사업자다. 비상장 기업이라 공식 점유율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에 아래 수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농림부, 업계 추정을 종합한 것이다.
분야 | 점유율 | 기준 |
곡물 저장 능력 | 44% | 루이나 |
곡물 수출 | 57% | 루이나 |
밀 수입 | 48% | 루이나 |
역내 곡물 교역 | 34% | 랜드해협 |
배합사료 | 29% | 루이나 |
육계 | 34% | 루이나 |
탄산음료 | 51% | 루이나 |
짭짤한 스낵 | 63% | 루이나 |
급식 식자재 | 38% | 학교급식지원센터 |
곡물 저장 능력 44%는 서류상 수치다. 1986년 분리한 파트너 엘리베이터 131기를 더하면 윌리스가 곡물 흐름을 통제하는 저장 능력은 61%에 이른다. 루이나는 밀을 대부분 수입하는데, 수입 밀의 절반 가까이를 윌리스가 들여와 윌리스의 제분소에서 빻는다. 빵 한 조각에 윌리스의 손이 세 번 닿는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밀을 들여올 때, 밀가루로 빻을 때, 그리고 그 밀가루로 만든 빵이 윌리스의 직배송 트럭에 실려 매장에 들어갈 때다.
랜드해협 전체로 보면 윌리스는 역내 곡물 교역의 34%를 차지하는 1위 업체이며, 외국계 곡물 메이저 두 곳과 함께 역내 교역의 70% 가까이를 나누어 가진다. 북산과 빌베른, 유고랜드에서는 수입 곡물의 절반 이상이 윌리스를 거친다.
5. 지배구조 [편집]
윌리스 푸드는 지주회사를 두지 않고 윌리스 푸드 자체가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직접 또는 중간 법인을 거쳐 보유하는 구조다. 주식은 상장되어 있지 않으며, 창업자 새뮤얼 J. 윌리스의 직계 후손 60여 명이 수익자로 있는 윌리스 가족신탁이 84.2%를 가지고 있다.
주주 | 지분 |
윌리스 가족신탁 | 84.2% |
종업원지주신탁 | 12.9% |
윌리스 가족재단 |
|
전현직 임원 |
|
가문의 지배는 1994년 맺은 가족 협약으로 묶여 있다. 가족 구성원은 신탁 지분을 가문 밖에 팔 수 없고, 회사는 매년 순이익의 80% 이상을 재투자하며 배당은 20% 이하로 묶는다. 대신 지분을 현금화하려는 가족은 종업원지주신탁이나 다른 가족에게 정해진 산식의 가격으로 팔 수 있다. 1994년 종업원지주제 도입이 바로 이 출구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가족신탁의 수탁위원장은 창업자의 딸 엘리너 윌리스-호손이고, 캐롤라인의 동생 제임스 R. 윌리스가 윌리스 가족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사회는 의장 해럴드 벤턴을 포함해 12명으로, 가문 출신 4명, 경영진 2명, 사외이사 6명이다. 사외이사 6명 가운데 2명은 전직 농림부 차관, 1명은 전직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이어서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는다.
상장하지 않은 덕에 윌리스는 증권거래위원회의 공시 의무를 지지 않는다.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한 1994년부터 요약 연차보고서를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있지만, 계열사별 실적이나 곡물 거래 내역, 해외 법인의 이익은 공개하지 않는다. 윌리스가 어디서 얼마를 버는지는 윌리스만 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6. 재무 [편집]
아래 수치는 윌리스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연차보고서를 기준으로 한다. 최근 5년 실적은 다음과 같다. (단위: USD)
연도 | 매출액 | 영업이익 | 당기순이익 |
2021 | 2,210억 | 151억 | 97억 |
2022 | 2,780억 | 214억 | 148억 |
2023 | 2,620억 | 176억 | 118억 |
2024 | 2,390억 | 149억 | 95억 |
2025 | 2,470억 | 162억 | 104억 |
2022년의 사상 최대 실적은 세계 곡물가 급등이 만든 것이다. 곡물 회사의 매출은 물량보다 가격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곡물가가 제자리로 돌아온 2024년에는 매출도 2021년 수준으로 내려왔다. 반면 음료와 스낵의 이익은 해마다 큰 변동 없이 쌓인다. 곡물이 흔들릴 때 과자와 콜라가 받쳐 주는 구조다.
2025년 부문별 실적은 다음과 같다.
부문 | 매출액 | 영업이익 |
곡물·유지 | 1,120억 | 31억 |
단백질 | 360억 | 12억 |
음료 | 330억 | 49억 |
스낵·가공식품 | 290억 | 41억 |
농업 서비스 | 210억 | 14억 |
식품원료 | 180억 | 15억 |
급식·신선식품 | 120억 | 6억 |
물류·포장·금융 | 90억 | 4억 |
내부거래 제거 등 | -230억 | -10억 |
합계 | 2,470억 | 162억 |
곡물·유지 부문은 매출의 45%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률은 2.8%에 불과하다. 음료(14.8%)와 스낵·가공식품(14.1%)은 둘을 합쳐도 매출 비중이 4분의 1 남짓인데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낸다. 다만 윌리스 인터내셔널 SA에 쌓이는 해외 트레이딩 이익이 어느 부문에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공개되지 않아, 곡물 부문의 실제 이익률은 이보다 높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다.
연결 자산 1,980억 달러 가운데 약 410억 달러는 엘리베이터와 선박, 창고에 쌓여 있는 곡물 재고다. 부채 1,16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은 곡물 매입 대금을 위한 단기 차입금으로, 수확기에 늘었다가 판매가 끝나면 줄어드는 계절성을 보인다. 연결 부채비율은 141%, 순차입금은 약 380억 달러다.
신용평가사들은 2025년 윌리스의 등급을 한 단계씩 올려 A1(무디스), A+(S&P 글로벌·피치)를 주고 있다. 곡물 동의의결로 규제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점, 식품이라는 필수재를 다룬다는 점, 배당을 묶어 둔 가족 협약 덕에 재무가 보수적이라는 점이 반영되었다. 반면 곡물가 변동에 따른 이익의 출렁임, 비상장 기업으로서의 정보 공개 한계, 해외 법인 구조의 불투명성은 등급의 상한으로 꼽힌다.
7. 관련 인물 [편집]
인물 | 직위 | 비고 |
새뮤얼 J. 윌리스 | 창업자·초대 CEO | 1956~1979년 재임 |
에디스 윌리스 | 공동 창업자 | 새뮤얼의 아내 |
로버트 A. 윌리스 | 2대 CEO·의장 | CEO 1979~1998년, 의장 1998~2019년 |
토머스 H. 레이놀즈 | 3대 CEO | 첫 가문 밖 CEO, 1998~2009년 |
데이비드 K. 오스틴 | 4대 CEO | 2009~2016년 |
캐롤라인 윌리스 | 5대 CEO | 2016년~, 창업자의 손녀 |
해럴드 벤턴 | 이사회 의장 | 2019년~, 첫 가문 밖 의장 |
엘리너 윌리스-호손 | 가족신탁 수탁위원장 | 창업자의 딸 |
에드거 L. 모로 | 윌리스 인터내셔널 SA 사장 | 1969~1977년, 금수 위반 의혹 당사자 |
8. 기술 및 혁신 [편집]
- 필드 바 (1958): 코코아버터 일부를 경화 식물성 유지로 바꿔 녹는점을 높인 초콜릿 바. 윌리스의 첫 특허로, 이후 루이나군 고열량 휴대식량의 표준 배합이 되었다.
- 이동식 병입 공장 (1961): 트럭 4대에 나눠 실을 수 있는 모듈식 병입 설비. 전선 후방 어디서든 사흘 안에 가동할 수 있었고, 1990년대 해외 진출 때도 같은 방식이 쓰였다.
- 곡물 게시가 전산망 (1971): 본사가 매일 아침 모든 엘리베이터의 곡물 매입가를 일괄 산정해 전송하는 체계. 루이나 최초의 기업 전산망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 게시가 논란의 기술적 뿌리이기도 하다.
- 고과당 옥수수 시럽 (1976): 1966년 세운 습식 제분 공장에서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1979년 퍼시픽 소다의 감미료를 설탕에서 이 시럽으로 바꾸면서 원가를 크게 낮췄다.
- 골드크레스트 감자 (1988): 당 함량이 낮아 튀길 때 갈변이 적은 스낵용 품종. 크리스피 골드의 품질을 균일하게 만들었지만, 종자권을 윌리스가 쥐고 있어 감자 농가를 묶어 두는 수단이 되었다.
- 작황 예측 모델 (1990년대~): 위성 사진과 기상 자료, 자사 선적 자료를 합쳐 세계 주요 산지의 작황을 예측하는 모델. 정부 발표보다 빠르고 정확하다는 평을 들으며, 곡물 거래의 정보 우위를 낳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 윌리스 팜링크 (2012): 계약 농가에 파종·시비 처방을 내려 주는 정밀농업 플랫폼. 농가 생산성을 높였지만 수만 농가의 토양·수확량 자료가 윌리스에 모이는 창구가 되었다.
- 그린 필드 (2021): 완두 단백질 기반의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캐롤라인 체제의 신성장 사업이다.
9. 비판 및 논란 [편집]
9.1. 곡물 가격 결정력 [편집]
루이나 농가는 대부분 수확한 곡물을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에 판다. 곡물은 무겁고 부피가 커서 멀리 실어 나를수록 운송비가 가격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벨포르 평야의 엘리베이터 상당수가 윌리스 직영이거나 윌리스와 장기 계약으로 묶인 파트너 엘리베이터다. 윌리스가 매일 아침 6시 모든 엘리베이터에 내거는 '게시가'가 사실상 그 지역의 곡물 시세가 되는 이유다.
게시가는 톨루즈 곡물거래소의 선물 가격에서 '베이시스'를 뺀 값이다. 베이시스는 운송비와 저장비, 엘리베이터의 마진을 반영한다는 명목의 차감액인데, 이것을 정하는 것이 윌리스다. 2019년 톨루즈 농업대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반경 40km 안에 윌리스 외에 다른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역의 베이시스는 경쟁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역보다 톤당 평균 8.3달러 넓었다. 루이나 곡물 생산량에 대입하면 해마다 수억 달러가 농가에서 윌리스로 넘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윌리스는 베이시스 차이가 외딴 지역의 물류비를 반영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선물 가격 자체에 대한 영향력도 논란거리다. 윌리스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톨루즈 곡물거래소 옥수수 선물 미결제약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최대 거래자 가운데 하나이고, 윌리스는 전 세계에 깔린 엘리베이터와 선박, 자체 작황 예측 모델로 누구보다 먼저 수급 변화를 읽는다. 정부 작황 발표가 나오기 전에 이미 윌리스는 결과를 알고 있다는 말이 업계에서 공공연히 돈다. 여기에 식량안보법에 따른 국가 비축 곡물의 약 3분의 1이 윌리스 엘리베이터에 위탁 보관되어 있어, 정부가 언제 얼마를 방출할지를 윌리스가 가장 먼저 안다는 의혹도 있다.
곡물가가 폭등한 2008년과 2022년에 윌리스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윌리스는 곡물가가 떨어질 때도 싸게 사서 저장했다가 팔아 이익을 낸다. 가격이 오를 때도 내릴 때도 돈을 버는, 곧 가격의 변동 그 자체가 이익의 원천인 회사라는 점이 비판의 핵심이다.
게시가는 톨루즈 곡물거래소의 선물 가격에서 '베이시스'를 뺀 값이다. 베이시스는 운송비와 저장비, 엘리베이터의 마진을 반영한다는 명목의 차감액인데, 이것을 정하는 것이 윌리스다. 2019년 톨루즈 농업대학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반경 40km 안에 윌리스 외에 다른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역의 베이시스는 경쟁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역보다 톤당 평균 8.3달러 넓었다. 루이나 곡물 생산량에 대입하면 해마다 수억 달러가 농가에서 윌리스로 넘어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윌리스는 베이시스 차이가 외딴 지역의 물류비를 반영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선물 가격 자체에 대한 영향력도 논란거리다. 윌리스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톨루즈 곡물거래소 옥수수 선물 미결제약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최대 거래자 가운데 하나이고, 윌리스는 전 세계에 깔린 엘리베이터와 선박, 자체 작황 예측 모델로 누구보다 먼저 수급 변화를 읽는다. 정부 작황 발표가 나오기 전에 이미 윌리스는 결과를 알고 있다는 말이 업계에서 공공연히 돈다. 여기에 식량안보법에 따른 국가 비축 곡물의 약 3분의 1이 윌리스 엘리베이터에 위탁 보관되어 있어, 정부가 언제 얼마를 방출할지를 윌리스가 가장 먼저 안다는 의혹도 있다.
곡물가가 폭등한 2008년과 2022년에 윌리스는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 윌리스는 곡물가가 떨어질 때도 싸게 사서 저장했다가 팔아 이익을 낸다. 가격이 오를 때도 내릴 때도 돈을 버는, 곧 가격의 변동 그 자체가 이익의 원천인 회사라는 점이 비판의 핵심이다.
9.2. 계약재배와 농민 종속 [편집]
윌리스 파트너 프로그램에 가입한 농가는 윌리스에게서 종자와 비료를 외상으로 받고, 수확물을 윌리스에 먼저 팔며, 외상 대금을 수확물 대금에서 공제받는다. 흉년에 외상을 다 갚지 못하면 다음 해 외상이 늘고, 영농자금까지 윌리스 애그리서비스에서 빌린 농가는 사실상 윌리스에 빚을 진 소작농이 된다. 스낵용 감자 농가는 사정이 더 나쁘다. 골드크레스트 종자는 윌리스와 계약한 농가만 받을 수 있고, 수확물은 윌리스 외에 팔 곳이 없으며, 윌리스가 정한 규격에 맞지 않으면 수매를 거부당한다.
가장 거센 비판을 받는 것은 육계 계열화다. 윌리스는 병아리와 사료를 대고, 농가는 축사를 짓고 닭을 키운다. 사육 수수료는 같은 주에 출하한 농가들의 사료요구율을 서로 비교해 순위대로 가감하는 '상대평가 정산'으로 정해진다. 옆 농가가 닭을 잘 키우면 내 수수료가 깎이는 구조다. 병아리와 사료의 품질은 윌리스가 정하는데, 성적은 농가가 책임진다. 농가가 축사를 지으려고 떠안는 빚은 평균 60만 달러에 상환 기간이 20년인데, 윌리스와의 계약은 사육 1회분, 곧 7주 단위로 갱신된다. 계약 갱신 거부는 곧 파산을 뜻하기 때문에 농가는 윌리스가 요구하는 축사 개보수와 설비 교체를 거절할 수 없다.
1999년 3월 벨포르 평야 농민 2,300여 명이 트랙터를 몰고 벨포르 시내로 들어와 윌리스 게시가와 계약재배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2011년에는 육계 농가 212호가 상대평가 정산이 불공정하다며 집단소송을 냈지만, 2013년 대법원은 계약서의 중재 조항을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농가는 윌리스를 상대로 한 집씩 따로 중재를 신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17년에는 윌리스 팜링크가 모은 농가의 토양·수확량 자료가 곡물 거래에 쓰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만 농가의 실시간 생육 자료는 그 자체로 정부 통계보다 정확한 작황 예측 자료이기 때문이다. 윌리스는 개인 농가의 자료를 트레이딩에 쓰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익명화한 집계 자료의 활용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가장 거센 비판을 받는 것은 육계 계열화다. 윌리스는 병아리와 사료를 대고, 농가는 축사를 짓고 닭을 키운다. 사육 수수료는 같은 주에 출하한 농가들의 사료요구율을 서로 비교해 순위대로 가감하는 '상대평가 정산'으로 정해진다. 옆 농가가 닭을 잘 키우면 내 수수료가 깎이는 구조다. 병아리와 사료의 품질은 윌리스가 정하는데, 성적은 농가가 책임진다. 농가가 축사를 지으려고 떠안는 빚은 평균 60만 달러에 상환 기간이 20년인데, 윌리스와의 계약은 사육 1회분, 곧 7주 단위로 갱신된다. 계약 갱신 거부는 곧 파산을 뜻하기 때문에 농가는 윌리스가 요구하는 축사 개보수와 설비 교체를 거절할 수 없다.
1999년 3월 벨포르 평야 농민 2,300여 명이 트랙터를 몰고 벨포르 시내로 들어와 윌리스 게시가와 계약재배 제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2011년에는 육계 농가 212호가 상대평가 정산이 불공정하다며 집단소송을 냈지만, 2013년 대법원은 계약서의 중재 조항을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농가는 윌리스를 상대로 한 집씩 따로 중재를 신청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17년에는 윌리스 팜링크가 모은 농가의 토양·수확량 자료가 곡물 거래에 쓰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만 농가의 실시간 생육 자료는 그 자체로 정부 통계보다 정확한 작황 예측 자료이기 때문이다. 윌리스는 개인 농가의 자료를 트레이딩에 쓰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익명화한 집계 자료의 활용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9.3. 소비재 유통망 장악 [편집]
윌리스 베버리지와 윌리스 스낵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1만 4천여 대의 트럭으로 소매점에 직접 배송한다. 배송 사원은 물건만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매대에 직접 진열하고 재고를 관리한다. 대형 소매점에서 윌리스는 음료·스낵 매대 전체의 배치를 제안하는 '카테고리 관리자'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경쟁사 제품을 어디에 둘지까지 윌리스가 정하게 된다.
윌리스는 소매점이 음료 냉장고 칸의 70% 이상을 윌리스 제품으로 채우면 공급가를 깎아 주는 '점유율 조건부 리베이트'를 운영해 왔다. 없어서는 안 되는 크리스피 골드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음료 매대를 요구한다는 끼워팔기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학교와 병영, 관공서, 경기장의 자판기와 매점은 대부분 윌리스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그 결과 1990년 43곳이던 루이나의 지역 탄산음료 제조사는 2025년 6곳만 남았다.
199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윌리스가 학교들과 맺은 독점 음료 공급 계약을 조사해 2000년 시정명령을 내렸다. 윌리스는 독점 조항을 지우는 대신 학교 체육관 전광판과 운동부 유니폼을 후원하는 '후원 계약'으로 계약 형식을 바꾸었다. 후원금은 학교 안 윌리스 제품의 판매량에 연동되었다. 독점 조항은 사라졌지만 다른 회사 제품을 들여놓을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2014년 하비스트 크라운 인수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5년간 스낵 가격을 물가상승률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 인수를 승인했다. 조건이 끝난 2019년 윌리스는 주요 스낵 가격을 평균 14% 올렸다.
윌리스는 소매점이 음료 냉장고 칸의 70% 이상을 윌리스 제품으로 채우면 공급가를 깎아 주는 '점유율 조건부 리베이트'를 운영해 왔다. 없어서는 안 되는 크리스피 골드를 공급하는 조건으로 음료 매대를 요구한다는 끼워팔기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학교와 병영, 관공서, 경기장의 자판기와 매점은 대부분 윌리스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그 결과 1990년 43곳이던 루이나의 지역 탄산음료 제조사는 2025년 6곳만 남았다.
1996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윌리스가 학교들과 맺은 독점 음료 공급 계약을 조사해 2000년 시정명령을 내렸다. 윌리스는 독점 조항을 지우는 대신 학교 체육관 전광판과 운동부 유니폼을 후원하는 '후원 계약'으로 계약 형식을 바꾸었다. 후원금은 학교 안 윌리스 제품의 판매량에 연동되었다. 독점 조항은 사라졌지만 다른 회사 제품을 들여놓을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2014년 하비스트 크라운 인수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5년간 스낵 가격을 물가상승률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 인수를 승인했다. 조건이 끝난 2019년 윌리스는 주요 스낵 가격을 평균 14% 올렸다.
9.4. 무상급식 납품 [편집]
루이나의 학교 무상급식은 루이나 영양지원청의 기준에 따라 전국 240개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식재료를 공동 구매해 공급한다. 윌리스는 이 센터들의 공급액 가운데 38%를 차지하며, 42개 센터에서는 공급액의 절반 이상이 윌리스 몫이다. 센터들의 입찰 규격에는 연간 공급 능력과 냉장 유통망, 전국 단위의 동일 품질·영양 성분 표시 같은 요건이 들어 있는데, 이 요건을 모두 갖춘 업체가 사실상 윌리스뿐이라 "규격이 윌리스를 닮았다"는 말이 나온다.
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과 학부모 단체는 윌리스가 급식을 장악하면서 급식 식재료 가운데 가공식품의 비중이 2000년 22%에서 2020년 37%로 늘었다고 비판한다. 2018년에는 영양지원청이 아침 급식에 윌리스의 모닝 오츠 시리얼을 채택하면서 1회 제공량에 당류가 11g 들어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영양지원청의 급식 영양 기준을 개정하는 자문위원회에 윌리스 출신 식품공학자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군 급식도 마찬가지다. 루이나는 남녀 모두를 징집하는 나라여서 병영 급식의 규모가 크다. 국방부가 2003년 병영 식당 운영을 민간에 맡기기 시작한 뒤,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는 국내 병영 식당의 63%를 운영하게 되었다. 2016년 한 병사가 부실한 급식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파문이 일었는데, 조사 결과 국방부의 단가 인하 압박 속에 윌리스가 식재료 등급을 낮춰 온 사실이 드러났다. 윌리스는 계약 단가 안에서 기준을 지켰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국방부는 이듬해 윌리스와의 계약을 그대로 갱신했다.
2022년 그래이 정부는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지역 식재료를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윌리스는 각 지역의 농협과 중소 가공업체에 원료와 물류를 대 주고 그들의 이름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했다. 서류상 지역 식재료의 비중은 늘었지만, 실제로 급식판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윌리스가 댄 원료였다. 비판 단체들은 이를 "지역 식재료의 윌리스화"라고 부른다.
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과 학부모 단체는 윌리스가 급식을 장악하면서 급식 식재료 가운데 가공식품의 비중이 2000년 22%에서 2020년 37%로 늘었다고 비판한다. 2018년에는 영양지원청이 아침 급식에 윌리스의 모닝 오츠 시리얼을 채택하면서 1회 제공량에 당류가 11g 들어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영양지원청의 급식 영양 기준을 개정하는 자문위원회에 윌리스 출신 식품공학자가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군 급식도 마찬가지다. 루이나는 남녀 모두를 징집하는 나라여서 병영 급식의 규모가 크다. 국방부가 2003년 병영 식당 운영을 민간에 맡기기 시작한 뒤, 윌리스 케이터링 서비스는 국내 병영 식당의 63%를 운영하게 되었다. 2016년 한 병사가 부실한 급식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파문이 일었는데, 조사 결과 국방부의 단가 인하 압박 속에 윌리스가 식재료 등급을 낮춰 온 사실이 드러났다. 윌리스는 계약 단가 안에서 기준을 지켰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국방부는 이듬해 윌리스와의 계약을 그대로 갱신했다.
2022년 그래이 정부는 학교급식지원센터가 지역 식재료를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윌리스는 각 지역의 농협과 중소 가공업체에 원료와 물류를 대 주고 그들의 이름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했다. 서류상 지역 식재료의 비중은 늘었지만, 실제로 급식판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윌리스가 댄 원료였다. 비판 단체들은 이를 "지역 식재료의 윌리스화"라고 부른다.
9.5. 금수 위반 의혹 [편집]
1973년 8월 발동된 「적성국 교역 금지 조치」는 곡물·사료·비료를 포함한 모든 물자의 공산권 수출을 금지했다. 2차 랜드 전쟁에서 루이나군은 사비에트와 그 동맹국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고, 곡물은 전략물자로 취급되었다.
1976년 11월 《라 부아》는 로테르담 항만 노동자에게서 입수한 선하증권 사본을 근거로, 윌리스 인터내셔널 SA가 1974년 10월부터 1976년 8월까지 71차례에 걸쳐 약 310만 톤의 곡물을 사비에트 국영 곡물수입공사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곡물은 옥수수 150만 톤, 밀 110만 톤, 보리 50만 톤이었고, 서류상 매수인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 등기된 무역상 3곳이었다. 이 무역상들은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회사였다. 1975년 사비에트가 대흉작을 겪던 시기와 거래가 급증한 시기가 겹쳤고, 판매가는 당시 국제 시세보다 톤당 11~14달러 높았다.
더 큰 파문을 부른 것은 곡물의 원산지였다. 310만 톤 가운데 약 56만 톤은 윌리스의 루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출하된 옥수수와 보리로 추정되었다. 이 곡물은 로테르담의 보세창고로 수출되어 '보관'되다가, 창고 안에서 제3국 무역상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뒤 사비에트로 재수출되었다. 루이나 병사들이 전선에서 윌리스의 필드 바를 먹는 동안 적군은 윌리스의 곡물로 만든 빵을 먹은 셈이었다. 한 시사 만평은 양손에 각각 루이나 병사와 사비에트 병사에게 빵을 건네는 새뮤얼 윌리스를 그리고 "양쪽을 먹이는 회사"라는 제목을 달았다. 1977년 퍼시픽 소다 불매 운동이 일어나 퍼시픽 소다 판매가 1년 새 19% 줄었다.
1977년 2월부터 5월까지 하원 농업위원회는 사회민주당 의원들의 주도로 청문회를 열었다. 증인으로 나선 새뮤얼은 "윌리스 푸드는 적국에 곡물 한 톨도 팔지 않았다"고 증언했는데, 이 말은 문장 그대로는 사실이었다. 곡물을 판 것은 윌리스 푸드가 아니라 스위스 법인 윌리스 인터내셔널 SA였고, 루이나산 곡물은 로테르담에서 이미 제3국 무역상의 소유가 된 뒤에 사비에트로 갔기 때문이다. 윌리스 인터내셔널 사장 에드거 L. 모로는 제네바에 머물며 청문회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 증언은 이후 윌리스가 법을 다루는 방식을 상징하는 말로 두고두고 인용된다.
법적 결론도 증언과 같았다. 긴급명령의 적용 대상은 '루이나 국민과 루이나 법인'이었고, 해외 자회사를 규율하는 조항은 없었다. 법무부는 1978년 초 수사에 착수했지만 같은 해 군정이 들어서면서 수사는 멈추었다. 1980년 헌정 회복 뒤 법무부가 사건을 다시 검토했으나, 긴급명령은 이미 종전과 함께 효력을 잃었고 뒤늦게 만든 처벌 조항을 소급할 수는 없었다. 1981년 사건은 불기소로 종결되었다.
거래가 정부의 묵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다. 사비에트와의 휴전 교섭이 진행되던 1976년 여름에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는 점을 들어, 곡물이 휴전을 끌어내기 위한 비공식 통로로 쓰였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이 가능성을 묻자 새뮤얼은 "그 질문에는 제가 답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라고만 답했다. 관련 정부 문서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의 결과로 1978년 제정된 대외무역관리령에는 루이나 법인이 지배하는 해외 법인을 통한 우회 수출을 루이나 법인의 수출로 보는 조항이 들어갔다. 이 조항은 지금도 '윌리스 조항'이라고 불린다. 새뮤얼은 1979년 건강을 이유로 CEO에서 물러났지만, 회장직은 1988년까지 유지했다.
1976년 11월 《라 부아》는 로테르담 항만 노동자에게서 입수한 선하증권 사본을 근거로, 윌리스 인터내셔널 SA가 1974년 10월부터 1976년 8월까지 71차례에 걸쳐 약 310만 톤의 곡물을 사비에트 국영 곡물수입공사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곡물은 옥수수 150만 톤, 밀 110만 톤, 보리 50만 톤이었고, 서류상 매수인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 등기된 무역상 3곳이었다. 이 무역상들은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회사였다. 1975년 사비에트가 대흉작을 겪던 시기와 거래가 급증한 시기가 겹쳤고, 판매가는 당시 국제 시세보다 톤당 11~14달러 높았다.
더 큰 파문을 부른 것은 곡물의 원산지였다. 310만 톤 가운데 약 56만 톤은 윌리스의 루이나 엘리베이터에서 출하된 옥수수와 보리로 추정되었다. 이 곡물은 로테르담의 보세창고로 수출되어 '보관'되다가, 창고 안에서 제3국 무역상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뒤 사비에트로 재수출되었다. 루이나 병사들이 전선에서 윌리스의 필드 바를 먹는 동안 적군은 윌리스의 곡물로 만든 빵을 먹은 셈이었다. 한 시사 만평은 양손에 각각 루이나 병사와 사비에트 병사에게 빵을 건네는 새뮤얼 윌리스를 그리고 "양쪽을 먹이는 회사"라는 제목을 달았다. 1977년 퍼시픽 소다 불매 운동이 일어나 퍼시픽 소다 판매가 1년 새 19% 줄었다.
1977년 2월부터 5월까지 하원 농업위원회는 사회민주당 의원들의 주도로 청문회를 열었다. 증인으로 나선 새뮤얼은 "윌리스 푸드는 적국에 곡물 한 톨도 팔지 않았다"고 증언했는데, 이 말은 문장 그대로는 사실이었다. 곡물을 판 것은 윌리스 푸드가 아니라 스위스 법인 윌리스 인터내셔널 SA였고, 루이나산 곡물은 로테르담에서 이미 제3국 무역상의 소유가 된 뒤에 사비에트로 갔기 때문이다. 윌리스 인터내셔널 사장 에드거 L. 모로는 제네바에 머물며 청문회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 증언은 이후 윌리스가 법을 다루는 방식을 상징하는 말로 두고두고 인용된다.
법적 결론도 증언과 같았다. 긴급명령의 적용 대상은 '루이나 국민과 루이나 법인'이었고, 해외 자회사를 규율하는 조항은 없었다. 법무부는 1978년 초 수사에 착수했지만 같은 해 군정이 들어서면서 수사는 멈추었다. 1980년 헌정 회복 뒤 법무부가 사건을 다시 검토했으나, 긴급명령은 이미 종전과 함께 효력을 잃었고 뒤늦게 만든 처벌 조항을 소급할 수는 없었다. 1981년 사건은 불기소로 종결되었다.
거래가 정부의 묵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다. 사비에트와의 휴전 교섭이 진행되던 1976년 여름에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는 점을 들어, 곡물이 휴전을 끌어내기 위한 비공식 통로로 쓰였다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한 의원이 이 가능성을 묻자 새뮤얼은 "그 질문에는 제가 답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라고만 답했다. 관련 정부 문서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이 사건의 결과로 1978년 제정된 대외무역관리령에는 루이나 법인이 지배하는 해외 법인을 통한 우회 수출을 루이나 법인의 수출로 보는 조항이 들어갔다. 이 조항은 지금도 '윌리스 조항'이라고 불린다. 새뮤얼은 1979년 건강을 이유로 CEO에서 물러났지만, 회장직은 1988년까지 유지했다.
9.6. 법망 회피 [편집]
윌리스는 반세기 동안 수많은 조사와 소송을 받았지만 결정적인 제재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연도 | 사안 | 결말 |
1981 | 금수 위반 의혹 | 불기소 |
1989 | 곡물 엘리베이터 지배력 | 무혐의 |
2000 | 학교 독점 음료 계약 | 시정명령 |
2008 | 곡물 초과이윤세 | 법안 폐기 |
2013 | 육계 농가 집단소송 | 각하 |
2014 | 하비스트 크라운 인수 | 조건부 승인 |
2022 | 이전가격 과세 | 국세청 패소 |
2025 | 곡물 게시가 담합 | 동의의결 |
1984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나섰을 때 윌리스는 루이나 곡물 저장 능력의 61%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공정거래법은 한 사업자의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했다. 윌리스는 1986년 엘리베이터 131기를 지역 농민들이 출자한 '파트너 엘리베이터 조합'으로 넘겼는데, 윌리스는 조합 지분 19.9%를 보유하고 조합과 20년짜리 독점 매각 계약과 운영 위탁 계약을 맺었다. 서류상 윌리스의 점유율은 44%로 내려갔고, 공정거래위원회는 1989년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한 상임위원은 "숫자는 줄었지만 곡물이 가는 곳은 같다"는 소수의견을 남겼다. 파트너 엘리베이터의 독점 매각 계약은 그 뒤 세 번 갱신되었다.
2008년 곡물 폭리 청문회 뒤 발의된 곡물 초과이윤 특별세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폐기되었다. 윌리스는 법안 심의가 한창이던 시기에 5억 달러 규모의 '식량안정기금'을 출연해 저소득층 식료품 지원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세금으로 걷힐 뻔한 돈의 일부를 기부로 내면서 여론과 법안을 함께 잠재운 셈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2017년 국세청은 윌리스가 해외 곡물 거래의 이익을 제네바의 윌리스 인터내셔널 SA에 몰아 루이나 세금을 줄였다며 21억 달러를 추징했다. 윌리스는 조세법원에 불복했고, 2022년 조세법원은 국세청이 제시한 정상가격 산정 방식에 근거가 부족하다며 윌리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곡물 거래는 매일 가격이 달라지는 데다 비슷한 거래를 찾기도 어려워, 윌리스가 정한 내부 거래 가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윌리스와 외국계 곡물 메이저 두 곳이 같은 지역에서 게시가의 베이시스를 사실상 맞춰 왔다는 담합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그래이 정부 들어 처음으로 윌리스를 겨냥한 대형 사건이었지만, 윌리스는 2024년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스스로 시정 방안을 내놓으면 위법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끝내는 제도다. 2025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억 8천만 달러 규모의 농가 상생기금 출연과 게시가 산정 방식 공개, 3년간의 이행 감시를 조건으로 동의의결을 받아들였다. 과징금은 한 푼도 부과되지 않았고, 윌리스가 담합을 했는지는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농민 단체들은 "위반 여부를 가리지 않고 돈으로 산 면죄부"라고 비판했다.
이런 사례에는 공통된 방식이 있다. 법의 적용 대상인 법인의 경계를 옮기고(금수 위반·이전가격), 법이 정한 기준 숫자 바로 아래로 서류를 맞추고(엘리베이터), 금지된 계약을 금지되지 않은 형식의 계약으로 바꾸고(후원 계약·지역 명의 입찰), 법정 다툼 대신 계약서의 중재 조항으로 분쟁을 흩어 놓는다(육계 소송). 그리고 제재가 내려질 즈음에는 스스로 돈을 내놓아 판단 자체를 피한다(식량안정기금·동의의결). 비판론자들은 윌리스가 법을 어긴 적은 드물지만 법이 무엇을 막으려 했는지는 한 번도 존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윌리스의 이런 솜씨 뒤에는 막강한 인맥과 연구 후원이 있다. 윌리스는 전직 농림부 관료와 의회 농업위원회 보좌진을 대거 영입해 왔고, 윌리스 가족재단은 톨루즈 농업대학의 곡물경제 연구에 가장 많은 돈을 대는 후원자다. 2014년 곡물 시장에 경쟁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연구 보고서의 저자들이 윌리스 가족재단의 연구비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10. 기타 [편집]
- 퍼시픽 소다의 광고 문구 "전선에서 식탁까지"는 1964년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쓰이고 있다. 1977년 불매 운동 때는 이 문구를 비튼 "전선 양쪽의 식탁까지"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 필드 바는 지금도 루이나군 전투식량에 들어간다. 1958년 배합에서 크게 바뀌지 않아 맛에 대한 불평도 60년째 그대로다. 루이나 군필자들 사이에서는 "필드 바를 먹어 봤느냐"가 군 복무 경험을 묻는 말로 쓰인다.
- 본사가 있는 윌리스 캠퍼스는 톨루즈 서부 아벨린 호숫가의 옛 곡물 창고 부지에 들어서 있다. 창업 당시 캐러멜을 끓이던 구시가 창고는 윌리스 기념관으로 쓰인다.
- 윌리스는 루이나에서 가장 광고를 많이 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이며, 플라자 그룹 소유의 《카날 7》은 윌리스의 최대 광고 매체다. 《카날 7》이 윌리스 관련 보도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 비상장 기업이어서 윌리스 가문의 재산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경제지 《주르날 데 자페르》는 윌리스 가족신탁 지분의 가치를 약 1,900억 달러로 추정하며, 이를 수익자 60여 명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