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딮스마르크 추격전 Last battle of the battleship Dipsmark Ultima battaglia della corazzata Dipsmark | ||
![]() | ||
▲ 주포를 발포하는 전함 딮스마르크 | ||
장소 | ||
랜드해협 | ||
교전국 | ||
지휘관 | -함대사령관 하인리히 볼프강-딮스마르크 함장 프리드리히 켐퍼† | -함대사령관 마르사 L. 브라가-바셰르 함장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
전력 | 항공모함 2척 전함 3척 순양함 4척 구축함 7척 | 전함 1척 순양함 1척 |
피해 규모 | ||
결과 | ||
마베라 해군의 승리 전함 딮스마르크 침몰 | ||
영향 | ||
웨스타시아 해군의 수상함 통상파괴전 위축 | ||
1. 개요 [편집]
2. 서론 [편집]
딮스마르크를 격침하라(Sink the Dipsmark) |
In May of 1983 the war had just begun. The Westasians had the biggest ship, they had the biggest guns. The Dipsmark was the fastest ship that ever sailed the sea. On her deck were guns as big as steers and shells as big as trees. Out of the cold and foggy night came out the Maberan ship, the Bashär. And every Maberan seamen, he knew and understood. They had to sink the Dipsmark, the terror of the sea. They had to stop it.
1983년 5월 전쟁이 지속되던 즈음 웨스타시아는 거포가 달린 거대한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어. 딮스마르크 전함은 당시까지 바다를 항해한 배 중 가장 빠른 배였고, 그 갑판에는 초대형 함포와 포탄들이 있었어. 춥고 안개가 자욱한 랜드해의 밤 중에 마베라 전함 바셰르가 나타났어. 모든 마베라 선원들은 알고 있었. 바다의 공포, 딮스마르크를 반드시 격침시켜야 한다는 것을. 그 거대한 함포와 포탄들을 막아야 하니까.딮스마르크를 격침하라(Sink the Dipsmark) 가사 중.
1983년 웨스타시아의 대통령 앨빈 C. 요크는 마테르 전쟁에서 마베라를 상대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통상파괴전의 목적은 마베라로 향하는 상선을 파괴해 마베라를 고립시키는 것이었고,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 신예 웨스타시아 전함이자 당대 최대 전함 중 하나인 딮스마르크가 전장에 투입되었다. 마베라는 이를 알아차리자마자 마베라 본토 함대를 투입해 추격을 시작했다.
1983년 5월 24일, 마베라의 상징적인 전함 바셰르와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랜드해협에서 딮스마르크와 마주쳤고, 연료 탱크를 타격해 손상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프린스 오브 페드로가 무력화되고 바셰르가 격침되는 피해를 입었다. 마베라 해군의 상징이던 바셰르가 격침당하자 분노한 마베라 전역의 군함들이 모여들어 딮스마르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5월 26일, 집요한 추격 끝에 딮스마르크는 마베라군의 뇌격으로 인해 조타 장치가 손상되어 키가 꺾인 상태로 고정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다음 날 아침, 웨스타시아 해군의 집중 포화를 받은 딮스마르크는 결국 랜드해협의 심해로 침몰했다. 이 전투에서 웨스타시아는 가장 중요한 전함 중 하나를 잃으며 통상파괴전 수행 능력이 약화되었지만, 드라마틱한 추격전의 전개는 후대에도 깊이 기억되고 있다.
3. 배경 [편집]
1983년 당시 마베라는 랜드해협 전역에서 팽창하는 파시즘의 기세를 저지하는 데 앞장선 사실상 유일한 세력이었다. 추축국 웨스타시아는 해상과 육상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고, 그 결과 동랜드국가들의 균형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마베라는 이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해양 강?국으로서의 전통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걸고 웨스타시아의 팽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델라웨어는 당시 웨스타시아-델라웨어 불가침 조약을 통해 중립을 표방하며 전면전을 피했지만, 웨스타시아와 마베라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자 사실상 웨스타시아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델라웨어의 적극적인 태도는 마베라를 더욱 고립시켰고, 마베라는 홀로 웨스타시아의 파시즘적 팽창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전통적으로 해양 강국이었기 때문에 고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수많은 상선들을 이용해 물자와 원료, 군수품들을 본토로 운송하거나 주요 전선으로 배치하고 있었다. 웨스타시아 역시 이러한 마베라의 해상보급선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보트와 소수의 수상함들을 투입해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했으나, 마베라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었다.[5]
1983년 3월, 전함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의 통상파괴작전이 무사히 끝났고, 같은 해 5월에는 중순양함 어드미럴 디퍼까지 가담하여 랜드해협에서의 통상파괴작전을 준비했다. 여기에 막 취역한 대형 전함 딮스마르크와 중순양함 프린츠 엘데른도 포함되었다. 원래 계획은 럭샤른호르스트, 시후니제나우, 딮스마르크, 프린츠 엘데른으로 이루어진 4척이 동시에 출항하여 전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격할 경우 마베라 해군이 수송선단을 전함으로 호위하더라도 이를 압도해 수송선단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가 출격했을 때, 호위 전함을 발견하고 공격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의한 수송선단 공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그러나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는 귀환 후 마베라 공군의 폭격을 맞거나 기관 수리에 시간이 걸려 예정대로 출격하기 어려워졌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통상파괴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전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격 전대를 출격시키기로 결정했고, 결국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우선 출격시키게 되었다.
델라웨어는 당시 웨스타시아-델라웨어 불가침 조약을 통해 중립을 표방하며 전면전을 피했지만, 웨스타시아와 마베라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자 사실상 웨스타시아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델라웨어의 적극적인 태도는 마베라를 더욱 고립시켰고, 마베라는 홀로 웨스타시아의 파시즘적 팽창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전통적으로 해양 강국이었기 때문에 고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수많은 상선들을 이용해 물자와 원료, 군수품들을 본토로 운송하거나 주요 전선으로 배치하고 있었다. 웨스타시아 역시 이러한 마베라의 해상보급선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보트와 소수의 수상함들을 투입해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했으나, 마베라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었다.[5]
1983년 3월, 전함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의 통상파괴작전이 무사히 끝났고, 같은 해 5월에는 중순양함 어드미럴 디퍼까지 가담하여 랜드해협에서의 통상파괴작전을 준비했다. 여기에 막 취역한 대형 전함 딮스마르크와 중순양함 프린츠 엘데른도 포함되었다. 원래 계획은 럭샤른호르스트, 시후니제나우, 딮스마르크, 프린츠 엘데른으로 이루어진 4척이 동시에 출항하여 전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격할 경우 마베라 해군이 수송선단을 전함으로 호위하더라도 이를 압도해 수송선단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가 출격했을 때, 호위 전함을 발견하고 공격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의한 수송선단 공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그러나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는 귀환 후 마베라 공군의 폭격을 맞거나 기관 수리에 시간이 걸려 예정대로 출격하기 어려워졌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통상파괴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전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격 전대를 출격시키기로 결정했고, 결국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우선 출격시키게 되었다.
3.1. 웨스타시아 해군의 지원 준비 [편집]
이같은 작전 목표에 의해,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지휘를 맡은 해군 대장[6] 구글리엘모 하르토네 제독은 "딮스마르크의 목표는 마베라의 주력 함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상선을 공격하고 군함과 조우할 경우 가급적 교전을 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전술적 목표를 위해서는 랜드해협에서 작전 중인 유보트 전력과의 협조가 필요했다.
1983년 4월 8일, 하르토네 제독은 오랜 친구이자 해군사관학교 동기였던 잠수함대 사령관 해군중장 알렉산더 S. 퍼프킨 제독과 포르투 알레그레[7]에서 회의를 열고 딮스마르크 투입에 따른 유보트 지원을 논의했다. 잠수함대 선임 장교를 연락 장교로 딮스마르크에 승선시키고, 별도의 주파수를 이용해 함대 사령관과 잠수함 전대장 간 상시 교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나, 모든 유보트의 작전 행동은 잠수함 사령부의 명령이나 하르토네 제독의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기존 지시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웨스타시아 해군은 두 군함에 연료, 군수물자, 탄약을 보급할 수 있도록 랜드해협 인근 해역과 북마베라해 근처에 보급 선단을 배치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5월 18일 라인 연습 작전이 시작되었고,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 두 척은 고텐하펜에서 출항했다. 5월 19일,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함장은 승조원들에게 랜드해협으로 나가 보급 선단을 타격할 것임을 알렸다. 이날 11시 25분에 구축함 Z-23과 Z16 프리드리히 에콜트가 합류했고, 밤 22시 30분에 Z10 한스 로디가 합류하여 총 3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게 되었다.
함대는 20일 13시에 마베라 해군이 기뢰를 깔아둔 포틸락스 해협에 도달했다. 하르토네 제독은 제5 소해함대(the 5th Minesweeping Flotilla) 지휘관 프레가텐카피탄 루돌프 렐에게 소해 작업을 지시했다. 북쪽의 스카게락크 해협은 기뢰가 없었으나, 하르토네 제독은 마베라 해군의 잠수함이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을 우려해 대기하기로 했다. 이후 소해된 해역을 따라 17노트의 속도로 지그재그 항해를 하며 그날 오후 16시에 기뢰 지대를 통과했고, 다시 서쪽으로 변침해 크리스티안산의 기뢰 지대를 통과했다. 이번에는 소해 없이 구축함 3척을 앞세워 27노트로 돌파했고, 22시에 기뢰 지대를 벗어났다.
이들은 5월 21일 오전 9시에 델라웨어령 베르겐 항에 도착했다. 딮스마르크는 외곽의 [몰?루]에 닻을 내렸고, 프린츠 엘데른은 북서쪽 [몰?루] 만에 정박했다. 구축함들은 재급유를 위해 베르겐 항으로 들어갔다.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승조원들은 웨스타시아 공군 전투기의 항공 엄호를 받으며, 현지 징발한 상선들을 어뢰 방패로 옆에 정박시킨 후 북마베라해 위장 도색을 지우고 랜드해협 작전에 사용될 표준 회색 도색으로 선체를 다시 칠했다. 이때 프린츠 엘데른은 유조선으로부터 재급유를 받았지만, 딮스마르크는 재급유를 받지 않았다.
1983년 4월 8일, 하르토네 제독은 오랜 친구이자 해군사관학교 동기였던 잠수함대 사령관 해군중장 알렉산더 S. 퍼프킨 제독과 포르투 알레그레[7]에서 회의를 열고 딮스마르크 투입에 따른 유보트 지원을 논의했다. 잠수함대 선임 장교를 연락 장교로 딮스마르크에 승선시키고, 별도의 주파수를 이용해 함대 사령관과 잠수함 전대장 간 상시 교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나, 모든 유보트의 작전 행동은 잠수함 사령부의 명령이나 하르토네 제독의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기존 지시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웨스타시아 해군은 두 군함에 연료, 군수물자, 탄약을 보급할 수 있도록 랜드해협 인근 해역과 북마베라해 근처에 보급 선단을 배치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5월 18일 라인 연습 작전이 시작되었고,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 두 척은 고텐하펜에서 출항했다. 5월 19일,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함장은 승조원들에게 랜드해협으로 나가 보급 선단을 타격할 것임을 알렸다. 이날 11시 25분에 구축함 Z-23과 Z16 프리드리히 에콜트가 합류했고, 밤 22시 30분에 Z10 한스 로디가 합류하여 총 3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게 되었다.
함대는 20일 13시에 마베라 해군이 기뢰를 깔아둔 포틸락스 해협에 도달했다. 하르토네 제독은 제5 소해함대(the 5th Minesweeping Flotilla) 지휘관 프레가텐카피탄 루돌프 렐에게 소해 작업을 지시했다. 북쪽의 스카게락크 해협은 기뢰가 없었으나, 하르토네 제독은 마베라 해군의 잠수함이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을 우려해 대기하기로 했다. 이후 소해된 해역을 따라 17노트의 속도로 지그재그 항해를 하며 그날 오후 16시에 기뢰 지대를 통과했고, 다시 서쪽으로 변침해 크리스티안산의 기뢰 지대를 통과했다. 이번에는 소해 없이 구축함 3척을 앞세워 27노트로 돌파했고, 22시에 기뢰 지대를 벗어났다.
이들은 5월 21일 오전 9시에 델라웨어령 베르겐 항에 도착했다. 딮스마르크는 외곽의 [몰?루]에 닻을 내렸고, 프린츠 엘데른은 북서쪽 [몰?루] 만에 정박했다. 구축함들은 재급유를 위해 베르겐 항으로 들어갔다.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승조원들은 웨스타시아 공군 전투기의 항공 엄호를 받으며, 현지 징발한 상선들을 어뢰 방패로 옆에 정박시킨 후 북마베라해 위장 도색을 지우고 랜드해협 작전에 사용될 표준 회색 도색으로 선체를 다시 칠했다. 이때 프린츠 엘데른은 유조선으로부터 재급유를 받았지만, 딮스마르크는 재급유를 받지 않았다.
3.2. 당시 마베라 해군의 반응 [편집]
하르토네 제독의 기뢰지대 돌파는 시간을 낭비한 큰 실책이었다. 이는 마베라 해군에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20일 아침, 루이나의 군사위성이 랜드해협 상공을 정기적으로 감시하던 중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항적을 포착하였다. 이 정보는 즉시 마베라 해군 사령부로 전송되었고, 그날 오후 13시에 마베라 해군의 순양함 산타 마르가리타(Santa Margherita)가 접근하여 두 함선을 육안으로 확인하였다. 19시에 랜드해협의 레지스탕스와 협력하던 정보요원 알프레도 루소(Alfredo Russo) 대령이 마베라 주재 무관 마리오 덴함(Mario Denham) 대령에게 2척의 대형함이 랜드해협에서 포틸락스 해협으로 북상중이라는 정보를 전달했다. 20시 58분, 덴함 대령은 즉시 본국 해군 사령부에 이를 보고했고, 22시 무렵에는 비고 악셀리(Viggo Axelli)를 비롯한 마베라 점령지의 레지스탕스들이 해안에서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육안으로 확인한 뒤 무전을 통해 마베라 해군성에 제보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첩보는 교차 검증을 거쳐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분류되었고, 마베라 해군은 즉시 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20일 아침, 루이나의 군사위성이 랜드해협 상공을 정기적으로 감시하던 중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항적을 포착하였다. 이 정보는 즉시 마베라 해군 사령부로 전송되었고, 그날 오후 13시에 마베라 해군의 순양함 산타 마르가리타(Santa Margherita)가 접근하여 두 함선을 육안으로 확인하였다. 19시에 랜드해협의 레지스탕스와 협력하던 정보요원 알프레도 루소(Alfredo Russo) 대령이 마베라 주재 무관 마리오 덴함(Mario Denham) 대령에게 2척의 대형함이 랜드해협에서 포틸락스 해협으로 북상중이라는 정보를 전달했다. 20시 58분, 덴함 대령은 즉시 본국 해군 사령부에 이를 보고했고, 22시 무렵에는 비고 악셀리(Viggo Axelli)를 비롯한 마베라 점령지의 레지스탕스들이 해안에서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육안으로 확인한 뒤 무전을 통해 마베라 해군성에 제보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첩보는 교차 검증을 거쳐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분류되었고, 마베라 해군은 즉시 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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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베라해로 항해 중인 딮스마르크 | [몰?루]에 정박한 딮스마르크와 [몰?루]만으로 향하는 프린츠 엘데른(우측) |
이때 마베라 해군의 브라가 제독은 보고를 받은 즉시 본토함대에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21일 오전 11시, 브라가 제독의 지시로 출격한 정찰기 2대가 랜드해협 북부 해안을 수색했다. 조종사 미켈레 F. 수클링(Michele F. Suckling)이 13시 15분, 고도 8천 미터 상공에서 촬영을 마치고 14시 15분에 기지로 귀환했다. 필름은 급히 수도로 이송되어 현상되었고, 곧 마베라 해군 사령부 전체에 “5월 21일, 델라웨어 [몰?루]인근에서 딮스마르크급 전함과 프린츠 엘데른급 중순양함이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공유되었다.
브라가 제독은 이 정보를 토대로 웨스타시아 함대의 의도를 분석했지만, 이들이 단순한 상선 공격인지 아니면 더 큰 전략적 목표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 마베라 본토함대는 막 건조된 최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루, 상징적인 바셰르, 그리고 몇몇 중순양함과 항공모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딮스마르크와 동급의 대형 전함은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바셰르는 마베라 해군 최대의 함선이었으나, 함령이 오래되고 충분한 대개장도 받지 못해 속도와 방호력이 부족했으며 순양전함 특성상 장갑이 얇아 정면 교전에서는 불리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루는 막 취역한 신예함으로 포탑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았고, 기술자들이 동승해야 할 정도로 준비가 미흡했다. 항공모함 빅토리오스 역시 취역 직후라 함재기 운용 경험이 부족했고, 조종사들의 숙련도가 낮아 전투 손실 위험이 컸다.[8] 이러한 준비 부족에도 불구하고, 브라가 제독은 마베라 해군의 모든 가용 전력을 투입하여 웨스타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고 랜드해협의 해상보급로를 사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3.3. 루이나의 반응 [편집]
루이나는 랜드해협에서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이 포착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모든 해군 전력에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하였다. 루이나 해군 본부는 즉시 각 함대 사령부에 작전명령을 하달하며, 평시 대비태세를 해제하고 가동 가능한 모든 전력을 전투 준비 상태로 전환시켰다.
특히 주요 항로와 전략 요충지에 배치된 루이나 함대들은 정박 중이던 함정들의 정비 일정을 조정하고, 승조원들을 조기 소집하여 출동 준비를 완료하였다. 항공모함 전단과 순양함, 구축함 전력은 항공대와 합동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며 웨스타시아의 움직임을 추적했고, 해상초계기와 군사위성의 감시망이 더욱 촘촘히 운용되었다.
이러한 조치로 루이나는 모든 함대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웨스타시아와 마베라 간의 전투 확전에 대비하였으며, 랜드해협 전역의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자체 방어선과 통상로 방호 계획을 재점검하였다.
특히 주요 항로와 전략 요충지에 배치된 루이나 함대들은 정박 중이던 함정들의 정비 일정을 조정하고, 승조원들을 조기 소집하여 출동 준비를 완료하였다. 항공모함 전단과 순양함, 구축함 전력은 항공대와 합동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며 웨스타시아의 움직임을 추적했고, 해상초계기와 군사위성의 감시망이 더욱 촘촘히 운용되었다.
이러한 조치로 루이나는 모든 함대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웨스타시아와 마베라 간의 전투 확전에 대비하였으며, 랜드해협 전역의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자체 방어선과 통상로 방호 계획을 재점검하였다.
4. 전개 [편집]
4.1. 추격 시작 [편집]
5월 21일 19시 30분,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는 닻을 올리고 [몰?루]만으로 나가 프린츠 엘데른 및 3척의 구축함과 합류했다. 이들은 20노트의 속력으로 [몰?루]를 통과하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 직후 마베라 공군의 정찰기 5대가 [몰?루]만 상공에 도착해 조명탄을 투하하며 폭탄 공습을 감행했지만, 이미 딮스마르크는 그곳을 벗어난 상태였다. 악천후로 인해 시야가 흐리고 비가 많이 내려, 마베라 공군은 결국 딮스마르크를 놓치고 말았다.
같은 날 자정 무렵, 마베라 해군 총사령관 브라가 제독은 부제독 란슬롯 에르네스토 홀란드에게 바셰르와 프린스 오브 페드루를 포함한 함대를 지휘하여 북랜드 해역을 순찰하라고 지시했다. 브라가 제독 본인은 킹 페드루 2세급 전함과 항공모함 빅토리오스를 포함한 함대를 이끌고 북마베라해 남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중순양함 알레킨과 몬타나는 웨이크-워커 제독이 기함 노포크에 승함한 상태에서 포틸락스 해협을 수색하도록 명령받았다.
22일 새벽 4시 20분,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은 구축함 호위를 해산하고 두 척만으로 북상하며 작전을 계속했다. 같은 날 저녁, 마베라 정찰기 파일럿 노엘 고다르드 소위가 [몰?루]상공을 정찰했으나, 웨스타시아 전함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이 소식을 접한 브라가 제독은 22시, 스카파 플로우의 모든 함대를 출항시켰다. 순양전함 리펄스는 호송 임무에서 해제되어 다음날 아침 브라가 제독의 본대에 합류했고, 순양함 아레투사는 아이슬란드 인근에서 초계 중인 맨체스터 및 버밍햄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베라 해군 지휘부는 웨스타시아 함대의 침로를 3개로 추정하고, 세 방향 모두에 항공 정찰을 실시했다. 최종적으로 브라가 제독은 홀란드 제독의 함대를 북마베라해 남부로 보내고 랜드해협 북부 해역을 담당하도록 지시했으며, 본인은 남쪽 해역에서 웨스타시아 함대를 차단하기로 했다.
한편, 웨스타시아 함대는 23시 22분 서쪽으로 침로를 변경했다. 웨스타시아 함대 기상학자 하인츠 엑스터브링크 박사는 아침이 되면 날씨가 맑아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하르토네 제독은 노출 위험을 줄이고 북마베라해로 빨리 진출하기 위해 재급유를 포기했다. 이 결정으로 딮스마르크는 재급유 기회를 모두 놓치게 되었다.
그날 밤, 루프트바페의 정찰 보고를 받은 웨스타시아 본부는 북마베라해 남부에 마베라 주력 전함과 항공모함이 정박 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달했으나, 하르토네 제독은 자신들이 발각되지 않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23일 19시 11분, 웨스타시아 함대 레이더에 낯선 함선이 포착되었다. 19시 22분, 견시가 12,800m 떨어진 중순양함 한 척을 발견했고, 프린츠 엘데른은 그 함선의 무선을 가로채 ‘서포크’라는 호출 부호를 확인했다. 같은 시간, 서포크 역시 딮스마르크를 발견했지만 곧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20시 무렵, 홀란드 제독의 함대가 마베라 북부 해안을 지나며 보고를 받았다. 홀란드는 프린츠 엘데른이 동행 중이라는 정보는 받지 못했으나, 딮스마르크가 북진하는 것을 확인하고 T자 진형으로 요격하기로 결정했다.
20시 30분, 노포크는 딮스마르크에게 발각되어 5차례 일제 사격을 받았다. 3차례의 협차탄과 지근탄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 과정에서 프린츠 엘데른도 불명의 함선에게 포격받았다고 보고했다. 주포 발사로 후미 레이더 FuMO27이 고장 나자, 웨스타시아 함대는 선도함을 프린츠 엘데른으로 변경했다.
이 시점에서 웨스타시아 해군은 마베라 해군의 전력 대비 열세에 놓여 있었고, 딮스마르크가 전함이 아니었다면 이미 작전이 실패했을 상황이었다.
같은 날 자정 무렵, 마베라 해군 총사령관 브라가 제독은 부제독 란슬롯 에르네스토 홀란드에게 바셰르와 프린스 오브 페드루를 포함한 함대를 지휘하여 북랜드 해역을 순찰하라고 지시했다. 브라가 제독 본인은 킹 페드루 2세급 전함과 항공모함 빅토리오스를 포함한 함대를 이끌고 북마베라해 남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중순양함 알레킨과 몬타나는 웨이크-워커 제독이 기함 노포크에 승함한 상태에서 포틸락스 해협을 수색하도록 명령받았다.
22일 새벽 4시 20분,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은 구축함 호위를 해산하고 두 척만으로 북상하며 작전을 계속했다. 같은 날 저녁, 마베라 정찰기 파일럿 노엘 고다르드 소위가 [몰?루]상공을 정찰했으나, 웨스타시아 전함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이 소식을 접한 브라가 제독은 22시, 스카파 플로우의 모든 함대를 출항시켰다. 순양전함 리펄스는 호송 임무에서 해제되어 다음날 아침 브라가 제독의 본대에 합류했고, 순양함 아레투사는 아이슬란드 인근에서 초계 중인 맨체스터 및 버밍햄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베라 해군 지휘부는 웨스타시아 함대의 침로를 3개로 추정하고, 세 방향 모두에 항공 정찰을 실시했다. 최종적으로 브라가 제독은 홀란드 제독의 함대를 북마베라해 남부로 보내고 랜드해협 북부 해역을 담당하도록 지시했으며, 본인은 남쪽 해역에서 웨스타시아 함대를 차단하기로 했다.
한편, 웨스타시아 함대는 23시 22분 서쪽으로 침로를 변경했다. 웨스타시아 함대 기상학자 하인츠 엑스터브링크 박사는 아침이 되면 날씨가 맑아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하르토네 제독은 노출 위험을 줄이고 북마베라해로 빨리 진출하기 위해 재급유를 포기했다. 이 결정으로 딮스마르크는 재급유 기회를 모두 놓치게 되었다.
그날 밤, 루프트바페의 정찰 보고를 받은 웨스타시아 본부는 북마베라해 남부에 마베라 주력 전함과 항공모함이 정박 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달했으나, 하르토네 제독은 자신들이 발각되지 않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23일 19시 11분, 웨스타시아 함대 레이더에 낯선 함선이 포착되었다. 19시 22분, 견시가 12,800m 떨어진 중순양함 한 척을 발견했고, 프린츠 엘데른은 그 함선의 무선을 가로채 ‘서포크’라는 호출 부호를 확인했다. 같은 시간, 서포크 역시 딮스마르크를 발견했지만 곧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20시 무렵, 홀란드 제독의 함대가 마베라 북부 해안을 지나며 보고를 받았다. 홀란드는 프린츠 엘데른이 동행 중이라는 정보는 받지 못했으나, 딮스마르크가 북진하는 것을 확인하고 T자 진형으로 요격하기로 결정했다.
20시 30분, 노포크는 딮스마르크에게 발각되어 5차례 일제 사격을 받았다. 3차례의 협차탄과 지근탄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 과정에서 프린츠 엘데른도 불명의 함선에게 포격받았다고 보고했다. 주포 발사로 후미 레이더 FuMO27이 고장 나자, 웨스타시아 함대는 선도함을 프린츠 엘데른으로 변경했다.
이 시점에서 웨스타시아 해군은 마베라 해군의 전력 대비 열세에 놓여 있었고, 딮스마르크가 전함이 아니었다면 이미 작전이 실패했을 상황이었다.
4.2. 포틸락스 해협 전투와 바셰르의 침몰 [편집]
딮스마르크 추격전의 일부 | ||
장소 | ||
랜드해협 포틸락스 해협 | ||
교전국 | ||
지휘관 | -함대사령관 브라가 제독-프린스 오브 페드로 함장 조반니 리치-바셰르 함장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순양함 전대 사령관 마리오 웨이크워커 | -함대사령관 구글리엘모 하르토네-딮스마르크 함장 프리드리히 캠퍼-프린츠 엘데른 함장 헬무트 브링크만 |
병력 | ||
피해 규모 | 순양전함 1척 격침 전함 1척 손상 1,428명 전사 9명 부상 | 전함 1척 손상 5명 부상 |
결과 | ||
영향 | ||
마베라 해군의 딮스마르크 추격 딮스마르크 통상파괴전에서 이탈 | ||
4.2.1. 마베라 함대의 선공 [편집]
공격명령을 받은 홀란드 부제독은 즉시 포틸락스 해협 남쪽으로 향하였다. 5월 24일 새벽 2시경 바셰르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남남서쪽(200)으로 변침했고, 구축함들은 수색을 위해 정북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새벽 3시 40분 즈음, 마베라 전함들은 서서남쪽(240)으로 변침했고, 28노트로 전투 기동에 돌입했다.
5시 25분, 프린츠 엘데른의 수중 청음기에서 20마일 거리의 고속 터빈음을 감지했다. 장교들은 견시로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딮스마르크의 레이더는 여전히 고장난 상태였다. 27분, 프린츠 엘데른 전방 관측소에서 수평선 너머 연기 두 줄기를 발견했고, 웨스타시아 함대에 전투 경보가 발령됐다. 32분, 웨스타시아 함대는 남서쪽(220)으로 침로를 변경하며 28노트로 전투 기동을 시작했으나, 프린츠 엘데른은 마베라 함대가 경순양함일 것이라 오인하고 있었다.
마베라 함대도 5월 24일 새벽 5시 37분에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발견했지만, 어느 쪽이 딮스마르크인지 식별하지 못한 채 앞선 배가 딮스마르크라고 판단했다. 마베라 함대는 이미 240도로 기동하고 있었고, 웨스타시아 함대는 220도로 침로를 잡고 있었으므로, 두 함대가 마주한 상태에서 전투거리에 접근할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홀란드 부제독은 서서북(280)으로 침로를 지시했고, 마베라 함대는 웨스타시아 함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5시 41분 기준 서포크와 노포크의 거리는 웨스타시아 함대 후방 27km로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위치였다. 5시 49분, 양측은 포격 거리까지 접근했고 홀란드 부제독은 북서쪽(300)으로 기동하라고 명령했다.
바셰르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홀란드 부제독은 전방의 웨스타시아 군함을 딮스마르크로 오인하고 함대에 선도함 사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위치에 있던 함선은 딮스마르크가 아닌 프린츠 엘데른이었다. 원래 기함이 선두에 위치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레이더 고장으로 인해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홀란드 부제독은 첫 사격 직후 우현 함선이 딮스마르크임을 깨닫고 목표 변경을 지시했으나 실행되지 않았고, 바셰르는 계속 프린츠 엘데른을 향해 포격을 이어갔다. 반면,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조반니 리치 함장은 우현이 딮스마르크임을 알아채고 홀란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딮스마르크를 포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5시 53분 첫 사격 직후 A포탑(1번 포탑)의 4연장 14인치 주포 중 1문이 고장 나, 가용 포문이 5개로 줄었다. 게다가 아직 포 조정이 완전치 않아 네 번째 일제 사격까지도 탄착군이 형성되지 못했고, 5발이 1,500m 거리에 흩어져 착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5시 25분, 프린츠 엘데른의 수중 청음기에서 20마일 거리의 고속 터빈음을 감지했다. 장교들은 견시로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딮스마르크의 레이더는 여전히 고장난 상태였다. 27분, 프린츠 엘데른 전방 관측소에서 수평선 너머 연기 두 줄기를 발견했고, 웨스타시아 함대에 전투 경보가 발령됐다. 32분, 웨스타시아 함대는 남서쪽(220)으로 침로를 변경하며 28노트로 전투 기동을 시작했으나, 프린츠 엘데른은 마베라 함대가 경순양함일 것이라 오인하고 있었다.
마베라 함대도 5월 24일 새벽 5시 37분에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발견했지만, 어느 쪽이 딮스마르크인지 식별하지 못한 채 앞선 배가 딮스마르크라고 판단했다. 마베라 함대는 이미 240도로 기동하고 있었고, 웨스타시아 함대는 220도로 침로를 잡고 있었으므로, 두 함대가 마주한 상태에서 전투거리에 접근할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홀란드 부제독은 서서북(280)으로 침로를 지시했고, 마베라 함대는 웨스타시아 함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5시 41분 기준 서포크와 노포크의 거리는 웨스타시아 함대 후방 27km로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위치였다. 5시 49분, 양측은 포격 거리까지 접근했고 홀란드 부제독은 북서쪽(300)으로 기동하라고 명령했다.
바셰르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홀란드 부제독은 전방의 웨스타시아 군함을 딮스마르크로 오인하고 함대에 선도함 사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위치에 있던 함선은 딮스마르크가 아닌 프린츠 엘데른이었다. 원래 기함이 선두에 위치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레이더 고장으로 인해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홀란드 부제독은 첫 사격 직후 우현 함선이 딮스마르크임을 깨닫고 목표 변경을 지시했으나 실행되지 않았고, 바셰르는 계속 프린츠 엘데른을 향해 포격을 이어갔다. 반면,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조반니 리치 함장은 우현이 딮스마르크임을 알아채고 홀란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딮스마르크를 포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5시 53분 첫 사격 직후 A포탑(1번 포탑)의 4연장 14인치 주포 중 1문이 고장 나, 가용 포문이 5개로 줄었다. 게다가 아직 포 조정이 완전치 않아 네 번째 일제 사격까지도 탄착군이 형성되지 못했고, 5발이 1,500m 거리에 흩어져 착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4.2.2. 웨스타시아 공군의 보복 [편집]
[1] 바셰르급 순양전함[2] 마쇼나[3] 프린스 오브 페드로[4] 부상 악화로 1명 사망[5] 유보트의 문제는 할 일은 많은데 배의 수가 적었다는 것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웨스타시아 해군의 재무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시작된 것이며, 당시 해전 패러다임이 거함거포주의였기에 웨스타시아 지도부는 소형 잠수함보다 대형 전함 건조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잠수함의 건조비용은 막대했고(유보트 한 척의 가격은 전차 수십 대에 맞먹었다), 숙련된 잠수함 승무원 양성도 어려웠다.[6] 1982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하였으므로 라인 연습 작전 시기의 하르토네 제독의 계급은 대장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7] 웨스타시아의 점령지에 설치된 잠수함 기지와 연락 거점으로, 마테르 전쟁 초기부터 사용되었다.[8] 빅토리오스는 딮스마르크 공습을 단행한 5월 24일 기준, 취역 10일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