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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N. 솔로비요바
Vera N. Solovyova|Вера Н. Соловьёва
본명
베라 니콜라예브나 솔로비요바
Вера Николаевна Соловьёва
출생
1898년 3월 14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971년 11월 9일 (향년 73세)
루이나 벨포르
국적
러시아 제국 → 루이나 (1927년 귀화)
종교
러시아 정교회
직업
소설가, 르포르타주 작가, 번역가
학력
스몰니 여학원 (졸업)
베스투제프 여자고등과정 (문학부 / 중퇴)
가족
아버지 니콜라이 P. 솔로비요프
어머니 안나 M. 솔로비요바
남동생 표트르 N. 솔로비요프 (1919년 전사)
배우자
에밀 R. 다르질 (1936년 결혼, 1951년 사별)
활동 기간
1927년 ~ 1971년
사용 언어
러시아어, 영어, 루이나어
사조
사회적 리얼리즘
대표작
《겨울 부두》(1934)
《셋방》(1938)
《항구의 아이들》(1961)
수상
루이나 국가문학상 (1962)
서명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 (1898~1917)2.2. 혁명과 망명 (1917~1920)2.3. 롱비치 시절 (1920~1934)2.4. 《겨울 부두》와 논쟁 (1934~1939)2.5. 전쟁과 전후 (1939~1958)2.6. 스틸워터 계획 (1959~1971)2.7. 죽음
3. 작품
3.1. 작품 세계3.2. 작품 목록
4. 평가
4.1. 문학사적 위치4.2. 망명 공동체와의 관계
5. 사후
5.1. 개인철 공개5.2. 500달러 지폐
6. 여담7.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가난은 국적을 묻지 않는다. 부두의 겨울은 대령의 딸에게도 하역부의 아들에게도 똑같이 춥다."

《겨울 부두》 제1장


루이나의 소설가. 러시아 제국 근위 장교의 딸로 태어나 1920년 백군 패퇴와 함께 가족을 따라 루이나로 망명했고, 롱비치 항만 지구의 빈민 생활을 바탕으로 이민자와 하역 노동자의 삶을 그린 장편 《겨울 부두》(1934)로 이름을 알렸다. 루이나 사회적 리얼리즘 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어로 쓰기 시작해 영어로 자기 작품을 번역했고, 1950년대에는 루이나어로도 작품을 발표해 세 언어로 창작한 첫 루이나 작가가 되었다.

백군 장교의 딸이 노동자의 편에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생전에 양쪽 모두에게서 의심을 받았다. 러시아계 반공 단체는 그를 제명했고, 국가는 1959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12년간 그를 스틸워터 계획의 사찰 대상으로 올려 두었다. 1962년 국가문학상을 받던 해에도 그의 우편물은 개봉되고 있었다.

2008년부터 루이나 달러 500달러 지폐의 앞면에 그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 아델 M. 퐁텐과 함께 루이나 지폐 최초의 여성 초상이다.

2. 생애 [편집]

2.1. 유년기 (1898~1917) [편집]

1898년 3월 1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근위 보병 대위 니콜라이 P. 솔로비요프와 안나 M. 솔로비요바 사이에서 1남 1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1909년 귀족 여학교인 스몰니 여학원에 들어가 1916년 졸업했고, 같은 해 베스투제프 여자고등과정 문학부에 입학했다. 이 시기 그가 남긴 습작은 대부분 러시아 상징주의 시를 흉내 낸 서정시였으며, 훗날 그의 작품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2.2. 혁명과 망명 (1917~1920) [편집]

1917년 혁명으로 학업이 중단되었다. 이듬해 가족은 남러시아로 피란했고, 대령으로 진급해 있던 아버지는 백군에 합류했다. 솔로비요바는 1918년부터 1920년까지 후방 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남동생 표트르는 1919년 열여덟의 나이로 전사했다.

1920년 백군이 남러시아에서 철수할 때 가족도 함께 떠났다. 몇 달간 피란민 수용소를 전전한 끝에 같은 해 11월 루이나의 롱비치 항에 도착했다. 이 무렵 루이나에는 1917년 이후 건너온 러시아계 망명자 공동체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2.3. 롱비치 시절 (1920~1934) [편집]

가족은 롱비치 북항 지구의 셋방에 정착했다. 제국군 대령이었던 아버지는 항만 창고의 야간 경비원이 되었고, 솔로비요바는 대구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러시아어 가정교사로 생계를 보탰다. 영어는 공장 동료들과 부두 노동자들 사이에서 익혔다.

1927년 루이나 국적을 얻었고, 같은 해 롱비치의 러시아어 주간지에 첫 단편을 발표했다. 1929년 첫 단편집 《피란민 수첩》을 러시아어로 냈다. 망명자들의 향수와 몰락을 다룬 작품들이었으나, 이미 귀족 출신 망명자와 부두 노동자를 같은 셋방 건물에 두는 구도가 나타나 있었다.

대공황은 가족을 직접 덮쳤다. 아버지는 1931년 경비 일자리를 잃었고 이듬해 겨울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솔로비요바는 장례를 치른 직후 《겨울 부두》를 쓰기 시작했다.

2.4. 《겨울 부두》와 논쟁 (1934~1939) [편집]

《겨울 부두》는 1932년부터 이듬해까지 러시아어로 연재되었고, 1934년 솔로비요바 자신의 영어 번역으로 벨포르에서 단행본이 나왔다. 대공황기 롱비치 북항을 무대로, 야간 경비원이 된 옛 대령과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그의 딸, 그리고 이웃의 하역 노동자 가족이 한 겨울을 함께 버티는 이야기다. 소설 후반부의 부두 파업 장면에서 대령의 딸은 파업 노동자들 편에 선다.

책은 이민자 문학으로는 이례적으로 널리 읽혔다. 루이나 독자들에게는 늘 지나치던 항만 지구의 안쪽을 처음 보여 준 소설이었고, 노동계는 이 책을 파업 기금 모금 낭독회에 썼다.

러시아계 망명 공동체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옛 대령이 무너져 가는 모습과 그의 딸이 파업에 동조하는 결말은 볼셰비키에게 쫓겨난 이들의 공동체에서 배신으로 읽혔다. 1935년 러시아 군인 동맹 루이나 지부는 그를 명예 회원 명단에서 지웠고, 아버지의 옛 전우들은 그와 연락을 끊었다. 솔로비요바는 이에 대해 "아버지를 쓴 것이지 아버지의 깃발을 쓴 것이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1936년 롱비치 항만노조 서기 에밀 R. 다르질과 결혼했다. 1938년 두 번째 장편 《셋방》을 영어로 발표했는데, 대공황기 공공주택 사업에서 밀려난 셋방 빈민가 주민들의 이야기였다. 국가가 지은 새 주택단지가 바로 옆에 들어서는 동안 그 입주 자격을 얻지 못한 사람들을 다룬 이 작품은, 정부 주택 정책의 사각지대를 처음으로 문학이 다룬 사례로 꼽힌다.

2.5. 전쟁과 전후 (1939~1958) [편집]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신문사의 의뢰로 후방의 군수공장과 항만을 취재했다. 남성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 여성 노동자들을 다룬 이 시기의 르포르타주는 1946년 장편 《배급표》의 바탕이 되었다.

1951년 남편 다르질이 롱비치 북항에서 크레인 붕괴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그는 롱비치를 떠나 1952년 벨포르로 거처를 옮겼다. 1955년에는 루이나어로 쓴 단편집 《문턱의 사람들》을 발표했다. 이주민 출신 작가가 루이나어로 쓴 첫 문학 작품집이었으며, 이로써 그는 러시아어·영어·루이나어 세 언어로 창작한 첫 루이나 작가가 되었다.

2.6. 스틸워터 계획 (1959~1971) [편집]

상세 내용은 스틸워터 계획 문서 참고.


1959년 4월 스틸워터 계획이 개시되고 두 달 뒤인 6월 22일, 솔로비요바는 별표 제1종 관찰 대상으로 등재되었다. 등재 범주는 '노동 쟁의를 반복적으로 서술·보도하는 문필가'였다. 그는 소설가였지만 1950년대 내내 노동 신문과 러시아어 주간지에 칼럼과 르포르타주를 써 왔으므로, 범주에 개인 이름을 쓰지 않는 상시 지정 방식 아래에서 별표에 오르는 데에는 별도의 결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그의 출판사·해외 번역자와의 서신은 우편 특별취급 대상이 되어 개봉·복사되었고, 강연과 낭독회에는 참석자 명단을 작성하는 요원이 따라붙었다. 1961년 그가 항만 하역장의 미성년 노동 실태를 다룬 르포르타주 《항구의 아이들》을 발표하자 관찰 기록의 분량은 급격히 늘었다. 이 책은 이듬해 국회 청문회의 계기가 되었다.

1962년 그는 《항구의 아이들》로 루이나 국가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개인철에는 같은 해 수상 축하 서신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이 첨부되어 있다.

1964년 그가 오랫동안 기고해 온 러시아어 주간지의 편집인 마르타 K. 오시포바가 화재로 사망했다. 솔로비요바는 추도문에서 화재 조사가 사흘 만에 종결된 경위를 문제 삼았고, 이후 자택 전화가 상시 감청 대상에 추가되었다. 1967년에는 그를 압박 대상인 제2종으로 전환하는 안이 검토되었으나 보류되었다. 개인철에 남은 보류 사유는 "대상자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 압박 수단이 노출될 경우 역효과가 우려됨"이었다. 그를 지킨 것은 그의 명성이었던 셈이다.

솔로비요바 자신은 생전에 사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1960년대 후반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내 편지는 늘 한 번 젖었다 마른 것처럼 온다"고 쓴 대목이 남아 있다.

2.7. 죽음 [편집]

1969년부터 심장 질환으로 활동을 크게 줄였고, 아버지의 생애를 중심으로 한 회고록을 쓰는 데 남은 시간을 보냈다. 1971년 11월 9일 벨포르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73세.

장례는 벨포르 성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정교회 의식으로 치러졌다. 운구 행렬에는 롱비치 항만노조의 깃발과 러시아계 노인들이 나란히 섰는데, 1935년 그를 제명했던 러시아 군인 동맹의 옛 회원 몇 사람도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미완성 회고록 《아버지의 견장》은 1974년 유고로 출간되었다.

스틸워터 개인철의 마지막 기록은 1971년 11월 10일 자 신문 부고 스크랩과 함께 적힌 "관찰 종료(사망)"라는 한 줄이다.

3. 작품 [편집]

3.1. 작품 세계 [편집]

솔로비요바의 소설은 거의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시작한다.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이 한 건물, 한 부두, 한 배급소 줄에 함께 서 있는 장면이다. 귀족 출신 망명자와 토박이 하역부, 공장 여공과 퇴역 장교가 가난이라는 같은 조건 아래 놓일 때 출신과 이념이 얼마나 빨리 무의미해지는가가 그의 일관된 주제였다.

문체는 장식을 극도로 아낀 사실 기록에 가깝다. 노동 시간, 임금, 방세, 빵값 같은 숫자가 지문에 그대로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며, 비평가들은 이를 '장부의 문체'라 불렀다. 그 자신은 "가난한 사람의 하루는 형용사가 아니라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념적 결론을 내리는 것을 끝까지 피했다. 파업에 동조하는 인물을 그리면서도 노조 지도부의 위선을 함께 그렸고, 몰락한 대령을 연민하면서도 그가 지키려는 계급 의식의 허망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좌우 양쪽 모두에게서 자기편이 아니라는 평을 들었다.

3.2. 작품 목록 [편집]

연도
제목
갈래
언어
1929
《피란민 수첩》
단편집
러시아어
1934
《겨울 부두》
장편
러시아어·영어
1938
《셋방》
장편
영어
1946
《배급표》
장편
영어
1955
《문턱의 사람들》
단편집
루이나어
1961
《항구의 아이들》
르포
영어
1974
《아버지의 견장》
회고록
러시아어

4. 평가 [편집]

4.1. 문학사적 위치 [편집]

루이나 문학사에서 솔로비요바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겨울 부두》 이전의 루이나 소설에서 노동자는 배경이거나 계몽의 대상이었으나, 그는 노동자와 빈민을 이야기의 주체로 세웠다. 1960~1970년대 루이나 노동 문학의 작가들 상당수가 그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이민자 문학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는 망명자의 향수를 쓰는 데서 출발했지만 곧 망명자를 루이나 사회의 한 계층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이는 러시아계 공동체가 '떠나온 사람들'에서 '루이나인'으로 자기 인식을 바꾸어 가는 과정과 겹친다. 세 언어 창작 역시 이 이행을 보여 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비판도 있다. 인물들이 지나치게 선량하게 그려져 감상주의에 가깝다는 지적, 그리고 그가 다룬 망명자 사회가 롱비치 북항의 몰락한 장교 가족들에 치우쳐 있어 러시아계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4.2. 망명 공동체와의 관계 [편집]

러시아계 공동체와의 관계는 그의 생애 내내 불편했다. 1935년 제명 이후 반공 망명 단체들은 그를 공산주의 동조자로 취급했으나, 정작 그는 소련을 옹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견장》에는 혁명기에 목격한 적군의 처형 장면이 담겨 있으며, 이 회고록이 출간된 뒤에야 공동체 안에서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오늘날 러시아계 공동체는 그를 공동체가 배출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는다. 2008년 500달러 지폐 도안이 발표되었을 때 정교회 공동체는 러시아계 인물이 처음으로 루이나 화폐에 들어간 것을 환영하는 성명을 냈다.

5. 사후 [편집]

5.1. 개인철 공개 [편집]

1980년 스틸워터 계획이 정지되면서 개인철 1,062권 대부분이 소각되었으나, 솔로비요바의 개인철은 소각을 면한 77권 가운데 하나였다. 1981년 정보기관 조사위원회가 이를 확보하면서 그가 12년간 사찰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412쪽 분량의 개인철에는 개봉된 서신의 사본, 낭독회 참석자 명단, 1964년 이후의 통화 기록 요약, 그리고 1967년의 제2종 전환 보류 문서가 들어 있었다. 1984년 출간된 《아버지의 견장》 주석판에는 개인철 일부가 부록으로 실렸다. 국가문학상을 수여한 같은 국가가 수상 축하 서신의 발신자 명단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스틸워터 계획의 성격을 보여 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5.2. 500달러 지폐 [편집]

2008년 발행된 현행권 루이나 달러의 500달러 지폐 앞면에 그의 초상이, 뒷면에 《겨울 부두》의 북항 풍경이 들어갔다.

선정 과정에서 일부 보수 의원들은 스틸워터 별표에 올랐던 인물을 화폐에 넣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반대했다. 화폐도안위원회는 "국가가 감시한 작가를 국가가 화폐에 새기는 것 자체가 공화국의 반성"이라는 입장으로 선정을 유지했다.

500달러 지폐가 현금 은닉과 돈세탁에 자주 쓰이는 권종이라는 점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그린 작가가 가장 비싼 지폐에 들어갔다는 농담이 생겼다. 롱비치 북항에서는 500달러 지폐를 그의 소설 제목을 따 '겨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 여담 [편집]

* 영어판 《겨울 부두》는 러시아어 원작의 직역이 아니라 사실상 다시 쓴 작품이다. 러시아어판에서 대령의 회상으로 채워진 장들이 영어판에서는 하역부 가족의 장으로 바뀌어 있어, 두 판본을 비교하는 연구가 따로 있을 정도다.
* 그는 원고를 쓸 때 늘 왼쪽 여백에 그날의 빵값을 적어 두었다. 벨포르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친필 원고에는 1932년부터 1971년까지의 빵값이 원고 여백을 따라 이어져 있어, 경제사 연구자들이 자료로 쓰기도 한다.
* 롱비치 북항의 옛 셋방 건물은 1990년대 재개발로 헐렸고, 그 자리에 세워진 공공임대주택 단지에는 그의 이름이 붙었다.

7. 관련 문서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