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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약력 [편집]
- 1973. 2. 대광국민학교 졸업 (4회)
- 1979. 2. 충암고등학교 졸업 (8회)
- 1988. 2.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 법학 석사
- 1991. 10.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 1994. 2.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
- 1994. 2.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1999. 2.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99.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2부 주임검사
- 2001. 8.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 2002. 2.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2003. 2.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 2003. 제16대 대통령 선거 불법대선자금수사팀 검사
- 2006. 2.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 2008. 1. 한나라당 17대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실 파견검사
- 2009. 1. 대구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
- 2009. 8.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범죄정보2담당관
- 2010. 7.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
- 2011. 8.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과장
- 2012. 7.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1부장
- 2013. 4. 제55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
- 2013. 4.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
- 2014. 1. 대구고등검찰청 검사
- 2016. 1. 대전고등검찰청 검사
- 2016. 12.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실 수사4팀장
- 2017. 5. 19. ~ 2019. 7. 24. 제59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문재인 정부)
- 2022. 5. 10. ~ 2025. 4. 4.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3. 일생 [편집]
198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88년 서울대 동 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9]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94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부임한 직후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했고,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와 정면충돌해 직무배제 및 정직 1개월 징계 처분을 받고 대구고등검찰청으로 좌천당했다.
이후 지방에서 한직을 전전하면서 검사로서 향후 커리어패스가 불투명해지는 듯했으나,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특별수사를 맡게 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등용되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진행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서 2019년 7월 25일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검찰총장 취임 직후 발생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여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20년 말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에 의해 판사 사찰 문건 작성 논란, 채널A 기자 취재윤리 위반 사건 수사 방해, 국정감사 당시 정치적 발언을 사유로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정직 사건을 겪었다.
2021년 3월 3일에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려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정부 및 집권 여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 지지율이 폭등했다. 그 뒤 2021년 3월 4일에 검찰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2021년 6월 2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신의 선거 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여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로 본인 인생의 첫 공직선거를 제20대 대통령 선거로 치르게 되었다.
2022년 3월 9일에 실시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16,394,815표를 받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단 0.73%p, 247,077표 차이라는 역대 대선 최소 득표율 차로 신승하여 첫 공직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2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2027년 5월 9일까지[20]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지지율이 급속도로 붕괴되었으며, 취임 2년이 못 되어 시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정권의 동력이 위태로워졌다. 임기 반환점을 지난 2024년 10월경에는 지지율이 20% 선까지 붕괴되었으며, 이에 더해 명태균 게이트 등 다양한 악재가 터져 나왔다.
결국 이러한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국회 해산 및 국가비상입법기구 창설 목적으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가 이를 신속하게 해제하였다. 이로 인해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고 즉시 탄핵 위기에 몰렸으며,[21] 그렇게 이듬해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현직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파면되었다. 이에 따라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했다.
아울러 직선제로 변경된 제6공화국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단기 재임 대통령이자[22] 최초로 무궁화대훈장을 수훈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두 번째 탄핵 인용으로 파면된 대통령이자 남성으로는 최초로 탄핵 인용으로 파면된 국가원수로 기록되었다.[23] 또한 이재명 정부 시기인 2025년 7월 10일, 재구속이 이루어졌다.
이후 지방에서 한직을 전전하면서 검사로서 향후 커리어패스가 불투명해지는 듯했으나,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특별수사를 맡게 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등용되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진행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서 2019년 7월 25일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검찰총장 취임 직후 발생한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여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20년 말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에 의해 판사 사찰 문건 작성 논란, 채널A 기자 취재윤리 위반 사건 수사 방해, 국정감사 당시 정치적 발언을 사유로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 정직 사건을 겪었다.
2021년 3월 3일에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려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 방향에 대해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정부 및 집권 여당이 임명한 현직 검찰총장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 지지율이 폭등했다. 그 뒤 2021년 3월 4일에 검찰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2021년 6월 2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자신의 선거 캠프인 국민캠프를 조직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여 2021년 11월 5일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이로 본인 인생의 첫 공직선거를 제20대 대통령 선거로 치르게 되었다.
2022년 3월 9일에 실시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16,394,815표를 받으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단 0.73%p, 247,077표 차이라는 역대 대선 최소 득표율 차로 신승하여 첫 공직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2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2027년 5월 9일까지[20]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지지율이 급속도로 붕괴되었으며, 취임 2년이 못 되어 시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정권의 동력이 위태로워졌다. 임기 반환점을 지난 2024년 10월경에는 지지율이 20% 선까지 붕괴되었으며, 이에 더해 명태균 게이트 등 다양한 악재가 터져 나왔다.
결국 이러한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국회 해산 및 국가비상입법기구 창설 목적으로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가 이를 신속하게 해제하였다. 이로 인해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고 즉시 탄핵 위기에 몰렸으며,[21] 그렇게 이듬해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현직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의 만장일치로 파면되었다. 이에 따라 경호 및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했다.
아울러 직선제로 변경된 제6공화국에서 역대 대통령 중 최단기 재임 대통령이자[22] 최초로 무궁화대훈장을 수훈하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두 번째 탄핵 인용으로 파면된 대통령이자 남성으로는 최초로 탄핵 인용으로 파면된 국가원수로 기록되었다.[23] 또한 이재명 정부 시기인 2025년 7월 10일, 재구속이 이루어졌다.
3.1. 윤석열 정부 [편집]
3.1.1. 평가 [편집]
4. 비판 및 논란 [편집]
5. 대선 공약 [편집]
6. 별명 [편집]
7. 다른 정치인과의 관계 [편집]
8. 사건 사고 [편집]
9. 여담 [편집]
10. 직(直) 가계 [편집]
- 34대조 시조(始祖) 윤신달 (尹莘達)
- 33대조 윤선지 (尹先志)
- 32대조 윤금강 (尹金剛)
- 31대조 윤집형 (尹執衡)
- 30대조 윤관 (尹瓘)
- 29대조 윤언이 (尹彦頤)
- 28대조 윤돈신 (尹惇信)
- 27대조 윤상계 (尹商季)
- 26대조 윤복원 (尹復元)
- 25대조 윤순 (尹純)
- 24대조 윤보 (尹珤)
- 23대조 윤안숙 (尹安淑)
- 22대조 윤척 (尹陟)
- 21대조 윤승순 (尹承順)
- 20대조 윤곤 (尹坤)
- 19대조 윤희제 (尹希齊)
- 18대조 윤배 (尹培)
- 17대조 윤사은 (尹篩殷)
- 16대조 윤탁 (尹倬)
- 15대조 윤선지 (尹先智)
- 14대조 윤돈 (尹暾)
- 13대조 윤창세 (尹昌世)
- 12대조 윤황 (尹煌)
- 11대조 윤문거 (尹文擧)
- 10대조 윤박 (尹博)
- 비조부 (9대조) 윤주교 (尹周敎)
- 원조부 (8대조) 윤동질 (尹東質)
- 태조부 (7대조) 윤광락 (尹光洛)
- 열조부 (6대조) 윤정규 (尹珽圭)
- 현조부 (5대조) 윤덕진 (尹悳鎭)
- 고조부 윤자홍 (尹滋洪)
- 증조부 윤상년 (尹相年, 1873 ~ 1911)
- 조부 윤호병 (尹浩炳, 1898 ~ 1946)
- 부친 윤기중 (尹起重, 1931 ~ 2023)
10.1. 가족 관계 [편집]
11.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22 | 16,394,815 (48.56%) | 당선 (1위) |
역대 선거 벽보 |
|
후보 이력 |
|
[1] 정치에 입문할 시기만 하더라도 출생지가 연희동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에서 태어나서 4살 때 바로 옆 보문동으로 이사했고, 중학교 때 다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이사한 것이다. #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중 사상 최초로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한 대통령이기도 하다.[2] 윤석열/자택 문서 참조.[3] 2024헌나8에 의한 직무정지 기간: 2024년 12월 14일 ~ 2025년 4월 4일. 기존 예정 임기는 2027년 5월 9일까지였으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탄핵소추되었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부로 대통령직을 2년 10개월 25일만에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똑같이 파면된 박근혜 정부보다 더 짧은 3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만 유지되며 제6공화국의 최단기 정권이 되었다. 또한 윤석열은 헌법적으로 다룰 핵심쟁점 전부 위헌판결을 받은 최초의 정무직 공무원이기도 하다.[4] 개인 계정.[5] 선거 홍보용 계정.[6]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엔 영상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7] 윤석열 정부 영상 아카이브. 대통령 재임시절 채널명은 "KTV 윤니크"였다.[8] 계정만 존재하고 실제로 올라온 게시물은 없다.[9] 소정공후(昭靖公后)-장령공계(掌令公系)-노종파(魯宗派)-문정공(文正公) 종중 35세 석○(錫○) 항렬.(족보)[10] 現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부친 윤기중 교수의 출생지이다.[11] 중랑중학교 입학 후 2학년 때 부친의 직장이 있는 서대문구로 이사하면서 충암중학교로 전학하였다.[12] 석사 학위 논문: 美國 class action에 있어 代表要件에 관한 연구 (1988), 지도교수 송상현[13] 현재의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적용하면 현역 판정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과의 판정 기준도 병역 감면을 받기 매우 까다롭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안의 굴절이상도의 차이가 5.00D 미만인 경우에는 현역 판정을 받고 입대하도록 되어 있으며, 5.00D 이상인 굉장히 심한 부등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검 4급인 보충역 판정을 받도록 되어 있어 지금은 부등시로는 신검 5급인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윤석열이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던 1982년 8월 16일 당시의 기준으로는 양안의 굴절이상도의 차이가 3.00D 이상만 되더라도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윤석열은 부등시로 인해 운전면허도 따지 못했다. 참고로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징병대상자의 현역 판정 비율은 윤석열이 신검을 받은 1982년 기준으로는 고작 36.6%였지만 2023년 기준으로는 83.7%이다.[14] 다양한 종교와 인연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개신교 계열 사립학교인 서울 대광국민학교를 졸업했고, 영암교회에 출석했다. 대학 시절에는 명동성당에 출석하면서 가톨릭 세례를 받고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을 부여받기도 했으며, 대통령 선거 후보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를 예방한 바 있다. 같은 시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여 어머니와 모두가 독실한 불자라고도 말했으며, 취임 후 불기 2567(2023)년 부처님오신날에는 조계사 법요식에 참석해 국정 철학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고도 말했다. 다만, 정말 믿는 종교가 있는지조차도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구속 이후에는 구치소에서 성경을 읽었으며 탄핵 선고 직후 담화문에서 "국민 여러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말하는 등 분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독교와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다만 윤석열 본인은 검찰총장 시절부터 대통령 시절까지는 "나는 무종교인이다."라고 노상 말한다고 한다. 이후 2025년 7월 16일 모스 탄 전 대사에게 작성한 편지에서 성경을 언급하거나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이 늘 함께하시고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라고 작성한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파면된 이후에 완전한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15] 탈당 전 국민의힘 소속이었으나 본인의 탄핵 파면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서 당내 일각으로부터 탈당 필요성이 제기된 끝에 2025년 5월 17일 탈당 의사를 밝혔고, 당일 탈당계가 국민의힘에 접수되어 별도 절차 없이 탈당이 마무리됐다. 즉 출당이 아니라 자진탈당으로 처리되었다.[16]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인 2018년에 주역 전문가인 서대원 초아주역연구원 원장이 지어줬다. #[17] 중랑중학교 재학 중 전학[18] 2021년 7월 12일, 무소속 상태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 등록을 마쳤다.[19] #[20]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자진 사임, 임기 중 사망 등이 없다는 가정하에 예정된 임기 만료일이다.[21] 2024년 12월 7일에 1차 탄핵 소추안 투표가 있었는데 정족수 미달로 투표 자체가 불성립되었다. 일주일 뒤인 2024년 12월 14일에 2차 탄핵소추안 투표에서 국회의원 300명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써 가결되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세 번째로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대통령에서 내란우두머리 피의자로 전락한 윤석열은 2024년 12월 9일 법무부로부터 출국금지 조치를 받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출국금지를 당한 현직 대통령이 되었고, 2025년 1월 15일 2차 체포영장이 집행되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이자 전 세계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체포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첫번째는 과속운전으로 체포된 미국의 율리시스 그랜트이다), 2025년 1월 19일 내란우두머리,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며 대한민국 헌정 사상을 넘어 전 세계에서도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구속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22] 재임 2년 11개월차. 2024년 12월 4일부로 관저에 칩거하며 일부 인사권을 행사한 것을 제외하고는 실질 직무 수행을 하지 않았고, 2024년 12월 14일부로 직무수행이 정지되었기 때문에 2년 7개월로 보기도 한다.[23] 최초로 탄핵소추된 인물은 재임 1년 2개월차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며 당시에는 탄핵소추가 기각되어 직무에 복귀했다. 한편으로 현행 8차 헌법 전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대한민국이 그 법통을 잇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까지 포함하면 1925년의 이승만 초대 임시대통령 탄핵 이후 정확히 100년 뒤 대한민국에서 파면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24] 도쿄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허정 내각에서 재무부장관을 지낸 1891년생 윤호병(尹皡炳)과는 동명이인이다.[25] 연세대학교 불문과 졸업. 윤석열과는 달리 자녀가 있으며, 윤석열 대신 어머니 최성자를 돌보고 있다. 윤석열과 함께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은 공개되어 있으나 현재 모습은 알려져 있지 않다.[26] 외조모의 남자 형제이자 어머니의 외삼촌.[27]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역대 대선 중 2위 후보와의 득표율 최저 격차 (0.73%p)
2024년 12월 14일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직무 정지
2025년 4월 4일 파면
역대 대선 중 2위 후보와의 득표율 최저 격차 (0.73%p)
2024년 12월 14일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직무 정지
2025년 4월 4일 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