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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고랜드 대통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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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비공식 초상화[3] |
1. 개요 [편집]
유고랜드의 제 12대 대통령.
2. 약력 [편집]
* 2003. 2. 이래령초등학교 졸업 (5회)
* 2009.2. 시디벨아베스 국제학교 졸업 (11회)
* 2013. 2. 시디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졸업 (09학번)
* 2013.12. ~ 2014.1. 캣닙의힘 초대 당대표
* 2014.3. ~ 2016.3. 아인테무센트시장(초선 / 민선 6기 / 캣닙의힘)[4]
* 2014. 5. ~ 2018. 1. 캣닙의힘 사무총장
* 2016. 3.~ 2018. 6. 아인테무센트시장(재선 / 민선 7기 / 캣닙의힘)[5]
* 2018. 7. 1. ~ 2018. 10. 1. 제 12대 대통령 선거 캣닙의힘 경선 후보 (경선 1위)
* 2018. 10. 2.~ 2019. 1. 31. 제 12대 대통령 선거 캣닙의힘 대선 후보 (대선 1위)
* 2019. 2. 1. ~ 현재 유고랜드 제 12대 대통령
* 2009.2. 시디벨아베스 국제학교 졸업 (11회)
* 2013. 2. 시디벨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졸업 (09학번)
* 2013.12. ~ 2014.1. 캣닙의힘 초대 당대표
* 2014.3. ~ 2016.3. 아인테무센트시장(초선 / 민선 6기 / 캣닙의힘)[4]
* 2014. 5. ~ 2018. 1. 캣닙의힘 사무총장
* 2016. 3.~ 2018. 6. 아인테무센트시장(재선 / 민선 7기 / 캣닙의힘)[5]
* 2018. 7. 1. ~ 2018. 10. 1. 제 12대 대통령 선거 캣닙의힘 경선 후보 (경선 1위)
* 2018. 10. 2.~ 2019. 1. 31. 제 12대 대통령 선거 캣닙의힘 대선 후보 (대선 1위)
* 2019. 2. 1. ~ 현재 유고랜드 제 12대 대통령
3. 일생 [편집]
3.1. 유년기 [편집]
1990년 8월 4일 반다르아베스부 라스알카얀정(現 시디벨아베스시 반다르아베스구 진해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공산당의 고위 당원이었으며, 1946년 조선공산당이 남로당으로 통합되었을 무렵 유고랜드로 이주하였다. 아마도 남로당에서 세력 다툼을 하던 도중 패배해 밀려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의 가치관을 따라 유고랜드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꽤 높은 직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는 그럭저럭 유복한 집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땅값이 유고랜드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라스알카얀에서 살고 있었으며, 집에는 넓은 마당도 딸려 있었다고.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유고랜드 내에서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정서가 퍼짐에 따라 신변에 큰 위협이 생긴 부모가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고랜드로 도주했다. 이 이후로 현재까지도 그의 부모의 행방은 불분명하다.
이후 그는 시디벨 동춘지구의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그의 부모와 달리 외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하루 벌고 하루 먹고 사는 수준의 저소득층이었으며, 약 10평 정도의 좁은 집에서 지냈다. 기반 시설도 굉장히 좋지 못 했는데, 지금 동춘지구는 동춘문화마을이라 해서 전기도 잘 연결되고 수도관도 잘 깔려져 있지만 당시엔 험한 산세로 인해 전기와 수도가 자주 끊어지기 일쑤였다. 겨울엔 눈만 오면 길이 미끄러워져서 집 밖에서 나가기란 불가능이었다.[6]
1997년 이래령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도 집안 사정이 나아지지 못해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할머니와 함께 폐지와 빈 병 등을 주우러 가야 했다. 그런 손녀가 안타까웠던 외할머니는 연탄 배달, 전단지 배포 등도 해보았으나 허리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몇달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수중의 돈은 점점 떨어져 갔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2002년, 중학교 입학도 불확실해진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공부에 대한 특출난 재능을 알아본 담임이 그에게 국제학교 입학을 제안한 것. 당시 국제학교의 위상은 웬만한 사립학교 저리가라였으며, 입학생 대부분이 국내외 명문대로 진학하는 그야말로 영재들의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생계의 어려움으로 거절했으나, 학비 지원 및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공산당의 고위 당원이었으며, 1946년 조선공산당이 남로당으로 통합되었을 무렵 유고랜드로 이주하였다. 아마도 남로당에서 세력 다툼을 하던 도중 패배해 밀려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또한 할아버지의 가치관을 따라 유고랜드 공산당에 입당했으며, 꽤 높은 직위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태어날 당시에는 그럭저럭 유복한 집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땅값이 유고랜드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인 라스알카얀에서 살고 있었으며, 집에는 넓은 마당도 딸려 있었다고.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유고랜드 내에서 공산주의를 배척하는 정서가 퍼짐에 따라 신변에 큰 위협이 생긴 부모가 그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고랜드로 도주했다. 이 이후로 현재까지도 그의 부모의 행방은 불분명하다.
이후 그는 시디벨 동춘지구의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다. 그의 부모와 달리 외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하루 벌고 하루 먹고 사는 수준의 저소득층이었으며, 약 10평 정도의 좁은 집에서 지냈다. 기반 시설도 굉장히 좋지 못 했는데, 지금 동춘지구는 동춘문화마을이라 해서 전기도 잘 연결되고 수도관도 잘 깔려져 있지만 당시엔 험한 산세로 인해 전기와 수도가 자주 끊어지기 일쑤였다. 겨울엔 눈만 오면 길이 미끄러워져서 집 밖에서 나가기란 불가능이었다.[6]
1997년 이래령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도 집안 사정이 나아지지 못해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할머니와 함께 폐지와 빈 병 등을 주우러 가야 했다. 그런 손녀가 안타까웠던 외할머니는 연탄 배달, 전단지 배포 등도 해보았으나 허리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몇달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수중의 돈은 점점 떨어져 갔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2002년, 중학교 입학도 불확실해진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공부에 대한 특출난 재능을 알아본 담임이 그에게 국제학교 입학을 제안한 것. 당시 국제학교의 위상은 웬만한 사립학교 저리가라였으며, 입학생 대부분이 국내외 명문대로 진학하는 그야말로 영재들의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생계의 어려움으로 거절했으나, 학비 지원 및
3.2. 정치 입문 [편집]
3.3. 아인테무센트의 영웅 [편집]
3.4. 위대한 도전 [편집]
3.5. 그리고 연임 [편집]
4. 고양이 정부 [편집]
5. 논란 및 사건사고 [편집]
6. 평가 [편집]
7. 여담 [편집]
8. 각종 타이틀 [편집]
9. 소속 정당 [편집]
소속 | 기간 | 비고 |
2013 - 현재 | 창당[7] |
10. 어록 [편집]
11. 저술 활동 [편집]
《낙서》, 2014년 8월 23일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 2015년 11월 9일
《대충 건방진 강아지가 나오는 책》, 2015년 12월 19일
《마침표》, 2016년 8월 30일
《오후 2시에 우는 새》, 2019년 1월 8일
《모든 꽃이 봄에만 피지는 않는다》, 2023년 6월 17일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 2015년 11월 9일
《대충 건방진 강아지가 나오는 책》, 2015년 12월 19일
《마침표》, 2016년 8월 30일
《오후 2시에 우는 새》, 2019년 1월 8일
《모든 꽃이 봄에만 피지는 않는다》, 2023년 6월 17일
12. 방송 출연 [편집]
13. 둘러보기 [편집]
[1] 유고랜드 독립 후 출생한 최초의 대통령이다.[2] 유고랜드 국가원수 중 최장기 집권.[3] 2024년 1월 1기 정부가 끝날 때 쯤 그려진 그림. 공식 초상화는 관례에 따라 임기가 끝난 뒤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4] 2013년 2월 재보궐선거에서 최병한 전 시장의 사망으로 인해 공석이 된 아인테무센트시장 출마 후 당선.[5] 제 12회 대통령 선거를 위한 조기 사퇴.[6] 현재의 인프라는 대부분 동춘문화마을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2010년대에 깔린 것이다.[7] 2013년 12월 10일 자신의 대학교 동기들과 캣닙의힘을 창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