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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카엘몬트 왕조 제4대 국왕 제이머스 2세 James Ⅱ | |
출생 | 1631년 10월 9일 |
사망 | 1706년 6월 3일 (향년 74세)[1] |
재위기간 | |
1680년 8월 15일 ~ 1689년 2월 13일 | |
재임기간 | |
1680년 8월 15일 ~ 1689년 2월 13일 | |
1680년 8월 15일 ~ 1689년 2월 13일[2] | |
1660년 ~ 1673년 | |
인장 | |
대관식 공식 초상화 |
1. 개요 [편집]
[1] 폐위 후 17년을 대륙에서 보냈다. 그의 후손은 두 세대 만에 궁정에서 밀려나 평민 성 '뮈롱'을 쓰게 되며, 200년 뒤 루이나 계승전쟁에서 가스파르 뮈롱이 이 계열의 마지막 인물로 옹립된다.[2] 가톨릭 신자가 루이나 교회의 총관을 겸한 것은 이때가 유일하며, 이 모순 자체가 폐위의 명분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었다.[3] 즉위 전 13년간 해군을 지휘한 데서 붙은 호칭. 루이나 국왕 가운데 해군 실무 경력이 가장 긴 인물이다.[4] 가톨릭 신자와의 재혼이었다. 1688년 이 왕비에게서 아들이 태어나 가톨릭 왕조가 이어지게 되자, 그때까지 관망하던 의회 세력이 왕위협약으로 돌아섰다.[5] 공개 이후 의회는 가톨릭 신자의 공직 취임을 금지하는 심사법을 통과시켰고, 그는 해군 총사령관직에서 물러났다.[6] 의회는 폐위 대신 '국왕이 통치를 포기하고 왕위를 비웠다'는 법리를 채택했다. 국왕을 재판했던 1647년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7] 루이나 국왕 가운데 국내에 묻히지 못한 유일한 사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