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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린데나우 왕조 제7대 국왕 루이나 왕국 마지막 국왕 에드먼드 3세 Edmund Ⅲ | |
출생 | 1841년 11월 9일 |
사망 | 1882년 4월 17일 (향년 40세)[1] |
재위기간 | |
1878년 12월 14일 ~ 1882년 4월 17일 | |
재임기간 | |
1841년 11월 9일 ~ 1878년 12월 14일[2] | |
1878년 12월 14일 ~ 1882년 4월 17일[3] | |
인장 | |
대관식 공식 초상화 |
1. 개요 [편집]
[1] 사냥터에서 낙마한 뒤 열흘 만에 사망했다. 후사가 없었으므로 왕위 계승 문제가 곧바로 루이나 계승전쟁으로 이어졌다.[2] 37년 1개월로 게오르크 4세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왕태자 재임이다.[3] 루이나 교회 총관직을 가진 마지막 인물이다. 1885년 왕정 폐지와 함께 이 직위도 소멸했다.[4] 37년을 왕태자로 지낸 뒤 3년 4개월만 왕위에 있었다. 재위보다 대기가 열 배 길었던 유일한 군주다.[5] 대륙 하르슈타트가 출신. 국왕 사후 가스파르 뮈롱을 왕으로 옹립하려 하였고, 이것이 루이나 계승전쟁의 직접적 발단이 되었다.[6] 혼인 15년간 자녀를 두지 못했다. 후계 문제는 재위 내내 정치적 쟁점이었으며, 국왕의 급사로 현실이 되었다.[7] 벵골 상실 이후의 지위 회복을 국왕 개인의 과업으로 삼았으나 내각과 의회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8] 루이나 역사상 마지막으로 거행된 대관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