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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빌베른계 초대 국왕 빌럼 3세 Willem Ⅲ | |
출생 | 1650년 11월 14일 |
사망 | 1702년 3월 19일 (향년 51세)[1] |
재위기간 | 루이나 국왕 (공동 통치) |
1689년 2월 13일 ~ 1695년 12월 28일[2] | |
루이나 국왕 (단독) | |
1695년 12월 28일 ~ 1702년 3월 19일 | |
재임기간 | |
1672년 7월 4일 ~ 1702년 3월 19일[3] | |
1689년 2월 13일 ~ 1702년 3월 19일 | |
1689년 2월 13일 ~ 1702년 3월 19일 | |
인장 | |
대관식 공식 초상화 |
1. 개요 [편집]
[1] 사냥 중 낙마 사고로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자녀가 없었으므로 왕위는 처제인 아나 1세에게 넘어갔다.[2] 마리엔 2세와의 공동 재위. 두 사람의 이름이 모든 공문서에 나란히 올랐고, 왕비가 아니라 동등한 국왕으로서 대관식을 함께 치렀다.[3] 플로렌시아가 빌베른 본토를 침공한 해에 22세로 총독에 올랐다. 루이나 왕위에 오른 뒤에도 이 직을 내려놓지 않아, 재위 내내 두 나라의 국가원수를 겸했다.[4] 공채·중앙은행·해상보험 제도를 빌베른에서 통째로 옮겨 온 데서 나온 호칭. 200년 뒤 루이나 계승전쟁에서 은사슴단이 의회파를 「장부파」라 조롱한 것도 이 시기의 재정 개혁을 겨냥한 표현이었다.[5] 제이머스 2세의 장녀이자 그의 외사촌이었다.[6] 의회는 왕위를 부부에게 함께 제안했다. 빌럼 3세가 왕비의 배우자 자격만으로는 즉위를 거부했기 때문이며, 이 조건 협상 과정에서 국왕의 과세권과 상비군 유지권을 의회가 제약하는 조항들이 함께 확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