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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발레리안 왕조 제4대 국왕
마르그리트 1세
Marguerite Ⅰ
출생
1516년 2월 18일
루이나 왕국 벨포르 벨포르 왕궁
사망
1558년 10월 29일 (향년 42세)
루이나 왕국 벨포르 벨포르 왕궁
재위기간
1554년 6월 14일 ~ 1558년 10월 29일
재임기간
1554년 6월 14일 ~ 1555년 3월 9일[1]
1556년 1월 16일 ~ 1558년 10월 29일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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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이름
마르그리트 카트린 드 발레리안
(Marguerite Catherine de Valerian)
별칭
복고왕 (the Restorer)
피의 마르그리트[2]
아버지
어머니
형제
이복 동생 엘리사벨, 아드리안
국서
알폰소 4세 (이베리아 국왕) (1555년 결혼)[3]
자녀
없음[4]
계승 자격
1529년 서출 선고[5]
1544년 제2차 계승법으로 회복
즉위 경위
아드리안 1세의 유언장 무효화 후 장녀 우선 원칙에 따라 즉위
영토 상실
대관식
1554년 9월 3일
벨포르 벨포르 대성당
능묘
벨포르 대성당 왕실 묘소[7]
종교

1. 개요

1. 개요 [편집]

[1] 즉위와 함께 자동으로 승계하였으나, 로마 교회 복귀와 함께 국왕 수장법을 폐지하면서 이 직함 자체를 소멸시켰다. 루이나 국왕 중 스스로 교회 수장직을 내려놓은 유일한 사례다.[2] 루이나 교회 성직자와 개혁파 신자에 대한 화형이 재위 4년간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데서 비롯된 멸칭으로, 엘리사벨 1세 치세에 굳어졌다.[3] 혼인 당시에는 이베리아 왕태자였으며 이듬해 본국 왕위에 올랐다. 외가 쪽 재종형제이기도 하다. 이 혼인으로 루이나가 이베리아에 종속되리라는 우려가 커져 웨이드 반란을 불렀다.[4] 1555년과 1557년 두 차례 회임이 공표되었으나 모두 출산에 이르지 못했다.[5] 어머니 카트린 드 이베리아와 부왕의 혼인이 무효로 선언되면서 계승권을 잃었다.[6] 대륙에 남아 있던 루이나의 마지막 거점으로, 플로렌시아에 넘어갔다. 이로써 루이나는 대륙 영토를 완전히 상실하고 해양 국가로 전환하게 된다.[7] 훗날 엘리사벨 1세가 같은 묘소에 안치되어, 생전에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던 두 자매가 한자리에 묻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