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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콜턴
Richard Colton | Ричард Колтон
파일:리처드_콜턴.png
본명
리처드 제럴드 콜턴
Richard Gerald Colton
출생
1963년 5월 4일 (62세)
국적
신체
188cm, 94kg, 혈액형 O형
종교
개신교 (루터파)
직업
정치인, 군인, 법학자
소속
소속 정당
학력
세인트 바룬 고등학교 (졸업)
애포르 육군사관학교 (졸업)
루이나 국립대학교 법학과 (법률학 / 석사)
병역
육군 제7기갑사단 (대위 전역)
대통령 재임
제10대 루이나 대통령
(2013년 1월 17일 ~ 2021년 1월 16일)
전임자
후임자
서명
정치 성향
보수주의, 민족주의, 법치주의, 실용적 국가주의
※ 좆박은 정치(Fucked Politics)의 대표 사례로 언급됨
대표 저서
《조국의 기둥》(2008)
《질서의 자유》(2011)
《국경과 헌법》(2016)
주요 정책 성과
- 연방교육지침 제정 및 공교육 표준화
- 철도 민영화 및 교통노선 개편
- 전역 군인 재배치 및 군-산 연계 일자리 확대
- 기업 환경 개선 및 중소기업 규제 완화
주요 경력
- 루이나 육군 중령 예편 후 정치 입문
- 루이나 국방부 차관보 (1998~2011)
- 루이나 제10대 대통령 (2013~2021)
기타 이력
- ‘강한 루이나’를 내건 보수 정권의 대표 주자
- 극단적 국론 분열과 흑백적 정치 수사로 ‘좆박은 정치’의 교과서적 사례로 언급됨[1]
- 웨스트로 경기장 사고 당시 최고통수권자로 비판 받음
- 퇴임 이후 회고록 《전장은 사라지지 않는다》(2022) 출간

1. 개요2. 약력3. 일생
3.1. 콜턴 행정부
3.1.1. 평가
4. 논란5. 사건 사고6. 어록7. 빤스 투혼
7.1. 공식 기록과 역사적 의의


1. 개요 [편집]

2. 약력 [편집]

3. 일생 [편집]

3.1. 콜턴 행정부 [편집]

3.1.1. 평가 [편집]

4. 논란 [편집]

5. 사건 사고 [편집]

6. 어록 [편집]

7. 빤스 투혼 [편집]

2019년 4월 8일 오전, 루이나 광역수사국(MIA)과 대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전직 대통령 리처드 콜턴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크레테 외곽의 전용 별장에 진입하였다. 체포영장은 ‘플라자 바이오 특혜 의혹’ 및 ‘콜턴 재단 자금 횡령’ 등 중대 부패 혐의에 따라 전날 밤 벨포르 중앙지법 형사22부에서 발부된 것으로,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는 루이나 사법사상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당시 수사팀은 기동요원 12명, 검찰 특별수사관 5명, 현장 촬영 담당 2명, 법무부 관측인원 3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작전명은 비공식적으로 "폴라리스 작전"이라 명명되었다. 새벽 6시 40분경 진입이 시작되었고, 별장 경호원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제압되었다. 그러나 본체 침실에 머물고 있던 콜턴 본인은 문을 잠근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실 문을 강제로 개방한 수사팀은, 침대 위에 상의 없이 속옷만 착용한 채 드러누워 있는 콜턴의 모습을 목격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체포 사실을 통보받자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이건 정치적 살인이다”라며 고성을 질렀고, 이후 침대에서 일어나기는커녕 몸을 더욱 웅크리고 눕는 방식으로 체포에 저항하였다. 양팔을 벌려 침대 프레임을 움켜쥐고, 다리를 침대 틀에 얹은 채 움직임을 완강히 거부하였으며, 반복적으로 “끌려가고 싶으면 끌고 가라”며 수사팀을 도발하였다.

결국 체포조는 강제 집행을 결정하였다. 두 명의 기동요원이 콜턴의 양팔을 붙잡고 그를 침대에서 끌어냈고, 별장 복도를 따라 입구까지 이송하는 동안 그는 격렬히 소리를 질렀으며 수차례 체포를 “불법”이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속옷은 엉덩이 위로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체 상당 부분이 노출된 상태였다.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 흐트러진 머리, 허연 살결 등 그 모습은 현장에 대기하던 언론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되었다.

당일 오전 7시경, 루이나 통신(RBS)을 비롯한 5개 주요 언론사가 별장 앞에서 체포 장면을 생중계하였다. “전직 대통령 긴급 체포”라는 속보 자막과 함께, 속옷만 입은 채 끌려 나오는 콜턴의 영상은 고스란히 전국에 송출되었고, 수백만 명의 시청자가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방송은 단 11초간 송출되었으나, 그 장면의 파급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국민 다수는 권위의 상징이었던 대통령직의 몰락을 실감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그가 보여준 무력한 저항과 민망한 차림새에 불편함과 조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후 이 사건은 언론과 대중에 의해 ‘빤스 투혼’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 명칭은 하루도 되지 않아 전국의 방송·신문·주간지에 정식 제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벨포르 일간》은 “국가는 그를 내려앉혔고, 그는 팬티 하나로 맞섰다”고 보도했으며, 《루이나 저널》은 “한 시대의 마지막 장면은 대통령의 속살이었다”는 표현으로 상황을 묘사했다. 체포 당시 영상은 2일 만에 패러디 콘텐츠로 확산되었고, 대학가에서는 “속옷만 입고 싸우는 콘테스트”가 열리기도 했다.

이 사건은 루이나 정치문화 전반에 커다란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밈 문화에서는 ‘팬티가 남긴 권위’, ‘삼각의 저항’, ‘끌려가며 외친 마지막 침묵’ 등의 해시태그가 유행했으며, 일부 광고업체는 해당 체포 장면을 희화화한 광고 시안을 제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몇몇 팬티 브랜드는 콜턴이 착용한 것과 유사한 디자인을 복각 판매하기도 했으며, “콜턴 에디션 삼각팬티”는 일시적으로 품절 사태를 빚기도 했다. 정치 풍자 만화에서는 팬티 차림의 콜턴이 독재자의 왕좌에서 끌려 내려오는 모습, 또는 MIA 요원에게 어깨를 붙들린 채 벽을 넘는 장면 등이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한편, 보수 성향 언론은 "체포 당시의 복장은 개인의 자유이며, 수사기관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갖췄어야 했다"고 비판했으나, 다수의 국민은 “그동안 누려온 과도한 특권에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 응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학자 로랑 아르노는 이 장면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계적 복종을 거부했다. 다만 그 거부가 어떤 정치적 비전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그는 권위를 입고 퇴장하길 원했지만, 속옷만 남긴 채 역사에서 끌려나왔다."

7.1. 공식 기록과 역사적 의의 [편집]

사건은 공식 수사 기록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피의자 리처드 콜턴, 체포 당시 속옷(하의)만 착용한 상태로 침대에 누운 채 체포 요구에 불응하였고, 강제 이송 중 육체적 저항 반복. 체포 시 신체 노출 일부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