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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노동총동맹
Ruina Labour Federation|Федерация труда Руины
정식 명칭
Ruina Labour Federation
Федерация труда Руины
루이나 노동총동맹
약칭
RLF
국가
창설일
1886년 10월 12일
본부
벨포르 특별시 머서가 210번지
성격
전국 단위 노동조합 총연합
지도부
위원장 마거릿 A. 킬로런 (2021년~)
사무총장 데릭 P. 밴스 (2019년~)
가맹 조직
54개 산별·직종별 노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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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3만 4천 명
1916년
88만 명
1937년
140만 명 (분열 직전)
1961년
610만 명 (통합 직후)
1977년
840만 명 (최대)
2025년
약 470만 명
기관지
《루이나 노동》 (월간, 1891년~)
산하 기구
노동교육원
노동자공제회
법률지원단
관련 조직
1. 개요2. 역사
2.1. 창설2.2. 1916년 파업2.3. 분열과 통합2.4. 전시와 전후2.5. 군정기2.6. 현재
3. 관련 인물4. 가맹 조직
4.1. 루이나 선원노동조합4.2. 부두노동조합연합4.3. 루이나 의류노동조합4.4. 전국철도노동조합4.5. 공무원노동조합4.6. 미가맹 주요 조합
5. 조직
5.1. 대의원대회5.2. 집행위원회5.3. 지역평의회5.4. 산하 기구
6. 노선과 강령7. 비판 및 논란8. 기타

1. 개요 [편집]

루이나 노동총동맹(Ruina Labour Federation, RLF)은 1886년 창설된 루이나의 전국 단위 노동조합 총연합이다. 54개 가맹 조합에 약 470만 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으며,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루이나의 양대 노총을 이룬다.

창설 이래 직종별 조합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정치적 중립과 단체교섭 중심주의를 표방해 왔으며, 이 노선은 조직의 안정성을 보장한 동시에 결정적인 국면마다 소극적 대응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당시 루이나 철도노동자연맹(RRWF)의 총파업 요청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결정은 파업을 고립시켜 실패로 이끈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며, 오늘날까지 루이나 노동운동 내부의 해묵은 쟁점으로 남아 있다.

1937년 산업별 조직화 방침을 둘러싸고 조직이 분열해 루이나 산업노동회의(RIC)가 떨어져 나갔다가 1961년 다시 통합했고, 1978년 군정기에는 지도부가 강제 개편되어 정부 통제 아래 놓였다. 민주화 이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1990년 경쟁 총연맹이 출범해 현재의 양대 체제가 성립했다.

2. 역사 [편집]

2.1. 창설 [편집]

1880년대 루이나의 노동조합은 인쇄공, 석공, 기계공 등 직종별로 흩어진 소규모 조직이었다. 이들은 개별 사업장 단위로는 교섭력이 있었으나 전국 차원의 입법 문제에는 대응할 수단이 없었다. 1885년 벨포르 인쇄공 조합이 8시간 노동제 청원을 의회에 제출했다가 논의조차 되지 못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연합 조직 논의가 시작되었다.

1886년 10월 12일 벨포르 머서가의 인쇄공 조합 회관에서 8개 직종조합 대표 96명이 모여 창립대회를 열었다. 초대 위원장으로 인쇄공 조합 출신 시어도어 R. 매스컬이 선출되었다. 창립 규약은 세 가지 원칙을 명시했다. 가맹 조합의 내부 문제에 총동맹이 간섭하지 않을 것,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 그리고 교섭과 계약을 통해 조건을 개선할 것이었다. 이 원칙은 이후 90년 가까이 RLF의 정체성으로 유지된다.

2.2. 1916년 파업 [편집]

1916년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은 RLF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건이다. RRWF는 직종 구분 없이 모든 철도 노동자를 조직한다는 원칙을 내세웠고, RLF 가맹 조합들은 이를 조합원 탈취로 받아들였다. RRWF가 RLF에 가맹하지 않은 것도 반목의 원인이었다.

5월 1일 몽고메리 K. 번즈가 전국 총파업을 호소하자, 5월 3일 빈덴브루크에서 열린 RLF 집행위원회는 이를 거부했다. 당시 의장 제이컵 홀스워스는 "패배가 확실한 싸움에 노동운동 전체를 던질 수 없다"고 밝혔다. RLF는 대신 정부의 중재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고, 파업 종료 후 루이나 노동자의 날 제정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RRWF 붕괴 후 블랙리스트를 피해 조합을 옮긴 철도 노동자 상당수가 RLF 산하 직종별 조합에 흡수되면서 조직은 오히려 커졌다. 그러나 홀스워스의 결정은 이후 수십 년간 "1916년의 배신"으로 불리며 비판받았고, 1990년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창립선언문에도 이 사건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었다.

2.3. 분열과 통합 [편집]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조합원이 절반 가까이 줄자 조직 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었다. 광산노동자연맹과 몇몇 대형 조합은 자동차, 철강, 철도차량 같은 대량생산 산업을 직종이 아닌 산업 단위로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1936년 대의원대회는 기존 직종별 원칙을 재확인했다.

1937년 3월, 산업별 조직화를 주장하던 8개 조합이 루이나 산업노동회의(Ruina Industrial Congress, RIC)를 결성하고 RLF를 탈퇴했다. 이들은 전국철도노동조합, 금속노동조합, 전국자동차노동조합 등을 잇따라 창설하며 급속히 세를 불렸고, RLF도 이에 대응해 산업별 조직화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두 조직은 20년 넘게 경쟁하다 1961년 4월 통합대회에서 다시 하나가 되었다. 통합 조직의 명칭은 RLF로 유지되었으나 규약에는 산업별 조직 원칙이 명시되었고, 초대 통합 위원장은 RIC 출신 앨빈 T. 도허티가 맡았다.

한편 1922년에는 공산계 활동가들이 별도의 적색노동조합평의회를 조직했다가 1935년 불법화되었다. 루이나는 지금도 공산주의 정당·단체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어, 이 계열은 이후 합법 노동운동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2.4. 전시와 전후 [편집]

제2차 세계대전 중 RLF는 정부와 무파업 협약을 맺고 전시생산에 협력했다. 그 대가로 대다수 군수공장에서 조합 인정과 조합비 일괄공제를 확보했으며, 이 시기 조합원 수는 두 배로 늘었다. 전후인 1946년에는 억눌렸던 임금 요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 광산, 항만, 철도에서 대규모 파업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52년 노동관계법이 제정되어 동조파업과 정치파업이 금지되었다. RLF는 이 법의 폐지를 반세기 넘게 요구해 왔다.

2.5. 군정기 [편집]

1978년 군정이 수립되자 정부는 RLF 지도부를 해산하고 위원장을 임명제로 전환했다. 파업권은 사실상 정지되었고, 총동맹은 임금 억제 정책의 집행 창구 역할을 맡았다. 1980년 헌정이 회복된 뒤에도 이 시기에 형성된 인적 구조가 상당 기간 유지되어 어용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활동가들은 사업장 단위의 비합법 노조를 조직했고, 1985년 이들이 모여 전국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했다. 1.10 민주화 선언 이후 노동법이 개정되어 복수노조가 허용되자, 이 흐름은 1990년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창설로 이어졌다. RLF는 이때 가맹 조합 12개와 조합원 약 90만 명을 잃었다.

2.6. 현재 [편집]

2000년대 이후 제조업 고용 감소와 비정규 고용 확대로 조직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25년 기준 루이나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2.4%이며, 이 가운데 RLF가 약 60%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물류·배달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와 공공부문 확대를 통해 감소분을 메우고 있다. 2021년 취임한 마거릿 A. 킬로런은 총동맹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위원장이다.

3. 관련 인물 [편집]

인물
재임
비고
시어도어 R. 매스컬
1886~1902년
초대 위원장
제이컵 홀스워스
1911~1924년
1916년 총파업 거부
앨빈 T. 도허티
1961~1970년
통합 초대 위원장
버논 K. 애슈크로프트
1978~1980년
군정 임명 위원장
클로디아 P. 렌슬러
1994~2003년
첫 여성 위원장
마거릿 A. 킬로런
2021년~
현직

4. 가맹 조직 [편집]

조합
창설
분야
조합원
전국인쇄공조합
1867년
인쇄·출판
4만
루이나 광산노동자연맹
1890년
광업·에너지
21만
루이나 선원노동조합
1904년
해운
33만
부두노동조합연합
1911년
항만 하역
18만
루이나 의류노동조합
1919년
섬유·의류
9만
전국철도노동조합
1937년
철도
27만
금속노동조합
1937년
철강·기계
46만
전국자동차노동조합
1938년
자동차
38만
조선노동조합
1941년
조선·중공업
24만
건설노동조합총연합
1947년
건설
52만
루이나 교원연맹
1948년
교육
41만
우편노동조합
1955년
우정
12만
공무원노동조합
1963년
공공행정
58만
보건의료노동조합
1971년
의료·복지
35만
유통서비스노동조합
1982년
유통·서비스
29만
플랫폼노동조합
2016년
배달·운송
7만

4.1. 루이나 선원노동조합 [편집]

1904년 창설된 해운 부문 조합으로, RLF 가맹 조합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조직으로 평가된다. 선원 공급을 조합이 운영하는 배선소(配船所)를 통해서만 하도록 하는 관행을 1930년대에 확립해, 사실상 해운업 인력 공급을 독점했다. 플라자 그룹이 1970년대 이후 배선소를 거치지 않는 직접 고용과 편의치적을 확대하면서 장기간 충돌해 왔으며, 1991년과 2008년 두 차례 전국 항만을 마비시킨 파업이 있었다.

4.2. 부두노동조합연합 [편집]

1911년 벨포르포트메이슨의 하역 노동자 조합이 통합해 결성되었다. 1946년 전후 대파업의 진원지였고, 1970년대 이후에는 컨테이너화와 자동화에 맞선 인력 감축 협상이 최대 현안이었다. 자동화로 줄어드는 일자리만큼 회사가 기금을 적립해 조합원에게 지급하는 '전환기금' 제도를 1979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4.3. 루이나 의류노동조합 [편집]

1919년 창설되었으며, 빈덴브루크 철도 총파업 당시 루이나 철도노동자연맹 재봉부 지부장이었던 애나 콜필드가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창설 당시부터 조합원의 다수가 여성이었고, 여성 조합원이 집행부 과반을 차지한 최초의 전국 조합이다. 이민 노동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개방한 것도 RRWF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알려져 있다.

4.4. 전국철도노동조합 [편집]

1937년 루이나 산업노동회의 소속으로 창설된 철도 산업별 조합. 규약 전문에 RRWF의 계승을 명시하고 있으나 조직상의 직접적 연속성은 없다. 1968년 여객철도 국영화 이후 조합원의 절대다수가 공기업 소속이 되면서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매년 빈덴브루크에서 열리는 파업 희생자 추모식을 주관한다.

4.5. 공무원노동조합 [편집]

1963년 결성되었으나 창설 당시에는 단체행동권이 없는 친목단체 성격이었고, 1978년 군정기에 해산되었다가 민주화 이후 재건되었다. 현재 RLF 최대 가맹 조합이며, 경찰·소방·군인은 여전히 단결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루이나의 경찰 조직이 부처별로 분산되어 있는 탓에, 경찰관의 단결권 문제는 소관 부처마다 별도로 논의되는 특이한 구조를 낳았다.

4.6. 미가맹 주요 조합 [편집]

  • 루이나 기관사 형제단 (1873년): 기관사만을 조합원으로 받는 직종 조합. 창설 이래 어느 총연맹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파업보다 상호부조와 사망보험에 중점을 둔 보수적 노선을 유지해 왔다. 1916년 보이콧에 반대했다.
  • 화부 조합 (1881년): 몽고메리 K. 번즈가 사무총장을 지낸 조합. 1916년 보이콧을 두고 내부가 분열되었으며, 1946년 기관사 형제단과 통합해 기관차승무원 형제단이 되었다.
  • 항공승무원조합 (1959년):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 전국교수노동조합 (1988년): 독립 조합.

5. 조직 [편집]

5.1. 대의원대회 [편집]

2년마다 열리는 최고 의결기구. 가맹 조합이 조합원 5,000명당 1명의 대의원을 파견한다. 규약 개정, 위원장·사무총장 선출, 총연맹 차원의 투쟁 방침 결정을 담당한다.

5.2. 집행위원회 [편집]

위원장, 사무총장, 그리고 가맹 조합이 조합원 규모에 따라 배분받은 위원 31명으로 구성된다. 대형 조합의 발언권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5.3. 지역평의회 [편집]

전국 96개 시 단위에 설치되어 지역 교섭과 지방정부 대응, 선거 시기 정책 활동을 담당한다. 지역평의회는 가맹 조합의 지부들로 구성되며, 총연맹 본부가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5.4. 산하 기구 [편집]

  • 노동교육원: 1954년 설립. 조합 간부 교육과 산업안전 교육을 담당한다.
  • 노동자공제회: 1901년 설립. 조합원 대상 상해·사망 공제와 파업 시 생계 대출을 운영한다.
  • 법률지원단: 1962년 설립. 부당해고와 산업재해 소송을 지원한다.

6. 노선과 강령 [편집]

  • 가맹 조합 자율: 총연맹은 가맹 조합의 교섭과 내부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창립 규약 이래 유지되는 원칙이며, 총연맹 차원의 통일 투쟁이 어려운 원인이기도 하다.
  • 정치적 중립: 특정 정당 지지를 금지한다. 다만 1930년대 이후 루이나 사회민주당과 사실상의 정책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고, 선거 시기에는 후보별 정책 평가표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사실상의 지지 표명을 대신한다.
  • 단체교섭 중심: 입법 투쟁이나 사회 개혁보다 개별 산업의 단체협약 개선을 우선한다.
  • 합법주의: 파업은 법이 정한 절차를 거친 경우에만 지지한다. 1952년 노동관계법 이후 이 원칙이 강화되었다.

7. 비판 및 논란 [편집]

  • 1916년의 결정: 총파업 요청 거부는 RLF에 대한 가장 오래된 비판이다. 총연맹은 공식적으로 이 결정을 사과한 적이 없다.
  • 군정 협력: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임명제 지도부가 임금 억제와 파업 금지를 집행한 전력은 민주화 이후 진상조사 요구의 대상이 되었으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대형 조합 편중: 집행위원회 의석 배분과 대의원 정수가 조합원 수에 비례해, 소규모 조합의 요구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 비정규직 조직화 부진: 정규직 중심의 교섭 구조 탓에 파견·용역·플랫폼 노동자의 이해가 후순위로 밀린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6년 플랫폼노동조합 가맹은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
  • 합법주의: 절차를 지키지 않은 파업에 지원을 거부하는 방침은 현장의 자발적 행동을 위축시킨다는 비판과, 조직을 지켜온 현실적 선택이라는 옹호가 엇갈린다.

8. 기타 [편집]

  • 벨포르 머서가의 총동맹 본부 건물은 1901년 지어진 것으로, 창립대회가 열린 인쇄공 조합 회관 자리에 서 있다.
  • 기관지 《루이나 노동》은 1891년 창간 이후 한 번도 휴간하지 않았다. 군정기에는 검열을 받았다.
  • RLF는 루이나 노동자의 날 공식 기념식을 주관한다.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메이데이 집회를 따로 연다.
  • 총동맹의 상징인 파란 바탕의 맞잡은 손 문양은 1886년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그 후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