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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린데나우 왕조 초대 국왕 게오르크 1세 Georg Ⅰ | |
출생 | 1660년 5월 28일 |
사망 | 1730년 6월 11일 (향년 70세)[1] |
재위기간 | |
1716년 8월 1일 ~ 1730년 6월 11일 | |
재임기간 | 린데나우 선제후 (게오르크 5세) |
1698년 1월 23일 ~ 1730년 6월 11일[2] | |
1716년 8월 1일 ~ 1730년 6월 11일 | |
인장 | |
대관식 공식 초상화 |
1. 개요 [편집]
[1] 대륙 순행 중 린데나우에서 사망했다. 루이나 국왕 가운데 국외에서 죽은 두 번째 사례이며, 유해는 본국으로 옮겨지지 않고 현지에 안장되었다.[2] 루이나 왕위에 오른 뒤에도 선제후위를 유지했다. 재위 14년 가운데 다섯 차례, 도합 3년 이상을 대륙에서 보냈으며, 그동안의 국정은 내각에 맡겨졌다.[3] 루이나어를 거의 하지 못해 각의에서 발언하지 않았고, 각료들과는 라틴어와 통역으로 소통했다. 재위 중반부터는 각의 참석 자체를 그만두었다.[4] 레온하르트 2세의 여계 후손으로, 게오르크 1세의 왕위 계승권은 전적으로 이 혈통에 근거한다. 개신교 계승법 제정 당시 계승 순위 1위였으나 아나 1세보다 두 달 앞서 사망하여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5] 혼인 무효 이후 32년간 유폐되었으며, 국왕은 그를 끝내 루이나로 데려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린데나우 왕조에는 초대 왕비가 존재하지 않는다.[6] 계승 순위 상위의 가톨릭 계열 50여 명이 개신교 계승법으로 일괄 배제된 결과였다.[7] 국왕이 각의를 주재하지 않게 되면서 각료 가운데 한 사람이 회의를 이끌고 국왕에게 결과를 보고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훗날 루이나 총리직의 기원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