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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랜드해협조약기구(N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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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랜드해협]] ||<-3><tablealign=right><tablewidth=420><tablebgcolor=#fff,#1c1d1f><tablebordercolor=#012169><bgcolor=#012169><color=#fff> '''{{{+1 북랜드해협 조약 기구}}}'''[br]North Landstrait Treaty Organization[br]Organisation du Traité de l'Land Nord || ||<-2><:> [[파일:NLTO 깃발.svg|width=160]] ||<bgcolor=#fff,#1c1d1f><:> [[파일:NLTO 로고.svg|width=110]] || ||<-2><:><rowbgcolor=#012169><rowcolor=#fff><width=50%> '''기''' ||<:><width=50%> '''로고''' || ||<colbgcolor=#012169><colcolor=#fff><width=40%> '''약칭''' ||<-2>NLTO[br]OTLN || || '''표어''' ||<-2>''SI VIS PACEM PALA BELLUM''[br]{{{-2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 || '''설립''' ||<-2>1969년 4월 4일[br]{{{-2 (조약 발효 1969년 8월 24일)}}} || || '''설립 근거''' ||<-2>[[북랜드해 조약]] || || '''전신''' ||<-2>3국 동맹[br]{{{-2 (루이나·빌베른·북산)}}} || || '''본부''' ||<-2>[[루이나]] [[벨포르]] || || '''회원국''' ||<-2>3개국 {{{-2 (발족 당시)}}}[br]6개국 {{{-2 (현재)}}} || || '''공용어''' ||<-2>영어, 프랑스어 || || '''사무총장''' ||<-2>마르크 뤼터[* 전 플로렌시아 총리.] || || '''군사위원장''' ||<-2>주세페 카보 드라고네 해군대장[* 전 빌베른 국방참모총장.] || || '''연합군 최고사령관''' ||<-2>크리스 카볼리 육군대장[* 루이나 육군 참모총장 겸임.] || || '''공동 예산''' ||<-2>약 41억 달러 {{{-2 (202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북랜드해협 조약 기구'''(North Landstrait Treaty Organization, NLTO)는 1969년 4월 4일 [[루이나]]의 수도 [[벨포르]]에서 체결된 [[북랜드해 조약]]에 따라 창설된 집단방위 기구다. 창설 회원국은 루이나·[[플로렌시아]]·[[빌베른]] 3개국이었고, 이후 [[북산]](1974), [[라 마베라 연방|라 마베라]](1982), [[유고랜드]](1992)가 가입해 현재 6개국이다. 랜드해협 냉전에서 서방 진영을 대표하는 군사동맹으로, 대척점에는 [[사비에트]]가 이끄는 [[해르샤바 조약기구]]가 있다. 본부는 벨포르에 있다. 정치 기구로는 회원국 대표로 구성되는 북랜드해협 이사회와 사무총장이 이끄는 국제사무국이 있고, 군사 기구로는 군사위원회와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있다. 현임 사무총장은 플로렌시아 출신의 마르크 뤼터다. 동맹의 핵심은 회원국 하나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조약 제5조다. 제5조는 지금까지 두 번 발동되었다. 첫 번째는 [[2차 랜드 전쟁]] 중이던 1973년 사비에트 공군의 빌베른 코스트파랄라 항 공습, 두 번째는 2001년 [[1.19 사건]]이다. 창설 이래 NLTO의 역사는 두 힘 사이의 긴장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사비에트의 위협에 맞서 동맹을 묶어 두려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본부와 최고사령관 자리와 예산의 대부분을 쥔 루이나가 스스로 시작한 전쟁에 동맹 전체가 끌려 들어가지 않게 하려는 힘이다. 후자를 대표해 온 나라는 플로렌시아였으며, 1970년의 「콘스탄티노폴 원칙」과 1973년·1974년의 두 해석 성명이 모두 그 산물이다. == 명칭 == 흔히 쓰이는 두문자어인 NLTO는 영어 명칭 'North Landstrait Treaty Organization'의 줄임말이다. 프랑스어군에 속한 일부 국가에서는 'Organisation du Traité de l'Land Nord'의 두문자어인 OTLN으로 표기한다. 이 때문에 특정 국적이 아닌 NLTO 소속으로 작전하는 병력이나 회원국이 공동 소유하는 기체는 NLTO-OTLN 두 식별문을 모두 표기한 휘장을 사용한다. 이 휘장은 1973년 앵커리지 작전에서 처음 쓰였다. 한국어로는 '북랜드해협 조약 기구'와 붙여 쓴 '북랜드해협조약기구'를 혼용하며, 근거 조약의 이름을 따 '북랜드해 조약 기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비에트를 비롯한 해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의 관영 매체는 NLTO를 정식 명칭으로 부르지 않고 '벨포르 블록'(Бельфорский блок)이라 부른다. 1974년 해르샤바 조약기구 창설 선언문에서 처음 쓰인 표현이다. == 상징 == 표어 'Animus In Consulendo Liber'는 라틴어로 '숙고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1970년 이사회에서 채택되었으며, 행정 문어로 라틴어를 쓰는 빌베른 대표단이 제안했다. 협의하는 자리에서는 누구의 판단에도 얽매이지 않고 숙고한다는 뜻으로, 표결 없이 합의로 결정하는 이사회 운영 원칙을 가리킨다.[* 비판론자들은 이 표어를 인용할 때 '루이나의 판단만 빼고'라는 단서를 붙이곤 한다.] 깃발과 로고 역시 1970년 이사회에서 채택되었다. 1969년 출범 당시에는 별도의 상징이 없어 첫 이사회 문서에는 기탁국인 루이나 정부의 문장이 찍혀 나갔고, 이것이 동맹의 독자 상징을 서둘러 정한 계기가 되었다. == 역사 == === 전사(前史) === NLTO 이전 루이나의 집단방위 체제는 1950년대에 결성된 루이나·빌베른·북산의 3국 동맹이었다. 3국 동맹은 유사시 상호 원조를 약속했으나 통합된 지휘 기구나 상설 사무국을 두지 않았고, 원조의 범위와 방식은 사태가 벌어진 뒤 정부 간 협의로 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플로렌시아는 이 동맹 밖에 있었다. 1958년 해협 통행권 분쟁으로 [[1차 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3국 동맹의 한계가 드러났다. 루이나·플로렌시아·빌베른은 협상국으로서 사비에트·[[체르드]]·라 마베라·[[고랜드]]의 동맹국과 싸웠으나, 각국 해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따로 호송 체계를 운용했다. 해협 동부의 북산은 3국 동맹에 따라 후방 지원만 맡았다. 전쟁은 1963년 [[오로아 조약]]으로 끝났다. 영토 변경 없이 전쟁 이전의 상태를 확인하고 동맹국 측에 배상과 군비 제한을 지운 강화였다. 해협의 통행 질서는 회복되었지만, 그 질서를 지킬 상설 장치는 여전히 없었다. === 창설 (1969) === ==== 배경 ==== 오로아 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1964년 브레자코프가 사비에트 노동인민당 서기장에 오른 뒤 사비에트는 군비 재건에 나섰고, 1966년부터 루이나 해군정보부는 사비에트가 오로아 조약의 해군 군비 제한을 넘어섰다는 보고를 잇달아 올렸다. 해협 남부에서는 사비에트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운동이 체르드와 라 마베라에서 세를 넓혔고, 1963년 독립한 [[동사랜드]]는 처음부터 공산 정권이었다. 해협 바깥에서는 [[소련]]과 [[미합중제국]]의 냉전이 굳어지고 있었다. 루이나 정부는 1967년 3국 동맹을 상설 다자 기구로 바꾸고 플로렌시아를 끌어들이는 구상을 내놓았다. 1차 랜드 전쟁을 함께 치렀으면서도 평시 동맹 관계가 없던 플로렌시아를 묶어 두는 것이 핵심이었다. 1968년 벨포르에서 열린 4개국 협상의 첫 쟁점은 지휘권이었다. 루이나는 통합 사령부의 지휘권을 요구했고, 플로렌시아는 루이나가 기구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경계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루이나가 맡되 사무총장은 루이나 국적자가 맡지 않는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고, 이는 지금까지 관행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적용 범위였다. 플로렌시아는 랜드해협 바깥의 자국 식민지가 집단방위 대상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식민지 분쟁에 동맹국을 끌어들인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조약 제6조는 적용 범위를 랜드해협 연안의 당사국 영토와 해협의 해역·영공으로 한정했다. 이 조항은 훗날 반대 방향으로, 즉 루이나의 역외 군사행동에 동맹을 끌어들이지 않는 근거로 더 자주 쓰이게 된다. 세 번째 쟁점은 북산이었다. ==== 북산의 배제 ==== 북산은 3국 동맹의 일원이었으므로 루이나는 당연히 창설 회원국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1967년 [[5.13 부정선거]] 이후 북산 정국은 경색되었고, 1969년 초 북산 정부가 긴급조치를 선포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플로렌시아 정부는 조약 전문과 제2조가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제도를 동맹의 기초로 내세우는 이상, 긴급조치 아래의 북산을 창설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 의회 비준을 장담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루이나는 북산을 빼고 3개국으로 출범하는 대신 3국 동맹을 그대로 유지해 북산에 대한 안보 공약을 이어 가기로 했다. 다만 이 선택은 신규 가입에 당사국 전원의 초청을 요구하는 조약 제10조와 맞물려, 이후 북산의 가입 여부를 플로렌시아가 사실상 결정하게 만들었다. 같은 시기 루이나 역시 정치 폭력과 비상 입법이 이어지는 [[검은 10년]]의 문턱에 있었다는 점에서, 북산 배제가 원칙의 문제였다기보다 플로렌시아 국내 정치의 산물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 조약 체결과 출범 ==== 1969년 4월 4일 루이나·플로렌시아·빌베른 3개국 외교장관이 벨포르에서 북랜드해 조약에 서명했다. 비준서는 루이나 정부에 기탁되었고, 마지막으로 빌베른의 비준서가 기탁되면서 조약은 8월 24일 발효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서명일인 4월 4일을 창설일로 본다. 1969년 9월 벨포르에서 첫 이사회가 열려 국제사무국을 설치하고 조약 제9조가 규정한 방위위원회를 구성했다. 방위위원회는 이듬해 각국 합참의장급으로 구성되는 군사위원회로 개편되었고, 같은 해 벨포르 북부 교외의 몽브리옹에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문을 열었다. 초대 사무총장에는 플로렌시아의 앙드레 르클레르가 임명되었다. === 초기 (1969~1973) === ==== 콘스탄티노폴 원칙 ==== NLTO가 처음 부딪힌 문제는 사비에트가 아니라 루이나였다. 1970년 아서 W. 그랜트 정부는 공산 정권이 들어선 [[콘스탄티노폴]]을 침공하면서, 콘스탄티노폴 공산 정부가 해협 북부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이사회에 제4조 협의를 요청했다. 루이나가 원한 것은 침공에 대한 동맹 차원의 지지와 해상 봉쇄 참여였다. 플로렌시아와 빌베른은 이를 거부했다. 플로렌시아는 루이나가 스스로 시작한 군사행동에 동맹을 끌어들이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빌베른은 국내 여론이 문제였다. 콘스탄티노폴은 오랫동안 빌베른의 지배를 받은 땅이었고 주민 다수가 빌베른계였기 때문이다. 협의는 지지 성명 없이 끝났고, 이사회 의사록에는 "당사국이 스스로 개시한 역외 군사행동과 그 과정에서 입은 손실은 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장 요약이 남았다. 이 문장은 이후 '''콘스탄티노폴 원칙'''으로 불리며 제5조 해석의 기준이 되었다. 루이나는 콘스탄티노폴 주둔이 수렁으로 빠져드는 동안 입은 손실을 한 번도 이사회에 가져가지 않았다. ==== 남부의 공산화 ==== 1972년부터 이듬해까지 체르드와 라 마베라에서 잇달아 혁명이 일어나 두 나라가 공산화되었다. 두 나라 모두 회원국이 아니었으므로 NLTO가 할 수 있는 일은 협의뿐이었다. 오로아 조약은 이 무렵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 2차 랜드 전쟁과 제5조 최초 발동 (1973~1977) === 1973년 7월 14일 [[마베라 내전]]이 일어나며 2차 랜드 전쟁이 시작되었다. 사비에트는 라 마베라의 공산 정부를, 루이나는 왕당파를 중심으로 한 반공 세력을 지원했다. 루이나의 지원은 양자 차원이었고, 보급의 상당 부분은 빌베른의 동의를 얻어 빌베른 남부의 코스트파랄라 항을 거쳤다. ==== 코스트파랄라 공습 ==== 1973년 9월 2일 새벽 사비에트 공군의 장거리 폭격기 편대가 코스트파랄라 항의 부두와 연료 저장시설을 폭격했다. 항만 노동자와 인근 주민 187명이 사망했고 정박 중이던 루이나 해군 수송함 2척이 손상되었다. 조약 발효 이후 당사국 영토가 직접 공격받은 첫 사례였다. 빌베른은 이튿날 제4조 협의를 요청하고 제5조 발동을 요구했다. 6일간 이어진 이사회에서 플로렌시아는 콘스탄티노폴 원칙을 들어 반대했다. 공습은 빌베른이 루이나의 마베라 개입에 항구를 내준 결과이므로, 루이나가 개시한 역외 군사행동에서 비롯된 손실이라는 논리였다. 루이나와 빌베른은 콘스탄티노폴 원칙이 다루는 것은 역외에서 입은 손실이며, 당사국 본토에 대한 폭격은 제6조가 규정한 가장 전형적인 무력 공격이라고 반박했다. ==== 제5조 발동과 해석 성명 ==== 9월 8일 이사회는 합의로 제5조를 발동했다. 대신 플로렌시아는 합의에 해석 성명을 붙였다. 집단 조치의 범위를 당사국 영토·영공의 방어와 해협 해상 교통로의 보호로 한정하고, 라 마베라 영내의 지상 작전은 각국의 개별 결정 사항으로 남긴다는 내용이었다. 이견이 있는 합의를 성립시킬 때 해석 성명을 붙이는 NLTO의 관행은 이때 시작되었다. 발동과 함께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앵커리지 작전」을 개시했다. 해협 호송과 초계, 회원국 영공 방공을 하나로 지휘하는 NLTO 최초의 집단 작전이었다. 1차 랜드 전쟁 때 국가별로 흩어져 있던 호송 체계가 하나의 지휘 아래 들어간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고,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서류상의 기구에서 실제 사령부로 바뀐 것도 이 작전을 통해서였다. ==== 사비에트의 가입 신청 ==== NLTO는 사비에트에 맞선 동맹이었지만, 1974년 3월 31일 사비에트 정부는 랜드해협의 집단 안보에 이바지하겠다며 NLTO 가입 의사를 담은 각서를 조약 기탁국인 루이나 정부에 전달했다. 각서에는 마베라 전선의 즉시 휴전과 해협 공동 안보 회의 개최 제안이 함께 담겨 있었다. 교전 중인 상대국이 동맹에 들어오겠다는 제안이었으므로 진지한 가입 신청으로 받아들인 회원국은 없었다. 휴전 제안을 앞세워 전쟁에 지친 플로렌시아를 루이나에게서 떼어 놓으려 한 브레자코프 정권의 선전 공세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럼에도 각서는 일언지하에 거절되지 않았다. 1974년 봄 마베라 전선은 교착 상태였고 루이나 국내에서도 전쟁 피로가 쌓이고 있었다. 플로렌시아의 일부 정당과 루이나 사회민주당 일각은 각서를 휴전 협상의 실마리로 삼자고 주장했고, 이사회는 2주 가까이 격론을 벌였다. 결론은 절차로 났다. 조약 제10조는 당사국이 만장일치로 초청한 국가만 가입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가입 신청 절차를 두지 않으므로, 각서는 애초에 가입 신청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4월 12일 각서를 반려하고 휴전 제안은 조약과 무관한 별도 사안으로 떼어 냈다. 휴전 제안 역시 사비에트가 후속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서 흐지부지되었고, 사비에트의 태도 변화에 대한 짧은 기대는 그것으로 끝났다. ==== 북산 가입과 해르샤바 조약기구 창설 ==== 전쟁은 북산 문제의 성격도 바꾸어 놓았다. 북산의 긴급조치는 여전히 유효했지만, 해협 동부에서 [[청평]]과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북산을 동맹 밖에 두는 비용이 커졌다. 플로렌시아는 1969년의 입장을 거두는 대신 두 번째 해석 성명을 요구했다. 북산에 대한 제5조 공약은 북산 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에만 적용되며, 북산이 자국 영토 밖에서 벌이는 군사행동은 집단 조치의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1974년 5월 9일 북산은 가입서를 루이나 정부에 기탁하고 네 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닷새 뒤인 5월 14일 사비에트는 위성국가들을 모아 파랜드의 해르샤바에서 해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했다. 창설 선언문은 NLTO를 반공 동맹으로 규정하고, 북산의 가입을 해협 동부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을 포위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이로써 랜드해협의 냉전은 두 개의 상설 군사동맹이 마주 선 구도로 굳어졌다. ==== 청북전쟁과 동맹의 균열 ==== 1975년 [[청북전쟁]]이 확대되며 2차 랜드 전쟁의 동부 전역이 되었다. 북산 가입 당시의 해석 성명에 따라 NLTO는 청북전쟁에 동맹 차원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루이나의 참전은 3국 동맹에 따른 양자 차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경계는 여론 앞에서 흐려졌다. 1975년 11월 [[띠에우리엔 대학살]] 보도가 나오자 플로렌시아 의회는 NLTO의 공동 보급 자산이 동부 전역에 전용되지 않았는지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조사는 전용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루이나의 전쟁에 동맹이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의심은 이후 플로렌시아 정치에 오래 남았다. ==== 종결 ==== 1976년 라 마베라와 체르드의 공산 정권이 잇달아 무너졌다. 라 마베라에서는 왕정이 복귀했고 체르드는 중립 공화국이 되었다. 동부 전역은 1977년 7월 27일 바젤 정전으로 멈췄다. 2차 랜드 전쟁은 단일 강화 조약 없이 전역별로 끝났다. 이사회는 1977년 9월 20일 1973년 발동에 따른 집단 조치의 종료를 선언했고, 앵커리지 작전도 이날 끝났다. 4년간의 작전 기간 동안 NLTO 지휘 아래 해협을 통과한 호송 선단은 2,100여 회에 이르렀다. === 루이나 군정과 NLTO의 침묵 (1978~1989) === 1978년 10월 [[10.10 군사반란]]으로 루이나에 군정이 들어섰다. 본부 소재국이자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배출하는 나라가 군사정권 아래 들어간 것이었으나 NLTO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플로렌시아 의회에서는 본부 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되었다가 부결되었고, 플로렌시아 정부도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2차 랜드 전쟁이 끝난 지 1년 남짓 된 시점에 동맹의 중심축을 흔들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같은 해 12월 [[LSEC]] 이사회가 루이나의 의결권을 정지할 때 NLTO 회원국 상당수가 반대하거나 기권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진영 논리가 인권 논리를 누른 사례로 두 기구의 대응이 자주 함께 거론된다. 군정은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무너졌지만, 이후 1980년대의 권위주의 통치 기간에도 NLTO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1983년 LSEC가 다시 루이나의 의결권을 정지할 때는 NLTO 회원국 다수도 찬성했으나, 정작 NLTO 안에서는 같은 문제가 한 번도 의제에 오르지 않았다. 조약 전문의 민주주의 원칙은 북산의 가입을 5년간 막았지만 본부 소재국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 라 마베라 가입 ==== 1976년 왕정이 복귀한 라 마베라는 입헌군주제 아래 민주화를 거쳐 1982년 6월 3일 다섯 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2차 랜드 전쟁에서 루이나가 지원한 세력이 세운 정부가 동맹에 들어온 것이었다. 가입과 함께 루이나군의 라 마베라 주둔도 NLTO의 공동 방위 계획에 편입되었다. ==== 정지궤도 위기 ==== 1984년 [[정지궤도 위기]] 때 NLTO는 2차 랜드 전쟁 이후 가장 높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루이나는 제4조 협의를 요청했고, 이사회는 사흘간 상시 회의 체제로 운영되었다. 베인브리지 정부는 초반 강경 대응을 고수하다 후반 협상으로 돌아섰고, 위기는 무력 충돌 없이 끝났다. 위기 도중 사비에트 조기경보망에서 오경보가 발생했었다는 사실은 훗날에야 알려졌다. === 1990년대 === 1991년 사비에트 서기장 카멘스키가 실각하고 사비에트가 국내 위기와 경제 재편의 혼란에 빠지면서, NLTO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사비에트 체제는 무너지지 않았고 해르샤바 조약기구도 해체되지 않았다. NLTO는 1991년 전략 개념을 개정해, 대규모 침공에 대비하는 기존의 위협 인식에 역내 분쟁과 불안정의 확산을 더했다. 1992년 9월 8일 유고랜드가 여섯 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유고랜드는 1984년 독립 이후 루이나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루이나군을 받아들인 나라로, 사비에트·고랜드와 국경을 맞댄 최전선 국가였다. 가입 날짜는 유고랜드의 독립 기념일에 맞춘 것이다. 사비에트의 혼란기에 동맹의 남쪽 경계를 굳혀 두려는 루이나의 의도가 컸고, 유고랜드의 비자유주의적 정치 체제는 이때도 가입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1993년 루이나의 [[아작스 작전]]으로 빌베른에 친루이나 정부가 들어섰다. NLTO는 작전에 관여하지 않았으나, 회원국 정부가 다른 회원국의 공작으로 교체된 첫 사례로 남았다. === 1.19 사건과 제5조 두 번째 발동 (2001) === 2001년 1월 19일 국제 무장조직 알자미아가 루이나 본토를 공격한 1.19 사건이 일어났다. 루이나는 이튿날 제4조 협의를 요청했다. 쟁점은 국가가 아닌 무장조직의 공격을 조약이 말하는 무력 공격으로 볼 수 있느냐였다. 이번에는 플로렌시아가 반대하지 않았다. 당사국이 스스로 개시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본토가 일방적으로 공격받은 사건이었으므로 콘스탄티노폴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었다. 이사회는 1월 21일 공격이 국외에서 지휘되었음이 확인되는 것을 조건으로 제5조를 잠정 발동했고, 알자미아 지휘부가 고랜드에 있다는 증거가 제출된 뒤 2월 9일 발동을 확정했다. 제5조가 국가가 아닌 행위자의 공격에 적용된 첫 사례였다. 집단 조치로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감시탑 작전」을 개시해 해협의 해상 검문과 초계를 강화하고, 공동 조기경보기를 루이나 영공 초계에 투입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시작된 [[루이나-고랜드 전쟁]]은 NLTO의 작전이 되지 않았다. 루이나는 개전에 앞서 고랜드의 공산 정부, 그리고 사비에트와 비밀 교섭을 벌였고, 그 결과는 12월 5일 [[벨포르 협정]]으로 정리되었다. 공산 정부와 손잡고 치르는 전쟁을 동맹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데 대해서는 회원국 사이의 이견이 컸고, 사비에트의 묵인 역시 이것이 루이나의 전쟁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지상 작전은 루이나 단독 지휘로 수행되었고, 다른 회원국의 참여는 플로렌시아의 공병·의무 부대, 북산의 해상 수송, 유고랜드의 국경 기지 제공 같은 국가별 기여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해르샤바 조약기구의 맹주가 묵인한 전쟁을 NLTO의 두 번째 제5조 발동이 뒤에서 받치는 구도가 되었다. === 빌베른 자격 정지와 빌베른 침공 (2001~2004) === 1.19 사건 이후 동맹의 균열은 빌베른에서 터졌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루이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빌베른 정부는 감시탑 작전에 필요한 영공 통과와 항만 사용을 거부했다. 같은 해 봄 루이나는 빌베른 정부가 제3국과 비밀 군사 협정을 맺었다는 정보를 이사회에 제출했다. 조약에 저촉되는 국제 약정을 맺지 않는다는 조약 제8조 위반 의혹이었다. 조약에는 회원국의 자격을 정지하는 조항이 없었다. 이사회는 대상국을 뺀 나머지 당사국 전원의 합의로 결정하는 '당사국 제외 합의'라는 방식을 처음으로 고안해, 2001년 7월 16일 빌베른의 이사회·군사위원회·연합군 최고사령부 참여와 기밀 정보 접근을 정지했다. 조약상 당사국 지위는 유지되지만 동맹의 모든 기구에서 배제되는 상태였다. 플로렌시아는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의 잠정 조치라는 단서를 달아 합의에 동참했다. 2002년 루이나는 빌베른을 침공했다. 자격이 정지된 빌베른에게는 제4조 협의를 요청할 통로조차 없었고, 이사회는 침공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플로렌시아는 침공에 참여하지 않고 유감을 표명했으나 이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침공 이후 루이나가 자격 정지의 근거로 제출했던 비밀 협정 정보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빌베른 자격 정지는 침공을 위한 법적 정지작업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빌베른 침공]] 문서 참고.}}} 빌베른의 자격 정지는 침공 이후 들어선 친루이나 정부 아래에서 2004년 11월 해제되었다. 1950년대부터 이어진 3국 동맹은 이 과정에서 빌베른이 빠지며 사실상 루이나-북산 양자 동맹으로 바뀌었다. === 2010년대 이후 === 2020년 1월 3일 루이나는 라 마베라의 수도 트리넬의 국제공항에서 마베라 군부 특수부대 지휘부를 공습했다([[트리넬 국제공항 공습]]).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영토에서 그 나라 정부의 동의 없이 무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라 마베라 정부는 1월 5일 루이나를 상대로 제4조 협의를 요청했는데,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을 상대로 제4조를 요청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1월 8일 친마베라 민병대가 루이나 주둔군을 로켓으로 공격했을 때 루이나는 제4조나 제5조를 거론하지 않았다.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군부가 회원국 라 마베라의 국가기관이었기 때문이다. 협의는 루이나가 회원국 영토 내 작전에 대한 사전 통보 절차를 약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2021년 루이나는 고랜드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철수는 다른 회원국과의 협의 없이 결정되었고, 고랜드에 남아 있던 플로렌시아와 북산의 지원 부대는 철수 일정을 루이나 정부의 발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사회는 같은 해 10월 1.19 사건에 따른 집단 조치의 종료를 선언했다. 20년 만에 두 번째 제5조 발동이 끝난 것이다. 2024년 10월 플로렌시아의 마르크 뤼터가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같은 해부터 루이나는 유고랜드 반군에 대한 공습을 이어 갔고, 2025년 [[유고랜드 내전]]이 확대되자 유고랜드는 제4조 협의를 요청했다. 이사회는 내전은 제5조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을 재확인했으나, 루이나의 공습을 두고 회원국 의견이 갈려 공동 성명은 내지 못했다. == 북랜드해 조약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북랜드해 조약]] 문서 참고.}}} NLTO의 법적 근거인 북랜드해 조약은 전문과 14개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영어본과 프랑스어본이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 원본은 루이나 정부의 기록 보관소에 있고, 비준서·가입서·폐기 통고는 모두 루이나 정부에 기탁된다. 동맹의 실제 운영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4조는 당사국의 영토 보전이나 안보가 위협받는다고 어느 당사국이 판단할 때 함께 협의하도록 한다. 제5조는 집단방위 조항이고, 제6조는 제5조가 말하는 무력 공격의 범위를 랜드해협 연안의 당사국 영토, 해협 북부의 당사국 관할 도서, 그리고 해협 해역·영공에 있는 당사국의 군대·선박·항공기로 정한다. 제8조는 조약에 저촉되는 국제 약정을 금지하며, 2001년 빌베른 자격 정지의 근거로 쓰였다. 제10조는 만장일치 초청에 의한 가입만을 규정해 1974년 사비에트 각서 반려의 근거가 되었다. 제13조는 발효 20년 뒤부터 탈퇴를 허용하는데, 탈퇴가 가능해진 1989년 이후 실제로 탈퇴한 나라는 없다. 조약에는 회원국의 자격을 정지하거나 제명하는 조항이 없다.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북랜드해 조약 제5조''' 당사국들은 랜드해협 및 그 주변에서 그들 중 하나 이상에 대한 무력 공격이 그들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된다는 데 동의하며, 따라서 그러한 무력 공격이 발생할 경우 각자가 랜드해협 연맹 헌장 제51조에 의해 인정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데 동의한다. 그들은 북랜드해 지역의 안보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무력 사용을 포함한 행동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다른 당사국들과 협력하여 즉시 취함으로써 공격받은 당사국을 지원할 것이다. 그러한 무력 공격과 그 결과로 취해진 모든 조치는 즉시 안전보장이사회에 보고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 평화와 안보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을 때 종료된다.}}} == 회원국 == ||<tablebordercolor=#012169><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012169><rowcolor=#fff> 국가 || 가입 || 비고 || || [[루이나]] || 1969 || 창설국 · 본부 소재국 || || [[플로렌시아]] || 1969 || 창설국 || || [[빌베른]] || 1969 || 창설국 · 2001~2004 자격 정지 || || [[북산]] || 1974 || || || [[라 마베라 연방|라 마베라]] || 1982 || || || [[유고랜드]] || 1992 || || 신규 가입은 당사국 전원의 합의로 초청한 국가가 루이나 정부에 가입서를 기탁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진다. 가입에 이견이 있을 때 해석 성명을 붙여 합의를 성립시키는 관행은 1974년 북산 가입에서 비롯되었다. [[체르드]]는 1976년 중립 공화국이 된 이후 어느 동맹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나 NLTO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폴]]은 명목상 루이나의 보호령인 무정부지대로, 당사국 영토가 아니므로 조약의 적용 범위 밖에 있다. 그곳에서 루이나가 입는 손실은 콘스탄티노폴 원칙에 따라 동맹의 사안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 조직 == === 북랜드해협 이사회 === 조약 제9조에 따라 설치된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회원국마다 대사급 상주 대표를 두어 매주 회의를 열고, 외교·국방장관 회의는 연 2회, 정상회의는 필요할 때 소집된다. 의장은 사무총장이 맡는다. 이사회는 표결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은 합의로 이루어지며, 일정 시한까지 이의를 제기하는 회원국이 없으면 합의가 성립한 것으로 보는 침묵 절차를 쓴다. 이견을 남긴 채 합의를 성립시키는 해석 성명과, 대상국을 뺀 나머지 전원의 합의로 결정하는 당사국 제외 합의는 모두 이 합의제의 빈틈을 메우려는 장치다. 당사국 제외 합의가 쓰인 것은 2001년 빌베른 자격 정지가 유일하다. === 국제사무국과 사무총장 === 국제사무국은 이사회와 각 위원회의 업무를 지원하는 상설 행정 조직으로, 벨포르 본부에 약 1,300명이 근무한다. 수장인 사무총장은 이사회 의장을 겸하며 NLTO를 대외적으로 대표한다.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고 회원국 합의로 임명된다. 루이나 국적자를 사무총장에 임명하지 않는 것은 1968년 협상 이래의 관행이다. 본부와 최고사령관 자리를 루이나가 갖는 대가였다. 역대 사무총장의 절반 이상이 플로렌시아 출신인 것도 같은 균형의 결과다. ||<tablebordercolor=#012169><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012169><rowcolor=#fff> 대 || 이름 || 출신국 || 임기 || || 1 || 앙드레 르클레르 || 플로렌시아 || 1969~1975 || || 2 || 마르쿠스 벨레니우스 || 빌베른 || 1975~1980 || || 3 || 헨드릭 판오스트롬 || 플로렌시아 || 1980~1987 || || 4 || 아리마 노부유키 || 북산 || 1987~1993 || || 5 || 에밀 브라이텐바흐 || 플로렌시아 || 1993~2000 || || 6 || 하비에르 몬탈반 || 라 마베라 || 2000~2006 || || 7 || 클레망 뒤부아 || 플로렌시아 || 2006~2014 || || 8 || 한지석 || 유고랜드 || 2014~2019 || || 9 || 엘레오노르 바세 || 플로렌시아 || 2019~2024 || || 10 || 마르크 뤼터 || 플로렌시아 || 2024~ || === 군사위원회 === 회원국 합참의장급 군 수뇌로 구성되는 최고 군사 기구로, 이사회에 군사 자문을 제공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지휘·감독한다. 위원장은 회원국 군 수뇌 가운데 선출되며 임기는 3년이다. 현 위원장 주세페 카보 드라고네 해군대장은 빌베른 국방참모총장 출신으로, 2004년 자격 정지 해제 이후 빌베른 출신으로는 처음 이 자리에 올랐다. === 연합군 최고사령부 === NLTO의 모든 집단 작전을 지휘하는 통합 사령부로, 벨포르 북부 교외의 몽브리옹에 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창설 이래 예외 없이 루이나 장성이 맡아 왔으며, 1991년 전략 개념 개정 이후로는 루이나 육군 참모총장이 겸임한다. 루이나 군 안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해군은 이 겸임 관행에 반발해 왔다. 그 절충으로 산하 연합해상사령관은 루이나 해군 대장이 맡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산하에는 연합해상사령부([[롱비치]]), 연합지상사령부(플로렌시아), 연합항공사령부([[콜마르]]), 동부사령부(북산, 1978년 설치)가 있다. 이와 별도로 1982년 창설된 공동 조기경보통제 전대는 회원국이 공동 소유한 조기경보기를 플로렌시아에서 운용하며, 이 기체들은 특정 국가가 아닌 NLTO에 등록되어 NLTO-OTLN 휘장을 단다. === 예산 === 공동 예산은 사무국 운영을 위한 민간 예산,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공동 작전을 위한 군사 예산, 공동 기반시설을 위한 안보투자계획의 세 갈래로 나뉜다. 2026년 기준 총액은 약 41억 달러다. ||<tablebordercolor=#012169><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012169><rowcolor=#fff> 국가 || 분담률 || || 루이나 || 57.8% || || 플로렌시아 || 21.4% || || 북산 || 9.6% || || 라 마베라 || 6.1% || || 유고랜드 || 3.7% || || 빌베른 || 1.4% || == 제4조·제5조 발동 사례 == ||<tablebordercolor=#012169><tablebgcolor=#fff,#1f2023><rowbgcolor=#012169><rowcolor=#fff> 연도 || 요청국 || 계기 || 결과 || || 1970 || 루이나 || 콘스탄티노폴 침공 || 거부 || || 1973 || 빌베른 || 코스트파랄라 공습 || '''제5조 발동''' || || 1984 || 루이나 || 정지궤도 위기 || 협의 || || 2001 || 루이나 || 1.19 사건 || '''제5조 발동''' || || 2020 || 라 마베라 || 트리넬 국제공항 공습 || 협의 || || 2025 || 유고랜드 || 유고랜드 내전 || 협의 || == 평가와 쟁점 == === 루이나의 동맹인가 === NLTO에 대한 가장 오래된 비판은 이것이 다자 동맹의 외피를 쓴 루이나의 군사 체제라는 것이다. 본부와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루이나에 있고, 최고사령관은 루이나 장성이며, 공동 예산의 절반 이상을 루이나가 낸다. 조약의 기탁국도 루이나 정부여서 가입과 탈퇴의 모든 서류가 루이나를 거친다. 사비에트가 NLTO를 '벨포르 블록'이라 부르는 것도 이 점을 겨냥한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루이나는 사무총장 자리를 한 번도 갖지 못했고, 합의제 아래에서 다른 회원국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1970년 콘스탄티노폴 협의 거부, 1973년과 1974년의 해석 성명, 2001년 루이나-고랜드 전쟁의 비(非)동맹화는 모두 루이나가 원하는 방향으로 동맹을 움직이지 못한 사례다. 이 관점에서 NLTO의 역사는 루이나가 동맹을 이끈 역사라기보다, 나머지 회원국이 루이나의 전쟁에 선을 그어 온 역사로 읽힌다. === 민주주의 원칙과 회원국 === 조약 전문은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법치주의를 동맹의 기초로 내세우지만, 이 원칙이 실제로 적용된 것은 1969년 북산을 창설 회원국에서 뺀 한 번뿐이다. 그 북산도 긴급조치가 유지되는 가운데 5년 뒤 가입했고, 1978년 루이나 군정과 1980년대의 권위주의 통치는 의제에조차 오르지 않았다. 현재 회원국 가운데 빌베른과 유고랜드는 국제 지표상 비민주 국가로 분류된다. 같은 시기 루이나의 의결권을 두 차례 정지한 LSEC와의 대비는 NLTO의 민주주의 원칙이 진영의 수사에 가깝다는 비판의 근거로 자주 쓰인다. === 제5조의 경계 === 제5조가 무엇에 적용되는지는 조약 문안보다 선례가 정해 왔다. 콘스탄티노폴 원칙은 당사국 스스로 개시한 역외 군사행동을 제외했고, 1973년 해석 성명은 발동 이후에도 집단 조치의 범위를 영토 방어와 해상 교통로 보호로 묶었으며, 1974년 해석 성명은 북산의 역외 작전을 제외했다. 2001년에는 국가가 아닌 행위자의 공격도 무력 공격이 될 수 있다는 선례가 더해졌고, 2025년에는 내전이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원칙이 재확인되었다. 이 선례들은 대부분 플로렌시아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제5조는 넓게 발동되기보다 좁게 정의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지지자들은 이것이 동맹을 반세기 넘게 유지해 온 비결이라고 본다. 반대로 루이나 안에서는 동맹이 정작 필요할 때마다 단서를 붙인다는 불만이 꾸준히 제기된다. === 자격 정지의 근거 === 2001년 빌베른 자격 정지는 조약에 근거 조항이 없는 상태에서 이사회가 고안한 절차로 이루어졌다. 지지하는 쪽은 제9조가 이사회에 조약 이행에 관한 사항을 다룰 권한을 주었고, 제8조 위반 의혹이 있는 당사국을 기밀 체계에 남겨 둘 수 없었다고 본다. 비판하는 쪽은 결과를 문제 삼는다. 자격 정지로 빌베른은 제4조 협의를 요청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 상태에서 다른 회원국의 침공을 받았다. 근거가 된 정보의 신빙성마저 침공 이후 흔들리면서, 당사국 제외 합의는 동맹 안의 약소국을 동맹의 보호 밖으로 내모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선례로 남았다. 2004년 자격 정지 해제 이후 이 절차를 조약에 명문화하자는 제안과 아예 금지하자는 제안이 모두 나왔으나, 어느 쪽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 관련 문서 == * [[북랜드해 조약]] * [[해르샤바 조약기구]] * [[LSEC]] * [[1차 랜드 전쟁]] * [[2차 랜드 전쟁]] * [[오로아 조약]] * [[1.19 사건]] * [[빌베른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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