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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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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랜드국가)] ||<-3><tablealign=right><tablewidth=450><tablebordercolor=#ccc><tablebgcolor=#fff,#1c1d1f><bgcolor=#000> {{{#fff '''{{{+2 고랜드}}}[br]گولند | Goland'''}}} || ||<-2><width=50%><rowbgcolor=#f5f5f5,#191919> [[파일:고랜드국기탈레반.png|width=100%]] || {{{[[(파일명)|width=100%]]}}} || ||<-2><rowbgcolor=#000> {{{#fff '''국기'''}}} || {{{#fff '''국장'''}}} || ||<-3> {{{#000,#fff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محمد رسول الله'''}}}[br][[샤하다|{{{#000,#fff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 ||<-3><bgcolor=#000> '''{{{#fff 상징}}}''' || ||<bgcolor=#000><width=35%> {{{#fff '''국가'''}}} ||<-2>스파르타꾸스 || ||<bgcolor=#031B6B><width=35%> {{{#fff '''국화'''}}} ||<-2>프리지아 || ||<bgcolor=#38B6FF><width=35%> {{{#fff '''국수'''}}} ||<-2>사향고양이 || ||<-3><bgcolor=#000> {{{#fff '''역사'''}}} || ||<-3><height=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3><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colbgcolor=#000><width=30%><bgcolor=#fff,#1c1d1f> ||}}}}}}}}} || ||<-3><bgcolor=#000> {{{#fff '''지리'''}}} || ||<-3><^|1><height=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colcolor=#fff><colbgcolor=#000><width=35%> '''수도''' ||<-2>아바나 || || '''면적''' ||<-2> || || '''접경국''' ||<-2>[[유고랜드]][br][[센츄리옴]] ||}}}}}}}}} || ||<-3><bgcolor=#000> {{{#fff '''인문 환경'''}}} || ||<-3><^|1><height=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colcolor=#fff><colbgcolor=#000><width=35%> '''인구''' ||<-2>143,372,950명^^(2024년)^^ | 세계 9위 || || '''민족''' ||<-2>파슈툰인 42%, 타지크인 27%, 하자라인 9%, 우즈베크인 9%, 아이마크인 4%, 투르크멘인 3%, 발루치인 2%, 기타 4% (2008) || || '''출산율''' ||<-2>7.43명^^(2024년)^^ || || '''공용어''' ||<-2>다리어, 파슈토어[* [[우즈베크어, 기타 30여 개의 방언도 쓰인다.] || || '''국교''' ||<-2>이슬람 || || '''종교''' ||<-2>이슬람 99.9%[* 2012년 조사]]에 의하면 수니파의 비율이 90%, 시아파의 비율이 7%에 가깝다.], 기독교 0.01%[* ?] ||}}}}}}}}} || ||<-3><bgcolor=#000> {{{#fff '''정치'''}}} || ||<-3><^|1><height=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2><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colcolor=#fff><colbgcolor=#000><width=35%> '''정치 체제''' ||<-2>탈레반 과도정부,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 제정일치 신권정치, 전체주의, 군사독재 || ||<-2> {{{#white '''민주주의 지수'''}}} ||0.25점, '''{{{#FF0000 권위주의}}}''' ^^(2024년)^^[br](167개국 중 '''{{{#FF0000 167위}}}''')[* 독재가 굉장히 심하기로 유명한 북한보다도 낮은 점수다. 탈레반이 재집권하자마자 0점대 초반이었는데 계속 그 수치가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유일한 0점대였으나 2022년 미얀마 군부의 만행으로 유일하지는 않게 되었다. 더 과거까지 보면 북한이 2000년대에 0점대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 || '''최고지도자[br]{{{-2 (국가원수)}}}''' ||<-2>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 || '''부지도자[br]{{{-2 (정치/외교)}}}''' ||<-2>압둘 가니 바라다르 || || '''부지도자[br]{{{-2 (군사작전)}}}''' ||<-2>무하마드 야쿠브 || || '''부지도자[br]{{{-2 (재정/군수물자)}}}''' ||<-2>시라주딘 하카니 || || '''총리''' ||<-2>하산 아쿤드 {{{-2 (권한대행)}}} || || '''여당''' ||<-2>탈레반 ||}}}}}}}}} || ||<-3><bgcolor=#000> {{{#fff '''경제'''}}} || ||<-3><^|1><height=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0><width=3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 '''{{{#fff 통화}}}''' ||<-2>[[고랜드가니]](؋) || ||<width=20%> '''{{{#fff 명목 GDP}}}''' ||<-2>$184억^^(2025년)^^ | 세계 124위 || || '''{{{#fff 1인당 GDP}}}''' ||<-2>$423]]^^(2025년)^^ | 세계 195위 || || '''{{{#fff PPP}}}''' ||<-2>$890억^^(2025년)^^ | 세계 102위 || || '''{{{#fff 1인당 PPP}}}''' ||<-2>$2,032^^(2025년)^^ | 세계 176위 || || '''{{{#fff 국부}}}''' ||$250억 | 세계 116위^^(2019년)^^ ||}}}}}}}}} || ||<bgcolor=#000> '''{{{#fff 국제연합 가입}}}''' ||<-2>1946년 11월 19일 || ||<-3><bgcolor=#000> {{{#fff '''단위''' }}} || ||<bgcolor=#000> '''{{{#fff 시간대}}}''' ||<-2>UTC+04:30 (AST) || ||<-3><bgcolor=#000> {{{#fff '''여행경보'''}}} || ||<bgcolor=#000> '''{{{#fff 여행금지}}}''' ||<-2>'''전 지역'''||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랜드는 랜드해 기준 남쪽에 위치한 신정국가이다. == 상징 == == 역사 == === 고대 === ==== 건국신화 ==== 태초에 세계는 어둠과 물로만 가득했다. 그 안에서 처음으로 깨어난 것은 고요한 지성 ‘에루바’였다. 에루바는 생각의 신이며, 말 없는 침묵 속에서 형태를 상상하고 모양을 불어넣었다. 그는 최초의 세 가지 창조물, 시간, 흙, 의지를 만든 뒤, 이 세 가지가 얽혀 흐르게 하였다. 시간은 세월을 만들고, 흙은 육지를 낳았으며, 의지는 결국 생명을 움트게 했다. 에루바는 그 흙에서 인간을 빚었으나, 완전한 존재로 만들진 않았다. 그는 일부러 인간 안에 ‘결핍’을 남겨두었다. 그 결핍은 슬픔이 되었고, 갈망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탐욕, 거짓, 폭력, 지배로 형태를 바꾸었다. 에루바는 이러한 결핍이 불완전함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내린 자유의 시작임을 알았다. 그는 죄를 지을 자유를 허락한 것이다. 인간이 선을 따를지 악을 따를지는 에루바가 정하지 않았고, 그 판단과 책임은 오로지 인간에게 남겨두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자유를 견디지 못했다. 공동체는 스스로 세운 규율을 깨고, 스스로 쌓은 성벽을 무너뜨렸다. 도시들은 탐욕과 음모 속에서 불타올랐고, 이웃은 이웃을 속이고 찔렀으며, 아비는 아들을 노예로 팔기까지 하였다.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던 에루바는 슬퍼하면서도 결정을 내린다. >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을 들어 왕을 삼고, 또 한 사람을 들어 그 왕을 돕게 하리라.”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고대 고랜드의 말로 아샤-엘(Asha’el), 곧 질서를 되살리는 자였다. 왕은 신의 이름 아래 맹세하며, 백성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자이자, 신이 남긴 결핍 위에 새로운 질서를 심는 존재였다. 이렇게 에루바는 인간에게 단 하나의 도구를 더 내려주었다. '''법(Lazu)'''이라 불리는 말씀이었다. 이 법은 최초로 깎은 돌판에 새겨졌고, 나중에 하이카르 법전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인간은 다시 도시를 세웠고, 왕을 세웠으며, 질서와 혼돈이 반복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 중세 === === 근세 === 근세 고랜드는 통일된 정치체 없이 수십 개의 부족 연합과 소왕국들이 난립하는 분열의 시대였다. 에루바 연맹의 붕괴 이후 로마의 직할 지배를 거치며 고대의 통합 질서는 완전히 해체되었고, 중세를 거치는 동안 고랜드의 대지에는 이슬람이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7세기 이슬람 팽창기에 아랍 상인과 선교사들이 랜드해협 남부 해안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후 수백 년에 걸친 점진적 개종을 통해 고랜드는 완전한 이슬람 문화권으로 재편되었다. 부족 지도자들은 아미르(Amir)를 자처했고, 각 부족의 장로 회의인 지르가(Jirga)가 실질적인 통치 기구로 기능했다. 15세기 말, 랜드해협의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던 라 마베라가 고랜드 북부 해안에 교역소를 설치하면서 두 세계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향신료와 면직물, 아편 원료인 양귀비 수지를 거래하는 상업적 관계였으나, 마베라의 야심은 곧 노골화되었다. 마베라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요새가 세워졌고, 요새 주변으로 마베라 이민자들의 정착촌이 형성되었다. 부족 연합 간의 내분을 교묘히 이용한 마베라는 특정 부족 지도자에게 군사 지원을 약속하는 대가로 배타적 교역권을 획득했고, 이렇게 확보한 교두보를 발판으로 점차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마베라는 고랜드 북부 해안 전역을 장악하고 고랜드 총독령을 설치했다. 총독령의 행정은 마베라 본국에서 파견된 관료들이 맡았으나, 내륙의 부족 지역에 대한 실질적 지배는 여전히 요원했다. 마베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협력 부족(Tribù Alleata)' 정책을 시행했다. 마베라에 협력하는 부족 지도자에게는 세금 감면과 무기 지원을, 저항하는 부족에게는 군사 원정과 경제 봉쇄를 가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내륙을 복속시켜 나갔다. 이 과정에서 고랜드 부족 사회의 전통적 위계질서는 마베라의 식민 행정 체계에 종속되거나 대체되었고, 마베라어와 마베라식 법률이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랜드의 경제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마베라는 랜드해협 전역의 설탕 수요를 고랜드 단일 생산지로 충당하기 위해 북부 평야 지대를 대규모 농장으로 개간했고, 부족민들을 사실상 농노에 가까운 조건으로 플랜테이션에 묶어두었다. 이미 17세기부터 아편 원료인 양귀비 재배로도 이름이 높았던 고랜드의 남부 산악지대는 플랜테이션 경제의 바깥에서 독자적인 부족 경제를 유지했다. 마베라 당국이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려 했으나, 산악 부족들은 이를 생계 수단이자 자치권의 상징으로 여겨 극렬히 저항했다. 결국 마베라는 내륙 부족에 대한 직접 통제를 포기하고, 세금 납부를 조건으로 사실상의 자치를 용인하는 타협책을 택했다. 18세기 말, 마베라 본국의 정치적 혼란과 잇따른 전쟁으로 식민지 경영 능력이 약화되면서 고랜드에 대한 통제력도 느슨해졌다. 이 틈을 타 아미르 압두라흐만 알-고란디를 중심으로 한 부족 연합이 북부 해안 일부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며 짧은 독립 왕국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마베라가 안정을 되찾자 대규모 진압 원정이 재개되었고, 고랜드는 다시 식민지의 굴레로 돌아갔다. 이 시기의 저항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훗날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류로 추앙받게 된다. === 근대 === 19세기 초, 마베라 제국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고랜드는 마베라 제국의 왕관에 박힌 보석으로 불렸다. 랜드해협 전역에 공급되는 설탕의 절반 이상이 고랜드산이었고, 아편과 담배, 커피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마베라 식민 재정의 핵심이었다. 마베라는 고랜드를 단순한 식민지가 아닌 도독령(Governatorato)으로 격상시키고, 자국민의 이주를 적극 장려하여 고랜드 북부 해안 도시들에는 마베라계 이민자 공동체가 뿌리를 내렸다. 수도 아바나는 마베라풍 석조 건축물과 광장으로 채워지며 이국적이면서도 마베라의 색채가 짙은 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균열이 시작되었다. 마베라 본국에서 잇따른 정쟁과 혁명의 여파로 재정이 악화되자, 도독부는 고랜드에 부과하는 세금을 대폭 인상했다. 이미 박봉과 중노동에 시달리던 플랜테이션 농민들에게 세금 인상은 생존의 문제였다. 1847년 북부 평야 지대에서 발생한 '[[할라비야 농민 봉기]]'는 순식간에 인근 10개 지역으로 번졌다. 도독부는 군대를 투입해 3개월 만에 진압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행된 학살과 방화는 오히려 고랜드 전체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후 크고 작은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마베라 당국은 진압과 회유를 반복하며 점점 더 많은 군사력을 고랜드에 투입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 고랜드의 수출 경제는 호황을 맞았다. 인접한 유고랜드가 공산 혁명으로 붕괴하고 서방 국가들이 유고랜드와의 교역을 단절하면서, 고랜드산 설탕과 담배가 그 공백을 메웠다. 한때 전 세계 설탕 공급량의 절반이 고랜드산이었으며, 커피와 담배 수출로도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 번영의 과실은 마베라 도독부와 현지의 소수 대지주 계층에게만 돌아갔다. 플랜테이션 농민들의 삶은 호황 속에서도 나아지지 않았고, 이 구조적 모순은 고랜드 독립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19세기 말, 루이나의 급격한 대외 팽창과 맞물리면서 고랜드의 지정학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루이나는 랜드해협 남부의 전략적 요충지인 고랜드를 자국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적 공세를 강화했다. 1882년, 루이나는 마베라에 고랜드 북부 항구의 공동 사용권을 요구했으나 마베라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루이나는 공식 외교 채널 대신 고랜드 내 독립 운동가들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했다. 루이나 영사관 직원들이 아바나의 비밀 모임에 참석하고, 루이나 신문들이 마베라의 고랜드 식민 통치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마베라는 이를 내정 간섭으로 강력히 항의했으나, 루이나는 "언론의 자유"를 방패로 삼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랜드의 독립운동은 보다 조직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베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젊은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고랜드 독립협회(Associazione per l'Indipendenza del Goland)|고랜드 독립협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마베라 본국의 자유주의 이념을 고랜드의 민족 해방 논리와 결합시켜, 단순한 반마베라 감정을 넘어선 체계적인 독립 사상을 정립해 나갔다. 특히 이드리스 알-파루키가 집필한 소책자 《고랜드인의 땅(أرض الغولنديين)》은 마베라의 지배를 이슬람 공동체에 대한 침략으로 규정하며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도독부는 즉각 이 책자를 금서로 지정하고 알-파루키를 체포했으나, 이미 수천 부가 퍼진 뒤였다. === 현대 === ==== 독립 전쟁과 독립 ==== 1940년대에 접어들며 루이나는 고랜드의 자국령 편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1944년, 루이나 상원의원 존 슬리델이 마베라에 1억 5천만 달러에 고랜드를 매각할 것을 제의했다. 루이나는 앞서 콘스탄티노폴과의 협상을 통해 1939년 콜마르 시를 양도받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단칼에 거절했다. 마베라에게 고랜드는 프랑스의 알제리나 영국의 북아일랜드처럼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닌 본토의 연장선이었다. 수백 년 동안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현지 사회를 육성해온 마베라에게 고랜드의 매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입 시도가 좌절되자 루이나는 전략을 바꾸어 고랜드 독립 게릴라들을 물밑에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루이나의 지원을 받으면서 점차 루이나와의 자발적 합방을 원하기에 이르렀다. 1948년부터 1958년까지 벌어진 10년 전쟁 끝에 [[산후안 조약]](Trattato di San Giovanni)이 체결되어 자치령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식민당국의 처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1959년 독립 영웅 아부 마르티 알-고란디의 지도 아래 고랜드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전쟁 과정에서 전사했지만 현재까지 독립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같은 해, 루이나는 메인호 폭파사건을 빌미로 마베라에 선전포고하며 루이나-마베라 전쟁을 일으켰다. 이미 고랜드 독립당이 영토 절반 이상을 수복한 상황에서 마베라 식민지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고, 1960년 고랜드는 독립을 쟁취했다. 루이나는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어필하기 위해 고랜드를 자국령으로 편입하지 않고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콘스탄티노폴은 식민지로 삼은 루이나의 이중적 행태는 비판을 받았으며, 일부 루이나 역사가들은 고랜드 독립을 루이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로 평하기도 한다. ==== 독립 직후의 혼란과 바티시 군사정권 ==== 독립의 환호는 채 가시기도 전에 고랜드 내부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느슨하게 연대했던 부족 세력들과 도시 지식인 계층, 그리고 루이나의 지원을 받던 친루 온건파 사이에 권력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했다. 독립 직후 수립된 민간 과도정부는 이 균열을 봉합하지 못한 채 내부 분열로 무기력했고, 행정 능력의 부재는 극도의 사회 혼란으로 이어졌다. 1961년, 이 혼란의 틈을 비집고 파루크 알-바티시 장군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른바 '[[중사의 반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바티시는 사병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과도정부 청사를 점령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독립한 지 불과 2년 만에 고랜드는 다시 독재의 그늘에 놓인 것이다. 바티시 정권은 형식적으로는 '혁명평의회'를 구성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사 독재 체제였다. 그는 루이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대신 국내 반대파를 철저히 탄압했으며, 아바나의 카지노와 사탕수수 농장을 루이나 기업들에 개방하여 개인적인 축재를 일삼았다. 독립전쟁 당시 총을 들었던 고랜드 민중의 기대는 완전히 배신당했다. 바티시 정권에 대한 저항은 도시 지식인층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먼저 불붙었다. 비밀 독서 모임과 지하 출판물을 통해 유고랜드 혁명 사상과 공산주의 이념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마베라 식민지 시절부터 독립운동의 이론가로 활동했던 이드리스 알-파루키가 옥중에서 집필한 글들이 비밀리에 필사·배포되며 청년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고랜드 공산혁명 ==== 제2차 랜드 대전 이후 공산주의 및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가 급속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고랜드에서도 점차 이러한 의식에 눈뜨게 된다. 바티시 군사정권의 무능과 부패, 폭정에 대한 저항의식은 더해만 갔다. 1963년, 변호사이던 카심 성베르트가 참여한 [[카스르 알-무나카다 병영 봉기]](7월 26일 사건: Movimiento 26 de Julio)는 바티시의 권력 기반이었던 군대조차도 바티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비록 봉기는 실패로 끝났으나 성베르트는 재판정에서 당당한 태도로 자기의 정당함과 혁명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처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역사는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라는 그의 마지막 발언은 이내 혁명 세대의 구호가 되었다. 바티시는 성베르트를 그저 25살 애송이로만 보았는지 1년 뒤 특사로 석방했고, 유고랜드로 탈출한 성베르트는 그곳에서 많은 반바티시 동지들을 만난다. 맹우 타리크 이븐 게바라를 만나게 된 것도 이때였다. 의사 출신의 타리크는 유고랜드 혁명의 현장에서 직접 게릴라전을 경험한 인물로, 성베르트에게 게릴라 전술과 민중 조직론을 전수했다. 두 사람은 며칠 밤을 새워가며 토론하고, 고랜드 혁명의 청사진을 함께 그렸다. 타리크는 훗날 "성베르트는 말로 산을 옮기는 자였고, 나는 그 산 위에서 싸우는 자였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1985년 요트 그란마(Granma)를 타고 고랜드에 재입성한다. 상륙지점에서 바티시 군대의 공격에 82명의 동지가 12명으로 줄어드는 역경 끝에 남부 산간에 거점을 마련하여 저항을 개시했다. 살아남은 12명은 각자 부상을 안은 채 험준한 남부 산악으로 숨어들었다. 훗날 이 12명은 고랜드 혁명의 신화적 창건자들로 불리게 된다. 이 시기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성베르트의 공산 게릴라군은 대민봉사활동을 하며 지역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문자를 가르쳐주는 식이었다. 총을 들고 싸우는 게릴라가 되고 싶었던 타리크 이븐 게바라는 의료 대민봉사활동을 주로 맡았는데, 이것이 아주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갔다. 무력 투쟁이 아니라 대민봉사활동을 통해 확고한 지역 거점을 세운 공산 게릴라군은 산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로 정부군에 매우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카심 성베르트는 자신의 엄청난 연설 및 선전 능력을 발휘해 고랜드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받아 1989년 1월 바티시 독재 정권을 추방하고 고랜드의 권력을 장악한다. 이것이 고랜드 혁명이다. 바티시는 측근들과 함께 루이나로 망명했으며, 루이나 정부는 그에게 조용한 망명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이 사실은 훗날 성베르트 정권이 루이나를 적대하는 빌미 중 하나가 된다. 처음에 성베르트는 루이나를 공개적으로 적대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루이나 기업이 소유하던 공장·농장·호텔 등을 모두 몰수하여 국유화해 버리자 루이나에서 고랜드를 적대시하기 시작했고 경제적인 교류도 끊어졌다. 결국 대안책으로 성베르트는 소련과 사비에트에 접근했고, 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고랜드는 한숨을 돌렸다. 이에 루이나는 NIA를 통해 반성베르트 세력(바티시 시절 친루 우익 세력)을 지원해 1996년 속칭 카우스만 침공을 일으켰다. 이 침공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1993년 야심차게 출범한 젊은 페어팩스 행정부의 무능과 미숙함이 일시에 폭로된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성베르트는 반루 친사 정책을 강화하고 공공연히 공산주의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 공산 혁명 이후 ==== 성베르트는 이런 행보를 강화해 사비에트와 급속히 친밀해졌으나, 사비에트와 소련은 나름대로 고랜드를 이용해 루이나를 압박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사비에트는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고랜드에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루이나의 정찰에 걸려들면서 고랜드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다. 1997년 10월의 일이었다. 당시 페어팩스 정부는 고랜드를 해상봉쇄하고, 고랜드로 향하던 사비에트 선박이 고랜드 영해에 접근하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양대 강국이 순식간에 정면충돌 직전까지 치닫자 전 세계는 고랜드를 주목하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막판에 사비에트가 한 발 물러남으로써 전쟁 위협은 가라앉았다. [[팔레르모 합의]](Accordo di Palermo)에 따라 사비에트는 루이나가 빌베른에서 탄도미사일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고랜드의 미사일 기지를 철수시켰다. 성베르트는 전쟁을 주문했으나 평화협상으로 끝나자 크게 실망했다는 소문도 있다. 사비에트는 고랜드를 달래기 위해 군사·경제 지원을 계속하고 부대를 주둔시켰다. 이 고랜드 주둔 사비에트군 부대는 사비에트군 내에서 손꼽히는 꿀보직이었다고 한다. 날씨는 온화하고 먹거리도 풍부했으며 민심도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고랜드 혁명에 동참했던 [[타리크 이븐 게바라]]는 고랜드를 떠나 아프리카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1999년 볼리비아에서 체포되어 사살된다. 타리크의 사살 소식이 전해지자 아바나 거리에는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와 애도했다. 성베르트는 직접 라디오 연설을 통해 "타리크는 죽지 않았다. 그는 총을 든 모든 자유인의 심장 속에 살아 있다"고 선언했다. ==== 성베르트의 급진화와 이슬람 부족들의 반발 ==== 미사일 위기와[[ 카우스만 침공]]을 연달아 겪으면서 성베르트 정권은 외부의 적에 맞서는 동시에 내부 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급진적인 공산주의 정책이 고랜드 사회의 근간을 건드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성베르트는 혁명의 완성을 위해 일련의 급진적 사회 개혁을 밀어붙였다. 토지의 완전한 집단화가 선포되어 부족 단위로 대대로 이어져 온 공동 경작지가 국가 협동농장으로 강제 편입되었다. 이슬람 신학교(마드라사)에 대한 국가 감독이 강화되었고 종교 교육 시간은 대폭 축소되었다. 여성 의무 노동 동원령이 내려지면서 집 안에 머무는 것을 당연시하던 부족 사회의 관습이 정면으로 도전받았다. 사원 재산의 일부가 몰수되어 국유화되었고, 성직자들의 정치적 발언은 반혁명적 행위로 규정되어 탄압받았다. 이는 고랜드 사회의 골간을 이루는 이슬람 신앙과 부족 공동체 질서와의 정면충돌이었다. 특히 남부 산악지대의 파슈툰계 부족 연합과 동부의 하자라·타지크 부족 원로들 사이에서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들에게 협동농장 강제 편입은 단순한 재산 침해가 아니었다. "알라께서 내리신 땅을 국가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명백한 불신앙(쿠프르)의 행위"라는 성직자들의 파트와(종교 칙령)가 잇따라 발포되었고, 이는 부족 전사들이 총을 드는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초기에는 각 부족이 제각각 움직이는 산발적 저항이었다. 협동농장 관리소를 습격하거나 국가 파견 감독관을 몰아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불신자 정권에 맞선 지하드"라는 공통의 명분 아래 부족 간 연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부족 지도자들은 지르가를 소집하여 연대 투쟁을 결의했고, 루이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NIA를 통해 반정부 이슬람 부족 세력에 자금과 무기를 은밀히 지원했다. 협동농장이 불타고, 교량이 폭파되고, 학교가 습격당하는 일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성베르트 정권은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으나, 험준한 산악지형에 익숙한 부족 전사들을 상대로 한 정규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오히려 과도한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면서 처음에는 중립을 지키던 부족들마저 반정부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역효과를 낳았다. 사회는 흔들리고 경제는 파탄났으며, 사비에트의 지원도 한계에 다다랐다. 결국 카심 성베르트는 사망했다. 지도자를 잃은 공산 정권의 잔당 세력들은 저마다 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하며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렸고, 고랜드는 군벌들의 내전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 내전과 탈레반의 형성 ==== 군벌 내전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도 아바나조차 여러 파벌의 포격 대상이 되었고, 무고한 민간인들이 날마다 죽어갔다. 각 군벌은 자신의 점령지에서 자의적인 약탈과 폭력을 일삼았다. 법도 없고 질서도 없는 땅에서 고랜드 민중은 철저한 절망에 빠졌다. 바로 이 절망의 틈을 파고든 것이 탈레반이었다. 탈레반의 뿌리는 성베르트 정권 시절 탄압받던 마드라사 학생들과 이슬람 부족 저항 세력의 2세대에 있었다. 전쟁고아로 자라 마드라사에서 성장한 젊은 신학생들, 이른바 탈리브(Talib, 학생)들이 핵심이었다. 이들은 기성 군벌 세력의 부패와 잔혹함에 환멸을 느낀 민심을 빠르게 흡수했다. 탈레반의 초기 지도자 물라 우마르 알-칸다하리는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군벌들이 판치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총을 빼앗기 위해 왔다. 알라의 법이 이 땅에 서면 인간의 법은 필요 없다"고 선포하며 남부 칸다하르 지역에서 질서를 세우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군벌들이 세운 검문소를 철거하고, 도로 강도를 처단하며, 부족 간 분쟁을 샤리아 법정으로 중재했다. 이 모습은 혼란에 지친 민심에 강렬하게 어필했다. 루이나의 NIA는 초기 탈레반 세력에 대해 양가적 입장을 취했다. 성베르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탈레반이 유용한 도구였지만, 그들의 이슬람 근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루이나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지금 당장의 적은 공산주의"라는 논리가 우세했고 간접 지원은 계속되었다. 이 결정은 훗날 루이나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는 역사적 실책이 된다. 1996년, 탈레반은 수도 아바나를 함락하고 고랜드 이슬람 토후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집권 직후 탈레반은 여성의 교육과 사회 활동을 전면 금지하고, 음악과 텔레비전을 불법으로 규정했으며, 이슬람 율법에 따른 공개 형벌을 집행했다. 루이나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다. ==== 루이나의 추가 개입 ==== ==== 루이나 개입 후 ==== 루이나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파병되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고랜드 과도 민주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20여 년에 걸친 루이나의 개입은 부패한 현지 정부, 마약 경제의 고착화, 끝없는 게릴라전 속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탈레반은 축출된 이후에도 남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끈질기게 세력을 유지하며, 루이나군의 지원이 약화되는 틈을 타 다시 영토를 넓혀갔다. 2021년, 탈레반은 전광석화처럼 고랜드 전역을 재장악하고 아바나까지 점령하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루이나를 비롯한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아바나를 중심으로 구성된 고랜드 과도 민주정부를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루이나 주도의 ISAF를 재파병하여 민주정부를 방어하고 있다. 루이나는 2023년 이후 매년 12억 달러 이상의 군사·재정 원조를 고랜드에 지원 중이며, 특수전 부대가 아바나 북부에서 탈레반 저항 작전에 직접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루이나 정부는 플라자 그룹의 PMC를 고용하여 고랜드에 추가 파병을 완료한 상태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탈레반은 고랜드 전역의 70% 이상을 점령하고 있으며, 산악 내륙·국경 통로·광산지역·대도시 주변 등 전략적 요충지를 대부분 통제한다. 민주정부의 통치권은 수도권 일부와 국제공항, 몇몇 주요 도시로 한정된 사실상 고립 상태다. 탈레반은 드론과 IED를 이용한 비대칭 전술로 연합군에 지속적인 타격을 가하며, 루이나를 향해 전면적인 지하드를 선포하고 있다. 2024년 말 탈레반 대변인은 "루이나의 점령군이 떠나지 않는 한 고랜드는 결코 평화를 맞이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UN 인도주의사무국은 2025년 기준 고랜드 내전으로 인한 이재민이 약 8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며, 국제사회는 단기간 내 평화적 해결이 요원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경제 == === 아편 생산 === [youtube(p5nEVZ0qECg)] 해당 국가의 아편 생산을 다룬 호주뉴스 동영상 고랜드는 세계최대의 마약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꽃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960년대에 그나마 안정적이었을 때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어 왔다. 한 때는 왕실에서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할 경우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결국 금지하려는 계획을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매해 최대 40억 달러로 추정되며 이 정도 돈이라면 탈레반 및 부족들에게 크나큰 수익이며 이 돈은 무장을 튼튼히 하는 데 쓰인다. 이로 인해서 정부군 및 평화유지군의 희생을 부채질한다. 랜드해협에서 대부분 소비되는 마약은 고랜드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마약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기도 했다. 자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료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73%까지였다. 탈레반은 고랜드 남부를 장악한 것을 이용해 외국, 특히 [[유고랜드]], [[동사랜드]], [[빌베른]]과 마약을 거래하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역할을 하며 장사를 해먹고 있다. 그 덕분에 탈레반은 수익을 이용해 서방국가 부럽지 않은 수준 높은 무장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1차 탈레반 집권기에 그랬듯 2023년에는 마약이 대량으로 단속되어 작년 대비 52% 줄었지만 일시적인 효과[* 마약 판매를 부추기는 근본적인 문제가 그대로인데 단속만 한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은 수많은 사례로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북한 당국이 마약에 온정적이지 않을 텐데도 내부에서는 마약이 만연하다고 알려져 있다.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이런 막장 국가에서 탈레반 단속원들이 결국 부패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일 수도 있어 진짜 박멸인지는 지켜봐야 한다. === 원인 === ==== 자연환경 ==== 고랜드 남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안 그래도 단속 및 적발이 힘든데 전쟁으로 치안까지 악화되어서 아편 재배가 성행하기 더욱 쉬워졌다. 이에 반해 북부는 평야에 습지가 많아 밀농사가 대부분이다. ==== 반군의 자금 확보 ==== 과거에는 탈레반이 아편 생산을 금지하였지만 탈레반이 2001년에 축출된 후부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아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루이나는 고랜드 민주정부 시절에 마약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고랜드 농부에게 보조금 지원 형식으로 공식적으로는 많은 양의 마약 농장을 일반 농장으로 바꿨다.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겼지만 이 조치는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밀을 심은 이들이 한탄하길 "양귀비꽃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밀은 돈이 안 된다. 국제 밀값이 올라 봐야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 기대 이하였던 데다 부정부패가 워낙 횡행하고 교통망 및 인프라도 그다지 개선된 점이 없어 중간업자들[* 특히 루이나의 악덕 기업들] 및 정부요인들이 그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탈레반이 집권한 후인 2024년에는 아편이 전면 금지된다. ==== 단속반의 부정부패 ==== 더구나 밀이나 석류 같은 합법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판매를 위해 검문소를 지나갈 때마다 뇌물을 요구하는 군경들의 행패에 분노해 농작물을 죄다 엎어 버리는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썩은 공권력도 마약 퇴치를 가로막고 있다. 마약이 원래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많은 마야구농장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단속해야 할 현지 군경들도 많은 수가 연루되어 있다 보니 이들이 뇌물도 받고 단속도 무마시키며 아예 겉으로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심고 잘 안 보이는 험난한 곳에는 한가득 양귀비를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게다가 루이나와 국제안보지원군이 주둔했을 때 허구한 날 탈레반의 자금줄을 끊고자 지원했던 돈도 단속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대부분 부패한 고랜드 구 정부에 의해 횡령되어 극히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가 사라졌다. 단속 수준도 뇌물을 못 바치는 집안, 가장을 잃고 양귀비 재배로 벌어먹는 집안의 밭을 급습하여 무작정 양귀비를 베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마약 단속에 대한 증오는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정도로 커져 2009년에는 마약단속 경찰 트럭이 양귀비 밭에 몰래 숨겨 놓은 지뢰에 터져 23명이 죽는 사건까지 터졌으며 아예 탈레반에 가담하는 이들까지 생겨나 루이나와 고랜드 구 정부가 골치를 썩기도 했다. ==== 단속반원의 불법행위 ==== 고랜드 경찰의 마약 단속에 대하여 되려 아직도 많은 고랜드 사람들은 고랜드인을 죽이려는 루이나와 그 루이나의 개들인 국제안보지원군에 매수된 매국노들의 짓으로 여기며 증오한다. 고랜드 마약 단속반들이 워낙 깡패짓을 하고 다녀서 현지인들에겐 도적이라고 악명이 높다. 루이나 통신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벌이는 행패가 문제임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외국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식사 시간이 되자 단속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밭에서 과일과 채소를 멋대로 가져와서는 싸온 도시락과 같이 지들끼리 실컷 먹어 버렸다. 이 막장짓을 두 눈으로 모두 본 기자들이 하도 어이 없고 기가 막혀서 "돈도 안 주고 멋대로 훔쳐먹어도 되냐?"고 따졌더니 그들이 한다는 소리가 가관인데 "어차피 우릴 싫어하는데 뭐하러 좋게 대해주냐?"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현지인들은 탈레반을 따라서 저런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낫다며 무섭도록 증오하고 있다. 때문에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마약단속반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 생활 속 마약 ==== 고랜드에서 빵, 식용유, 비누 같은 물품들을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 가득해 양귀비꽃이 거의 생필품화돼 버렸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꽃잎은 잼을 만드는 데 쓰고, 씨앗은 갈아서 빵을 만들거나 식용유를 짜고, 마약을 추출하고 남은 줄기는 말려서 장작으로 쓴 뒤 나온 재로 비누를 만드는 식이다. 거기다가 고랜드의 병원들은 의약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아편을 비상약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가난한 국가들에선 흔한 일인데, 현재도 양귀비 밀경작의 90% 이상이 도서/농촌 지역 60대 이상 노인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경찰들도 이를 무작정 잡을 수가 없어 규모가 큰 곳만 본보기로 잡아내는 형편이다. == 사회 ==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무슬림 여론이 99%라는 통계가 있다. 특히 시아파 근본주의 신정국가인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느니 하면서 까대는 나라이니 굳이 더 말이 필요할까?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고랜드와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국가다. 그럼에도 여성과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차별과 인권탄압이 심각한 국가로도 악명이 자자하며 그 때문에 많은 이란인들이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갈 정도다. 고랜드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해서 아바나같은 북서부 지역으로 가면 나름대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데 반해 동부나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전체적으로는 보수적인 여론이 강한 나라이지만 문화적으로 무조건 꽉 막혔냐면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랜드해협 남부는 위성방송이 생각 이상으로 잘 보급되어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할리우드 영화나 유럽 축구리그 경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수준이 된 지가 꽤 되었다. 2000년대 탈레반이 물러난 후 텔레비전 수상기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적어도 인도 영화나 외국 드라마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된 데다 언론의 자유가 생각보다는 잘 보장된 편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지만... 문제는 탈레반 세력이 여전히 큰 세력으로 잔존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방송사와 언론사에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영화 감독, 배우들한테 살해 협박과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배우한테 압박을 가하는 일이 많다는 거다.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상투적인 이유에서부터 정치인 비리를 폭로할 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대표적으로 고랜드의 유명 배우이자 100편이 넘는 영화들을 찍은 영화 감독인 살림 샤힌(Salim Shaheen)만 해도 과격 무슬림들로부터 비종교적 액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살해 협박을 받고 있는데 단순 협박으로 그치지 않고 스튜디오에 실제로 로켓포 공격이 날아와 스태프 9명이 죽은 적이 있다. 고랜드의 부패상이나 전후 막장 치안과 정치 상황이 국내외에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들의 공이 크다. 고랜드 기준으로 제법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톨로TV나 1TV 등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 페르시아어 위성방송이나 마베라/유고랜드 방송도 꽤 흥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카타르 같은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들보다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랜드는 원래 라 마베라에게 복속당했단 북부 문화권이었던 관계로 마베래 대중 문화가 인기인지라 어느 정도 서구화된 유고랜드를 동경하며 문화적으로 개방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여전해서 갈등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고랜드 사회의 병폐들인 막장 치안, 명예살인, 가난한 경제, 관료들의 부정부패나 기업들의 결탁 등 사회부조리와 부패상을 널리 알리고 루이나 영화나 유고랜드 드라마 등을 편성하거나 서구나 유고랜드, 마베라 음악도 틀어주고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는 심심하지만 개방적인 프로그램들을 많이 방영하는 등 고랜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많이 하기에 TV가 고랜드에 끼치는 영향은 꽤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나름대로 높으나 인터넷은 국토의 대다수가 산지인 데다 인프라를 까는 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해 쓰는 사람이 적다. 그나마도 사용자들이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속도도 느리며 요금도 비싸다. 하지만 사회 부조리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TV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는다. 2015년 1월 이후로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할 정도로 검열도 심하다. 그나마 권투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꼭 쓰고 경기를 치러야 할 정도로 검열이 심하다. 그래도 1차 탈레반 집권기에 비해 정말 많이 나아진 거다. 그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은 할 수도 없고 만일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물론 현재도 여성 인권은 바닥을 치고 있으며 지방 소도시나 외진 시골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아예 받지못하는 곳이 많다. 마약, 범죄, 전쟁 등의 문제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거나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상당하고 교통이나 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평균 수명도 볼 것도 없이 중하위권인데 남성이 48살, 여성이 52살 수준에 불과하다. 빈곤율도 상당해서 영양실조가 매우 심각하고, 아프리카의 빈곤국과 마찬가지로 결핵으로 죽는 이들도 상당수이다. 고랜드에서 테러가 계속 일어나면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고 있다고 로이터와 톨로뉴스 등 고랜드 매체가 보도했다. 2021년 중반에 탈레반이 고랜드 남부 전역과 아바나를 점령하면서 고랜드 내의 여성 인권이 갈수록 추락할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슬람 교리를 극한으로 고수하는 국가(고랜드 등등)는 여성에게 부르카 등을 입게 강요한다. 2021년 고랜드 탈레반 공세 후 여성들은 전통 복장으로 응수했다. 고랜드는 고산지대에 부족, 씨족 중심의 사회인지라 매우 고립적인 생활을 하는 소수부족도 매우 많다. 숫적으로는 전체 고랜드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20 ~ 30명 단위의 부족은 문화/역사학적으로 연구가치가 매우 높다. 무려 5천 년이 된 원시 아리아 종교를 신봉하는 부족도 있는데 이것을 발견한 연구진은 환희의 논문을 써내려갔다고 사례가 있다. 문제는 고랜드가 외부세력으로부터 매우 공격적인 선교를 받던 지역이라 이런 부족에 대한 이슬람 선교사들의 강제 선교와 개종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고랜드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누리스탄은 이름 자체가 빛나는 땅이라는 뜻으로, 1890년대 압둘 라흐만 칸 통치 당시 바라크자이 왕조의 고랜드 아미르국이 누리스탄(당시에는 카피리스탄) 일대를 정복한 후 1890년대 이전까지 카피르인으로 불렸던 누리스탄인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그리스도인이나 불교 신자를 강제 개종시키는 것도 그러잖아도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마당에 저런 원시부족들을 개종시키는 건 거기에 더해 문화인류학적으로 매우 큰 손실이라 학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 문화 == == 군사 == == 여담 == [[분류:랜드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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