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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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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루이나]][[분류:루이나의 노동운동]][[분류:루이나의 노동조합]][[분류:루이나의 교육]] ||<-2><tablealign=right><tablewidth=470><tablebordercolor=#2E6B4F><bgcolor=#2E6B4F> {{{#F2EFE2 '''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br]{{{#F2EFE2 Ruina Teachers' Union|Профсоюз работников образования Руины}}} || ||<-2> {{{#!wiki style="margin:-5px -9px" [[파일:(단체) rtulogo.png|width=100%]]}}} || ||<width=28%><bgcolor=#2E6B4F> {{{#F2EFE2 '''정식 명칭'''}}} ||Ruina Teachers' Union[br]Профсоюз работников образования Руины[br]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 || ||<bgcolor=#2E6B4F> {{{#F2EFE2 '''약칭'''}}} ||RTU, 교조 || ||<bgcolor=#2E6B4F> {{{#F2EFE2 '''국가'''}}} ||[[루이나]] || ||<bgcolor=#2E6B4F> {{{#F2EFE2 '''창설일'''}}} ||1989년 5월 20일 || ||<bgcolor=#2E6B4F> {{{#F2EFE2 '''전신'''}}} ||전국교사협의회 || ||<bgcolor=#2E6B4F> {{{#F2EFE2 '''본부'''}}} ||[[벨포르|벨포르 특별시]] 린드홀름가 27번지 || ||<bgcolor=#2E6B4F> {{{#F2EFE2 '''성격'''}}} ||교원 산업별 노동조합 || ||<bgcolor=#2E6B4F> {{{#F2EFE2 '''지도부'''}}} ||'''위원장''' 노라 B. 킬브라이드 (2025년~)[br]'''사무처장''' 오언 R. 매캐스킬 (2025년~) || ||<bgcolor=#2E6B4F> {{{#F2EFE2 '''조합원'''}}} ||<-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dth=35%> '''1989년''' ||2만 4천 명 (창설) || || '''1990년''' ||9천 명 (파면 직후) || || '''1999년''' ||8만 6천 명 (합법화) || || '''2008년''' ||23만 명 (최대) || || '''2025년''' ||약 19만 명 ||}}} || ||<bgcolor=#2E6B4F> {{{#F2EFE2 '''법적 지위'''}}} ||1989~1999년 법외 조직[br]1999년 합법화 || ||<bgcolor=#2E6B4F> {{{#F2EFE2 '''상급 단체'''}}}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 ||<bgcolor=#2E6B4F> {{{#F2EFE2 '''기관지'''}}} ||《교단》 (월간, 1990년~) || ||<bgcolor=#2E6B4F> {{{#F2EFE2 '''관련 조직'''}}} ||[[루이나 교원연맹]] (경쟁 조합) || [목차] [clearfix] == 개요 == 루이나 교직원노동조합(Ruina Teachers' Union, RTU)은 1989년 창설된 [[루이나]]의 교원 노동조합이다. 통칭 교조라 불리며, 조합원 약 19만 명으로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조합 가운데 세 번째로 크다. 초·중·고 교사와 학교 비교과 인력을 조합원으로 받되 교장과 교감은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리직을 포함하는 [[루이나 교원연맹]]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창설 당시 교원의 단결권이 법으로 인정되지 않아 발기인 전원이 파면되었고, 이후 10년간 법외 조직으로 활동하다 1999년에야 합법화되었다. 합법화 이후에도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은 그대로 유지되어, 조합은 이 조항의 위헌성을 계속 다투고 있다. == 역사 == === 전사 === 1978년 군정 수립 이후 학교는 강도 높은 통제 아래 놓였다. 교육부 소속 [[학교 보안국]]이 교내 사상 동향 점검을 맡아 교사의 수업 내용과 사적 발언까지 보고 대상이 되었고, 교련과 정훈 과목이 필수로 편성되었다. 1980년 헌정 회복 이후에도 이 체제는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1980년대 중반 교사들은 학급당 인원, 잡무 부담, 사학 재단의 인사 전횡, 촌지 관행 같은 현장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1987년 4월 전국교사협의회가 결성되어 교육 여건 개선을 요구했으나, 협의회는 법적으로 친목단체였고 교섭권이 없었다. 1.10 민주화 선언 이후 협의회 내부에서 노동조합 전환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 창설과 대량 파면 === 1989년 5월 20일 창립대회가 예정되어 있던 [[벨포르]] 국립대 강당은 당일 아침 경찰에 봉쇄되었다. 대의원들은 인근 성 니콜라이 정교회 성당으로 이동해 대회를 열었고, 성당 측이 이를 허용하면서 사제 두 명이 징계를 요구받는 일이 있었다. 대회는 창립을 선언하고 초대 위원장으로 벨포르 제7고등학교 교사 대니얼 W. 페어허스트를 선출했다. 정부는 교원에게 단결권이 없다는 이유로 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탈퇴하지 않는 조합원을 전원 징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1989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파면·해임된 교사는 1,527명에 달했다. 창설 당시 2만 4천 명이던 조합원은 대량 징계와 탈퇴 각서 요구를 거치며 1990년 9천 명 수준으로 줄었다. 사학의 경우 재단이 자체적으로 해임을 단행해 복직 경로가 더 좁았다. === 법외 시기 === 1990년대 내내 조합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었다. 조합비는 개인 계좌로 모았고, 지부 사무실은 학부모 단체나 종교시설이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이 시기 조합의 주된 활동은 해직 교사 생계 지원, 학교 운영 실태 조사, 그리고 여름마다 열린 '바른교육 실천대회'였다. 실천대회는 교사들이 직접 만든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 행사로 시작해, 나중에는 조합의 대표 사업이 되었다. 1993년 정부는 해직 교사의 복직을 허용했다. 다만 원직 복직이 아니라 신규 특별채용 형식이었고, 조합 탈퇴가 조건이었다. 복직 대상자 1,300여 명 중 약 400명이 이를 거부했다. 1997년 [[루이나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총파업 당시 조합은 파업 대신 연가 투쟁 형태로 참여했다. 이듬해 총연맹이 합법화되면서 교원 단결권 문제도 함께 논의되었고, 1999년 3월 교원노조법이 제정되어 조합은 창설 10년 만에 합법 조직이 되었다. 다만 이 법은 교원의 정치활동과 쟁의행위를 금지했으며, 이 두 조항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합법화 이후 === 합법화 직후 조합원은 8만 6천 명으로 급증했고, 2008년에는 23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 시기 조합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체벌 금지, 학교급식의 전면 무상화를 주요 요구로 내걸었다. 특히 급식 문제에서는 [[루이나 교원연맹]]과 학부모 단체까지 같은 편에 서면서 성과를 냈고, 무상급식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조합의 실태 조사 자료가 근거로 활용되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교원평가 제도를 둘러싸고 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조합은 평가 결과의 인사 연계에 반대했으나 제도 도입 자체는 막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 이탈이 발생했다. 2013년 정부는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조합의 설립신고를 취소하고 법외 조직으로 통보했다. 조합은 7년간 소송을 이어 갔고, 2020년 [[루이나 대법원]]이 통보 처분을 위법으로 판단하면서 법적 지위를 회복했다. === 현재 === 2010년대 중반 이후 조합원은 완만하게 감소하고 있다. 교사 신규 채용 규모 축소와 젊은 교사의 조합 기피가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조합의 현안은 교권 침해 대응, 기간제 교사와 강사의 처우, 그리고 학교 업무의 행정 부담 경감이다. 2015년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이후에는 참사 희생자 가운데 학생과 인솔 교사가 포함되어 있어, 조합이 진상규명 요구에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 관련 인물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2E6B4F><width=25%><bgcolor=#2E6B4F> {{{#F2EFE2 '''인물'''}}} ||<width=25%><bgcolor=#2E6B4F> {{{#F2EFE2 '''재임'''}}} ||<bgcolor=#2E6B4F> {{{#F2EFE2 '''비고'''}}} || ||대니얼 W. 페어허스트 ||1989~1992년 ||초대 위원장, 파면·구속 || ||이디스 M. 랭턴 ||1993~1996년 ||해직교사 복직 협상 || ||브라이언 T. 오코널 ||1997~2000년 ||합법화 당시 위원장 || ||헬레나 D. 서턴 ||2013~2016년 ||법외노조 통보 대응 || ||노라 B. 킬브라이드 ||2025년~ ||현직 || == 조직 == === 대의원대회 === 연 1회 열리는 최고 의결기구. 지부별로 조합원 300명당 1명의 대의원을 선출한다. 위원장과 사무처장은 조합원 직선으로 뽑는다. === 지부와 지회 === 전국 16개 광역 지부와 그 아래 시 단위 지회로 구성된다. 사학 소속 조합원은 별도의 사립학교지부에 소속되는데, 재단과의 교섭 구조가 공립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 부속 기구 === * '''바른교육연구소''': 1994년 설립. 수업 자료 개발과 교육정책 연구를 담당한다. * '''교권상담센터''': 2004년 설립. 교권 침해와 부당 징계 상담을 맡는다. * '''해직교사기금''': 1989년 설립. 창설기 해직자 지원으로 시작해 현재는 징계 대응 소송비를 지원한다. == 강령과 요구 == * '''교육의 자주성''': 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한 행정기관의 개입을 제한할 것. * '''단결권·교섭권 보장''': 교원의 정치활동 금지와 쟁의행위 금지 조항 폐지. * '''학급당 인원 감축''': 조합 창설 이래 일관되게 유지되는 요구. * '''사학 개혁''': 재단 인사권 견제와 이사회 공익이사 확대. * '''비정규 교원 처우''': 기간제 교사와 강사의 정규직 전환 및 차별 해소. == 비판 및 논란 == * '''이념 공세''': [[루이나]]가 공산주의 단체 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만큼, 보수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조합의 교육 내용과 계기수업을 두고 반복적으로 이념 문제를 제기해 왔다. * '''정치적 중립성''': 조합원의 정치활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조합 차원의 정치적 의사 표명이 이어지면서, 위법 논란과 징계가 반복되었다. * '''교원평가 반대''': 평가 제도 자체에 대한 반대가 교사 집단의 이해만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았다. * '''교원연맹과의 대립''': [[루이나 교원연맹]]과 교육정책 전반에서 노선이 갈리며, 같은 학교에 두 조합이 병존해 교무실 내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보고된다. * '''조합원 고령화''': 젊은 교사의 가입률이 낮아 조직의 세대 재생산이 어렵다는 지적이 조합 내부에서도 제기된다. == 기타 == * 창립대회가 열린 성 니콜라이 정교회 성당 앞에는 2009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념 표석이 세워졌다. * 여름마다 열리는 바른교육 실천대회는 2025년까지 36회째 이어졌으며, 법외 시기에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 조합의 상징은 초록 바탕에 펼쳐진 책과 맞잡은 손 문양이다. * 1989년 파면된 교사 1,527명의 명단은 조합 본부 1층에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400여 명은 끝내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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