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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랜드 전쟁/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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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랜드사]] [목차] [clearfix] == 개요 == [[1차 랜드 전쟁]]의 결과와 영향을 다루는 문서. 1차 랜드 전쟁은 [[오로아 조약]]으로 영토 변경 없이 끝났지만, 참전국들의 국내 정치와 랜드해협의 국제 질서는 전쟁 전과 크게 달라졌다. 협상국의 전시 연합은 상설 동맹으로 굳어졌고,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 막힌 사비에트는 해협 남부로 눈을 돌렸다. 패전한 동맹국들은 배상과 군비 제한 속에서 정치 격변을 겪었으며, 전쟁이 해결하지 못한 해협 문제는 10년 뒤 [[2차 랜드 전쟁]]으로 이어졌다. == 협상국 == === 플로렌시아 === [[플로렌시아]]는 협상국을 이끈 대가로 무거운 부담을 떠안았다. 5년 넘는 총동원으로 산업은 군수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1956년 이후 추진해 온 수출 산업은 한동안 성장을 멈추었다. 전쟁 중 대폭 인상된 소득세와 법인세는 전후에도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 전쟁은 플로렌시아의 식민지 체제를 크게 약화시켰다. 전쟁 동안 식민지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한 대가로 식민지 사회의 발언권이 커졌고, 마지막 식민지 셀레스티아에서는 독립운동이 거세졌다. 자치 확대 협상이 교착된 1964년 셀레스티아 항구에서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벌어지자, 1차 랜드 전쟁을 막 끝낸 플로렌시아 정부는 또 다른 식민지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해군 기지 임차 협정을 맺는 조건으로 완전 독립을 받아들였다. 1965년 셀레스티아의 독립으로 플로렌시아의 식민제국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협상국으로 함께 싸운 루이나·빌베른과의 군사 협력은 전쟁 뒤에도 이어졌다. 이 협력은 1969년 4월 4일 북랜드해 조약과 [[NLTO]] 창설로 제도화되었고, 플로렌시아의 안보 정책은 루이나를 중심으로 한 동맹 체제 안에 자리 잡았다. === 루이나 === 전쟁의 가장 큰 승자는 [[루이나]]였다. 루이나 해군은 전쟁 내내 해협과 중앙 해역을 지배하며 랜드해협 최강의 해군이라는 지위를 확고히 했다. 전쟁을 주도한 나라는 플로렌시아였지만, 전후 질서의 중심에 선 나라는 루이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다져 온 루이나의 지역 패권은 이 전쟁을 거치며 굳어졌다. 반면 콘스탄티노폴에서 루이나는 큰 손실을 입었다. 1959년 남항구 조차지를 잃은 데 이어 1960년 7월에는 타우로 광산마저 국유화되었고, 루이나는 1961년 금수 조치로 맞섰다. 오로아 조약 이후에도 혁명정부를 승인하지 않은 루이나와 콘스탄티노폴의 대립은 1970년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으로 이어졌다. 전쟁은 사비에트와의 대결 구도도 굳혔다. 전쟁 중 시작된 우주경쟁은 전후에도 이어졌고, 1962년 10월 사비에트의 고고도 핵실험을 겪은 두 나라는 1965년 벨포르와 크라슬리스크를 잇는 직통선을 개설했다. 국내에서는 전쟁 중 짙어진 반공 분위기가 전후에도 이어졌다. === 웨스타시아 === [[웨스타시아]]의 요크 정권은 승전을 발판으로 권력을 굳혔다. 오로아 조약으로 [[유고랜드]]에 대한 영향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 되었고, 라 마베라 접경에는 비무장 지대가 설치되었다. 전쟁 중인 1960년과 1962년에 각각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전자산업 개발 5개년 계획은 군수 산업을 키웠고, 여기서 성장한 대기업들이 이후 웨스타시아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 빌베른 === [[빌베른]]은 루이나·북산과의 랜드 안보 3국 동맹을 유지했고, 1969년 NLTO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전쟁 중 빌베른 남부 해안은 사비에트의 포격과 공습을 받았으며, 사비에트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남부 해안의 방위는 전후에도 빌베른 안보 정책의 핵심 과제로 남았다. == 동맹국 == === 사비에트 === [[사비에트]]는 전쟁 기간에 동쪽에서 두 가지를 잃었다. 1959~1960년 청평과 결별했고, 1963년 3월 크라슬리스크 조약으로 동사랜드 자치공화국의 분리를 승인했다. 전쟁 부담은 두 사건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1963년의 흉작까지 겹치면서 농업 전문가라는 [[세르게이 안토노프]]의 권위는 무너졌고, 정치국 안에서는 '동방을 두 번 잃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1964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안토노프를 해임하고 레오니트 브레자코프를 새 서기장으로 선출했다. 전쟁은 사비에트의 대외 전략을 바꾸었다. 해협을 통해 북쪽으로 나아가는 길이 막히자 사비에트는 해협 남부의 공산 세력에 자금과 무기, 정치 고문을 보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해협 남부의 여러 나라가 차례로 공산화되었고, 해협 북쪽의 루이나와 플로렌시아는 이를 사비에트 팽창주의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해협을 사이에 둔 남북의 대치선은 이때 굳어졌다. 군사적으로 사비에트는 오로아 조약이 제한하지 않은 잠수함과 미사일, 우주 전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수상 함대로 루이나 해군과 맞설 수 없다는 전쟁의 교훈은 이후 사비에트 해군이 잠수함 중심으로 재건되는 배경이 되었다. === 체르드 === [[체르드]]는 동맹국 가운데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협상국군에 공업 지대 가까이까지 점령당했던 체르드는 배상금과 군비 제한, 봉쇄의 후유증 속에서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다. 해협 연안의 요새를 모두 해체해야 했고, 오로아 조약 감시위원회의 사찰은 주권 침해라는 반발을 불렀다. 패전의 책임을 둘러싼 정쟁 속에서 체르드의 좌파 세력은 빠르게 성장했고, 정부는 이를 강경하게 탄압했다. 1960년대 중반 체르드 정부의 좌파 탄압은 이웃 콘스탄티노폴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갈등은 이후 체르드의 정치 격변으로 이어졌다. === 라 마베라 연방 === [[마베라|라 마베라 연방]]도 배상 부담과 봉쇄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전쟁 중 깊어진 연방 구성 지역 사이의 갈등은 전후에도 해소되지 않았고, 웨스타시아 접경의 비무장 지대는 숙적에게 굴복했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경제난 속에서 좌파 세력이 커지면서 라 마베라 역시 체르드와 비슷한 정치 격변의 길을 걸었다. === 고랜드 === [[고랜드]]의 바티스타 왕실은 전쟁으로 권위를 크게 잃었다. 남풍 작전 이후 고랜드군이 무너진 데다 배상 부담까지 지게 되면서 왕실과 부족 세력의 갈등이 깊어졌다. 약해진 왕정은 1973년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 비교전국 == === 콘스탄티노폴 === [[콘스탄티노폴]]은 전쟁 중인 1959년 3월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고, 6월 모든 조차지를 회수했다. 혁명정부는 전쟁 내내 중립을 지켰지만 오로아 강화 회의에는 참가하지 못했으며, 자국이 빠진 조약의 해협 조항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비에트의 원조와 루이나의 금수 조치 사이에서 콘스탄티노폴은 1960년대 해협 대립의 최전선이 되었고, 1969년 쿠데타와 1970년 루이나의 침공으로 이어지는 혼란을 겪었다. === 북산 === [[북산]]은 전쟁 동안 협상국의 후방 기지 역할을 하면서 조선소와 항만을 중심으로 전쟁 특수를 누렸다. 동시에 하쿠센 조약에 따른 루이나의 영향력도 더욱 깊어졌다. 1966년 북산에서 반루파 청년장교들이 일으킨 1.23 내란은 하쿠센 조약의 내란 조항에 따라 투입된 루이나군이 진압했으며, 북산은 이후 NLTO에 가입했다. === 청평 === [[청평]]은 전쟁 중 사비에트와 결별한 뒤 동사랜드 인민적군을 지원하며 사비에트와 대립하는 길을 택했다. 1963년 청평은 독립한 동사랜드를 승인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사비에트와의 결별로 고립된 청평은 1966년 문화대혁명의 혼란으로 들어갔다. === 동사랜드 === [[동사랜드]]는 1차 랜드 전쟁이 만든 틈을 타 독립을 이루었다. 1962년 11월 정전에 이어 1963년 3월 크라슬리스크 조약으로 사비에트의 승인을 받았고, 같은 해 4월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뒤 9월 유엔에 가입했다. 동사랜드 정부는 인민적군의 항전을 자력으로 이룬 독립 투쟁으로 기억하며, 전쟁 중 협상국이 보낸 비밀 지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국제 질서의 변화 == 1차 랜드 전쟁은 랜드해협의 국제 질서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었다. 협상국으로 함께 싸운 루이나·플로렌시아·빌베른은 1969년 NLTO를 창설해 전시 연합을 상설 동맹으로 굳혔고, 사비에트는 해협 남부의 공산 정권들과 새로운 진영을 형성해 나갔다. 전쟁 당시에는 이념의 대결이 아니었던 두 진영의 대립은 해협 남부의 공산화를 거치며 점차 체제의 대결로 바뀌었다. 전쟁 전 해협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전후에는 해협을 사이에 둔 냉전 구도로 굳어진 것이다. 오로아 조약이 봉합한 해협 문제, 배상과 군비 제한에 대한 동맹국의 불만, 그리고 새로 굳어진 남북의 대치선은 모두 1973년 7월 14일 시작된 [[2차 랜드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 관련 문서 == * [[1차 랜드 전쟁]] * [[오로아 조약]] * [[2차 랜드 전쟁]] * [[NLTO]] * [[콘스탄티노폴]]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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