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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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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9 헌정 위기와 제6공화국 헌법 === 1988년 12월 2일 베인브리지는 세 번째 임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1989년 3월 29일 극우 무장단체 조국의 방패가 벨포르 의사당을 습격했고, 베인브리지는 같은 날 계엄을 명령했으나 수도방위사령부와 국방참모본부는 이 명령을 거부했다. 하원은 그날 저녁 탄핵소추를 의결했고, 헌법재판소는 다음 날인 3월 30일 베인브리지를 파면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하원의장이 대행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준비한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 [[테디 해밀턴]]이 제2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다. 해밀턴 정부와 의회는 1989년 하반기 양원 합동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을 돌며 공청회를 열었다. 위원회는 헌법의 틀부터 바꾸었다. 종전 헌법이 권력 기관의 조직을 앞세웠던 것과 달리, 새 헌법은 국가의 기본 원칙을 정한 서편 바로 뒤에 기본권 편을 두고, 기본권을 "기본권과 공적 자유", "시민의 권리와 의무", "사회적 권리와 정책의 지도 원리"로 나누어 각각의 보호 수준을 달리했다. 기본권 침해를 다투는 헌법소원과, 의회가 선출해 행정을 감시하는 국민옹호관도 이때 도입되었다. 예산 제도도 근본부터 바뀌었다. 종전 헌법에서는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고 의회는 이를 심의할 뿐이었으나, 군정과 베인브리지 정부가 비상 예산으로 의회를 우회한 경험 때문에 위원회는 대통령의 예산안을 '제안'으로 낮추고 의회가 세출법률을 직접 쓰게 했다. 논쟁은 크게 여섯 갈래였다. 첫째는 대통령의 임기였다. 1984년 헌법의 중임 제한을 두고 베인브리지 측이 "제4공화국 임기는 산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위원회는 연속 여부와 이전 헌법에서의 재임을 묻지 않고 '평생 두 번'으로 못 박았다. 둘째는 부통령 신설이었다. 3.29 때 권한 공백을 메울 사람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러닝메이트 부통령을 두자는 안이 나왔으나, 선출된 하원의장이 권한을 대행해 조기 선거까지 이끈 경험이 오히려 민주적 정당성을 보여 주었다는 반론이 이겼다. 셋째는 사형이었다. 베인브리지에 대한 사형은 1989년 12월 12일 집행되었고, 헌법 논의는 그 직후에 이루어졌다. 내란 수괴의 처형이 정당했다는 여론과 국가가 다시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맞섰으나, 위원회는 군정기의 사법 살인까지 함께 돌아보며 사형 폐지를 택했다. 그 결과 베인브리지의 처형은 루이나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 되었다. 넷째는 비상권한이었다. 위원회는 재난과 공공질서 교란, 전쟁과 무장 반란을 구별해 비상사태를 세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정지할 수 있는 권리와 정지할 수 없는 권리를 헌법에 직접 적었다. 다섯째는 사법부의 독립이었다. 군정기에 법관 인사가 정권의 손에 있었던 경험 때문에, 법관의 임명과 승진, 징계를 법관 대표와 의회가 선출한 법률가로 이루어진 사법평의회에 맡겼다. 헌법재판관도 하원과 상원이 5분의 3의 다수로 추천하는 몫을 늘려 특정 정파가 재판소를 장악하지 못하게 했다. 여섯째는 국어였다. 행정과 일상에서 영어와 러시아어가 널리 쓰이는 현실을 헌법에 반영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최종안은 루이나어를 유일한 국어로 정하고 로마자와 키릴 문자 두 표기를 모두 인정하는 대신, 다른 언어를 문화유산으로 보호하고 그 사용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두었다(제3조). 기본권 목록도 크게 늘었다. 1980년 [[주거권 보장법 (루이나)|주거권보장법]]으로 처음 인정된 주거권이 헌법에 올라갔고, 정보공개청구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가 새로 들어갔다. 재생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명문화하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종교계의 반대로 최종안에서 빠졌다. 헌법개정안은 1990년 5월 양원에서 각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었고, 6월 12일 국민투표에서 투표율 71.4%, 찬성 78.2%로 확정되어 6월 15일 관보에 공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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