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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시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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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공황 === 1929년 대공황은 플로렌시아 경제를 다시 한 번 무너뜨렸다. 해협 전역의 주가 폭락과 무역 위축이 플로렌시아에도 그대로 밀려왔고, 수출이 급감하자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은행들은 부실 대출을 안고 흔들렸으며 실업률은 몇 년 사이 네 배 가까이 뛰었다. 불황은 정치적 긴장으로 번졌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파산한 농민,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제대군인들 사이에서 의회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극좌와 극우 단체들이 거리에서 세력을 넓혔다. 1932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실업자 행진이 경찰과 충돌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1876년 공황 이후 반세기 동안 쌓인 국가 개입의 경험과 복지 제도는 사회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는 완충 장치가 되었고, 공화국은 불황기를 거치며 체제 위기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플로렌시아 정부의 대응은 1878년의 방식을 한층 큰 규모로 되풀이한 것이었다. 정부는 1930년부터 대규모 공공사업에 착수했는데, 그 상징적인 사업이 차펨하임 스트리트 재정비였다. 19세기의 낡은 건물들이 헐린 자리에 철골 구조의 고층 건물이 들어섰고, 당시 유행하던 아르데코 양식의 은행과 사무용 건물들이 거리를 채웠다. 오늘날 차펨하임 스트리트를 대표하는 아르데코 스카이라인은 불황기 실업 대책의 산물이다. 통화 정책도 바뀌었다. 금본위제 아래에서는 통화량을 늘릴 수 없어 경기 부양에 한계가 있었고, 금 유출이 계속되자 정부는 1931년 금 태환을 정지하고 금본위제에서 이탈했다. 1878년 도입된 금본위제는 반세기 만에 막을 내렸다. 이와 함께 은행 예금 보호 제도와 증권 거래 감독 기구가 신설되었고, 실업 보험과 노령 연금이 확대되었다. 플로렌시아 경제는 193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회복되었지만, 그 회복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다음 전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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