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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시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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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팽창 === 시민혁명으로 정치가 안정되자 플로렌시아는 눈을 바다 너머로 돌렸다. 빌베른 침공 이후 확보한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바탕으로 플로렌시아의 선단은 랜드해협 바깥으로 항로를 넓혀 갔고, 18세기 동안 해협 밖에 여러 식민지를 확보했다. 이 가운데 훗날 독립국이 되는 아르카디아, 테라바드리아, 네오바르디아, 셀레스티아의 네 곳이 플로렌시아 식민제국의 중심이었다. 네 식민지는 성격이 서로 달랐다. 아르카디아와 테라바드리아에는 본국에서 건너간 이주민이 대규모로 정착해 농장과 도시를 세웠고, 이주민 사회는 일찍부터 자체 의회를 두고 본국과 자치권을 다투었다. 네오바르디아는 원주민 인구가 많은 가운데 소수의 본국 관리와 상인이 지배하는 교역·자원 식민지였고, 셀레스티아는 해협 바깥 항로를 지키는 해군 기지와 중계항으로서 전략적 가치가 컸다. 이 차이는 훗날 각 식민지가 독립한 시기와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식민지 무역은 본국의 상업 자본을 키웠다.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설탕과 면화, 목재와 광물은 본국 항구에서 가공되어 다시 해협 각국으로 팔려 나갔고, 이 무역을 중개한 해운 회사와 무역 회사는 18세기 플로렌시아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뒤이은 산업혁명에 필요한 자본과 원료의 상당 부분도 이 식민지 무역에서 나왔다. 본국에서 권리 선언을 채택한 공화국이 바다 건너에서는 식민지를 지배했다는 모순은 당대에도 지적되었다. 식민지 원주민에게는 권리 선언이 규정한 시민의 권리가 적용되지 않았고, 플랜테이션과 광산에서는 강제 노동이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본국 의회에서는 권리 선언의 원칙을 식민지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식민지는 본국 법의 바깥에 있다는 주장이 맞섰으며, 강제 노동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법으로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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