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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1년 시민혁명 === 1711년 필라델피아와 주요 도시의 하층민이 다시 봉기했다. 이번 봉기는 왕정이 아니라 상류층이 장악한 공화국 의회를 겨냥했고, 봉기 세력은 선거권의 확대와 귀족 특권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했다. 귀족과 부유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봉기가 몇 달 동안 끊이지 않자 의회는 결국 요구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였다. 이를 1706년 혁명과 구분해 시민혁명이라 부른다. 시민혁명의 결과 채택된 「플로렌시아 권리 선언」은 법 앞의 평등, 신앙과 언론의 자유, 재산권, 과세에 대한 동의권을 모든 시민의 권리로 규정했다. 귀족의 면세 특권과 영지 재판권은 폐지되었고, 귀족 신분은 법적 의미를 잃었다. 선거권은 여전히 모든 성인 남성에게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재산 기준이 크게 낮아져 도시 장인과 자영농 상당수가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권리 선언에 적힌 '자유, 평등, 정의'는 이후 플로렌시아의 국가 표어가 되었다. 플로렌시아 사학계는 1706년과 1711년을 하나의 혁명이 두 단계로 진행된 것으로 본다. 1706년 혁명이 누가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해 왕정을 폐지했다면, 1711년 시민혁명은 누가 시민인가라는 물음에 답해 신분제를 해체했다. 권리 선언이 만든 질서는 이후 수차례 헌법이 바뀌는 동안에도 기본 골격을 유지했으며, 플로렌시아는 이 시기를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기념한다. 플로렌시아의 혁명은 해협의 다른 왕국들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한 나라의 인민이 국왕을 폐위하고 신분제를 폐지했다는 소식은 각국 궁정에 경계심을 불러일으켰고, 일부 나라는 플로렌시아 서적의 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 반대로 각국의 개혁가와 상인들 사이에서 권리 선언은 널리 읽히는 문서가 되었다. 18세기 내내 플로렌시아가 해협의 군주국들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일이 잦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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