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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병 === 1349년 흑사병이 랜드해협에 대유행하면서 폴로놀 왕국은 전례 없는 인구 손실을 겪었다. 당시 왕국 인구 약 1,700만 명 가운데 510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인구의 약 30%에 해당한다. 사망률은 인구가 밀집한 해안 무역 도시에서 특히 높았고, 일부 촌락은 주민 전체가 사라져 버려졌다. 인구 급감은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경작할 사람이 없는 토지가 늘어나자 살아남은 농민과 노동자들은 더 높은 임금과 더 낮은 지대를 요구했고, 영주들은 법령으로 임금을 묶어 두려 했다. 기근에 이어 역병까지 겹치는 동안 교회는 이를 신의 징벌이라 설교했지만 성직자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쓰러졌고, 일부 고위 성직자는 영지를 버리고 달아났다. 흑사병을 거치며 사람들 사이에 퍼진 것은 교회가 이 재앙 앞에서 아무런 답도 주지 못했다는 인식이었다. 흑사병의 장기적인 결과는 농촌 질서의 변화였다. 임금 동결령은 곳곳에서 지켜지지 않았고, 일손이 부족한 영주들은 떠나려는 농민을 붙잡기 위해 부역을 줄이고 지대를 화폐로 받는 계약을 받아들였다. 14세기 후반부터 폴로놀 평야에서는 영지에 묶인 예속 농민이 줄어들고 계약에 따라 땅을 빌려 경작하는 소작농이 늘어났다. 반면 이러한 양보를 거부한 내륙의 영주들은 오히려 부역을 강화하려 했고, 이 차이는 뒤이은 농민 봉기가 어디에서 가장 격렬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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