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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경위 == 개발은 해군 우주계획국이 맡았다. 사업 책임자는 해군 대령 토머스 R. 애버내시로, 그는 OSPREY 연구에도 참여했던 인물이었다. 미사일 본체는 그랜빌 항공기계가, 요격체의 적외선 탐색기는 노스게이트 전자가 개발했다. 가장 큰 기술적 과제는 폭약 없이 위성을 맞히는 것이었다. 직상승 방식에서는 요격체와 표적이 초속 약 8km의 상대 속도로 스쳐 지나가는데, 이 속도에서 수십 cm의 오차는 곧 빗나감을 뜻했다. 해군은 두 가지 해법을 택했다. 첫째는 액체질소로 냉각한 적외선 탐색기로, 햇빛을 받아 데워진 위성의 열을 차가운 우주 배경에서 구별해 내는 방식이었다. 둘째는 충돌 직전 요격체 앞쪽에 강철 살 24개를 우산처럼 펼쳐 맞힐 수 있는 면적을 직경 4.2m로 넓히는 장치였다. 이 전개 장치는 개발진 사이에서 「파라솔」이라 불렸다. 개발이 진행되던 1974~1977년 루이나는 [[청북전쟁]]을 치렀다. 전쟁 기간 사비에트는 소바와 볼나로 해협과 청평 인근 해역의 루이나 함대를 상시 추적했고, 1975년 한 해에만 정찰위성 41기를 발사했다. 해군은 KINGFISHER의 조기 배치를 요구했지만 미사일은 전쟁 중에 완성되지 못했다. 첫 요격 성공은 1977년 5월, 정전협정 체결은 그로부터 두 달 뒤인 7월이었다. 1974년부터 이듬해까지 「콜마르」급 순양함 2번함 「헤이스팅스」가 시험함으로 개조되었다. 후부 주포탑을 걷어 낸 자리에 대형 수직 발사관 2기와 미사일 4발을 수납하는 탄약고, 우주 표적 추적용 위상배열 레이더 「LOOKOUT」이 설치되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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