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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8월 === 상황을 바꾼 것은 1968년 2월 사비에트 야스트레브의 첫 요격 성공이었다. 1969년 루이나 국가정보판단이 사비에트의 위성 요격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 국방부는 1970년 루이나도 같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소요를 제기했다. 해군과 공군은 또다시 맞붙었다. 공군은 본토의 고정 기지에서 발사하는 지상 발사형 요격 미사일을, 해군은 순양함에서 발사하는 KINGFISHER를 제안했다. 해군의 논리는 기동성이었다. 고정 기지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은 표적 위성이 기지 가까이를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함정은 표적의 궤도 아래로 직접 찾아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해군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표적인 볼나는 루이나 함대를 보기 위해 함대 가까이를 지나가야 했다. 1971년 8월 제22대 대통령 [[아서 W. 그랜트]]는 해군안을 승인했다. 같은 달 국방부는 궤도 핵무기 연구 HIGH TIDE도 해군의 반대를 받아들여 기각했는데, 이 때문에 1971년 8월은 루이나 해군 내부에서 '해군의 달'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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