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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1세/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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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고등법원 === 의회 안에서도 국왕을 재판한다는 결정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온건파 의원들이 군에 의해 의사당 출입을 저지당한 뒤에야 [[특별 고등법원]] 설치가 가결되었다. 남은 의원은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재판은 1647년 1월 20일에 시작되었다. 법정에 들어선 국왕은 모자를 벗지 않았다. 자신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낭독된 기소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wiki style="border-left:5px solid #8f2f5c; padding:8px 18px;" 루이나 왕국 인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이 법정에 부여된 권한에 따라 아래와 같이 고발한다. 카렐 드 카엘몬트는 루이나의 국왕으로서 이 왕국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 그러나 그 권한은 그의 소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법에 따라, 법이 정한 한계 안에서, 이 왕국의 인민을 이롭게 하라는 조건으로 위임된 것이었다. 왕관을 쓰는 자리에서 그가 한 선서 또한 그와 같았다. 그는 이 나라의 법을 지키고 그 법에 따라 다스리겠다고 신 앞에서 맹세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권한을 뒤집어, 제한 없고 폭압적인 통치를 세우려는 뜻을 품었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인민의 대표를 그 자리에서 몰아냈다. 스스로 소집한 의회를 세 차례 흩어 버렸고, 마지막에는 열한 해에 걸쳐 의회를 부르지 아니하였다. 그 열한 해 동안 그는 어느 누구의 동의도 없이 신민의 재산에 손을 대었다. 전시에만, 그것도 해안에만 부과되던 함대의 부담금을 평시에 내륙까지 넓혀 해마다 걷었고, 잊혀진 삼림의 경계를 되짚어 벌금을 물렸으며, 작위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주들에게 돈을 물렸고, 물건을 만들고 파는 권리를 팔아 이득을 취하였다. 이에 응하지 아니한 자들은 죄목을 듣지도 못한 채 갇혔다. 그는 의회가 올린 청원을 재가하여 이러한 일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으나, 그 약속에 서명한 손으로 이듬해에 같은 일을 하였다. 또한 그는 신민의 양심에 손을 대었다. 자신이 정한 예식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법정에 세워 귀를 자르고 낙인을 찍었으며, 이 왕국에 병합된 바 없는 남부 고지에까지 자신의 기도서를 강요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그들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두 차례 군대를 일으켰다. 이 전쟁으로 왕국의 북부가 점령당하였고, 그 점령의 비용마저 이 나라의 인민이 물었다. 그는 인민의 대표들이 모인 의사당에 무장한 병력을 이끌고 들어와 의원 다섯 사람을 잡아가려 하였다. 이 나라의 어떤 국왕도 하지 않은 일이며, 어떤 법에도 근거가 없는 일이었다. 그해 여름 그는 자신의 백성을 상대로 군기를 올렸다. 그로부터 네 해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일을 이 법정은 낱낱이 열거하지 아니하겠다. 로엔필드에서, 카른무어에서, 하버포드에서,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백 곳의 들판과 마을에서 이 나라의 사람들이 이 나라의 사람들을 죽였다. 불탄 집과 갈아엎지 못한 밭과 아비 없는 아이들이 그 결과다. 이 모든 피는 그가 스스로 시작한 전쟁에서 흘렀으므로, 그 책임은 그에게 있다. 전세가 기울자 그는 이 왕국 밖의 세력에게 군대를 청하였다. 자신의 백성을 치기 위하여 외국의 병력을 이 땅에 불러들이려 한 것이다. 하버포드에서 노획된 그 자신의 서신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므로 이 법정은 카렐 드 카엘몬트를, 자신에게 맡겨진 권한을 그 권한을 준 자들에게 되돌려 겨눈 자로서, 이 왕국에 전쟁을 일으켜 그 인민의 피를 흘리게 한 자로서, 그리고 그 모든 일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되풀이하려 한 자로서 고발한다. 곧 폭군이며, 반역자이며, 살인자이며, 이 왕국과 그 인민의 공적(公敵)이다. }}} 기소문이 낭독되는 동안 그는 지팡이 끝으로 검사의 어깨를 툭 쳤다. 은장식이 떨어져 바닥에 굴렀고, 아무도 주워 주지 않자 국왕이 직접 몸을 굽혀 집었다.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오래 기억했다. 그는 법원의 관할권 자체를 부정했다. 국왕을 재판할 권한은 지상의 어떤 법정에도 없으며, 자신은 신에게만 책임을 지므로 이 법정의 피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 차례에 걸쳐 답변을 요구받았으나 모두 거부했고, 재판장이 발언을 제지할 때마다 방청석이 술렁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재판 기간 내내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평생 그를 괴롭힌 결함이 마지막 며칠 동안만 사라졌다는 사실은 여러 기록자들이 언급했다. 2월 6일 법원은 반역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문 낭독이 끝난 뒤 국왕이 처음으로 발언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되었다. 끌려 나가면서 그는 자신이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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