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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 사건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1.19 사건]] 문서 참고.}}} 2001년 1월 19일 오전, 알자미아 조직원 17명이 루이나 국내선 노던에어 여객기들을 노린 동시다발 납치를 벌였다. 두 대가 탈취되어 벨포르 루이나 세계무역센터(BWT)의 북탑과 남탑에 차례로 충돌했고, 세 번째 납치는 공항에서 저지되었다. 범인을 제외한 사망자는 2,891명으로, 루이나에서 일어난 단일 테러로는 가장 많은 인명 피해였다. 공격 준비는 1998년 말부터 고랜드에서 시작되었다. 실행조는 훈련소 수료자 가운데서 선발되었고, 일부는 학생 신분으로 루이나에 들어와 머물렀다. 사건 후 의회 조사는 1999~2000년 사이 국가정보국과 광역수사국(MIA)이 실행조원 일부의 입국과 체류 사실을 각각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두 기관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건 당시 대통령은 발렌타인이었다. 루이나 정부는 며칠 만에 알자미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탈레반에 나쉬디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탈레반은 이를 거부했다. 루이나는 곧바로 플로렌시아·사비에트와 「벨포르 긴급 합의」를 맺어 정보 공유와 국경 단속에 나섰고, 1월부터 10월 개전까지의 공백은 고랜드 공산 정부·사비에트와의 비밀 교섭에 쓰였다. 그 결과 루이나는 고랜드의 공산 체제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공산 정부와 함께 탈레반을 공격하기로 했다. 알자미아가 「야합」이라고 규탄해 온 루이나와 공산권의 협력은 1.19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공식적인 동맹의 형태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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