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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전 (1985~1986) === 1984년의 [[정지궤도 위기]]를 거치며 루이나와 사비에트의 대립은 정점에 이르렀다. 1985년 3월 사비에트에서는 보리스 카멘스키가 서기장에 올랐고, 그는 집권 첫해 고랜드 파견군에 더 공세적인 작전을 허용했다. 1985년 사비에트군 병력은 최대 11만 5천 명까지 늘었다. 루이나는 이에 맞서 작전 목표 자체를 올렸다. 1985년 5월 국가안보회의는 국가안보결정 제85-7호로 작전 목표를 "사비에트의 점령 비용 증대"에서 "사비에트군이 고랜드에서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예산은 1985년 2억 5,000만 달러, 1986년 4억 7,000만 달러로 뛰었고, 오어의 무기 바구니 개편안이 본격 적용되었다. 새로 들어간 품목은 120mm 박격포, 중국제 다연장로켓, 저격소총, 군용 폭약과 원격 기폭 장치, 암호 무전기였다. 국가정보국은 국가정찰국이 촬영한 사비에트군 기지와 보급로의 정찰 사진을 [[국가안보원]]에 제공했고, [[국가안보원]]은 이를 표적 정보로 가공해 정파 지휘관들에게 넘겼다. 사진을 제공하되 무자헤딘에게 직접 보여 주지는 않는다는 방식은 3자 배분 원칙의 연장이었다. 폭약 공급은 내부에서 논란을 낳았다. 1985~1986년 아바나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 공격과 상가 폭파 사건 가운데 일부에 사이클론 경로로 들어간 폭약이 쓰였다는 정황이 [[국가안보원]] 보고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국가정보국 법무관실은 1986년 1월 "도시 지역의 비전투원 피해에 대하여 국은 배분 단계의 통제권이 없다"는 의견서를 냈고, 폭약 공급은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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