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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의 위기: 마테르 전쟁과 유고랜드 독립 (1983~1985)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마테르 전쟁]] 문서 참고. }}} 1983년 2월 10일 벨포르에서 열린 제7차 NLTO 정상회의는 MAL 367편 격추 사건과 민케 대학살을 이유로 웨스타시아의 퇴출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퇴출 안건을 주도한 것은 루이나였다. 웨스타시아는 NLTO 탈퇴를 선언하는 한편, 루이나가 라 마베라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으면 고랜드 경로를 열어 주지 않겠다며 4월부터 유고랜드 서부로 가는 물자 수송을 동결했다. 국가정보국은 웨스타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체르드를 경유하는 전세 항공편으로 물자를 옮겼는데, 운송비는 해상 경로의 세 배에 달했고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도 적었다. 1983년 하반기 무자헤딘이 받은 물자는 상반기의 40%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가정보국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고랜드 공화국 내무 기구 안에서 독립을 지향하던 국경 담당 관리들과 비공식 접촉을 시작했고, 이들이 웨스타시아 정보당국 몰래 난민촌과 국경 통행을 관리해 주었다. 이 관리들이 이듬해 유고랜드 [[국가안보원]]의 모체가 된다. 1984년 마테르 전쟁으로 웨스타시아 체제가 무너지고 9월 8일 유고랜드가 독립했다. 국가정보국은 11월 신생 유고랜드 정부와 비공개 협력 약정을 맺어 [[국가안보원]]을 작전의 공식 배분 기관으로 삼았다. 1985년 4월 [[루이나-유고랜드 상호방위조약]]과 [[루이나-유고랜드 주둔군지위협정]]이 동시에 체결되고 루이나군이 유고랜드에 전개하면서, 유고랜드는 작전의 핵심 병참기지가 되었다. 같은 1985년 루이나는 마테르 전쟁에 직접 참전했고, 베인브리지는 의회 동의를 얻어 전시비상령을 선포했다. 전시 체제는 사이클론 예산이 국방 예산을 통해 대폭 늘어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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