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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나 측 === 작전은 국가정보국 작전본부 남부작전국이 맡았다. 1984년 2월 남부작전국 안에 고랜드 태스크포스(GTF)가 설치되었고 레온 P. 카라마노스가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카라마노스는 벨포르 항만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폴 거점에서 경력을 쌓은 현장 요원이었으며, 본부의 결재 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GTF는 1984년 7명으로 시작해 1987년 정원 42명이 되었다. 무기 체계 선정은 1984년 GTF에 합류한 육군 특수전 장교 출신 대니얼 S. 오어가 맡았다. 오어는 소총 위주였던 지원 품목을 박격포, 대공 화기, 암호 통신 장비, 폭약 중심으로 바꾸는 이른바 '무기 바구니' 개편안을 작성했고, 이는 1985년 이후 확전의 기술적 설계도가 되었다. 현지에서는 유고랜드 수도 시디벨아베스의 국가정보국 거점이 유고랜드 [[국가안보원]]과의 연락을 맡았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거점장을 지낸 프랭크 D. 홀리스는 불입국 원칙 때문에 전선을 직접 볼 수 없었고, [[국가안보원]]의 보고와 정찰 사진에 의존해 전황을 파악했다. 국경 도시 세테트에는 물자 인수를 확인하는 4~6명 규모의 연락 사무소가 있었다. 의회에서는 하원 국방위원회 소속 하원의원 찰스 E. 윈턴이 작전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다. 윈턴은 1984년 고랜드 난민촌을 방문한 뒤 사이클론 예산 증액을 개인적인 과제로 삼았고, 1984년부터 매년 국방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증액을 관철했다. 국가정보국이 요청한 액수보다 많은 돈을 의회가 먼저 얹어 주는 이례적인 상황은 대부분 윈턴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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