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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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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나의 사이클론 작전 (Operation Cyclone)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c6e7c84dcc7a1b22f3cfed1fc2bad81a88f67ef8.jpg|width=100%]] || || '자유의 전사들'로써 레이건 정부 시절 미국을 방문하여 백악관에 초청된 무자헤딘의 지도자들. || 사비에트의 영향력이 고랜드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서방 진영은 사비에트에 저항할 수 있는 반정부 무장세력(이하 ‘무자헤딘’)을 조직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지원은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이는 냉전기 서방 정보기관의 대외 개입 작전 중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고, 가장 많은 비용이 투입된 작전으로 기록된다. 추산에 따르면 전체 지원 규모는 80억~150억 달러에 달했다. 이 작전은 루이나의 [[NIA]], 미합중제국의 CIA, 플로렌시아의 DGSE, 그리고 영국의 MI6,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 마베라 방위성, 유고랜드의 ISI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빌베른, 중국 등도 자금, 무기, 훈련 인력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하였다. 이 작전을 통해 약 10만 명 규모의 무자헤딘 병력이 양성되었으며, 작전 초기에는 루이나와 루이나 NIA가 직접 개입한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유고랜드, 체르드 등을 통한 제3국 루트를 이용한 무기 지원이 이루어졌다. 당시 제공된 장비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구식 무기나 중고 소련제 무기들이 중심이었으며, 주요 루트는 유고랜드 국경과 고르드 벨트 등을 경유하였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사비에트의 철군 가능성이 대두되자 서방은 보다 적극적으로 현대식 중화기와 첨단 무기체계를 반군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장비로는 루이나제 FGR-52 ‘페리트’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플로렌시아제 밀란 II 대전차미사일, 미합중제국의 FIM-92 스팅어, BGM-71 TOW, 스위스제 오리콘 GDF 대공포, 델라웨어제 브라이트사이드 장거리 정찰장비 등이 있었다.[* 이 중 스팅어 미사일은 반군 사이에서 ‘신의 화살’이라 불리며 큰 효과를 기대받았으나, 실제로는 사비에트가 이미 배치한 MANPAD 대응책과 저공 회피 전술에 맞서며 실전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반면, 루이나제 페리트는 후방 보급기지 타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평가받는다.] 모병은 주로 이집트, 리비아, 사헬 지역 등지에서 이루어졌으며, 고랜드 내 소수민족, 특히 하자라인, 타지크, 쿠르멘 부족 출신 청년들이 대거 무자헤딘에 참여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유고랜드, 인도네시아 등의 이슬람권에서도 ‘자원병’이라는 명목의 외국인 전투원이 유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루이나 NIA는 고랜드 북부 산악지대에 소규모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민간인 신분의 ‘농업 기술 고문단’을 위장하여 실질적 군사훈련과 정보 지원을 수행하였다. 전쟁이 종결된 이후에도 1994년까지 루이나는 잔여 병력 재편과 전후 무장해체 감시를 이유로 일부 자금을 계속 지원하였으며, 일부 반군은 걸프 전쟁 이후 루이나가 이라크로부터 노획한 장비를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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