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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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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비에트의 특수작전(폭풍 333호): 아민 대통령 제거 === ||<tablealign=center><tablebgcolor=white,#1f2023><nopad> [youtube(bpm5dPIULF0)] || || 작전 상황을 재현한 3D 애니메이션 || 더구나 집권한 인민민주당은 권력투쟁으로 분열되어 아민이 타라키 대통령을 죽이고 대통령이 되었는데 아민은 사비에트도 경악할 정도의 희대의 막장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일단 아민은 타라키의 지지자 5만명을 처형하고 파슈튠족을 중심으로 한 친위부대를 꾸렸는데 여기까지야 정권 공고화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아민은 곧 고랜드 전체를 적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아민은 인민민주당내 강경파인 할크파 소속으로 사비에트마저도 학을 뗄 정도로 공산주의에 집착했는데 그 예로 아민 정권 하에서 모든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은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색으로 모든 사물들과 벽, 건물을 칠하는 작업에 강제적으로 동원되어야 했고 집에 사용하는 가전제품이나 장식품마저도 붉은색으로 칠하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문구를 넣어야 했다고 하며 한 술 더 떠서 고랜드에 거주하던 사비에트인들에게도 그들이 사용하는 자동차나 자전거 등을 붉은색으로 칠하도록 권고하기까지 했다. 아민은 토지개혁을 실시했으나 전통적인 고랜드 부족사회의 토지 소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무식하게 밀어붙혀 고랜드 부족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슬람 성직자들이 반발하자 닥치는대로 성직자들을 체포해서 처형하고 마드라사들을 폐쇄하는 자살골을 넣는다. 심지어 라마단조차 금지하려 하는 난장판에 거의 중세 유럽 수준으로 종교로 정체화된 고랜드 사회는 발칵 뒤집혔지만[* 여기서 중세수준이라고 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냥 문명이 중세수준으로 미개하다 이런 말이 아니라 고랜드인들의 삶 자체가 종교와 일체화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집안의 대소사, 관혼상제, 법적인 소송과 자녀의 교육까지 이슬람교가 담당하는 형태였고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냥 어쩌다 가는 종교와 달리 고랜드에서 종교는 그냥 삶의 양식 그 자체였다.] 아민은 정부에 반기를 드는 지방이 있으면 '''폭격기를 동원해서 마을과 부족단위로 몰살시키는 등''' 전국적인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고 엄청난 수의 난민들이 유고랜드로 몰려가는 등 아민 정권의 실패는 더 이상 고랜드 국내 문제 수준으로 남지 않게 되었다. 이는 고랜드에 있었던 사비에트인들과 고문들을 경악하게 했고 사비에트 고문관들은 본국으로 보내는 보고서에 아민 정권은 오히려 공산주의를 민중들에게 악이 되는 방향으로 주입 중이라 조속히 교정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사비에트인들에게 내려온 권고문을 증거물로 삼아 보냈다. 동유럽의 공산화를 감독하면서 자체적인 혁명승리가 아닌 단순히 지도부 교체를 통한 공산화 상태에서 이런 강압적인 체제변혁을 시도했다간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사비에트 지도부는 아민에게 미친 짓 그만하라고 계속 설득하려 했으나 아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반군이 폭증하여 16개주에서 들고 일어났는데 4개주가 완전히 함락, 10개주의 90% 이상이 반군에게 함락되었으며 반군의 규모도 4만명으로 확장되었다. 아민 정권은 말기에 겨우 아바나, 쿤두즈, 바글란 3개 주만을 겨우 통제했고 정부군은 반란과 탈영으로 계속 약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반군은 고랜드 전체에서 70~90%를 점령한 상태였다. '''즉 사비에트가 개입해서 고랜드 정부의 통제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이미 아민 정권 때 고랜드 정부는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한 후였다.''' 이 관점에서도 사비에트의 침공으로 인한 고랜드 국민의 반외세 정서 대폭발이 반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반군에게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아민이 당황해서 반군과 협상하려 하자 사비에트는 아민의 정권유지력에 의심을 품게 된다. 사비에트가 파르참파(깃발파)와 더 밀접했던 것도 상호 불신에 불을 붙였다. 한편 사비에트의 계속된 간섭에 아민은 사비에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미합중제국 및 유고랜드와의 관계개선을 시작하였다. 아민이 친서방 행보를 이전에 비해서 강화한 것은 분명히 사실이었고, 그의 미합중제국 유학 경험을 생각해보면 사비에트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중에 공개된 자료를 보면 미국은 고랜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고랜드를 상대로 공작을 할 여력 따위가 없었고, 아민과의 유의미한 관계는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야 전쟁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고 과거 아랍국가들이 친소인척 소련 지원만 받아먹다가 뒤통수친 걸 본 사비에트 입장에선 아민이 똑같은 짓을 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역으로 루이나는 사비에트가 고랜드를 장악하여 식량패권을 강화하려 한다고 의심했지만 정작 사비에트에서는 고랜드를 그냥 식량창고로 보는 등 서로가 서로의 의도에 대해서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쨌거나 사비에트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아민이 반소로 전환하려는 증거가 나온다면 즉시 조치를 취하라고 KGB에 지시했는데, 이는 아민이 '반소임을 입증하라'라는 지시로 들렸고, KGB는 아민을 찍어내기 위해 카르말 등을 시켜서 아민을 음해하는 공작을 가동시켰고, 아민이 친미파라는 보고들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사비에트 지도부 내에서 어느 순간 점점 더 살이 붙어서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사비에트 지도부마저 낚아 버렸다[* 세이아: .............우리는....대화를.....해야.....한다고요........]. 어쨌거나 이로써 사비에트는 겉으로는 친사지만 실제로는 미국 등 서방 열강들의 끄나풀이라고 판단된 아민을 제거하고 이슬람 세력을 직접 진압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결정했다. 1979년 12월 6일 정치국 회의는 제176호 결정서를 통해서 아민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500명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하였으나, 안드로포프, 우스티노프를 위시로 하는 정치국의 핵심 멤버들은 곧 12월 12일의 밀실합의를 통해서 아민을 아예 제거하고 고른대에 군사작전을 하기로 결정, 나머지 정치국 위원들에게 사후 승인을 받아낸다. 최초에는 아민을 저격으로 죽이려 했으나 아민의 호위대에게 적발되서 실패했고, 12월 16일, 아민을 독살하기 위해 아민이 마실 펩시콜라에 독을 탔으나 아민의 조카 아사둘라 아민이 마셔버리는 바람에 또 실패했다. 이에 12월 27일, 특수부대를 보내서 대통령궁을 박살내고 아민을 죽이는 계획으로 가게 되었다. 왜 하필 12월 27일이었냐면, 그로미코 회고록에 따르면 12월 28일 아민은 유고랜드와 접촉을 가지기로 했는데 사비에트 지도부는 이를 아민이 미국 스파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12월 27일, 아무것도 모르던 아민은 의기양양하게 최고 지도부를 소집하여 사비에트가 자신을 돕기로 했다면서 만찬을 열었는데 갑자기 참석자들이 중독 증상을 보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사비에트 요리사들이 준비했단 점에서 KGB가 음식에 독을 탔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민도 구토를 하며 쓰러졌고 사비에트 의사들의 치료를 받았는데, 오후 7시 30분부터 사비에트군 특수부대의 공격이 시작됐다. 아민은 처음에는 이것이 반군이나 정부 내부의 타라키 지지세력의 공격이라 여겨 사비에트군의 지원을 요청하라고 명령했으나 사비에트군의 공격이라는 보고에 화를 내면서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사비에트와 연락을 시도했을때 모든 회선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아민은 그제야 자신이 버림받은 것을 깨닫고 좌절했다. 아민이 처형을 당한 것인지 유탄에 맞은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거나 격렬한 총격전 끝에 아민은 처참하게 죽었으며, 아민의 어린 아들도 총에 맞아 죽었고 아민의 어린 딸도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다. 아민의 호위대 300명 중 150명도 전사했다. 눈치없이 아민이 마실 펩시를 마셨던 아사둘라 아민은 사비에트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이었는데 아민이 죽은 후 투옥되어 심문을 받은 후 고랜드에 송환되어 타라키 신정부의 손으로 처형된다. 군사적으로 볼때 아민 정권 전복공작은 전면침공이 아니라 특수부대 및 KGB 요원들에 의한 특수작전에 가까웠고 사실상 매우 적은 희생(4명 전사)으로 성공적으로 보이긴 했다. 아민 정권에 대한 사비에트의 쿠데타와 정부 수장 사살 직후에는 국경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략 8만명에 달하는 사비에트군이 제40군 휘하 전력으로 고랜드에 입국해 주요 도시를 빠르게 장악했다. 이렇게 고랜드 모험은 성공적으로 끝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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