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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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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과거부터 고랜드는 놀라운 비옥함과 방대한 곡창지대를 자랑하며, 수많은 외세가 군침을 흘리던 전략적 핵심지였다. 특히 고원의 지형과 계절풍이 만들어내는 온화하고 안정된 기후, 지하수 자원, 범람기 기반의 수리농업 체계는 고랜드를 동방 최대의 식량 생산지로 만들었다. 그 자원적 가치로 인해 고랜드는 ‘랜드해협의 밀창고’, 또는 ‘신의 식탁’이라 불리며, 세계 주요 열강의 주목을 받아왔다. 한때 고랜드는 마베라 왕국의 식민지로, 사실상 마베라의 곡물 저장고이자 방대한 농노 착취지대로 전락해 있었다. 1910년대부터 마베라령 고랜드 총독부는 대규모 농지 수탈과 수리시설 재편, 상업 농업화를 추진했고, 이로 인해 자급 농민층은 급속히 몰락해갔다. 1940년대 후반, 마베라 본국이 국제무대에서 식량을 무기 삼아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자, 이를 견제하던 루이나, 플로렌시아, 사비에트 3국은 이례적으로 연합된 외교 압박을 가했다. > “곡식은 민중의 것이지, 제국의 것이 아니다.” >---- >1950년 루이나 국무장관 리처드 브래넌 이들 3국은 마베라에게 고랜드의 자치권을 즉각 보장하고, 식민 통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 1952년, 고랜드는 명목상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 독립과는 달리, 경제 주권과 식량 유통 구조는 여전히 외세의 손에 있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식량 주권과 곡물 무역 통제권을 둘러싼 국제적 각축은 고랜드를 그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 플로렌시아는 자국 식량 수급의 장기적 대안을 찾기 위해 농업 연구소와 영농법인들을 고랜드에 파견했고, 사비에트는 ‘식량 안보 없는 평화는 없다’는 기치 아래 고랜드 곡창지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루이나 역시 국제 농업협력을 명분으로 기술 인력과 곡물 저장시설 투자를 확대하며 '농업 패권'을 둘러싼 신(新)식민경쟁에 참전했다. 1960년대 바티스트 왕가는 공식적으로는 중립국이자 자급자족형 농업국가로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서구화 정책과 수출 중심 농업 개편을 추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플로렌시아와의 농업기술 협정, 식량 수출 계약 등을 체결하며 점차 깊숙한 외교적 연계를 형성해갔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자영농층의 붕괴와 전통 공동체 구조의 해체를 불러왔고, 향촌 사회는 급격한 변화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사비에트에서 귀국한 농업 기술관료들 중 일부는 토지 집단화와 곡물 유통의 국가 독점화를 주장하면서 공산주의 농업 개혁 노선을 밀어붙였고, 반대로 이슬람 성직자들과 부족 지도자들은 “신의 땅을 분배할 자는 오직 신” 이라 외치며 반공·반세속 운동을 조직해 세력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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