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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다 발사장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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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와 구조 === 화재는 약 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사르다 발사장 소방대는 폭발 직후 출동했지만 질산계 산화제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갈색 유독가스 때문에 40분 가까이 발사대에 접근하지 못했다. 당시 발사장에는 이 기체를 막을 수 있는 방호복과 방독면이 소방대원 수에 한참 못 미치게 비치되어 있었다. 발사대 주변의 아스팔트는 녹아내렸고, 울타리의 철조망 일부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휘어 있었다. 불길은 20시 50분경 잡혔다. 19시 30분경 첫 부상자 수송 트럭이 27km 떨어진 사르다-2 시의 군병원에 도착했다. 병상 72개 규모의 병원에는 그날 밤 54명의 부상자가 한꺼번에 들어왔고, 당직 외과 군의관은 2명뿐이었다. 이튿날인 6월 18일 새벽 4시, 전신 화상을 입은 14명이 수송기 편으로 크라슬리스크 중앙군병원 화상 병동으로 이송되었다. > 첫 트럭이 들어왔을 때 저는 환자의 계급을 알 수 없었습니다. 군복이 몸에 녹아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급 대신 숨을 쉬는지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그날 밤 병원에는 72개의 침대와 54명의 환자와 2명의 외과의가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크라슬리스크에서 온 군의관들이 사고의 규모를 처음 물었고, 우리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발사대에 몇 명이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 > 사르다-2 군병원 외과 군의관 소령 나탈리야 P. 브라니스코바, 회고록 《사막의 병동》(1993) 21시 10분 스테파노프는 국방인민위원회에 첫 보고 전문을 보냈다. > 18시 52분 제12발사대에서 발사 준비 중 2단 엔진의 비정상 점화로 제품 파괴, 화재 발생. 네스테렌코 동지를 포함한 발사대 인원 다수 생사 불명. 현 시점 사상자는 100명 내외 또는 그 이상으로 추정되며, 그중 수십 명은 사망한 것으로 보임. 부상자 후송 중. 지시 바람. 스테파노프. > ---- > 예브게니 A. 스테파노프가 1961년 6월 17일 21시 10분 국방인민위원회에 보낸 전문. 1996년 국가조사위원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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