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북랜드해협조약기구(NLTO)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배경 ==== 오로아 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1964년 브레자코프가 사비에트 노동인민당 서기장에 오른 뒤 사비에트는 군비 재건에 나섰고, 1966년부터 루이나 해군정보부는 사비에트가 오로아 조약의 해군 군비 제한을 넘어섰다는 보고를 잇달아 올렸다. 해협 남부에서는 사비에트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 운동이 체르드와 라 마베라에서 세를 넓혔고, 1963년 독립한 [[동사랜드]]는 처음부터 공산 정권이었다. 해협 바깥에서는 [[소련]]과 [[미합중제국]]의 냉전이 굳어지고 있었다. 루이나 정부는 1967년 3국 동맹을 상설 다자 기구로 바꾸고 플로렌시아를 끌어들이는 구상을 내놓았다. 1차 랜드 전쟁을 함께 치렀으면서도 평시 동맹 관계가 없던 플로렌시아를 묶어 두는 것이 핵심이었다. 1968년 벨포르에서 열린 4개국 협상의 첫 쟁점은 지휘권이었다. 루이나는 통합 사령부의 지휘권을 요구했고, 플로렌시아는 루이나가 기구 전체를 장악하는 것을 경계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루이나가 맡되 사무총장은 루이나 국적자가 맡지 않는다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고, 이는 지금까지 관행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적용 범위였다. 플로렌시아는 랜드해협 바깥의 자국 식민지가 집단방위 대상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식민지 분쟁에 동맹국을 끌어들인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조약 제6조는 적용 범위를 랜드해협 연안의 당사국 영토와 해협의 해역·영공으로 한정했다. 이 조항은 훗날 반대 방향으로, 즉 루이나의 역외 군사행동에 동맹을 끌어들이지 않는 근거로 더 자주 쓰이게 된다. 세 번째 쟁점은 북산이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