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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공화국: 스틸워터와 검은 10년 === 1949년 제3공화국이 수립되고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언론에 대한 국가의 관심은 검열에서 감시로 옮겨갔다. 1959년 4월 3일 국방부장관 상시 지정으로 개시된 [[스틸워터 계획]]은 비판적 언론인을 장기간 사찰하고 압박하며, 필요한 경우 사고로 위장해 제거하는 공작이었다. 21년 6개월간 별표에 등재된 1,062명 가운데 상당수가 현직 기자·편집인·방송 제작자였다. 압박 수단은 대부분 개별적으로는 합법인 행정 절차였다. 세무조사, 예비군 반복 소집, 공공임대주택 배정 심사, 여권 발급 지연, 그리고 광고주에 대한 비공식 접촉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광고주 접촉은 특히 효과가 커서, 1960년대 중반 몇몇 중소 신문이 수개월 사이에 광고가 끊겨 자진 폐간했다. 이들 신문의 폐간은 당시 경영난으로 보도되었고, 공작의 결과였다는 사실은 1993년 전직 실무 책임자의 증언 이후에야 알려졌다. 사망자 가운데 언론계 인물은 1964년 화재로 사망한 러시아어 주간지 편집인 마르타 K. 오시포바, 1966년 [[아르덴역 폭발]] 관련 승강장 기록을 취재하던 중 실족사한 파스칼 E. 르노, 1968년 심장질환으로 발표된 국영방송 제작자 뱅상 L. 아르디, 1976년 자살로 처리된 사진기자 뤼도비크 A. 페뇨, 1977년 익사한 클로딘 M. 베르네가 있다. 이들은 모두 사고사 또는 자살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검은 10년]]의 사망자 835명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같은 통계에서 정치 폭력으로 사망한 언론인 7명은 무장조직의 공격을 받은 경우에 한한다. [[검은 10년]] 동안 언론은 취재 대상이자 표적이었다. 무장조직은 자신들의 성명을 지면에 싣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실제로 [[프롤레타리아 행동대]]가 1975년 행형국장을 납치하면서 내건 요구도 성명의 게재와 낭독이었다. 1977년 제정된 반테러 임시조치법은 무장조직의 성명을 원문 그대로 게재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에 포함시켰고, 이 조항으로 처음 기소된 것이 진보 일간지 [[라 부아]]였다. 1976년부터 1977년까지 [[10월 전선]]이 징병사무소에서 빼낸 명부 사본을 언론사에 우편으로 보낸 사건도 이 시기의 일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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